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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톡톡] 이별 공식

일병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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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09 (토) 07:32

                           


[사진톡톡] 이별 공식



코로나19 속에서…선수의 은퇴, 그리고 사진 기록에 대하여…





[사진톡톡] 이별 공식



(서울=연합뉴스) 홍해인 기자 = 코로나19로 사상 초유의 개막 연기 사태를 맞은 국내 양대 프로 스포츠, 프로야구 KBO리그와 프로축구 K리그가 드디어 이번 주 개막했습니다. 물론 아직 무관중 경기입니다. 이전과 다른, 결코 '뉴 노멀(New Normal·새로운 표준)'로 당연시 되지는 않았으면 하는 생경한 풍경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아직 조심스럽습니다. 팬들의 함성으로 지금 당장 관중석을 채울 수는 없습니다. 많은 제약과 어려움을 딛고 한 시즌을 드디어 시작하게 됐다는 것만으로도 환영할 일입니다.



'햇빛 눈이 부신 날에 이별해봤니 비오는 날 보다 더 심해 작은 표정까지 숨길 수가 없~잖~~아! 흔한 이별노래들론 표현이 안돼 너를 잃어버린 내 느낌은 그런데 들으면 왜 눈물이 날까~!'



1990년대 중반 유행하던 어느 노래의 한 구절입니다. 코로나19 확산 속에서도 유독 올 봄 하늘은 청명했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그 기간 코로나 19로 인해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아쉬움도 더 크게 느껴지는 듯합니다.

코로나19 상황이 지속하면서 선수가 팬들의 열성적인 응원을 그리워하고, 팬들이 경기장 '직관'을 그리워하며 안타까움을 더하는 사이, 스포츠 현장을 취재하는 사진기자들은 사진 기록으로 남길 수 있는 것들이 제한되면서 걱정이 커집니다.



스포츠가 멈춰선 사이 소위 '레전드'라 불릴 만한, 해당 종목, 스포츠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선수들의 은퇴 소식이 유독 많이 들려와 안타까움을 더했습니다. 기록하는 자의 입장에서 떠난 이의 빈자리가 커 보이는 건 그 모습을 기록으로 제대로 남길 수 없기 때문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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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프로농구(KBL) 울산 현대모비스의 가드 양동근(39)은 지난 3월 말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네 차례나 KBL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에 뽑혔고, 2018~2019시즌까지 총 여섯 차례 챔피언결정전 우승의 기쁨을 누렸습니다. 국가대표 주전 가드로 활약하며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획득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양동근의 은퇴는 기자회견 자리라도 마련됐고 그 모습은 사진으로 남았습니다. 코트가 아닌 곳에서, 유니폼이 아닌 양복 차림이었던 점은 조금 아쉽습니다. 돌아오는 가을, 2020~2021시즌 KBL 경기가 개막하면 그가 유니폼을 입고 단 1분, 이벤트라 하더라도 마지막 은퇴 경기에 출전한 모습이 사진으로 기록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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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구 코트에서는 국가대표 리베로와 세터로 활약해온 김해란(36·흥국생명)과 이효희(40·한국도로공사)가 코로나19로 시즌이 조기 종료된 뒤 지난 4월 팬들에게 작별을 고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은퇴 경기로 기록될, 감동을 주는 마지막 모습, 은퇴식의 순간은 '아직' 사진으로 기록된 게 없습니다.



김해란에게는 '디그의 여왕'이란 수식어가 따라붙습니다. 김해란이 코트 바닥에 몸을 던져 받아낸 공만 통산 9천819개, 남녀 프로배구 최초 1만 5천개 수비 대기록에 단 572개만을 남겨둔 상황에서의 은퇴이기에 아쉬움이 큽니다. 2012 런던올림픽 4강, 2016 리우올림픽 8강, 그리고 올 1월 올림픽 출전권 획득에도 기여하며 2020 도쿄올림픽에서도 국가대표 선수로서의 활약이 기대됐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선수로서의 계획도, 개인으로서의 계획도 전면 수정이 불가피하게 됐습니다. V리그 2019~2020시즌이 조기 종료되고 올림픽도 연기되면서 김해란은 일단 가정으로 돌아가 스스로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고 말한 출산을 준비합니다.



자로 잰 듯 정확하고 빠른 토스가 일품이었던 이효희는 명실상부 한국 여자배구 최고의 세터였습니다. 올림픽, 아시안게임에서 국가대표 주전 세터로 활약했고 22년간 자신이 몸담은 소속팀 4곳에서 모두 우승을 차지해 '우승 청부사'로 불렸습니다. 2013~2014시즌에는 세터 포지션 선수 최초로 정규시즌 MVP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안 그래도 배구 사진은 네트 앞에서 스파이크와 블로킹으로 득점을 올리는 레프트, 라이트, 센터들의 기록이 다수를 차지합니다. 좀 더 눈여겨 보며 이효희의 토스 모습을 더 이상 사진으로 기록할 수 없다는 점은 무척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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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도 코로나19로 일찍 작별을 고한 선수가 있습니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바이애슬론 3관왕, '아이언맨' 스켈레톤 윤성빈과 함께 평창올림픽을 빛낸 올림피언에 뽑혔던 프랑스의 마르탱 푸르카드(32)가 지난 3월 중순 은퇴했습니다. 그는 동·하계를 통틀어 현재까지 프랑스 최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입니다.



