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풀, 이번 시즌 EPL 6경기에서 리드 잡고도 무승부 기록. 챔피언스 리그 세비야전 2경기도 리드 잡고 무승부. 웨스트 브롬과의 FA컵 4라운드에선 역전패로 탈락. 클롭 부임 이래로 2년 4개월 동안 EPL 21경기에서 리드 잡고도 18무 3패로 승점 45점 손실
[골닷컴] 김현민 기자 = 리버풀이 토트넘과의 경기에서 먼저 선제골을 넣었고, 인저리 타임에 다시 리드하는 골을 기록했음에도 고질적인 뒷심 부족을 드러내며 종료 직전 실점을 허용해 다잡은 승리를 놓쳐야 했다.
# 리버풀, 다잡은 승리 놓치다
리버풀이 안필드 홈에서 열린 토트넘과의 2017/18 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이하 EPL) 26라운드 경기에서 막판 연달아 실점을 허용하며 2-2 무승부에 만족해야 했다.
전반전은 말 그대로 리버풀의 우세 속에서 경기가 진행됐다. 리버풀은 경기 시작과 동시에 강도 높은 전방 압박과 속공을 통해 토트넘을 괴롭혔다.
제임스 밀너와 조던 헨더슨, 엠레 찬으로 구성된 3명의 중앙 미드필더는 지속적으로 촘촘하게 간격을 유지하면서 토트넘 중원을 철저하게 괴롭혔고, 좌우 측면공격수로 선발 출전한 사디오 마네와 모하메드 살라도 수비 시엔 후방까지 내려와 적극적으로 수비에 가담했다. 중앙 수비수 버질 반 다이크가 상대 패스 길을 차단하기 위해 미드필드 라인까지 전진하면 파트너인 데얀 로프렌이 적절하게 커버에 들어갔다. 토트넘에게 이렇다할 공격 공간을 내주지 않으면서 전방 압박으로 상대의 후방 빌드업을 괴롭힌 리버풀이다.
이 과정에서 리버풀의 이른 시간 선제골이 나왔다. 경기 시작 3분 만에 토트넘 수비형 미드필더 에릭 다이어의 백패스를 가로챈 에이스 살라가 골을 넣으며 리드를 잡아나간 것.
토트넘은 수비수 다빈손 산체스와 다이어가 리버풀 압박에 맥을 추지 못하면서 연신 실수 퍼레이드를 저질렀다. 리버풀이 전반 종료 시점까지 추가 골을 넣지 못한 게 다행일 정도였다. 특히 17분경 오른쪽 측면 수비수 트렌트 알렉산더-아놀드의 크로스를 밀너가 논스톱 발리 슈팅으로 가져갔으나 산체스 다리에 맞고 굴절되어 살짝 골대를 빗나가며 아쉽게 골로 연결되지 않았다.
후반전은 정반대였다. 전반전 내내 분주하게 움직이면서 체력을 소진한 리버풀 선수들은 후반 들어 지친 기색을 드러내면서 토트넘 선수들에게 공간을 내주기 시작했다. 반면 토트넘은 손흥민의 빠른 발을 활용한 배후 침투와 크리스티안 에릭센과 델리 알리를 중심으로 좌우로 길게길게 패스를 가져가면서 리버풀 선수들의 수비 간격을 넓혀나갔다.
후반 들어 흐름이 급격하게 토트넘 쪽으로 넘어가자 위르겐 클롭 리버풀 감독은 후반 20분경 마네와 헨더슨을 빼고 조르지니오 바이날둠과 알렉스 옥슬레이드-체임벌린을 교체 출전시키며 체력 안배에 나섰다. 이에 마우리치오 포체티노 토트넘 감독은 후반 26분경 수비수 산체스를 빼고 측면 미드필더 에릭 라멜라를 교체 출전시키며 공격 강화라는 대응책을 꺼내들었다.
다시 클롭 감독은 후반 33분경 밀너를 빼고 수비수 조엘 마팁을 출전시키며 수비 강화로 응수했다. 일찌감치 교체 카드 3장을 모두 쓴 리버풀이었다. 포체티노 역시 후반 34분경 수비형 미드필더 무사 뎀벨레를 빼고 또 다른 수비형 미드필더 빅터 완야마를 투입하며 지친 중원에 활기를 불어넣어주었다.
