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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외국선수 선발, 서브 옵션이 정말 중요한 이유

일병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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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8 (토) 01:44

수정 1

수정일 2018.04.28 (토) 01:52

                           



[점프볼=편집부] 메인 요리가 아무리 맛있어도 입맛을 돋우고 입가심을 돕는 서브 요리가 탐탁치 않으면 뭔가 아쉬움이 남기 마련이다. 반대로 기가 막힌 디저트를 맛보게 된다면 음식을 통해 더 큰 여운까지 느끼게 된다. 그만큼 메인메뉴 못지않게 서브 요리도 중요하다. 프로농구 외국선수도 마찬가지다. 1명만 잘하면 뭔가 아쉽다. 몇 경기 째 1명만 잘하면 지겹고, 팀 에서도 내분이 생긴다. 2명이 함께 잘하고 국내선수까지 살아나면 비로소 농구 보는 맛이 난다.



 



‘서브 외국선수’라는 주제로 글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좀처럼 글을 써내려가기가 어려웠다. 썼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외국선수간 ‘서열 정리’ 사례를 비슷한 경우로 묶기에는 저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고, 이를 전부 설명하는 것이 글을 읽는 독자 입장에서 지루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은 ‘생각나는 대로’였다. 생각이 복잡할 때는 단순하게 나가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읽는 것도 마찬가지다. 단순하고 가볍게 읽어 내려가 주시길.



 





맥도웰, 헤인즈 전설의 시작은 ‘서브’였다 



외국선수 서열 정리는 주로 드래프트 순번에서 가려진다. 1라운드에 선발 된 선수가 메인이고 2라운드 지명선수가 서브를 맡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KBL 역사상 최고의 외국선수로 꼽히는 조니 맥도웰과 애런 헤인즈는 서브로 시작해 최고 자리에 올랐다는 공통점이 있다.  



맥도웰은 1998년 외국선수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9순위(19순위)로 대전 현대(현 전주 KCC)에 지명됐다. 기대가 크지 않았던 선수다. 현대가 당초 메인으로 구상했던 선수는 1라운드 2순위로 선발한 센터 제이 웹이었다. 둘의 서열이 바뀌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맥도웰은 시즌이 개막되기도 전에 메인자리를 꿰찼다. 당시 현대의 주전 포인트가드였던 삼성의 이상민 감독은 “제이 웹이 좋은 선수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팀 훈련을 시작하니 양상이 완전히 달랐다. 필리핀 전지훈련을 갔을 때 맥도웰이 엄청난 파워를 과시했다. 상대 팀 선수들이 맥도웰의 힘이 밀려 나가 떨어졌다. 반면 제이 웹은 필리핀의 거친 농구에 쩔쩔 맸다. 전지훈련에서 둘의 서열이 바뀌었다. 시범경기(당시에는 시즌 개막 전에 시범경기가 열렸다)때도 맥도웰을 당해내는 선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실력으로 서열 정리가 된 케이스다. 1997-1998시즌 맥도웰은 최우수외국인선수상(현 외국선수 MVP)을 수상하면서 전설의 시작을 알렸다. 웹은 비록 서브 역할을 맡게 됐지만, 크게 욕심을 내지는 않았다. 묵묵히 리바운드와 골밑 득점에서 궂은일을 하면서 팀의 통합우승에 기여했다.



 



 



헤인즈도 실력으로 서브에서 메인이 된 선수다. 다만 맥도웰보다는 시간이 걸렸다. 헤인즈의 시작은 대체선수였다. 2008-2009시즌 중반 에반 브락의 시즌대체선수로 삼성에 입단해 테렌스 레더의 서브 역할을 했다. 2008-2009시즌에는 1, 4쿼터에만 2명 동시 출전이 가능했다. (2006-2007시즌부터 시행된 제도로, 2008-2009시즌까지 계속되다가 2009-2010시즌부터는 2인 보유 1명 출전으로 바뀌었다.) 



당시 삼성은 ‘삼성 레더스’로 불릴 만큼 레더에 대한 비중이 엄청나게 높았다. 헤인즈는 제한된 출전시간 속에서도 빛났다. 특히 KCC와의 챔피언결정전 5차전에서는 73-73으로 동점을 이룬 경기 종료 직전 상대 수비 틈에서도 결승골을 성공시키며 잠실체육관을 열광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잠시 주제에서 벗어나… 기억을 더듬어 당시 자료를 찾다가 관중수를 보고 깜짝 놀랐다. 헤인즈의 버저비터로 삼성이 승리했던 챔피언결정전 5차전을 관전하기 위해 잠실체육관을 찾은 관중수는 무려 13,537명이었다. 9년 전 ‘공짜표빨’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지금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이다. 플레이오프에도 관중 5,000명을 채우기 힘든 2018년의 농구 인기 현실에 한숨이 나온다. 헤인즈는 당시 “코비가 된 기분이다”라고 승리 소감을 밝혔는데, 1만 명이 넘는 관중의 함성 속에 버저비터를 성공시켰으니 충분히 그런 느낌이 들었을 법하다.  



