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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우의 MLB+] 야구는 감독이 아닌 선수가 한다

일병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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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29 (월) 21:01

                           
[이현우의 MLB+] 야구는 감독이 아닌 선수가 한다

 
[엠스플뉴스]
 
글에 들어가기 앞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현시점에서 LA 다저스 감독 데이브 로버츠는 팬들로부터 비판받아 마땅하다. 왜냐하면, 글을 쓰는 시점에서 다저스가 보스턴 레드삭스에게 시리즈 스코어 1-4로 월드시리즈에서 패배했기 때문이다. 프로스포츠 구단의 감독은 결과에 책임을 지는 자리다. 그의 선수 기용이 과연 합리적이었는지, 그렇게 기용할 수밖에 없었던 팬들이 모르는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 중요한 점은 '결과적으로 그의 선수 기용이 실패했다는 것'이다. 그 사실만으로도 팬들은 그를 비판할 자격이 있다. 하지만 지금 미국과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로버츠에 대한 비판 여론은 좀 과한 감이 있다. 
 
다시 한번 말하거니와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로버츠의 선수 기용을 옹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필자가 아쉬움을 느끼는 지점은 월드시리즈에서 가장 주목받는 사람이 선수가 아닌 감독이 됐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정작 주목을 받았어야 했을 선수들의 활약이 묻히고 있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이는 메이저리그, 더 나아가 프로야구라는 콘텐츠를 즐기는 좋은 방식이 아니다.
 
감독보단 선수의 활약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어떤 경기에서 8회 동점 솔로 홈런을 쳐낸 데 이어 9회에는 균형을 깨는 3타점 적시 2루타를 친 선수가 있다. 당연히 그 경기의 포커스는 해당 타자의 활약에 맞춰져야 한다. 그 경기가 월드시리즈라면 말할 것도 없다. 해당 타자는 스타가 된다. 그리고 수십년이 지나 당시 소속팀이 월드시리즈를 치를 때쯤 경기장에 초청되어 시구를 한다.
 
수십 년 후 경기장을 찾은 팬들은 응원팀에 월드시리즈 우승을 선물해준 추억의 선수를 보며 감회에 젖는다. 이것이 메이저리그란 문화 콘텐츠가 100여 년간 팬들로부터 사랑받아온 이유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이번 월드시리즈에선 그렇지 못했다. 
 
월드시리즈 4차전에서 보스턴 1루수 스티브 피어스는 8회 동점 솔로 홈런을 쳐낸 데 이어 9회에는 균형을 깨는 3타점 적시 2루타를 쳐냈다. 그러나 대부분의 팬들은 이런 결정적인 활약을 펼친 피어스 대신 상대 감독인 로버츠의 투수 기용에만 초점을 맞췄다. 그렇게 되면 해당 사건은 '피어스가 잘해서'가 아닌 '로버츠가 못해서' 벌어진 일이 된다.
 
이런 인식을 우려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해볼 수 있다.
 
첫째, 라인업을 짜고 대타를 기용하고 투수 교체를 하는 등 감독이 경기에 일부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결국 그라운드에서 플레이를 하는 사람은 선수다. 즉, 감독은 조연일 뿐 주연은 어디까지나 선수라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플레이를 향한 칭찬과 비난은 역시 선수를 향해야 한다. 그것을 감독에게만 돌리는 순간 경기에 대한 몰입감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둘째, 패배 원인을 감독의 잘못된 기용에서만 찾는 것은 메이저리그란 콘텐츠가 팬들에게 긍정적으로 인식될 가능성을 낮추고, 부정적으로 인식될 가능성을 높이면서 신규 팬의 유입을 방해할 수 있다. 피어스의 활약에 초점을 맞추면 '우와'하고 감탄사가 나올 일도, 로버츠에 초점을 맞추면 탄식을 내뱉을 일이 된다.
 
