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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우의 MLB+] 커쇼의 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일병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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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0 (월) 21:22

                           
[이현우의 MLB+] 커쇼의 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엠스플뉴스]
 
"현존하는 지구 최고의 선발 투수"
 
불과 1년 전까지 LA 다저스 에이스 클레이튼 커쇼 앞에 따라붙던 수식어다. 올 시즌 전까지 커쇼의 통산 성적은 144승 64패 1935.0이닝 2120탈삼진 평균자책점 2.36. 본격적으로 각성한 2011년 이후 7년간 커쇼는 NL 사이영상 3번, MVP 1번, 올스타 7번, 골드글러브 1번을 수상했다. 커쇼는 해당 기간 사이영상 투표에서 5위 밖으로 밀려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2018년 들어 커쇼에게 위와 같은 수식어를 붙이는 비율은 현격히 줄어들었다. 2018시즌 커쇼는 이두근 부상과 허리 부상으로 50여 일을 넘는 기간을 부상자 명단(DL)에서 보냈다. 이에 따라 커쇼는 올 시즌 규정이닝을 채우기도 쉽지 않아졌다(남은 시즌 대략 7경기에 등판할 수 있다고 가정했을 때, 평균 6.2이닝을 소화해야 한다). 
 
확실히 3년 연속 175이닝 이하를 소화한 투수에게 '현존하는 지구 최고의 선발 투수'는 과분한 수식어일 수 있다. 게다가 내구성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다. 올해 커쇼는 평균 91.0마일(146.5km/h)로 데뷔 이후 가장 느린 패스트볼 평균 구속을 기록 중이다. 이에 따라 커쇼는 패스트볼 구종가치에서 2008년 이후 처음으로 -값을 기록하고 있다.
 
[이현우의 MLB+] 커쇼의 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데뷔 이후 지난 10년간 커쇼는 패스트볼 구종 가치에서 정확히 200점을 기록했다. 이는 현역 선수를 통틀어 압도적인 1위이자, 자신이 던지는 네 가지 구종 중에서도 가장 높은 값이다. 즉, 올해 커쇼는 지난 10년간 자신의 최대 무기를 잃은 채 경기에 나서고 있다는 얘기다. 이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쇼의 시대가 끝났다"고 말하기엔 이른 이유가 있다. 커쇼는 20일(이하 한국시간) 경기에서 AL 와일드카드 3위 시애틀 매리너스 타선을 7이닝 4피안타 1실점 7탈삼진으로 틀어막았다. 2018시즌 성적은 6승 5패 116.1이닝 115탈삼진 평균자책점 2.40 fWAR(대체선수 대비 기여승수) 3.1승. 
 
평균자책점 2.40는 100이닝 이상 소화한 NL 투수 가운데 4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커쇼는 수많은 우려 속에서도 여전히 경기에 나오기만 하면 가장 압도적인 선발 투수 가운데 한 명이다.
 
2018시즌 클레이튼 커쇼의 볼배합에 생긴 변화
 
[이현우의 MLB+] 커쇼의 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커쇼는 지난 10년간 자신의 최대 무기였던 패스트볼이 위력을 잃었음에도 어떻게 정상급 기량을 유지할 수 있는 걸까? 
 
그 해답을 찾기 위해선 올 시즌 커쇼의 구종 배합 변화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커쇼는 최근 7경기 가운데 20일 경기를 제외한 나머지 6경기에서 패스트볼보다 슬라이더를 더 높은 비율로 던졌다. 지난해 패스트볼보다 슬라이더를 더 많이 던진 경기가 2경기에 불과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는 놀라운 변화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상황별 볼배합 자료를 살펴보면 이런 변화는 더욱 두드러진다. 지난해까지 커쇼는 타자가 앞서 있는 카운트(1-0, 2-0, 2-1, 3-0, 3-1)에서 높은 확률(좌타자 67% 우타자 47%)로 패스트볼을 고집했다. 하지만 최근 7경기에선 그 비율이 좌타자 39% 우타자 25%로 줄어들었다. 
 
이렇게 줄어든 패스트볼 비율을 메운 구종은 다름 아닌 '슬라이더'다. 올해 커쇼는 타자가 앞서 있는 카운트에서 좌타자일 경우 57% 우타자일 경우 72%의 확률로 슬라이더를 던지고 있다. 이는 지난해 대비 각각 27%p, 20%p 늘어난 수치다. 한마디로 말해 커쇼는 올해 들어 슬라이더를 결정구뿐만 아니라, 카운트를 잡는 용도로도 활용하고 있다.
 
