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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우의 MLB+] 딱 '한 끗'이 모잘랐던 류현진

일병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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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25 (목) 21:23

                           
[이현우의 MLB+] 딱 '한 끗'이 모잘랐던 류현진

 
[엠스플뉴스]
 
승전과 패전은 딱 한 끗 차이였다.
 
2-1로 한 점 앞서 있는 상황에서 맞이한 5회. 류현진은 공 3개로 첫 두 타자를 잡아냈다. 하지만 9번 타자인 크리스티안 바스케스에게 안타를 허용하면서 경기가 꼬이기 시작했다. 이후 1번 타자 무키 베츠에게 연속 안타를 내준 류현진은 2사 1, 2루 상황에서 2번 타자인 앤드류 베닌텐디를 상대하게 됐다.
 
경기를 보고 있는 야구팬이라면 누구나 승부처임을 알 수 있었던 타석이다. 만약 베닌텐디를 잡아낸다면 류현진은 5이닝 1실점 5탈삼진으로 승리 투수 요건을 충족시킬 수 있었다. 아니, 61개였던 투구 수를 고려한다면 최소 1이닝은 더 던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과는 볼넷이었다. 류현진은 주자 3명을 남겨놓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이후 2사 만루 상황에서 교체되어 들어온 라이언 매드슨이 밀어내기 볼넷에 이어 4번 타자 J.D. 마르티네스에게 적시타를 허용하면서 류현진이 남겨 놓은 주자 3명이 모두 홈 플레이트를 밟았다. 그러면서 류현진의 성적은 4.2이닝 4실점이 됐다. 그대로 경기가 끝나며 패전 투수가 된 것은 덤이다.
 
 
 
단 한 타석에서의 결과를 통해 최소 5이닝 1실점으로 승리 투수가 될 수도 있었던 류현진의 월드시리즈 첫 등판이 4.2이닝 4실점 패전 투수로 변한 것이다. 그러자 한국 메이저리그 팬들 사이에선 '류현진을 믿고 맡겼으면 3실점까진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반응부터 '교체 시기는 맞았지만 하필 왜 라이언 매드슨이었나'라는 반응까지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굳이 이 글에서까지 류현진 교체 시기의 적절성 및 교체된 이후의 상황에 대해 다룰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 글의 초점을 맞추고자 하는 부분은 오직 하나. 바로 승전과 패전을 딱 한 끗 차이로 갈랐던 그 순간이다. 
 
마지막 타석에서 왜 류현진은 계속 고개를 저었을까?
 
[이현우의 MLB+] 딱 '한 끗'이 모잘랐던 류현진

 
해당 타석 전까지 류현진은 까다로운 타자인 베닌텐디를 2타수 무안타로 막아내고 있었다. 우선 1회말 첫 번째 맞대결에서 류현진은 5구 만에 베닌텐디를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첫 번째 타석에서 마지막에 던진 공은 바깥쪽 낮은 코스로 제구된 절묘한 커브였다. 사실 이날 커브는 류현진의 모든 구종을 통틀어 가장 돋보이는 구종이었다.
 
이날 류현진은 좌타자를 상대로 던진 30구 가운데 43.3%에 해당하는 13구를 커브로 던졌다. 이는 정규시즌에선 볼 수 없었던 높은 비율이다. 정규시즌까지만 해도 류현진은 좌타자를 상대할 때 패스트볼 계열 구종을 던진 비율이 약 70%에 달했다. 이는 우투수를 상대할 때보다 거의 20% 포인트 가까이 높은 비율이다. 
 
그리고 정규시즌 이런 단조로운 투구 패턴은 좌투수인 류현진이 좌타자를 상대로 약점을 보였던 원인이었다(이는 류현진의 주무기가 같은 손 타자를 상대로는 쓰기 까다로운 구종인 체인지업이라는 데에서 기인하는 문제다). 이에 포스트시즌을 앞두고 현지 주요 매체들 역시 "류현진은 좌타자를 상대할 때 패스트볼 비율이 높다"는 점을 약점으로 지목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날은 커브 비율이 높은 데다가, 평소보다 커브가 날카롭게 떨어졌다. 경기 초반 이런 정규시즌에선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투구 패턴에 보스턴의 좌타자들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4회말 2아웃 전까지 류현진은 좌타자를 상대로 커브를 던져 삼진 3개를 솎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 타석에서 류현진은 눈에 띌 정도로 커브를 던지길 주저했다.
 