그렇게 되면 치열한 혈투 끝 승리는 '로버츠가 라인업을 잘 짜고 투수 교체를 잘했으면 쉽게 이겼을 경기'가 되고, 아쉬운 패배는 '로버츠가 라인업을 잘 짜고 투수 교체를 잘했으면 이길 수 있었던 경기'가 된다. 그 과정에서 정작 주목받아야 할 선수들의 활약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 이런 스포츠가 재밌게 느껴질 리가 없지 않은가.
 
로버츠는 잘못했지만, 그보단 보스턴이 더 쎘다
 
 
 
피어스는 이번 월드시리즈에서 타율 .333 3홈런 8타점 OPS 1.667을 기록하며 WS MVP를 차지했다. 앤드류 베닌텐디 역시 타율 .333을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결정적인 호수비로 팀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도왔다. J.D. 마르티네스는 팀이 승리한 1, 2, 5차전에서 결정적인 타점을 만들어냈고, 데이빗 프라이스는 3경기에 등판해 2승 무패 13.2이닝 평균자책점 1.98을 기록했다.
 
3차전에서 불펜으로 등판해 연장 6.0이닝을 2실점(1자책)으로 버텨낸 네이선 이볼디의 기여와 전 경기에 등판해 6.0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낸 조 켈리의 공헌도 빼놓을 수 없다. 이렇듯 보스턴이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한 이유는 알렉스 코라 감독이 로버츠보다 똑똑해서도, 로버츠 감독이 '돌머리'여서도 아니다. 그냥 보스턴 선수들이 잘해서 우승한 것이다.
 
우승 과정에서 코라 감독이 잘한 점(대표적인 예로 후반기 들어 선발 로테이션에 휴식을 충분히 줬기 때문에 포스트시즌 들어 불펜과 선발을 가리지 않고 등판했음에도 불구하고 선발진들이 버텨낼 수 있었다)도 있었지만, 그 역시 보스턴이 정규시즌 108승을 거둘만큼 압도적인 전력을 갖췄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반면, 다저스는 163번째 경기를 통해 간신히 92승으로 NL 서부지구 1위를 확정 짓고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NLCS는 7차전까지 갔다. 둘중 어느 팀의 우승 가능성이 더 높았을까? 당연히 보스턴이다. 물론 전력 차이가 반드시 우승을 결정짓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 월드시리즈만큼은 예외였다. 보스턴은 4차전에서 올라온 모든 다저스 불펜을 상대로 1점 이상씩을 뽑아냈다.
 
한편, 5차전에 올라온 페드로 바에즈도 홈런을 맞았다. 과연 등판 순서가 바뀌었다고 해서 결과가 달라졌을까? 한 경기에선 그랬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필자는 결국 월드시리즈 우승팀이 바뀌지는 않을 거로 생각한다.
 
 
 
물론 다저스 팬들에게 2년 연속 준우승은 만족스러운 결과가 아닐 것이다. 괜히 "일등이 아니면 다 꼴찌"란 말이 나왔겠는가. 하지만 올 시즌 다저스 선수단은 온갖 악재를 극복하고 끝내 내셔널리그 챔피언이 됐고, 적어도 내셔널리그 15개 팀 가운데 가장 뛰어난 결과를 남겼다. 때때로 감독이 납득하기 어려운 기용을 하긴 했지만, 그건 상대 팀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결과가 상이했는데 이는 거의 전적으로 선수들의 기량 차이에서 나왔다. 필자가 생각하는 이럴 때 가장 '쿨한 대처'는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상대팀을 칭찬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한 해 동안 우리에게 즐거움을 안겨준 선수들에게 고마움을 느낀 다음, 스토브리그에는 다 같이 내년 월드시리즈 우승을 위해서 필요한 일들에 대해 떠들면 된다.
 
그것은 로버츠의 경질이 될 수도, 새로운 선수의 영입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점도 있다. 월드시리즈 우승 실패를 감독의 기용 탓만으로 돌리기엔 월드시리즈에서 두 팀이 보여준 실력 차이가 너무도 확연했다는 것이다.
 
이현우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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