[이현우의 MLB+] 커쇼의 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현우의 MLB+] 커쇼의 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러한 커쇼의 변화는 슬라이더 투구 위치 변화로도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까지 커쇼는 슬라이더를 좌타자 기준 바깥쪽 낮은 코스(우타자 기준으론 몸쪽 낮은 코스)에 집중시켰다. 반면, 올 시즌에는 바깥쪽 낮은 코스 못지않게 가운데 방향으로 던져진 슬라이더도 많았다. 얼핏 보면 실투가 많아진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명백히 의도된 투구다(그림1).
 
그 증거가 바로 카운트별 투구 위치 변화다. 올해 커쇼는 타자가 유리한 카운트에선 카운트를 잡기 위해 슬라이더를 가운데로 던지는 비율이 높았지만, 투수가 유리한 카운트에선 슬라이더를 스트라이크 존을 살짝 벗어나는 유인구성 코스로 던졌다(그림2).
 
이런 커쇼의 새로운 투구 전략은 그의 고속 슬라이더가 지닌 특성을 120% 활용할 수 있게 만들어줬다.
 
자신의 고속 슬라이더가 지닌 특성을 120% 활용하다
 
[이현우의 MLB+] 커쇼의 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메이저리그 전체 투수의 패스트볼 평균 구속은 93.1마일(149.8km/h), 슬라이더 평균 구속은 84.3마일(135.7km/h)이다. 이처럼 한 투수가 던지는 패스트볼과 슬라이더는 8.8마일(14.2km/h) 가량 구속 차이를 보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커쇼는 2014년부터 87.6마일(141.0km/h)에 달하는 고속 슬라이더를 던지기 시작했다.
 
처음 고속 슬라이더를 던졌을 당시 커쇼의 패스트볼 평균 구속은 93.0마일(149.7km/h)로 슬라이더와의 차이가 5.4마일(8.7km/h)이었다. 그러나 패스트볼 구속은 줄어든 반면, 슬라이더 구속은 빨라지면서 올 시즌 커쇼가 던지는 두 구종의 구속 차이는 3마일(4.8km/h)에 불과해졌다. 이는 메이저리그 평균 패스트볼과 커터의 구속 차이(7.2km/h)보다 오히려 적은 수치다.
 
요약하자면 커쇼의 패스트볼과 슬라이더 구속 차이는, 일반적인 투수가 던지는 패스트볼과 커터의  구속 차이보다 더 적다(올해 류현진은 패스트볼 90.3마일, 커터 87.1마일로 3.2마일 차이). 따라서 커쇼의 슬라이더는 다른 투수들의 커터처럼 활용해도 문제가 안 된다. 아니, 커터급 구속에 슬라이더급 움직임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더 위력적일 수밖에 없다.
 
2018 클레이튼 커쇼의 구종별 피안타율
 
[패스트볼] 148타수 43피안타(5피홈런) 23탈삼진 피안타율 .291 피장타율 .466
[슬라이더] 192타수 34피안타(4피홈런) 60탈삼진 피안타율 .177 피장타율 .276
[커브] 70타수 14피안타(0피홈런) 24탈삼진 피안타율 .200 피장타율 .243
 
올 시즌 커쇼는 자신의 슬라이더가 지닌 이런 특성을 활용해, 슬라이더를 위력이 떨어진 패스트볼을 대신해 카운트를 잡거나 땅볼을 유도하는 용도(커터의 특성)와 기존 방식대로 2스트라이크 이후 헛스윙을 유도하는 용도(슬라이더의 특성)으로 써먹고 있다. 그리고 이런 커쇼의 변신은 패스트볼 구위가 떨어진 이후에도 그를 여전히 특급 투수로 머물게 해줬다.
 
 
 
물론 여전히 걱정되는 바도 없진 않다. 가장 우려되는 점은 앞서 언급한 '건강'이다. 최근 3년간 그를 괴롭힌 허리 부상에서 자유로워지지 않는 이상 커쇼에 대한 우려 섞인 시선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한편, 그가 던지는 구종은 결국 커터가 아닌 슬라이더다. 늘어난 고속 슬라이더의 비율 역시 커쇼의 건강을 걱정하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미국 스포츠 의학연구소(ASMI)에 따르면 편견과는 달리, 모든 구종 가운데 가장 투수의 팔꿈치 인대에 많은 충격을 주는 것은 패스트볼이다. 연구 결과를 신뢰한다면 올 시즌 커쇼의 슬라이더 비중 증가는 오히려 롱런을 위한 밑거름이 될지도 모른다. 또한, 이를 통해 그간 유일한 약점으로 지목받았던 '단조로운 투구 패턴'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이제 더이상 커쇼는 '현존하는 지구 최고의 선발 투수'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시대가 끝났다고 단정 짓기에는 아직 이르다. 슬라이더의 새로운 활용법을 개발한 커쇼는 여전히 건강만 하다면 사이영상에 도전할만한 기량을 갖추고 있다.
 
이현우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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