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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지헌의 브러시백] ‘염갈량’ 염경엽, ‘단장’ 염경엽을 넘을까

일병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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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9 (월) 10:02

                           
-3년 총액 25억 원, 역대 감독 최고 연봉 받는 ‘염갈량’ 염경엽 감독
-SK 한국시리즈 우승, 힐만 감독 개인 아닌 SK 야구의 성공
-단장으로 우승 이룬 염경엽, 감독으로 성공 이어갈까
 
[배지헌의 브러시백] ‘염갈량’ 염경엽, ‘단장’ 염경엽을 넘을까

 
[엠스플뉴스]
 
프런트 야구. KBO리그에서만 사용되는 정체불명의 표현이다. 굳이 풀이하자면 구단 내 힘의 균형이 프런트 쪽에 쏠려 있는, 프런트가 구단 운영을 주도하는 야구를 말한다. 
 
프런트 야구의 대척점에는 ‘현장야구’ 혹은 감독의 야구가 있다. 실업야구, 고교야구 시절 후진적 운영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초창기 프로야구에서 일부 감독의 권한과 능력이 과대평가된 결과다. 낙하산 인사들 때문에 구단 프런트의 전문성이 떨어졌던 것도 ‘프런트 야구’가 욕설 비슷한 의미를 갖게 된 이유 중 하나다. 
 
SK 와이번스는 굳이 하나를 고르자면 ‘프런트 야구’를 하는 팀에 가깝다. 김성근 감독 시대 이후 지속적으로 현장 감독이 차지하는 비중을 줄여온 구단이 SK다. SK에서 현장 감독의 권한은 현장 안에 머문다. 선수 영입, 드래프트, 육성 과정에 감독은 개입하지 않는다. 주어진 선수단을 갖고 144경기를 지휘하는 게 SK에서 감독의 몫이다.
 
이런 SK가 우승 감독 트레이 힐만을 떠나 보내고, ‘명장’ 염경엽 감독을 새 사령탑에 선임했다. 염 감독은 과거 넥센 히어로즈에서 4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룬 바 있다. 
 
몸값도 명장 대우를 톡톡히 했다. 3년 총액 25억 원에 연봉 7억 원, 단숨에 역대 감독 최고 연봉 기록을 갈아치웠다. 김태형, 류중일, 김기태 등 한국시리즈 우승 감독들도 받지 못한 연봉이다. 모 구단 신임 감독은 염 감독의 몸값 소식을 듣고는 “와!”하고 감탄사를 연발했다. 
 
바꿔 이야기하면, 염 감독 한 명이 갖는 가치와 비중이 그만큼 크다고 SK가 평가한 셈이다. SK가 ‘감독의 야구’와 가장 대척점에 있는 팀이란 점을 생각하면 아이러니한 일이다. 
 
SK 우승은 ‘힐만 야구’가 아닌 SK 야구의 승리다
 
 
재미있는 현상이 있다. SK 와이번스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트레이 힐만 야구’의 성공으로 평가하려는 움직임이다. 
 
이런 관점에선 SK가 거둔 모든 성공은 곧 ‘명장’ 힐만 감독의 뛰어난 지도력과 판단이 거둔 성공이 된다. SK의 2년 연속 200홈런 돌파는 힐만 감독이 어퍼스윙을 장려한 덕분이고, 김광현이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154km/h를 던진 건 힐만 감독의 철저한 투수 보호 원칙 덕이다. 
 
SK의 세밀한 ‘데이터 야구’도, 적재적소 수비 시프트도 죄다 힐만 감독이 구상하고 준비하고 실행한 힐만 야구의 성과로 포장됐다. 하나부터 열까지 죄다 힐만 감독이 이룬 성공이다. 열거된 업적만 놓고 보면 전지전능한 야구의 신이 따로 없다.
 
실상은 조금 다르다. SK의 우승을 ‘힐만 야구’의 성공으로 평가하는 건, SK 야구의 본질을 완전히 오해한 것이다. SK의 우승은 힐만 개인의 야구가 거둔 성공이라기보단, SK라는 우수한 조직이 추구한 야구가 성공으로 이어진 결과였다.
 
SK는 진보적인 프런트가 주도하는 야구단이다. 구단이 추구하는 야구와 가치가 뚜렷했다. 가고자 하는 방향을 정해놓고 이를 잘 실행할 수 있는 감독을 찾았다. 힐만은 SK가 원하는 야구를 구현할 수 있는 여러 감독 후보 가운데 하나였다. SK가 추구하는 야구에 힐만 감독도 동의했기에 역대 두 번째 외국인 감독이 탄생할 수 있었다.
 
