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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우의 MLB+] '위장선발'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

일병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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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9 (금) 17:22

                           
[이현우의 MLB+] '위장선발'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

 
[엠스플뉴스]
 
지난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NLCS) 5차전에선 충격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밀워키 브루어스가 선발 투수로 예고했던 좌완 선발 투수 웨이드 마일리를 단 한 타자만 상대한 후 교체한 것이다. 물론 메이저리그 역사상 한 타자만 상대하고 선발 투수를 교체하는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불의의 부상 때문이거나, 처음부터 불펜 총력전을 위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이번 교체는 달랐다. 
 
밀워키 감독 크레이그 카운셀은 경기 후 인터뷰를 통해 "우리가 (처음부터) 하려고 했던 일이다. 상대는 선발 매치업에 따른 타선을 짠다. 우리도 이에 맞서려고 한 것이다. 다저스는 매치업으로 맞서기 어려운 팀이다. 그리고 우리는 (실질적인 선발 역할을 한) 브랜든 우드러프에게 불리한 매치업을 허락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는 사실상 마일리의 선발 등판이 상대 팀이 라인업을 좌완 마일리에 맞춰 짜게끔 한 다음, 우완 투수인 우드러프를 냄으로써 매치업에서 우위를 가져가기 위한 기만 전술이었음을 인정한 것이다.  한국 야구에는 이를 가리키는 간편한 용어가 있다. 바로 '위장선발'이다. 위장이 주는 어감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 아구계에서 '위장선발'은 공공연한 비판의 대상이 됐었다.
 
 
 
하지만 정작 현지에선 이번 밀워키의 '위장선발'을 두둔하는 의견도 적지 않다. 유명 MLB 칼럼니스트인 <디 애슬레틱>의 켄 로젠탈은 "밀워키는 사기를 친 것도, 다른 팀보다 똑똑하다는 걸 증명하려 한 것도 아니다. 그들은 단지 아주 중요한 경기였던 NLCS 5차전을 이기려 한 것뿐이다. 이런 도전정신이야 말로 많은 사람이 야구를 사랑하는 이유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의견을 지닌 이들의 기저에는 올 시즌 메이저리그 마운드 운영에 혁신을 불러일으킨 '오프너 전략'에 대한 호의적인 입장이 깔려있는 경우가 많다. 미리 밝혀두거니와 필자 역시 오프너에 대해 긍정적인 시선을 보인 사람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위장선발'에 대해선 적절한 제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장기적인 관점으로 봤을 때 '위장선발'이 끼칠 해악을 막는 것이 한 경기에서 전술적인 우위를 갖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위장선발로 속이는 대상은 비단 상대팀 뿐만이 아니다
 
 
메이저리그 모든 구단은 늦어도 하루 전에는 다음 선발 투수를 예고한다. 미디어는 이를 기반으로 선전을 하고, 많은 야구팬은 선발 매치업을 기반으로 해당 경기에 기대감을 갖는다. 이는 메이저리그의 오랜 관행이다(영상=엠스플뉴스)
 
장기적으로 '위장선발'이 해악을 끼칠 것이라고 생각하는 근거는 그것으로 속이는 대상이 상대 팀뿐만이 아니라, 팬들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널리 알려진 사실과 달리, 현 규정상 MLB 팀들은 라인업 카드를 교환하기 전까진 그날 선발 투수를 상대 팀에 알리지 않아도 된다. 이를 활용하면 위장선발을 쓰지 않고도 상대 팀이 라인업을 구성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MLB 팀들은 최소 하루 전에는 다음 경기에 등판할 투수를 예고하는 관행이 있다. 그런 관행이 자리 잡게 된 이유는 야구팬 상당수가 당일 선발 투수로 누가 등판하느냐에 따라서 관람 및 시청 여부를 결정하며, (사실 생각보다 큰 영향은 없지만) 선발 투수를 아는 것이 해당 경기의 승패를 어림짐작하는 데에도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야구팬들은 다음날 선발 투수로 누가 등판할지에 관심이 클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언론이 경기 후 또는 경기 전 인터뷰에서 다음 시리즈에 등판할 선발 로테이션을 묻고 감독들이 대답하는 것이 전통으로 굳어지게 된 것이다. 그런데 '위장선발'을 용인하면 이런 관행이자 전통이 송두리째 흔들리게 된다.
 
