[아시안컵] 8강서 멈춘 박항서 매직…그래도 '새 역사'는 이어졌다
베트남, 12년 만의 본선 진출에 역대 첫 '녹아웃 스테이지 승리'
(두바이=연합뉴스) 이영호 기자 = 마침내 경기의 끝을 알리는 주심의 휘슬이 울리자 박항서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의 표정은 오히려 평온해졌다. 비록 승부에서는 졌지만 '우승 후보' 일본을 끝까지 괴롭힌 선수들을 향한 대견함이 담긴 표정이었다.
2019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에 도전한 '박항서 매직'이 8강에서 멈췄지만 베트남 대표팀은 사실상 역대 최고 성적표로 대회를 마무리하며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얻게 됐다.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대표팀은 24일(한국시간)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의 알 막툼 스타디움에서 열린 일본과의 8강전에서 후반 12분 허용한 페널티킥 실점을 만회하지 못하며 0-1로 패했다.
말 그대로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의 모범이었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00위인 베트남은 50위의 일본을 상대로 점유율에서는 크게 밀렸음에도 날카로운 역습으로 여러 차례 득점 기회를 만들었다.
그러나 끝내 골로 연결하진 못했고, 베트남은 결국 이번 대회를 8강에서 마감했다.
베트남의 역대 최고 성적은 기록상으로 1956년 대회와 1960년 대회의 4위다. 하지만 당시 두 대회에는 4개 팀만 나섰고, 베트남은 꼴찌였다.
이 때문에 베트남의 역대 최고 성적은 16개 팀이 출전했던 2007년 대회 당시 8강이다. 베트남은 12년 만에 나선 아시안컵 본선에서 역대 최고 성적과 동률을 이룬 셈이다.
베트남의 이번 대회 8강은 12년 전보다 더욱 큰 의미가 있다. 이번 대회부터 참가국이 24개 팀으로 늘어나면서 예전에 없던 16강전이 생겨서다.
베트남은 조별리그 D조에서 1승 1무 1패를 기록, 조 3위로 16강 진출권을 따내며 극적으로 조별리그를 통과했다.
16강 상대는 난적 요르단이었다. B조 선두로 16강에 오른 요르단을 상대로 베트남은 먼저 실점하며 패색이 짙었지만 극적인 동점골로 승부의 균형을 맞춘 뒤 결국 승부차기에서 4-2로 이겨 8강 티켓을 따냈다.
베트남이 아시안컵에서 역대 처음으로 거둔 녹아웃 스테이지 승리였다.
역대 아시안컵 가운데 처음으로 베트남이 2승을 거둔 것도 '박항서 매직'의 효과였다.
2017년 하반기 베트남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은 박 감독은 지난해 초 AFC 23세 이하(U-23) 챔피언십에서 베트남의 역대 첫 준우승을 이끌며 '박항서 매직'의 서막을 열었다.
지난해 아시안게임에서는 베트남의 역대 첫 4강 진출을 이끌었다.
U-23 대표팀에 이어 성인 대표팀을 이끌고 동남아시아 최고 축구잔치인 스즈키컵에 나선 박 감독은 10년 만의 우승이라는 쾌거를 일궈내며 '국민 영웅'으로 우뚝 섰다.
국내 팬들 역시 박 감독을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를 쓴 거스 히딩크 전 감독에 빗대 '쌀딩크'라는 별명을 붙이며 열광했다.
마침내 아시아 축구 최고의 무대로 손꼽히는 아시안컵에 나선 박 감독은 "조별리그 통과가 목표"라는 소박한 목표를 내놨지만 조별리그 통과를 넘어 8강까지 진출하는 성적을 내며 또 한 번 베트남 국민에게 큰 감동을 줬다.
비록 일본의 벽을 넘지는 못했지만 베트남은 이날 90분 내내 치열하게 맞붙으며 베트남의 '투쟁 정신'을 보여줬다.
지치지 않는 체력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역습을 노리는 '박항서식 실리 축구'를 펼치며 아시아 축구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경기가 끝난 뒤 기자회견장에 웃음을 지으며 등장한 박 감독은 "패했지만 감독으로서 우리 선수들이 보여준 투쟁심에 만족한다"라며 "내심 기적을 바랐지만 이뤄지지 않았다"라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보였다.
박 감독은 한국, 베트남 취재진과 일일이 악수를 하고 흐뭇한 미소로 "바이 바이"를 외치며 베트남 축구의 아시안컵 마감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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