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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우의 MLB+] 메이저리그는 지금 제2의 스핏볼 시대

일병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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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4 (화) 15:22

수정 1

수정일 2018.04.24 (화) 17:46

                           


 


[엠스플뉴스]


 


야구 규칙에 따르면 투수는 공에 이물질을 묻혀서 던지면 안 된다.


 


이른바 스핏볼(spit ball)이라 불리는 부정투구 때문에 생긴 규정이다. 공에 무엇인가를 바르거나, 흠집을 내거나, 모양을 변형시켜 던지면 예측하기 힘든 방향으로 휘어져 나간다. 타자가 140km/h가 넘는 공을 치는 것은 투구 궤적을 예측했을 때만 가능하다. 예측하기 힘든 방향으로 갑자기 꺾이면 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110km/h가 간신히 넘는 너클볼에 헛스윙하는 이유다.


 


스핏볼은 공에 침 또는 이물질을 묻혀서 마찰력을 떨어뜨림으로써 너클볼과 유사한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심지어 평소 투구폼과 똑같고, 구속도 거의 떨어지지 않는다. 즉, 외부 요인에 의해 마구가 탄생하는 것이다. 당연히 타자들은 스핏볼을 치기 어렵다. 이런 공을 허용하면 지나치게 투수에게 유리한 환경이 조성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명목상으로 스핏볼은 1920년에 금지됐다.


 


하지만 스핏볼이 '멸종'된 것은 의외로 오래되지 않았다. 1960-70년대를 풍미했던 대투수 게일로드 페리(통산 314승, 양대리그 사이영상)는 그야말로 스핏볼의 달인이었다. 그의 라이벌이자 통산 324승을 기록한 돈 서튼은 스커프볼(scuffball, 사포 등을 이용해 공에 흠집을 내서 던지는 행위)의 달인으로 통했다. 재밌게도 두 부정투구의 양대산맥은 모두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두 종류의 부정투구가 거의 완전히 사라진 것은 중계 기술이 발전한 1980-90년대부터였다. 그런데 최근 메이저리그에는 다른 종류의 부정투구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바로 파인타르(송진)을 비롯한 여러 물질을 이용해 '마찰력을 높이는 방식'의 부정투구다.


 


바우어 "파인타르가 스테로이드보다 효과가 뛰어나다"


 




 


지난 4월 12일(이하 한국시간) 클리블랜드 선발 트레버 바우어(27)는 SNS를 통해 "규정은 규정대로 시행되어야 한다. 파인타르는 스테로이드보다 성적 향상 효과가 뛰어나다"고 말했다. 이는 투수 인스트럭터 카일 바디가 '게릿 콜의 반등 원인을 분석하는 글'을 링크하면서 "제기랄 내가 말해주지, (패스트볼 회전수가 늘어난 이유는) 파인타르 때문이야"라고 쓴 글에 대한 답변이었다. 


 


바우어는 이어 "내 패스트볼 구속은 분당 회전수(rpm)가 2250회 정도다. 그러나 파인타르를 사용할 경우 약 400rpm을 추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말과 함께 자료를 덧붙였다. 그가 공유한 자료에 따르면 2300rpm 이하 패스트볼의 피안타율은 .280, 헛스윙율은 17.1%다. 하지만 2600pm 이상일 경우 피안타율은 .213으로 감소하고, 헛스윙율은 27.5%까지 늘어난다. 


 


한편, 미국 스포츠전문매체 ESPN의 베테랑 기자인 버스터 올니는 23일 칼럼을 통해 "메이저리그에 파인타르를 사용하는 투수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모든 현장인들은 이런 사실을 알고 있다"고 밝혔다. 만약 바디와 바우어의 말대로 파인타르가 패스트볼의 분당 회전수를 400여 회 늘릴 수 있다면 이는 스테로이드 못지않은 부정행위(cheating)로 볼 여지도 있다.