2009~2010시즌에 헤인즈는 현대모비스에서 브라이언 던스톤의 보조자 역할로 활약, 챔피언결정전 우승의 기쁨을 누리면서 ‘최고의 서브’로 명성을 떨쳤다. 그가 비로소 메인으로 자리 잡은 것은 2010-2011시즌이었다. 그 때도 시작은 서브였다. 헤인즈는 2009년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2순위(12순위)로 삼성의 지명을 받았다. 삼성이 1라운드에서 뽑은 선수는 노엘 펠릭스였다. 펠릭스가 고질적인 무릎 통증으로 골골대는 사이에 헤인즈는 메인으로 올라섰고 이후부터는 창원 LG, 서울 SK, 고양 오리온에서 줄곧 1옵션으로 활약했다. 맥도웰과 헤인즈는 실력으로 서열정리를 한 모범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서로가 인정하면 평화는 저절로 찾아온다  



선수라면 누구나 더 많이 뛰고, 많이 주목받고 싶어 할 것이다. 외국선수 출전 쿼터가 제한된 이래 각 팀 코칭스태프는 서열 정리에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2라운드 지명선수라고 마냥 2인자이길 바라는 선수는 없다. 특히 올 시즌은 경력 선수들이 대거 트라이아웃에 불참한 뒤, 대체선수로 팀에 합류했기 때문에 서열 정리가 더 어려웠다. KCC의 안드레 에밋과 찰스 로드, SK의 테리코 화이트, 헤인즈 조합은 의문부호가 달렸다. 에밋과 화이트는 재계약을 한 선수다. 로드와 헤인즈는 대체 선수로 영입했는데, 그동안 1옵션을 해왔던 선수들이었다. 1옵션과 1옵션의 만남이기에 서열 정리가 반드시 필요했다. 특히 에밋의 경우 볼 소유가 워낙 많은 선수였기 때문에 팬들마저 걱정할 정도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려는 기우였다. 서열 정리를 위해 코칭스태프가 나서지도 않았다. 에밋과 로드, 화이트와 헤인즈는 서로를 존중했다. KT, KGC인삼공사에서 1옵션 역할을 했던 로드는 “에밋이 공격을 많이 하는 선수라는 것은 잘 안다. 나는 수비와 리바운드에 집중하면 된다. 오히려 체력 부담이 없어서 좋다”고 쿨하게 말했다. 실제로 둘 사이는 시즌 내내 아무 문제가 없었다. 에밋이 부진한 날에는 로드가, 로드가 부진한 날은 에밋이 해결사 역할을 했다.  



SK도 마찬가지다. SK는 헤인즈가 1옵션이었는데, 화이트가 이를 기꺼이 인정했다. ‘화이트의 경기 몰입도가 떨어지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경기를 거듭할수록 위력이 배가됐다. 정규리그 막바지 화이트가 보여준 집중력은 플레이오프 진출이 확정된 팀들이 경계 할 정도였다.    



지난 시즌 삼성의 챔피언결정전 진출에 기여한 리카르도 라틀리프와 마이클 크레익 조합은 반대의 경우다. 삼성의 ‘더맨’은 라틀리프였다. 시즌 초반까지만 해도 큰 문제가 없었지만, 크레익이 스포트라이트를 맞으면서 어깨에 힘이 제대로 들어갔다. 시즌 중반 크레익은 “내가 포인트가드를 보겠다”며 볼 소유에 욕심을 드러내 라틀리프 뿐 아니라 동료들에게도 신뢰를 얻지 못했다. 삼성은 시즌 중반 교체까지 고려했지만, 잘 나가던 팀 구성을 바꾸기에는 부담이 따랐다. 삼성은 크레익과 재계약을 했지만, 인연이 길지는 않았다. 크레익은 여전히 겸손을 몰랐고 오프시즌동안 팀과 약속했던 체중 관리도 하지 않았다. 결국 삼성은 크레익을 퇴출시키고 마키스 커밍스와 계약을 체결했다. 커밍스는 라틀리프를 ‘더맨’으로 인정했으며, 시즌 중반 라틀리프가 부상으로 빠지자 메인 역할까지 기대 이상으로 해냈다. 크레익은 틈날 때마다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살 빠진 사진을 올리고 구단 관계자에게도 연락을 취했지만 삼성이 그를 다시 데려올 이유는 없었다. 그러니까 진작 좀 잘하지.



