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공작소] 끝을 모르는 패배 행진, 미래를 준비하는 볼티모어
[엠스플뉴스]
볼티모어 오리올스가 시즌 전 최약체 팀으로 평가 받은 데는 이견이 없었다. 개막일이 지나서도 다섯 명의 선발진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볼티모어의 시즌 예상 실점은 여느 팀들에 비해 200점 이상 많았다.
2018시즌 볼티모어는 프런트, 코칭 스태프, 로스터에 많은 변화를 준비하고 있었다. 팀 성적이 예상보다 좋을 경우 흥행을 위해 선수를 팔지 않고 반대일 경우 몇몇 선수들을 매물로 내놓겠다는 식이었다.
그러나 지금 볼티모어는 예상보다도 훨씬 못하고 있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저 승률팀에 도전하고 있고 경기장을 찾는 팬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구단 프런트도 작년까지와는 전혀 다른 기조로 움직이면서 볼티모어가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모양새다.
사상 최악의 시즌
개막전에서 짜릿한 역전승을 거둘 때만 해도 팬들은 이렇게까지 절망적인 시즌을 보낼 줄 몰랐을 것이다. 5승 10패를 기록할 때쯤에도 늦은 계약으로 몸을 미처 만들지 못한 알렉스 콥이 로테이션에 합류하면 버틸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콥은 볼티모어에서의 데뷔전에서 3.2이닝 동안 8실점을 기록하면서 팬들에게 좌절을 안겨다 줬다.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먼저 20패를 기록한 볼티모어의 승률은 .259였다. 팀의 패배 행진은 그칠 줄을 몰랐고 8월 16일(이하 한국 시간) 볼티모어는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많은 85패를 기록 중이다.
볼티모어가 지구 5등으로 밀려난 2008년 이후에도 무기력하게 지기만 하는 시즌은 없었다. 적어도 승률은 4할을 넘나들었다. 그러나 현재 121경기를 소화한 볼티모어는 36승 85패로 승률 .298을 기록 중이다. 승률 3할을 목표로 달리는 셈이다. 일각에서는 아메리칸리그 역대 최다패 기록인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의 119패(2003년)와 메이저리그 기록인 뉴욕 메츠의 120패(1962년) 경신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나가는 프랜차이즈 스타, 들어오는 유망주들
매니 마차도, 애덤 존스, 잭 브리튼, 브래드 브락은 2018시즌이 끝나고 자유 계약으로 풀릴 예정이었다. 볼티모어는 시즌 개막을 앞두고 알렉스 콥, 앤드루 캐쉬너 영입으로 투수진을 보강하면서 핵심 선수들의 마지막 해까지 가을야구 도전 의지를 드러냈다.
그러나 새로 영입한 선수들이 오히려 투수진 붕괴를 선도하면서 팀 성적은 최하위로 떨어졌다. 팀은 트레이드 데드라인인 7월 말이 지나기 전에 핵심 선수들을 팔고자 여러 팀들과 접촉했다. 이에 매니 마차도는 LA 다저스로 팔렸고, 잭 브리튼은 뉴욕 양키스로 이적했다. 볼티모어는 브래드 브락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로 보내는 대신 국제 유망주 슬롯 머니를 받았다.
다행인 것은 팀 내에서 가장 상징적인 존재인 애덤 존스가 잔류했다는 점이다. 메이저리그에는 빅리그에서 10년 이상 뛰고 한 팀에서 5년 이상 뛴 선수에게 주어지는 ‘10-5룰’이 있다. 필라델피아 필리스로 트레이드될 예정이었던 존스는 10-5룰 권리를 행사, 볼티모어에서 시즌을 마치게 됐다.
볼티모어는 완벽한 리빌딩 체제에 돌입했다. 핵심 선수 몇 명만 팔고 리툴링을 하겠다는 애초의 기조가 예상보다 훨씬 낮은 성적에 무너지면서다. 그 결과 트레이드 마감일에 케빈 거즈먼과 대런 오데이도 애틀랜타로 이적했다. 볼티모어는 마지막 핵심 선수들까지 정리하면서 유망주 넷과 국제 유망주 슬롯 머니를 추가했다. 볼티모어는 이렇게 모인 슬롯 머니로 올해 국제 유망주 ‘최대어’인 빅토르 빅토르 메사 선수를 영입하려 하고 있다.
가을야구에 도전했던 지난 5년 동안 팀을 지탱해온 프랜차이즈 스타 대부분이 짐을 쌌다. 얼마 전까지 그들의 플레이에 환호했던 팬들은 아쉬울 것이다. 그러나 팀의 현재 모습을 생각하면 주축 선수를 최대한 많이 팔고 좋은 유망주를 받아와 리빌딩하는 게 최선으로 보인다.
매니 마차도, 조나단 스콥, 케빈 거즈먼이 메이저리그로 올라온 이래 볼티모어 팜은 늘 팜 순위에서 최하위권을 달렸다. 그러나 이번 트레이드를 통해 팜은 두터워졌다. 각 팀에서 온 유망주 중 절반 이상이 볼티모어 유망주 상위권을 차지했다. 빅리그 경기에 지친 팬들은 오랜만에 유망주들의 성적표를 기웃거리고 있다.
