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닷컴] 이성모 기자 = 전세계 210개국에서 시청하는 세계 최고의 축구 콘텐츠 잉글리쉬 프리미어리그가 이번 시즌을 기점으로 출범 25주년을 맞이했다. 세계인의 축구 네트워크 골닷컴이 ‘GOAL 특별기획’ 연재를 통해 현재의 EPL을 더 풍부하게 즐기는데 도움이 될만한 지난 25년 EPL의 중요한 흐름과 사건을 소개한다. 매주 수요일 연재. (편집자 주)
“I swear you’ll never see anything like this ever again(맹세컨대 다시는 이런 장면을 볼 수 없을 겁니다.)”(맨시티의 우승이 확정되는 아구에로 골 직후 스카이스포츠 캐스터 마틴 타일러의 중계 코멘트)
2011/12시즌, 축구팬들은 EPL 역사상 가장 극적이었던, 어쩌면 이후에도 다시 보기 힘들만한 드라마틱한 시즌 엔딩을 두 눈으로 생생하게 목격했다. 시즌 최종전이었던 38라운드의 후반전 추가 시간에 우승 주인공이 바뀌는 그런 순간이었다.
이 순간의 승자가 된 것은 맨시티. 만수르 구단주의 천문학적인 투자와 만치니 감독의 지도력이 빛을 본 맨시티는 무려 ‘44년’ 만에 1부 리그 챔피언이 되는 기쁨을 맛봤다. 반면, 이 시즌 중 맨시티에 1-6 대패를 당했던 맨유는 마지막 경기에서 우승 트로피를 뺏기며 더 이상 맨체스터가 맨유 한 클럽이 독주하는 도시가 아니라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는 모양새가 됐다.
EPL 25년 역사상 단연코 가장 극적이었던 2011/12 그 시즌의 이야기다.
1. 맨유 1 – 6 맨시티
아직 시즌 초반이었던 10월, 맨유 팬들은 잊고 싶은, 맨시티 팬들은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경기가 맨유의 홈구장 올드트래포드에서 펼쳐졌다. 직전 시즌 우승팀이자 그 시즌 우승으로 잉글랜드 역사상 최다우승팀으로 올라선 맨유가 자신의 홈구장에서 맨시티에게 6골을 내주며 1-6으로 대패한 것이다. 두 팀의 경기에서 맨유가 맨시티에 5골 차이로 패한 것은 1955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발로텔리의 선제골을 포함한 두 골, 조니 에반스의 퇴장 등으로 인해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스코어로 끝난 이 경기는 이 시즌 최종결과를 예고하기로도 하듯 매우 상징적인, 많은 기록을 남긴 경기였다. 이 경기가 남긴 기록들은 다음과 같다.
1) 1926년 이후 처음으로 맨시티가 맨체스터 더비에서 6골을 기록한 경기
2) 맨체스터 더비 역사상 최다점수차 승리(동률기록)
3) 맨유가 EPL 역사상 당한 가장 큰 점수차 패배
4) 1955년 이후 맨유가 홈구장에서 당한 최다 점수차 패배
5) 맨유가 1930년 이후 처음으로 홈에서 6골을 내준 패배
또한 이 경기의 결과는 만수르 구단주 인수 이래 리그 정상을 향해 순항중이던 맨시티가 ‘정말로’ 리그 우승에 도전할 수 있다는 증거를 보여준 경기와도 같았다. 실제로도 맨시티는 이 경기 승리로 2위에 5점 앞선 리그 선수로 치고 나섰다.
2. 4-2-3-1, 4-4-1-1-, 4-4-2, 만치니 감독의 전술과 용병술
유럽의 축구 전술 전문가 마이클 콕스는 이 시즌 맨시티에 대한 분석에서 “이 시즌 맨시티는 어떤 한 포메이션을 썼다고 규정하기 어렵다”며 “만치니 감독은 이 시즌 중 4-4-1-1, 4-4-2 등 다양한 포메이션을 혼용해서 썼는데, 그래도 이 시즌 맨시티를 정의하는데 가장 적합한 것은 4-2-3-1 포메이션일 것이다”라고 썼다.