감독 한 사람이 번뜩이는 판단과 전지전능한 능력이 팀을 좌우하는 건 옛날 얘기다. 힐만 감독과 SK는 그런 야구를 하지 않았다. 시즌 준비 단계부터 치밀하게 감독과 코칭스태프와 구단이 머리를 맞대고 상의하고 계획했다. 전체적인 큰 그림부터 투수진 기용의 원칙까지(김광현 이닝제한, 선발 100구 전후 교체 등) 감독 혼자 생각하고 결정한 건 거의 없다.
 
데이터 야구는 힐만 감독 개인이 아닌 SK가 꽃을 피웠다. 데이터에 기반한 선수 기용, 과감한 수비 시프트는 힐만 감독 혼자 생각하고 준비해서 실행에 옮긴 게 아니다. 이런 방향을 설정하고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준비해 현장에 제공한 SK 프런트가 있었고, 이를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훌륭하게 몸으로 옮겼다. 
 
물론 힐만 감독이 SK의 성공에 기여한 부분도 분명 있다. 힐만 감독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과 권한이 무엇인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구단의 결정에 불만을 표하거나, 선수 영입 등에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주어진 선수단을 갖고 최상의 경기를 하는 데 집중했다. 
 
힐만 감독은 구단이 제공하는 정보를 십분 활용했다. 구단의 ‘도움’을 간섭으로 여겨 배척하지 않았다. 구단이 추구하는 방향이 현장의 독단적인 판단에 의해 왜곡되는 일이 SK에선 벌어지지 않았다. 힐만 감독과 함께했기에, SK는 자신들이 추구하는 야구를 100%에 가깝게 구현할 수 있었다. 
 
또 힐만 감독은 훌륭한 ‘관리자’였다. 선수들에게 끊임없이 동기를 부여하고, 자신감과 영감을 불어넣으면서 개개인이 지닌 잠재력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게 도왔다. 한 경기 승패에 일희일비하지 않았고, 한번 실수했다고 무너지지 않았다. 덕분에 2위 팀이 1위 팀을 한국시리즈에서 이기는 드라마가 가능했다. 
 
감독 개인 아닌 ‘SK 야구’를 강조한 염경엽 감독
 
 
이제 염경엽 감독은 한국시리즈 우승 감독 트레이 힐만의 뒤를 이어 SK를 이끌어가야 한다. 전통적인 ‘현장야구’ 관점에서 보면 힐만 같은 명장이 빠져나간 내년 시즌 SK는 큰 어려움을 겪는 게 당연하다. 투수 기용부터 데이터 야구까지 죄다 힐만 감독이란 ‘명장’ 덕분에 가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SK는 그런 야구를 한 팀이 아니다. SK의 성공은 힐만 감독이란 뛰어난 개인이 아닌, SK 구단 구성원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힘을 합쳐 이룬 결과다. 애정을 갖고 야구단을 지원한 구단주와 전문가들의 판단을 존중하는 대표이사가 있었고, 각자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 프런트 직원들과 코칭스태프가 있었다. 
 
힐만 감독은 떠나갔지만, SK를 우승팀으로 만든 시스템은 그대로다. 감독이 바뀌어도 SK가 추구하는 야구는 달라지지 않는다. 염 감독도 취임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야구가 아닌 SK 와이번스가 하고자 하는 야구를 얘기했다. 팬들에게 사랑받는 야구, 스마트하고 화끈하면서 성실하고 매너 있는 야구, 팬들에게 즐거움과 감동을 주는 야구가 염 감독과 SK가 추구하는 야구다. 
 
염 감독은 힐만 감독과 함께한 SK가 성공을 거둔 비결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염 감독은 “힐만 전 감독님이 이런 야구를 정말 잘해주셨다”고 치켜세웠다. 여기서 ‘이런 야구’란 염 감독이 앞서 이야기한 ‘SK 와이번스가 하고자 하는 야구’를 의미한다. ‘힐만 야구’를 SK가 한 게 아니라, SK의 야구를 힐만 감독이 잘 실행해줬다는 관점이 드러난다.
 
이어 염 감독은 힐만 감독의 뒤를 잇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코치진과 잘 준비하겠다면서 힐만 감독님의 뒤를 이어 SK만의 시스템과 매뉴얼 등이 정착할 수 있게 하는 역할도 중요하다. 이를 잘 실행하다 보면 결과는 따라오리라 믿는다고 밝혔다. 감독 개인의 천재성이 아닌 구단 전체가 함께 하는 야구를 다시 한번 강조한 염 감독이다.
 
따지고 보면 SK 야구가 거둔 성공은 지난 2년간 ‘단장’ 염경엽이 이끈 SK 프런트가 거둔 성공이기도 하다. 넥센 감독 시절 ‘명장’이란 평가에도 우승은 이루지 못했던 염 감독은 SK에 와서 감독이 아닌 단장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이란 성공을 경험했다. 그리고 이제는 감독의 자리로 돌아왔다. ‘명장’ 염경엽 앞에는 이제 ‘단장’ 염경엽이 만든 SK의 성공을 이어가야 할 과제가 주어졌다.
 
배지헌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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