완야마 교체 카드는 투입과 동시에 위력을 발휘했다. 완야마는 교체 투입되고 1분 만에 첫 터치를 동점골로 가져가는 괴력을 과시했다. 완야마의 중거리 슈팅 자체가 시속 100km가 넘을 정도로 워낙 강력하게 구석으로 꽂혔기에 막기 쉽지 않았으나 이 과정에서 리버풀은 작은 실수들을 저질렀다. 에릭센의 날카로운 크로스를 로리스 카리우스 골키퍼가 간신히 펀칭한 걸 찬이 처리하는 과정에서 무게 중심이 무너지면서 제대로 걷어내지 못했고, 완야마의 슈팅 장면에서 근처에 위치하고 있었던 리버풀 왼쪽 측면 수비수 앤드류 로버트슨의 커버가 늦었다. 찬과 로버트슨의 체력이 떨어지면서 발생한 찬스를 체력이 넘치는 완야마가 과감한 슈팅으로 골을 넣은 것이다.
불의의 일격을 맞은 리버풀 선수들은 우왕좌왕하다 후반 39분경 로프렌이 토트넘 미드필더 델리 알리의 전진 패스를 헛발질 하는 우를 범했고, 수비 뒷공간을 파고든 해리 케인이 카리우스 골키퍼로부터 파울을 유도해내며 페널티 킥을 얻었다. 다행히 카리우스가 케인의 페널티 킥을 선방하며 실점 위기를 벗어난 리버풀이엇다.
위기 뒤에 기회라고 했던가? 리버풀은 인저리 타임(90+1분)에 에이스 살라가 페널티 박스 안에서 화려한 드리블 돌파로 토트넘 왼쪽 측면 수비수 벤 데이비스와 중앙 수비수 얀 베르통언을 동시에 제치고선 각도를 좁히고 나온 우고 요리스 골키퍼를 살짝 넘기는 센스 있는 슈팅으로 다시금 2-1로 리드를 잡아나갔다.
다급해진 포체티노 감독은 실점을 허용하자 손흥민을 빼고 장신 공격수 페르난도 요렌테를 교체 출전시켰다. 이 역시 빛을 발했다. 토트넘 오른쪽 측면 수비수 케빈 트리피어의 롱스로인을 요렌테가 반 다이크와의 공중볼 경합 과정에서 백헤딩으로 내주었고, 이를 반 다이크가 걷어내려다 에릭 라멜라의 허벅지를 가볍게 걷어찬 것. 이에 주심은 부심과의 논의 끝에 페널티 킥을 선언했고, 이미 한 차례 실축한 케인이 이번엔 구석으로 정확하게 슈팅을 가져가면서 천금 같은 동점골을 넣었다. 결국 승부는 2-2 무승부로 막을 내렸다.
추가 시간은 4분이 주어진 상태였다. 반 다이크의 파울은 92분 55초 경에 일어났다. 케인의 페널티 킥 득점은 추가 시간 4분이 지나간 94분 30초에 터져나왔다. 리버풀 입장에선 다잡은 승리를 놓친 셈이다. 가뜩이나 토트넘은 챔피언스 리그 진출권을 놓고 경쟁하는 팀이기에 한층 뼈아픈 무승부였다.
# 리버풀, 뒷심 부족 문제 해결해야 산다
이번이 처음 있는 일도 아니다. 리버풀은 이미 이번 시즌 EPL 6경기에서 리드를 잡고도 승리하지 못했다. 왓포드와의 개막전서부터 리버풀은 3-2로 리드를 잡고 있었으나 경기 종료 직전 추가 시간(90+3분)에 상대 수비수 미구엘 브리토스에게 헤딩 골을 허용하며 3-3 무승부에 만족해야 했다.