그의 말 그대로 이 시즌의 만치니 감독은 하나로 설명하기 힘든 다양한 전술과 포메이션을 활용하면서, 또 아구에로, 제코, 발로텔리, 테베즈 등 다양한 공격 자원을 두루두루 적재적소에 쓰는 용병술로 팀의 우승을 이끌었다. 특히 이 네 명의 공격수 중 발로텔리와 테베즈는 그라운드 안팎안밖 많은 구설수를 낳으며 팀 분위기를 해치기도 했지만 만치니 감독은 그들을 활용하며 결과를 만들어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그의 용병술이 가장 빛난 경기는 역시 QPR과의 리그 마지막 경기였다.
3. 발로텔리…아구에로! 다시는 보기 힘들 스포츠 명장면의 탄생
QPR과의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맨시티는 이 경기에서 승리할 경우 맨유를 따돌리고 자력 우승을 할 수 있는 상황에 놓여있었다. 전반 39분에 사발레타가 선제골을 터뜨릴 때만 해도, 모든 것이 맨시티의 우승을 향해 흘러가는 듯 했다.
그러나, 지브릴 시세의 동점골에 이어 제이미 마키의 역전골이 터지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그 두 골 사이 조이 바튼이 퇴장당하며 숫자적으로도 열세가 된 QPR은 잠그기에 나섰고 이에 만치니 감독은 남아있던 두 장의 교체카드로 각각 에딘 제코(후반 24분), 발로텔리(후반 30분)를 투입하며 총공격에 나섰다.
자력우승의 기회를 스스로 놓칠 위기에 빠진 맨시티가 혼신의 힘을 다해 두들겨도 QPR의 골문은 열리지 않았다. 어느새 정규시간이 종료될 무렵부터 이 경기의 중계사 스카이스포츠는 맨시티의 경기 결과에 따라 우승이 가능했던 맨유 대 선더랜드의 경기와 이 경기 두 경기를 한 화면에 동시에 보여주는 이례적인 중계를 이어갔다.
맨시티 대 QPR의 추가시간은 5분. 우승을 확정짓기 위해 1골이 아닌 2골이 필요한 맨시티 팬들이 두 손을 모으고 기적을 바라고 있을 때 추가시간 2분 경 다비드 실바의 정확한 코너킥에 이은 제코의 헤딩골이 터졌다. 2-2. 남은 시간 3분, 3분 안에 1골을 더 넣을 경우 44년 만의 리그 우승을 달성할 수 있는 길이 열린 맨시티였다.
맨시티 대 QPR전의 추가시간이 3분을 넘어설무렵, 선더랜드 홈구장에서 열린 맨유 대 선더랜드의 경기는 맨유의 1-0 승리로 종료됐고, 퍼거슨 감독과 루니 등 선수단은 원정팬들에게 박수를 보냈다. 이 시점까지의 결과대로라면, 이 시즌의 우승팀은 맨유가 될 터였다.
그러나, 그 순간 훗날 모두가 ‘기적’이라고 부르게 되는 그 장면이 나왔다.
2선으로 내려와있던 아구에로가 자신의 앞에 있던 발로텔리에게 패스를 내주고 페널티박스 안으로 침투하는 동작을 취했고, 발로텔리는 자신을 막으려는 수비수과의 경합에서 미끄러지면서도 그 볼을 아구에로에게 연결해줬다.
발로텔리의 패스를 이어받은 아구에로는 페널티박스 안에서 우측면으로 한발 터치를 이어간 후 정확하고 빠른 오른발 슈팅을 날렸고 그의 발을 떠난 볼은 그대로 QPR의 골문을 갈랐다. 불과 1분여 사이에 리그 우승의 주인공이 맨유에서 맨시티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이 골이 들어가는 순간, 이 경기의 현장 중계자였던 마틴 타일러는 다음과 같이 말했고, 이 코멘트는 그 후로도 스카이스포츠의 EPL 중계 장면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널리 회자되고 있다.