3월말 노르웨이에서 열릴 예정이던 시즌 마지막 월드컵 대회가 코로나19 확산으로 취소됐고 무관중으로 핀란드 콘티올라티에서 열린 직전 월드컵이 푸르카드의 마지막 경기가 됐습니다. 세계선수권 5차례 우승, 통산 동계올림픽 금메달 5개, 은메달 2개를 획득한 '위대한 선수'의 마지막 레이스는 그렇게 조용히 마무리됐습니다.



스포츠는 기록이 중요합니다. 사진도 마찬가지입니다. 스포츠에서 말하는 '기록'과 사진의 '기록'이란 말이 갖는 의미, 이 둘 사이에 외연의 차이는 조금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노력해서 남기려 하는 무엇'이란 점에서는 같습니다.



시즌이 조기 종료되지 않았다면, 이들이 경기장을 누비며 활약하는 모습이 좀 더 사진 기록으로 남았을 겁니다. '각본없는 드라마'도, 치열한 몸싸움과 볼 다툼의 순간도 지나가 버리면 끝. 승리의 희열, 기쁨의 포효도 그 순간이 지나가 버리면 희석되어 옅어지기 마련이고 이미 그 절정의 순간이 아니게 됩니다. 감정의 깊이도, 표정과 리액션까지도…. 나중에 은퇴식, 시상식을 열어준다고 하더라도 그 당시의 감동, 감정과는 분명 다른 기록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코로나19 속 은퇴한 선수들은 대부분 그 종목에서 소위 말하는 '베테랑'입니다. 베테랑은 언제 후배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떠나야 할 지 모르기에 하루하루, 한 경기 한 경기를 누구보다 소중히 여깁니다. 언제 눈앞에서, 경기장에서 떠날 지 모르는 스포츠 스타들인 까닭에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에서 선수로서의 마지막 모습이 기록된 사진 또한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은퇴식은 어린 시절부터 선수 생활을 시작해 불혹의 나이를 전후해 베테랑이 될 때까지 인고의 시간을 보내며 노력해온 선수, 그리고 그 활약, 불멸의 기록들에 대한 찬사와 같습니다. 선수와 팬 사이에는 감사와 고마움을 표하는 정서적 상호 작용이 오가는 장이기도 합니다. '떠남'을 받아들이는 선수, 팬들의 마음이 대입된 일종의 '이별 공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진톡톡] 이별 공식



'국민 타자'로 불리며 한 시대를 풍미한 전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 이승엽의 전국 야구장 순회 이벤트, 눈물의 은퇴식은 많은 스포츠팬들의 기억에도 또렷하게 남아 있을 겁니다.



'박수칠 때 떠나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내 마음 속의 히어로'를 그라운드에서, 코트에서 기립 박수와 환호 속에 명예롭게 떠나 보낼 수 없습니다. 농구와 배구의 2020~2021시즌이 시작되는 가을에는 시즌 조기 종료로 경기장에서 작별 인사를 하지 못한 선수들이 늦게나마 박수받으며 떠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진톡톡] 이별 공식



마지막으로, 코로나19로 인해 '유별난 시즌'인 까닭에 올해 스포츠 취재 현장에서 좀 더 우리 사진기자들이 주목하고, 더 좋은 사진으로 잘 기록을 남겼으면 하는 선수들이 있습니다.



올 시즌 후 LG 트윈스 유니폼을 입고 은퇴하는 프로야구 최고령 현역 선수 박용택(41)은 KBO리그 통산 최다안타 기록이 현재진행형입니다. 최다 경기 출장, 최다 2루타, 최다 득점 신기록도 앞두고 있습니다.





[사진톡톡] 이별 공식



2017년부터 프로축구 K리그 최고령 선수인 전북 현대의 이동국(41)은 1983년 출범한 K리그 사상 첫 '80(골)-80(도움)' 클럽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2020시즌 다시 그라운드를 밟습니다. 프로 생활 23년 차, 리그 역대 득점 1위(224골)인 이동국은 도움 3개만 보태면 80-80 클럽에 가입하게 됩니다.



안타를 친 뒤 누상에 서서 푸근한 미소로 관중들을 향해 인사하는 '무적 LG' 박용택의 모습, 전주성에서 서포터즈를 바라보고 동료들과 어깨동무한 채 승리의 '오오렐레' 응원가를 부르는 '라이언킹' 이동국의 모습이 좋은 사진으로 남게 되길 바랍니다.



한 해가 마무리되면 한국사진기자협회는 1년을 정리하며 보도사진연감을 제작합니다. 2020년을 기록한 보도사진연감 스포츠 부문에 코로나19로 텅 빈 관중석과 그로 인해 달라진 모습만 가득 채워지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전설'의 모습이 우리 가슴에 새겨지듯 그들의 모습을 담은 기록도 코로나19 이전처럼 온전히, 그리고 영원히 사진으로 남게 되길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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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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