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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지헌의 브러시백] ‘가을사나이’ 홍원기, ‘그때 난 이렇게 미쳤었다’

일병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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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25 (목) 10:23

                           
-2001년 두산 우승의 주역 ‘가을사나이’ 홍원기 넥센 코치
-1999년 트레이드 이후 친정 한화 우승 “눈물 핑 돌았다”
-2001년 김민호 부상으로 유격수 투입, 홈런 4방 때려내며 대활약
-넥센 후배들에 보내는 격려 “실수가 성장의 동력 될 것”
 
[배지헌의 브러시백] ‘가을사나이’ 홍원기, ‘그때 난 이렇게 미쳤었다’

 
[엠스플뉴스]
 
‘가을사나이’도 등급이 있다. 넥센 히어로즈 홍원기 수비코치는 역대 가을야구에서 맹활약한 선수를 거론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이다. 두산 베어스가 우승을 차지한 2001년 포스트시즌에서 보여준 ‘임팩트’가 그만큼 강렬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지도자가 되어 가을야구를 치르고 있는 홍 코치에게 ‘2001년’ 얘길 꺼내자 손사래를 쳤다. 아이고, 요맘 때면 그때 2001년 얘기가 꼭 나와요. 하지만 빙긋이 웃는 모습이 싫지는 않은 눈치다. 포스트시즌에 좋은 기억이 많다는 홍 코치에게 가을야구에서 ‘미치는’ 가을사나이의 조건은 무엇인지 들어봤다.
 
2001년 가을 맹활약, 준비된 활약이었다
 
[배지헌의 브러시백] ‘가을사나이’ 홍원기, ‘그때 난 이렇게 미쳤었다’

 
홍원기 코치는 전설의 ‘92학번’ 출신이다. 박찬호, 박재홍, 고 조성민, 임선동, 송지만 등 한국야구 최고의 황금세대 주역들과 동기다. 아마추어 시절 국가대표로도 활약했고, 1996 신인 1차 지명으로 한화 이글스에 입단한 유망주였다.
 
홍 코치는 입단 첫 해 곧장 한화 주전 3루수 자릴 꿰찼고, 포스트시즌에도 출전했다. 첫 가을야구에서 2경기 4타수 2안타 2볼넷 타율 0.500로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가을야구와는 첫 만남부터 좋은 인연을 맺었던 셈이다.
 
“포스트시즌 때는 대체로 좋은 기억이 많습니다. 처음 출전한 포스트시즌에서 잘 풀리면서 얻은 자신감도 좋은 영향을 준 것 같아요.” 홍 코치의 말이다.
 
하지만 홍 코치는 고질적인 허리 부상 탓에 데뷔 시즌의 활약을 꾸준히 이어가지 못했다. 결국 1999년 시즌 중에 트레이드로 친정을 떠나 두산 베어스로 이적했다. 그리고 홍 코치가 트레이드된 바로 그해 한화는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의 감격을 누렸다.
 
당시 제가 살던 집이 잠실 근처였습니다. 한화의 우승으로 시리즈가 끝나고, 야구장 쪽에서 불꽃놀이하는 게 보이더군요. 눈물이 핑 돌더군요. 그날 술 엄청 많이 마셨습니다. 홍 코치의 말이다. 이때 기억은 마냥 순하고 여렸던 홍 코치가 ‘독기’를 품고 야구에 전념하는 계기가 됐다.
 
새 소속팀 두산 내야진엔 홍 코치가 설 자리가 마땅치 않았다. “3루에는 김동주, 유격수 김민호, 2루수 안경현, 1루수로 타이론 우즈가 있었어요. 그전까진 주로 주전으로 뛰었는데, 막상 두산에 오니 제 설 자리가 없었죠.” 홍 코치가 말했다. “그때부터 멀티 포지션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홍 코치는 살아남기 위해 유격수와 2루수 수비 연습을 시작했다. “당시 양승호 수비코치님께 계속 졸랐어요. 유격수들 훈련할 때 나가서 펑고도 받고, 2루수 훈련 때도 같이 연습을 했죠.” 
 
눈칫밥을 먹으면서 멀티 포지션을 준비한 노력이 마침내 빛을 발할 기회가 왔다. 2001년 포스트시즌을 앞두고 주전 유격수 김민호가 무릎 십자인대 파열 부상으로 전열에서 이탈한 것. 김인식 당시 감독은 김민호를 대신할 유격수로 홍원기를 선택했다. 
 
마침 준플레이오프 상대팀은 홍 코치의 친정 한화였다. 독기를 품은 홍 코치는 2경기에서 8타수 4안타(1홈런) 3타점 타율 0.500로 펄펄 날았고, 준플레이오프 MVP까지 거머쥐었다. 
 