 


그렇다면 이처럼 뛰어난 효과(?)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 상대 투수가 파인타르를 이용하는 행위를 묵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포심 패스트볼의 회전수에 따른 성적 변화


 


2600rpm 이상: [피안타율] .213 [헛스윙율] 27.5% 


2300rpm 이상: [피안타율] .253 [헛스윙율] 21.6% 


2300rpm 미만: [피안타율] .280 [헛스윙율] 17.1% 


2000rpm 미만: [피안타율] .309 [헛스윙율] 13.1% 


메이저리그 평균 포심 패스트볼 rpm: 2264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2014년에 있었던 한 사건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2014년 4월 24일 당시 양키스 소속이었던 마이클 피네다는 목에 파인타르를 묻히고 경기에 나섰다가 보스턴 감독 존 패럴의 항의로 퇴장당했다. 경기 후 패럴은 “추운 날씨에 그립감을 좋게 하려고 하는 것은 존중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확연하게 보이는 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바꿔 말하면 너무 티가 나기 때문에 지적했을 뿐 추운 날씨에는 몰래 사용해도 문제 될 게 없었다는 것이다. 보스턴 투수 클레이 벅홀츠 역시 "오늘처럼 기온이 낮은 날에는 로진백만으론 공을 다루기 어려울 수 있다. 그가 파인타르를 사용했다면 '타자의 몸에 맞히지 않기 위한' 의도에서였을 것"이라며 피네다를 두둔했다. 타자인 오티즈와 페드로이아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식으로 반응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자신이 속한 팀의 투수 가운데 일부가 파인타르를 비롯한 물질을 사용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황소개구리와 파인타르, 그리고 미끄러운 공인구


 




 


2014년 당시 보스턴에서 공에 이물질을 묻히는 것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투수는 벅홀츠였다. 어쩌면 그것이 그가 피네다를 강하게 옹호한 이유일 수도 있다. 벅홀츠가 이물질을 묻히는 투수로 유명해진 이유는 투구시 왼 팔뚝이 번들거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벅홀츠는 유독 많은 땀으로 인해 티가 났을 뿐, 그가 왼팔에 묻힌 '물질'은 사실 메이저리그 투수라면 거의 모두가 쓰고 있다. 


 


일명 '황소개구리(Bullfrog)'이라 불리는 자외선 차단제다. 메이저리그에서 사용되는 공인구는 여타 리그에서 사용되는 공에 비해 표면이 미끄럽기로 악명이 높다. 공을 사용하기 전에 클럽하우스 직원들이 '러빙 머드'라는 특수 진흙을 공에 발라도 미끄러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메이저리그 투수들은 선배들로부터 선크림과 로진, 땀을 배합해 묻힌 다음 던지는 법을 배운다.


 


메이저리그 공인구를 쓰는 WBC를 비롯한 국제대회에 나갈 때마다 우리나라 국가대표팀 역시 한국인 메이저리거들로부터 이런 비법(?)을 전수받았다는 것은 비밀이 아니다. 이처럼 널리 사용법이 퍼져있기 때문에 자외선 차단제를 규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콜의 파인타르 사용을 지적한 바우어 역시 차외선 차단제를 손에 묻히는 방식을 이용하고 있을 확률이 높다.


 


여기서 우리는 투구시 파인타르를 묻히는 행위를 금지하는 것이 생각만큼 녹록치 않으리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공에 무엇인가를 묻히는 행위가 금지라면, 왜 자외선차단제는 되고 파인타르는 안 된단 말인가? 이는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 


 




 


투수의 파인타르 사용을 금지하기 위해서는 '황소개구리'도 함께 금지시키던가, 아니면 선크림을 사용한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로진백' 또는 '러빙 머드'처럼 투구시 사용 가능한 물품으로 지정해야한다. 아니면 타자가 파인타르를 배트에 바르는 것을 허용하고 있듯이, 공식적으로 투수의 파인타르 사용을 허가하되 사용양에 대해서 명확한 규정을 마련하는 방법도 있다. 


 


물론 가장 좋은 방법은 선크림이나, 파인타르 같은 외부 물질을 쓸 필요가 없도록 공을 덜 미끄럽게 만드는 것이다. 최근 들어 파인타르 사용이 잦아진 이유는 2015년 후반부터 사용되고 있는 공이 이전에 비해 실밥 솔기가 낮고, 더 미끄럽기 때문일 확률이 높다. 여기에 이상 기후 여파로 4월에도 한파가 야구장을 덮친 것 역시 영향을 미쳤다(상단 패럴-벅홀츠 인터뷰 참조).


 


최악은 지금처럼 대부분의 팬은 모르는 채, 현장인들끼리만 암묵적으로 파인타르 사용을 서로 용인해주는 형태가 지속되는 것이다. 만약 자신이 응원하는 투수의 구속과 회전수가 늘어난 이유가 '황소개구리'에서 파인타르로 손에 바르는 물질을 바꿨기 때문이라면 어떨까? 선수의 실력이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을 팬은 실망감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은 쉬쉬한다고 숨겨지는 시대가 아니다.


 


이현우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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