이어진 7라운드 승격팀 뉴캐슬 유나이티드와의 EPL 7라운드 경기에서 리버풀은 29분경 필리페 쿠티뉴의 골로 앞서 나갔으나 36분경 상대 공격수 호셀루에게 동점골을 허용하며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13라운드 첼시와의 맞대결에선 65분경 살라의 선제골로 앞서나갔으나 경기 종료 5분을 남기고 첼시 측면 공격수 윌리안에게 동점골을 내주며 1-1 무승부에 만족해야 했다. 16라운드 에버턴과의 머지사이드 더비에서도 42분경 살라의 선제골로 앞서나갔으나 77분경 에버튼 공격수 웨인 루니에게 동점골을 헌납했다(1-1 무)
가장 실망스러웠던 무승부는 아스널과의 19라운드 원정 경기였다. 당시 리버풀은 26분경 쿠티뉴의 선제골과 52분경 살라의 추가골로 승기를 잡아나갔다. 하지만 53분부터 58분까지 5분 사이에 무려 3실점(알렉시스 산체스 53분, 그라니트 자카 56분, 메수트 외질 58분)을 내주며 역전을 허용했다. 다행히 71분경 리버풀은 원톱 공격수 호베르투 피르미누의 동점골 덕에 3-3 무승부를 기록할 수 있었으나 2골 차 리드를 지키지 못한 건 실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번 토트넘전까지 포함하면 리버풀은 이번 시즌 리드를 잡은 EPL 6경기에서 무승부에 그치며 승점 12점을 잃었다(승리 시 승점 18점이지만 6점에 그쳤다). 이 경기들에서 모두 승리했다면 1위 맨체스터 시티(이하 맨시티)와 치열한 우승 경쟁을 펼쳤을 것이고, 반타작만 했어도 2위에 올라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EPL만이 아닌 대회를 가리지 않고 일어났다. 세비야와의 챔피언스 리그 32강 조별 리그 1차전 홈경기에서 리버풀은 21분경 피르미누의 골과 37분경 살라의 골에 힘입어 2-1로 이기고 있었으나 72분경 세비야 측면 미드필더 호아킨 코레아에게 동점골을 허용하며 2-2 무승부에 그쳤다.
하지만 이는 약과이자 단지 전초전에 불과했다. 5차전 세비야 원정에서 리버풀은 경기 시작하고 30분 만에 3골(피르미누 2분, 마네 22분, 피르미누 30분)을 몰아넣으며 사실상 승리를 일찌감치 확정짓는 듯싶었으나 후반전에 3실점을 허용하면서 3-3 무승부에 만족해야 했다. 특히 세비야 수비형 미드필더 구이도 피사로의 동점골은 경기 종료 직전 추가 시간(90+3분)에 터져나온 것이었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모두 패하진 않은 경기들이었다. 어찌 보면 리버풀 입장에서 가장 굴욕적인 결과는 웨스트 브롬과의 FA컵 홈경기라고 할 수 있겠다. 리버풀은 경기 시작하고 5분 만에 피르미누의 선제골로 앞서나갔으나 전반전이 끝나기도 전에 3실점을 허용했다. 결국 리버풀은 2-3으로 패하며 3시즌 연속 FA컵 4라운드 조기 탈락이라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더 놀라운 사실은 클롭이 리버풀 지휘봉을 잡은 2015년 10월 8일 이래로 2년 4개월 사이에 리드를 잡았던 EPL 21경기에서 18무 3패에 그치며 무려 승점 45점을 잃었다는 데에 있다. 이는 동기간에 EPL을 넘어 유럽 5대 리그(UEFA 리그 랭킹 1위부터 5위까지를 지칭하는 표현으로 스페인, 잉글랜드,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가 해당한다) 팀들 중 최다에 해당한다. 즉 유럽 5대 리그 팀들 중 리드를 가장 지키지 못하는 팀이 리버풀이라는 소리다.
이렇듯 리버풀은 심각한 뒷심 부족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이에 영국 공영방송 'BBC'의 EPL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인 'MOTD(매치 오브 더 데이)'에 패널로 출연한 리버풀의 전설적인 수비수 마크 로렌슨은 "리버풀의 DNA는 대부분 공격에 있지만 문제는 상황에 따라 경기를 운영할 줄 모른다는 데에 있다. 이건 정말 심각한 문제다. 클롭이 환상적이면서도 익사이팅한 축구를 구사하고 있긴 하지만 1골 차 리드를 잡고 있을 때면 경기 막판 수비 라인을 내리고 전원 수비를 할 필요가 있다"라고 꼬집었다.
EPL 상위권 팀들 중 리버풀처럼 뒷심이 약한 팀도 없다. 고질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비적인 교체를 단행하더라도 로렌슨의 표현대로 팀 전체의 기본 마인드가 공격 앞으로이다 보니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
현재 리버풀은 승점 51점으로 EPL 3위를 달리고 있으나 4위 첼시와의 승점 차는 1점이고, 5위 토트넘과의 승점 차 역시 2점에 불과하다. 심지어 6위 아스널과의 승점 차마저 6점 밖에 나지 않는다. 챔피언스 리그 진출권을 획득하기 위해선 최소 4위권을 지켜야 한다. 즉 리버풀이 치열한 챔피언스 리그 진출권 경쟁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뒷심이 생길 필요가 있다.
그래픽=이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