플레이오프에서도 홍 코치의 활약은 계속됐다. 현대 유니콘스 상대 1차전에서 치명적인 ‘알까기’ 실책을 저질렀지만, 다음날 2차전에서 쐐기 투런포를 날려 곧바로 만회했다. 3차전에서도, 4차전에서도 홈런 하나씩을 추가한 홍원기의 활약에 두산은 3승 1패로 현대를 꺾고 한국시리즈에 오를 수 있었다.
 
큰 경기라서 위축되는 건 전혀 없었어요. 1차전 실수로 많은 비난을 받았지만, 오히려 다음 경기에 마음을 비우고 임하는 계기로 삼았습니다. 다행히 그 다음 경기에 좋은 결과를 얻은 게 제게는 한 단계 성장하는 계기로 작용했습니다. 홍 코치가 당시를 떠올리며 말했다.
 
결국 그해 두산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한국시리즈에서 1위팀 삼성 라이온즈를 제압해 창단 3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3루수와 유격수를 오가며 팀의 가을 내야를 지킨 홍 코치는 마지막 한국시리즈 6차전에 1루수로 출전해 팀 승리를 함께 했다. 
 
“넥센 어린 선수들, 실수 통해 한 단계 성장하겠죠”
 
[배지헌의 브러시백] ‘가을사나이’ 홍원기, ‘그때 난 이렇게 미쳤었다’

 
정규시즌 타율 0.264에 6홈런을 ‘백업’ 선수였던 홍원기가 포스트시즌에서 펄펄 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홍 코치는 ‘타격 사이클’을 첫 번째 이유로 들었다. 포스트시즌이 펼쳐진 기간과 좋은 타격 사이클이 함께 만나면서 최고의 활약을 펼칠 수 있었단 얘기다. 실제 플레이오프까지 펄펄 날던 홍 코치는 한국시리즈에 가서는 9타수 무안타로 침묵했다. 
 
홍 코치는 큰 경기에서 실수나 실패가 더 크게 성장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저도 실책한 다음날부터 3경기 연속 홈런을 때렸습니다. 실수를 해도 그 다음에 호수비를 하거나, 빗맞은 안타라도 나오면 앞의 실수는 지워지고 ‘포텐’이 터진다는 걸 느꼈어요.” 홍 코치의 말이다.
 
우리 선수들도 이런 큰 경기에서 실수를 일찍 겪으면, 나중에 더 크게 성장하는 힘으로 작용할 거라고 생각해요. 요새는 지도자들의 코칭 방식도 많이 달라져서, 실수해도 질책보단 선수 눈높이에 맞게 도와주려고 하는 경향이거든요. 이런 것도 선수들의 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입니다.
 
‘가을사나이’가 되려면 타고나야 하는 덕목도 있다. 홍 코치는 “배포가 중요하다”고 했다. “전 큰 경기에서 좀처럼 위축되지 않았습니다. 너무 이겨야만 한다는 중압감보다는, 큰 경기를 축제로 생각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승패를 떠나 재미있는 경기를 하겠다는 자세가, 선수들의 기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마음가짐 아닐까요.”
 
홍 코치가 넥센 젊은 선수들의 활약을 자신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홍 코치는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두 차례 실책을 저지른 김혜성을 언급하며 “두 번 다 쉽지 않은 타구였다. 물기가 많은 그라운드 상태를 선수들에게 좀 더 강조하지 않은 내 미스 때문”이라면서도 “혜성이에게 굉장히 좋은 약이 됐을 것”이라 했다.
 
워낙 승부사 기질이 있는 선수입니다. 실수에 주눅들지 않고, 야구에서 있을 수 있는 일로 받아들이면 그걸 계기로 더 성장할 거에요. 19살 나이에 어떻게 이런 경험을 해보겠어요. 송성문, 이정후, 주효상 같은 다른 어린 선수들도 너무나 잘해주고 있습니다. 이 친구들에게 무슨 주문을 하기보단, 재밌게 즐기라는 말로 충분할 것 같아요.
 
홍 코치의 기대대로 넥센은 젊은 선수들이 일제히 활약하며 한화를 꺾고 플레이오프 무대까지 올랐다. 홍 코치에겐 또 하나의 기분좋은 기억으로 남을 올 시즌 가을이다. 홍 코치는 “아직도 기자들이 저만 보면 ‘가을나라이’라 부른다”며 “비록 야구 역사에 큰 획은 못 그었지만, 대신 짧고 굵게 재미있는 경험을 했다. 가을사나이라 불리는 게 기분 좋다”고 활짝 웃었다. 
 
배지헌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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