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데뷔 16년 만에 첫 30홈런 달성한 이성열-거포 유망주로 기대받으며 프로 입단, 16년 만에 한화에서 기량 만개-올 시즌 타격 성적 향상 “꾸준한 경기 출전이 비결”-가을야구에서 역할은? “후배들이 편하게 야구할 수 있게 돕는 것”
[엠스플뉴스]“형, 30홈런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칠 수 있는 거에요?”KBO리그 최고의 강타자, 두산 베어스 양의지가 한화 이글스 더그아웃 쪽으로 와서 물었다. 질문의 상대는 한화 외야수 이성열. 잠시 멋쩍은 웃음을 짓던 이성열이 양의지에게 반문했다. “그럼 타율 3할 5푼은 도대체 어떻게 치는 건데?” 서로를 바라보는 두 강타자의 얼굴에 서서히 미소가 번졌다.농담처럼 묻긴 했지만, 양의지의 질문에는 34살 나이에 프로 데뷔 처음으로 30개 홈런을 때려낸 이성열에 대한 축하의 마음과 ‘리스펙트’가 담겨 있었다. 양의지 외에도 박건우, 유희관 등 원정팀 두산 선수들이 수시로 한화 더그아웃에 다가와 인터뷰 중인 이성열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꿈에서나 그리던 30홈런, 내가 해낼 줄이야”
사실 프로 입단 당시 기대치를 생각하면, 이성열의 한 시즌 30홈런은 훨씬 이전에 나왔어야 할 기록이다. 이성열 본인도 인정한다. “맞아요. 어릴 때 좀 더 많은 걸 배우고 느꼈으면, 좀 더 빨리 30홈런이 나왔을지도 몰라요.”순천효천고를 졸업하고 2003 신인드래프트 2차 3번 지명으로 LG 트윈스에 입단할 당시, 이성열은 ‘차세대 거포’로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유망주였다.하지만 좀처럼 기대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2010년 두산에서 24홈런 86타점을 기록하며 마침내 궤도에 오르나 했지만, 이듬해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LG를 시작으로 두산, 넥센 등 여러 팀을 거쳤고 ‘저니맨’이란 달갑지 않은 꼬리표가 붙었다.터질 듯 터질 듯 하면서도 좀처럼 터지지 않던 이성열의 잠재력은 2015년 한화로 이적한 뒤 마침내 화려하게 꽃을 피웠다. 이적 첫 시즌 9홈런 장타율 0.438을 기록하며 가능성을 보여준 뒤 2016시즌 10홈런에 장타율 0.505를 기록하며 한 단계 도약을 이뤘다.이어 지난 시즌엔 81경기에 출전해 타율 0.307에 21홈런 장타율 0.596으로 2010시즌 이후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그리고 올 시즌, 9월 26일 삼성전에서 8회 정인욱을 상대로 솔로 홈런을 터뜨려 프로 데뷔 16시즌 만에 처음 30홈런 고지를 밟았다.“제겐 정말 뜻깊은 기록입니다.” 이성열이 말했다. “사실 30홈런은 꿈에 그리던 숫자였어요. 다른 선수들은 30홈런 많이들 치지만, 저는 그럴 만큼 많은 경기에 출전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제가 그걸 해냈다는 게 스스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개인적으로 굉장히 의미 있는 기록이고, 야구 선수로서 기쁜 일입니다.”스무 살 유망주 시절 받았던 기대를 서른네 살 베테랑이 돼서 뒤늦게 이뤘다. 이에 대해 이성열은 “이제라도 이렇게 30홈런이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분 좋은 일”이라며 미소지었다.“올 시즌 활약? 다 감독님, 코치님 덕분이죠”
올 시즌 이성열이 이룬 성취는 ‘30홈런’이란 숫자만으로 표현하기엔 모자라다. 2018시즌 이성열은 데뷔 16년 만에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내는 중이다.10월 2일 현재 125경기에 출전해 136안타를 때려냈고 31홈런 95타점, 장타율 0.548을 기록했다. 데뷔 이후 최다타석, 최다안타, 최다홈런, 최다타점 기록을 이미 세웠다. 타율도 0.296로 남은 시즌 결과에 따라서는 데뷔 이후 처음으로 규정타석 3할 타율을 달성할 가능성이 있다.한화 입단 전까지 이성열에 대한 평가가 그저 ‘한 방이 있는 타자’ 정도였다면, 지난 시즌을 기점으로 정확성과 파워를 겸비한 타자로 ‘업그레이드’된 모습이다. 홈런 파워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약점이던 타격 정확성을 개선했다는 게 놀라운 점이다. 이성열도 “저 자신도 좀 신기하다”며 빙긋 웃어 보였다.이성열의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이성열은 “많이들 물어보시는데, 기술적으로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이어 “한용덕 감독님과 코치님들이 꾸준하게 기회를 주신 덕분에, 그동안 경험하면서 배워온 것들을 운동장에서 발휘하고 있는 것뿐이다. 그게 전부”라고 말했다.“한화에선 예전보다 경기에 꾸준하게 출전하고 있어요. 