지각변동 중인 볼티모어 프런트
구단은 지난해부터 프런트와 현장 모두 물갈이를 준비하고 있었다. 곧 90세를 맞이하는 구단주 피터 앙헬로스는 이미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있는 상태다. 현재 구단주의 아들인 루이스 앙헬로스가 구단주 대리인, 존 앙헬로스가 구단 부사장을 맡으면서 구단주의 세대 교체가 이루어지고 있다.
올 시즌 이후 떠날 채비를 하고 있는 댄 듀켓 단장 대신 구단 내에서 입지가 높아진 것은 브래디 앤더슨 야구 운영 부사장이다. 팀의 레전드 출신이자 앙헬로스 구단주 대리인과 친분이 두터운 앤더슨 부사장은 작년부터 선수 영입에 상당 부분 개입해 왔다. 다만 앤더슨 부사장이 실제 단장직에 오르기보다는 현재의 위치에서 간접적으로 개입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오프시즌 앤더슨 부사장 주도로 거액에 영입한 알렉스 콥, 앤드루 캐쉬너, 크리스 틸먼은 모두 최악의 결과를 냈다. 그러나 매니 마차도와 잭 브리튼 트레이드가 호평을 받으면서 앤더슨 부사장의 입지는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 국제 유망주 드래프트에 다시 주력하겠다는 구단의 입장도 팬들의 지지를 얻는 중이다. 그동안 듀켓 단장이 주도해 팔았던 국제 유망주 드래프트 픽과 슬롯 머니는 이번 드래프트에서 거래되지 않았다.
감독직 재계약 혹은 프런트행이 유력했던 벅 쇼월터 감독의 행보도 묘연해졌다. 쇼월터 감독은 그동안 단장직에 대한 욕심을 내비치면서 듀켓 단장과 엇박자를 내곤 했다. 이에 한 구단 관계자는 쇼월터 감독을 신임 단장으로 내세워 앤더슨 부사장과 같이 운영하게 하는 그림을 예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구단이 파이어세일을 감행하면서 오히려 ‘리빌딩 전문가’ 타이틀을 가지고 있던 쇼월터 감독이 팀을 운영하기에 이상적인 환경이 되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쇼월터 감독 또한 최근 두터워진 유망주 뎁스에 굉장한 만족감을 내비치고 있다. 듀켓 단장이 영입한 선수들은 감독 본인이 원하는 유형의 선수와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결과를 만들어나가는 볼티모어
야구는 꼴찌도 4할 근처의 시즌 승률을 기록할 수 있는 스포츠다. 그러나 올해 볼티모어는 승률 3할도 찍지 못하는 역대 최악의 성적을 내고 있다. ‘1할 타자’ 크리스 데이비스의 계약 기간이 가장 길게 남았다는 점은 팀의 미래를 더욱 어둡게 한다.
악몽과도 같은 이번 시즌은 구단이 빠르게 리빌딩을 결정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볼티모어는 이미 지난해 리빌딩에 돌입하려다 시기를 놓치고 어중간하게 시즌을 마친 경험이 있다. 그러나 올해는 6월부터 리빌딩을 목표로 두면서 핵심 선수들을 팔고 생각보다 좋은 유망주들을 받아왔다.
올 시즌 보스턴 레드삭스와 뉴욕 양키스는 압도적인 야구를 보여주고 있다. 탬파베이는 아무도 생각지 못한 새로운 투수 운용으로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두고 있고, 토론토 블루제이스는 리툴링에 들어갔다. 이렇게 지구 라이벌 구단들이 적절한 그림을 그려나갈 때 볼티모어는 언제나 애매하게 낙서만 하다 시즌을 종료하는 팀이었다. 핵심 선수들의 장기계약에도 실패해 왔다.
그러나 올해는 다르다. 역대 최다패 기록 경신이 거론되는 최악의 성적이지만 최선의 결과를 만든다는 목표가 있다. 리빌딩 노선을 채택한 후 구단의 지향점은 뚜렷해졌다. 팬들은 프랜차이즈 스타들이 떠나는 걸 아쉬워하면서도 구단이 바라보는 미래를 공유하며 준비 과정을 납득하고 있다. 듀켓 단장이 부임한 이래 8년 동안 볼티모어는 늘 유망주를 팔고 ‘즉시 전력감’ 선수를 사오는 구단이었다. 반면 올해 일어나는 팀의 모든 무브는 팬들에겐 새로운 경험이자 그토록 원했던 모습이다.
후반기 들어 볼티모어의 타선이 살아나고 트레이드 대가로 받아온 선수들도 잘해주고 있다. 부진했던 알렉스 콥도 부활의 기미를 보이고 있어 팀 분위기가 예상보다는 나쁘지 않다. 남은 후반기는 기존의 핵심 선수들 때문에 활용하지 못했던 유망주들을 빅리그에서 실험해 팀의 미래를 가늠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남은 시즌과 오프시즌에 일어날 볼티모어의 대격변을 지켜보고, 그들이 준비한 미래가 언제 어떤 결과로 팬들에게 보답하는지 기다려보자. 여느 때와는 다른 자세로 말이다.
출처: fangraphs.com, baseball-reference.com, theathleti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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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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