“I swear you’ll never see anything like this ever again(맹세컨대 다시는 이런 장면을 볼 수 없을 겁니다.)”
2011/12시즌, 우승 팀 외 주요 선수들
맨시티의 세 공격수 아구에로, 제코, 발로텔리가 모두 득점 랭킹 TOP 10에 들었던 이 시즌, 맨시티를 제외하고 가장 빛났던 선수는 단연 아스널의 반 페르시였다. 아스널이 4위권을 필사적으로 사수하는 행보를 이어오던 이 무렵, 팀의 ‘구세주’와도 같은 존재였던 그는 이 시즌 리그에서만 30골을 터뜨리며 팀을 리그 3위로 이끌었다.
또 다른 눈에 띄는 선수들은 득점랭킹 7위, 10위에 오른 뉴캐슬의 듀오 뎀바 바와 파피스 시세. 특히 이 시즌 중 시세가 첼시 전에서 터뜨린, 상대 페널티 박스 왼편에서 바깥쪽으로 휘어나가며 톱코너에 꽂힌 골은 이 시즌 최고의 골로 각광받기도 했다.
2011/12시즌, 우승 팀 외 주요 사항
1. 첼시의 첫 챔피언스리그 우승
한편, 이 시즌 당시 ‘제2의 무리뉴’로 각광받던 안드레 빌라스보아스 감독을 선임하며 시즌을 시작해 시즌 도중 그를 경질하고, 그의 수석코치이자 첼시 레전드 미드필더인 로베르토 디 마테오에게 지휘봉을 맡겼던 첼시는 리그에서 6위까지 처졌지만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또 다른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첼시 대 바이에른 뮌헨의 맞대결로 펼쳐진 이 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첼시의 우승을 확정짓는 승부차기의 마지막 첼시 페널티키커는 드록바. 후반전, 마타의 코너킥에 이은 헤딩골로 이 승부를 승부차기까지 끌고 온 주인공이었던 그는 팀의 승리를 확정짓는 페널티킥을 성공시키면서, 앞서 모스크바에서 열린 챔스 결승 당시 연장전 도중 퇴장당했던 아픔을 씼어내는 데 성공했다.
당시 맨유 대 첼시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첼시의 다섯번째키커로 나서 존 테리가 페널티킥을 놓친 것은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일이지만, 이에 앞서 드록바가 퇴장 당하지 않았다면, 그 다섯번째 페널티킥은 드록바가 찰 예정이었다는 것이 훗날 밝혀지기도 했다.
2. QPR의 잔류와 볼튼의 강등
이 시즌 맨시티와 최종전을 벌인 QPR은 볼튼과 마지막 라운드까지 둘 중 한 팀만 리그에 잔류할 수 있는 강등권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QPR은 맨시티에 패했으나, 볼튼 역시 스토크 시티와의 최종전에서 승리를 거두지 못하면서 결국 강등의 아픔을 맛본 팀은 볼튼이 됐다.
이로 인해 이청용이 좋은 활약을 보여줬던 볼튼이 2부로 강등당하고, 1부 리그에 잔류하는 QPR에는 이후 박지성, 윤석영 등이 합류하는 엇갈리는 운명을 맞이하게 되기도 한다.
참고문헌 및 영상 자료
Complete History of British Football 150 years of season by season action (The Telegraph)
The Mixer, The Story of Premier League Tactics from Route One to False Nines (Michael Cox)
오피셜 프리미어리그 2011/12시즌 리뷰 비디오
오피셜 맨시티 2011/12시즌 리뷰 비디오
프리미어리그 공식 홈페이지 역사 섹션
맨시티 공식 홈페이지 역사 섹션
그래픽=골닷컴 박성재 디자이너
글=골닷컴 이성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