[이현우의 MLB+] 딱 '한 끗'이 모잘랐던 류현진

 
그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추정된다. 첫째, 베닌텐디는 첫 번째 타석과는 달리 3회말 두 번째 타석에선 류현진이 던진 커브를 기다렸다는 듯이 받아쳐 중견수 직선타를 만들어냈다. 이는 앞선 타석을 통해 베닌텐디가 류현진의 투구 패턴을 어느 정도는 파악했다는 것을 뜻한다. 실제로 베닌텐디는 세 번째 타석에서 두 번 연속으로 잘 제구된 류현진의 커브를 커트해냈다.
 
둘째, 포수인 반스가 세 번째 타석에서 처음 던진 커브를 제대로 블로킹하지 못하면서 폭투로 이어질 뻔한 것도 영향이 있었을 수 있다. 
 
[이현우의 MLB+] 딱 '한 끗'이 모잘랐던 류현진

 
이 두 가지 추정에 대한 근거는 2스트라이크를 잡고 난 후 류현진의 반응이다. 류현진은 공을 던질 때마다 (아마도 커브로 추정되는) 반스의 리드를 고개를 저어 거부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후 류현진이 던진 공(5구째)는 몸쪽 높은 패스트볼이었다. 이후에도 류현진의 리드 거부는 계속됐다. 그러다 못내 동의했을 때 던진 공은 커브볼(6구, 7구째)이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고개를 젓다가 못내 던진 공임에도 불구하고 류현진이 던진 커브는 절묘한 위치로 날카롭게 떨어졌다. 문제는, 베닌텐디가 이를 예측이라도 했다는 듯이 파울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볼넷이 된 마지막 패스트볼 하지만 낙담하기엔 이르다
 
[이현우의 MLB+] 딱 '한 끗'이 모잘랐던 류현진

 
누가 보더라도 베닌텐디는 패스트볼을 노리고 있었다. 한편, 이를 눈치챘을 것이 분명한 류현진 역시 패스트볼로 정면승부를 원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던지고 싶었던 패스트볼을 던질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하지만 류현진이 던진 8구째 패스트볼은 원바운드 폭투가 되고 말았다. 패스트볼이 원바운드 폭투로 이어지는 것은 제구가 좋은 류현진에겐 극히 드문 일이다.
 
일반적으로 패스트볼이 미끄러져서 폭투가 나오면 위쪽으로 날아간다. 패스트볼이 원바운드될 정도로 낮게 날아갔다는 것은 그만큼 몸에 힘이 들어갔다는 뜻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해당 상황에서 류현진이 얼마나 긴장하고 있었는지를 짧게나마 짐작해볼 수 있다. 만약 폭투가 아닌 존에서 아쉽게 빗나간 공을 던지기만 했어도 류현진은 교체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결국 류현진은 교체됐고, 승계주자가 모두 홈을 밟으면서 류현진의 성적은 4.2이닝 4실점이 됐다. 한편, 남은 4번의 공격에서 팀이 동점 또는 역전을 만들어내지 못하면서 류현진은 패전 투수가 됐고, 원정 경기에서 모두 패한 다저스의 월드시리즈 우승 확률은 통계적으로 봤을 때 약 20.4%로 줄어들었다.
 
그러면서 빅 게임 피처(Big game pitcher, 큰 경기에 강한 선수)라는 류현진의 명성에도 금이 갔다. 확실히 일부 팬 및 현지 언론의 지적대로 이날 경기 패인은 류현진이 못 던져서라기보다는 로버츠 감독이 투수 교체 시점을 잘못 잡아서이거나, 교체 투수를 잘못 선택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낙담하기엔 이르다. 아직 월드시리즈는 끝나지 않았다.
 
 
 
다저스타디움에서 치르는 3, 4, 5차전에서 2승 이상을 거둘 수만 있다면 류현진은 6차전에서 한 차례 더 등판할 확률이 높다. 그때를 위해서라도 류현진은 이날 경기에서 실패한 원인을 복기해둘 필요가 있다. 한 번의 패배는 병가지상사다. 실수에 낙담하지 말고 다음에는 더 잘하면 된다. 
그런 의미에서 경기 후 류현진의 인터뷰는 인상적이었다. 
 
류현진은 “전체적인 상황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베닌텐디에게 내준 볼넷이 가장 안 좋았다"고 말했다. 이어 "경기 결과가 안 좋아서 개인적으로도 아쉽게 생각한다. 또 던질 기회가 된다면, 팀이 승리할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각오를 드러냈다.
 
+별난 MLB 특별편: 양 팀 팬들에게 류현진에 대해 물어보았습니다
 
 
 
이현우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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