편안한 마음으로 뛰니까 멘탈적으로 안정되고, 그러면서 좋은 타구가 나오고 컨택트가 잘 된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잘 치는 타자도 일주일에 한두 번 출전해선 좋은 성적을 거두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야구는 얼마나 기회가 주어지느냐, 얼마나 멘탈을 잘 관리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이성열의 말이다.‘공격적’인 야구를 강조하는 한용덕 감독의 야구 철학도 공격적인 타자 이성열의 스타일과 잘 맞아떨어진다. 이성열은 빠른 카운트에서 크게 자기 스윙을 하는 유형의 타자다. 볼넷이 적고 삼진이 많은 대신 한번 배트에 맞으면 무시무시한 타구를 만들어내는 게 이성열의 장점이다. 삼진을 싫어하거나 타격 정확성을 중시하는 스타일의 지도자와는 궁합이 맞지 않을 수 있다.“감독님 코치님과 잘 맞는 것 같아요. 감독님은 물론 장종훈 코치님, 이양기 코치님도 공격적인 야구를 좋아하십니다. 타석에서 일단 배트를 돌려봐야 결과가 나오잖아요. 공격적으로 야구한 덕분에 가끔 희한하게 지는 경기도 있지만, 그만큼 많이 이길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성열의 말이다.이성열은 자신의 타격 스타일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홈런과 정확성 면에서 큰 발전을 이뤘다. 여전히 이성열은 초구부터 과감하게 배트를 휘두르고, 소극적인 작은 스윙보다는 크게 휘둘러 장타를 노린다. “공격적인 선수가 갑자기 방어적으로 할 순 없잖아요. 공격적인 선수는 공격적으로 타격해야죠. 제가 잘할 수 있는 타격을 하는 겁니다.” 이성열이 말했다.“물론 삼진도 많이 당하고 있고, 볼넷도 적은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런 것까지 생각할 겨를은 없어요. 삼진을 의식해 방어적인 타격을 하는 건 아직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이성열이 단호하게 말했다.“가을야구, 정말 재미있는 축제가 될 것”
이제 이성열은 한화 유니폼을 입은 뒤 첫 가을야구를 앞두고 있다. ‘큰 경기에서 베테랑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하자, 이성열은 손사래를 치며 “제가 특별히 하는 것은 없다”고 했다.“제가 주장으로서, 형으로서 할 수 있는 건 한가지입니다. 후배들이 최대한 야구장에서 편하게 야구할 수 있게 해주는 거죠. 감독님과 코치님들이 계시는데 제가 이래라저래라 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보단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에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이성열의 말이다.물론 이성열은 그 존재만으로도 팀 동료와 후배들에게 큰 귀감이 되는 선수다. 그는 “통산타율 2할 5푼 타자인 저도 이렇게 하고 있지 않으냐”며 “제가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을 내면, 다른 선수들도 열심히 경쟁하고 도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다행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11년 만에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룬 한화의 지금 팀 분위기는 최상이다. 이성열은 “하루하루를 즐겁게 보내고 있다”며 “가을야구에 가게 돼서 설레고 기분이 좋다”며 웃어 보였다. 이어 “정말 재미있는 축제가 될 것”이라는 말로 한화 팬들에게 가을야구에 대한 기대를 당부했다.“제일 좋은 그림은 우리 팀과 제가 시즌 때 했던 야구를 가을야구에서도 그대로 보여드리는 겁니다. 개개인이 자기 역할을 잘 해야 팀이 강해진다고 생각해요. 저도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원없이, 후회없이 해볼 생각입니다.” 가을야구를 앞둔 이성열의 출사표다.프로 데뷔 16년 만에 맞이한 전성기. 하지만 이성열은 현재에 만족하고 안주할 생각이 전혀 없다. 이성열은 "항상 좋은 선수들이 많이 나온다"며 "아직 '자신있다'고 말할 단계는 아니다. 결코 긴장을 늦출 수 없다"고 말했다. 두산 시절인 2010년 24홈런을 때려내며 주전 선수로 도약한 뒤, 이듬해 거짓말처럼 내리막을 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그땐 너무 어렸고, 아무것도 모르고 야구를 했어요. 그래도 지금은 많은 걸 알고서 하니까, 그때보단 조금은 낫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한 시즌 잘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3년 5년씩 꾸준히 잘해야 자리를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어느새 나이 30대 중반이 됐지만, 앞으로도 계속 잘할 수 있게 노력해야죠." 어렵게 맞이한 전성기를 오랫동안 이어가고 싶은 이성열의 다짐이다.배지헌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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