 



 



서열정리가 되지 않고 사이도 좋지 않았던 가운데에서 성공을 거둔 사례가 있었다.   



2008-2009시즌 초중반 안양 KT&G(현 KGC인삼공사)에서 콤비를 이룬 마퀸 챈들러와 캘빈 워너는 사이가 썩 좋은 편은 아니었다. 서로 자기가 더 나은 선수라고 생각했다. 당시 KT&G의 에이스였던 주희정은 “둘은 연습 때 자주 다퉜다. 심지어 경기 중에도 으르렁댔었다”고 말했다. 다만 서로를 필요로 했다. 한 명만 뛸 수 있는 2, 3쿼터에는 시간을 쪼개서 출전했지만 1, 4쿼터에는 찰떡 호흡을 과시했다. 외곽 공격이 능한 챈들러는 골밑 수비에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는데, 이를 워너가 대신했다. 반대로 워너는 최상급의 운동능력과 힘을 겸비했던 반면, 공격 기술이 뛰어나지는 않았다. 워너의 단점은 챈들러가 채웠다. 서로의 단점을 채우다 보니 그렇게 으르렁거려도 코트 위에서는 호흡이 잘 맞아 시너지 효과가 났다. 워너가 무릎 부상을 당한 뒤 대마초 사건에 휘말려 퇴출을 당하기 전까지 KT&G는 줄곧 상위권 성적을 유지했다.  



자유계약시절이었던 2006-2007시즌 SK의 루로와 키부 스튜어트는 실패 사례다. 루로는 스페인, 스튜어트는 이탈리아에서 이름 좀 날리던 선수였다. 엄청난 기대를 받으며 시즌을 치렀지만, 둘 다 기대 이하였다. 서로 볼을 잡고 공격하겠다고 난리였다. 팀 동료였던 SK 전희철 코치는 “둘은 말 한 마디 섞지 않을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SK선수들은 경기도 용인시 양지면에 있는 전용체육관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당시만 해도 외국선수는 강남의 오피스텔에서 생활했다. 국내선수들과 생활조차 같이 하지 않다보니 이래저래 잡음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성적은 말할 것도 없다. SK는 플레이오프도 가지 못한 채 폭망(7위)했다.



 





최고의 조력자 로드 벤슨 



점프볼 4월호의 테마인 ‘명품 조연’에 가장 잘 어울리는 선수는 올 시즌 정규리그 우승팀인 원주 DB의 로드 벤슨일 것이다. DB 이상범 감독은 지난해 7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외국선수 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디온테 버튼, 2라운드에서 조던 워싱턴을 뽑았다. 버튼은 마음에 들었지만 워싱턴의 기량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상범 감독은 대체선수로 벤슨을 데려왔다. 공격력이 더 좋고 에너지 넘치는 찰스 로드를 데려올 수 있었음에도 벤슨을 선택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조력자’를 원했기 때문이다. 이상범 감독은 “애초부터 우리 팀의 중심은 무조건 버튼이 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수비나 리바운드에서 버튼을 도와줄 수 있는 조력자를 찾았고 벤슨이 적임자라고 생각했다. 로드는 고려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벤슨은 불과 2~3시즌까지만 해도 메인 옵션으로 활약했던 선수다. 심지어 현대모비스 시절에는 라틀리프가 그의 백업으로 있었다.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한 선수의 서브 옵션이라는 것은 자존심이 상할 법도 할 만한 일이었지만, 벤슨은 이에 대해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오히려 버튼이 빨리 팀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왔다. 김주성은 “벤슨이 시즌 전 연습경기 때나 시즌 초반에는 버튼에게 상대 팀 선수의 장·단점에 대해 꼭 짚어줬다. 버튼 입장에서는 코칭스태프에서 설명해주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을 것 같다. 선생님 개념이랄까?”라고 설명했다. 실제로도 버튼은 “벤슨은 내가 한국 생활에 적응하는 데에 큰 도움을 줬다. 그가 있었기 때문에 더 쉽게 동료들과 어울리고 상대 선수에 대해서도 파악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버튼과 벤슨은 최고의 시너지 효과를 냈다. 버튼은 팀의 해결사 역할을 해냈고 벤슨은 상대 센터 수비, 리바운드 등 궂은 일로 팀 승리를 도왔다. 그 결과 DB는 예상을 깨고 정규리그 우승이라는 대파란을 일으켰다. 좋은 조력자를 뽑으면 1옵션도 살고 팀도 산다.   



 



# 사진_점프볼 DB(문복주, 이청하, 유용우, 이선영 기자)



 



# 본 기사는 점프볼 2018년 3월호에 게재된 기사의 일부로, 정지욱 스포츠동아 기자의 기고를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2018-04-28   편집부([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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