[이현우의 MLB+] '위장선발'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

 
물론 포스트시즌에선 '위장선발'이 흥행에 문제가 안 된다. 포스트시즌은 선발 매치업과는 관계없이 모든 야구팬에게 주목을 받는 경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장선발'이 정규시즌에도 쓰인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렇기 때문에 '위장선발'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만약 한국의 류현진 팬이 류현진의 등판 경기를 보기 위해 다저스타디움에 방문한다고 가정해보자. 
 
해당 팬은 높은 확률로 팀이 사전에 예고한 선발 로테이션을 기준으로 삼아 다저스타디움 입장권을 구매할 것이다. 그런데 류현진이 한 타자만 상대하고 내려간다. 그럼 대체 어떤 기분일까? 이는 비단 한국의 류현진 팬뿐만 아니라, 미국의 팬들에도 해당하는 얘기이며,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KBO리그 팬들이 (다시) 겪을 수도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오프너(+불펜 데이) 전략'과 '위장선발'의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관련 기사: [이현우의 MLB+] 투수 운용의 혁신, '오프너'란 무엇인가)
 
프로스포츠는 팬들을 위한 '엔터테인먼트'
 
[이현우의 MLB+] '위장선발'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

 
오프너(Opener)란 1~3회를 무실점으로 막는 걸 목표로 하는 새로운 불펜 포지션으로 첫 번째로 등판하지만 기존 선발과는 달리, 짧은 이닝을 소화한 후 마운드를 내려가는 투수를 통칭하는 말이다. 오프너 전략을 쓰는 팀들은 일반적으로 오프너를 내린 직후 실질적인 선발 역할을 하는 롱-릴리프를 기용하는 경우가 많다.
 
한편, 불펜 데이(Bullpen Day)란 말 그대로 불펜 총력전을 말한다. 경기 시작부터 끝까지 불펜 투수를 차례차례 투입시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전략이 '위장선발'과 다른 점은 처음부터 긴 이닝을 소화할 수 없는 투수가 선발 투수로 예고되기 때문에 상대팀이나 팬들이 이를 미리 알고 경기장에 들어설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선발로 등판한 투수를 일찍 교체한다는 점은 같아도 위장선발과는 달리, 두 전략은 '팬들의 알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다. 반면, 기존 선발 투수를 위장선발로 내는 것은 다르다. 팬들은 위장선발로 낸 투수가 정말 등판하는 줄 알고 경기장을 찾는다. 이는 필자가 '오프너'에 대해선 긍정적이면서도 '위장선발'에 대해선 부정적인 가장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이현우의 MLB+] '위장선발'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

 
프로 스포츠에서 팀의 '승리'는 최우선 목표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프로스포츠는 그와 동시에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이기도 하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선발 투수의 평균 소화 이닝이 나날이 감소하면서 선발 투수가 해당 경기의 승패에 미치는 영향은 점점 줄어들고 있지만, 선발 매치업은 여전히 많은 야구팬이 경기 시청을 결정하는 요소 가운데 하나다.
 
이를 이용해 속임수를 쓰는 것은 상대 팀뿐만 아니라, 팬들도 기만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 한편, 이번 포스트시즌 들어 '위장선발'뿐만 아니라 시리즈마다 전자장비를 활용한 '사인 훔치기'에 대한 의혹이 나오고 있는 것에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승리를 향한 집념에서 비롯된 이런 행위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야구의 인기를 해치는 요소로 작용할 확률이 높다.
 
대부분의 프로스포츠 팬은 '정정당당한 승부'를 원한다. 기만행위를 '약자가 강자를 이기기 위한 수단' 또는 '당하는 구단이 바보'라고 인식하는 순간 야구는 팬들에게 마음 놓고 즐길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가 아니게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구단과 언론은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이현우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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