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군단 깨운 김남일의 한마디 "초등학생 축구냐?"
서울전 전반 밀린 성남 선수들에 '카리스마' 발산
"남메오네? 저 아직 부족합니다"
(성남=연합뉴스) 안홍석 기자 = "후반전에 확 달라진 비결이요? 전반전 끝나고 라커룸에서 한마디 했죠. 초등학생 축구 보는 것 같다고요."
4라운드까지 진행된 프로축구 하나원큐 K리그1 2020에서 가장 뜨거웠던 경기는 단연 지난 주말 성남FC와 FC서울의 맞대결이었다.
초보 사령탑인 '진공청소기' 김남일 성남 감독은 베테랑인 '독수리' 최용수 서울 감독을 상대로 1-0 승리를 이끌었다.
빠른 선수 교체 등 과감한 결단으로 초반 열세를 이겨내고, 막판 용병술로 '극장골'을 만들어내 승리를 거머쥐는 모습은 새 명장 탄생을 예감케 했다.
세부적인 전술은 정경호 코치에게 전담시킨다지만, 경기 중 결단을 내리고 책임을 지는 건 온전히 김 감독의 몫이다.
김 감독에게 붙은 '남메오네'라는 별명에는 '블랙 수트'뿐 아니라 지도력에서도 그가 디에고 시메오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스페인) 감독을 닮기를 바란다는 팬들의 바람이 담겨 있다.
3일 성남 탄천종합운동장에서 훈련을 치른 뒤 만난 김 감독은 이 별명에 대해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지만, 아직 그렇게 불릴 정도는 아니다. 아직 선배 감독님들한테 배울 게 많다"며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서울전에서 전반전 상대 기세에 눌렸던 선수들을 후반전 파이팅 넘치는 본모습으로 바꿔놓은 비결을 묻자 소년의 장난기와 활화산 같은 열정이 공존하던 현역 시절의 눈빛으로 잠시 돌아왔다.
김 감독은 자신에 대한 질문에는 짧고 굵게, 까치군단 선수들에 관한 질문에는 충분한 시간을 들여 대답했다.
다음은 김 감독과의 일문일답.
-- 훈련 분위기 보니 서울전 승리로 기세가 많이 오른 것 같다.
▲ 우리 선수들이 준비가 잘 돼 있기에 가능했던 결과다. 좋은 흐름을 타고 있다. 이 흐름을 계속 이어가려고 한다.
-- 참 쉽지 않은 승부였다. 전반전에는 힘든 경기를 펼쳤다.
▲ 원정 경기인 데다, 상대는 '서울'이었다. 아무래도 선수들이 위압감을 느낀 것 같다. 특히 어린 선수들이 더 그랬다. 운동장 잔디에 적응하는 시간도 유독 많이 걸렸다. 상대가 워낙 강하게, 거칠게 압박해 들어오니까 우리가 준비했던 것들이 잘 알 됐다.
어려운 경기였지만 승점 3점을 결국 가져온 점에 큰 의미를 두고 싶다. 팀이 점점 끈끈해지고 있다. 선수들이 이기려고 하는 의지를 더욱더 보인다.
-- 후반전에 경기력이 확 달라졌다. 라커룸에서 대체 무슨 얘기 한 건가.
▲ 특별히 강조한 건 없고…. '초등학생 축구 보는 것 같다'고 한마디 했다. (웃음)
경기 전에 우리가 예상한 정면들이 몇 가지 있다. 그 장면들을 노리다 보면 분명히 찬스가 올 거라고 선수들한테 일깨워줬다. 그 기회를 잘 살려 보자고 강조했다.
-- '남메오네'라는 별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지만, 그 정도는 아니다. 나는 배울 게 많은 지도자다. 선배 감독님들을 보면서 많이 배우고 있다. 우리 코치들한테도 배울 게 많은 것 같다.
'올 블랙' 정장을 입는 이유는 신임 감독으로서 예의를 갖추기 위해 입는 것이다. 검은색은 성남을 상징하는 색이다. 다른 이유는 없다. 적어도 11라운드까지는 이 옷차림을 유지하려고 한다.
-- 힘들 때 연락하는 선배나 은사는 누군가. K리그 개막 뒤 연락해 본 적 있나.
▲ 스승이신 이회택 감독님과 선배인 홍명보 대한축구협회 전무님께 고민을 털어놓고는 한다. 그런데 리그 시작된 뒤에는, 내가 연락 드린 적은 없다. 그분들이 연락을 주셨다. 서울전 이긴 거 축하한다는 전화였다.
-- 서울전 승리 주역으로 베테랑 골키퍼 김영광을 빼놓을 수 없다. 이제 한 경기만 더 뛰면 프로 통산 500경기 출전 대기록을 쓴다. 현역 시절 김영광과 한 팀에서 뛴 사이이기도 하다.
▲ 김영광이 당연히 이 정도 경기력을 보여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김영광의 500경기 출전이 전혀 놀랍지 않다.
다만 대단하다는 말은 해주고 싶다. 500경기나 뛴다는 게 한편으로는 부럽다. 나(242경기)는 그만큼 못 뛰었으니까.
무엇보다 김영광은 우리 팀 후배들한테 귀감이 되는 선수다. 경기력은 물론이고 여러 가지 면에서 팀에 크게 '플러스'가 되는 존재다. 예전에는 '꼴통'이었는데, 나이 들다 보니까 성숙해진 것 같다. (웃음)
-- 성남의 돌풍을 얘기할 때 신인 홍시후의 활약을 빼놓을 수 없다.
▲ 동계 훈련 때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에게 강한 임팩트를 보여준 선수다. 충분히 팀에 가치를 보여줄 수 있는 선수라고 판단해 기회를 줬다. 그 기회를 본인이 잘 살렸다. 출전 시간을 늘려가고 있다. 나 개인적으로도 기대를 많이 한다.
더 지켜봐야 한다. 이제 4경기 뛰었을 뿐이다. 언론에서도 관심을 많이 가지는 선수다 보니 상대 선수들도 이제는 홍시후를 많이 경계할 것이다. 이제 본인이 스스로 난관을 극복해야 한다. 스스로 자신감을 찾아 나가야 한다.
-- 홈 팬들 앞에서 승리를 지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을 텐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무관중으로 리그가 치러지고 있어서 아쉽겠다.
▲ (한숨) 나도 그러고 싶다. 선수들은 더 그런 것 같다. 팬들 앞에서 우리의 축구를 보여주고 싶어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서울전도 관중 앞이었으면 우리 선수들에게 더 동기부여가 됐을 거라고 생각한다.
-- 이번 주말 대구FC와 홈에서 5라운드 경기를 치른다. 비교적 쉬운 상대라는 평가다.
▲ 쉬운 팀이 어디 있나? 한 경기, 한 경기 모두 결승전이라고 생각한다. 홈 개막전(인천전 0-0 무승부) 때 이기지 못했는데, 이번 두 번째 홈 경기는 반드시 승리하겠다. 비록 무관중 경기지만, 팬들의 사랑에 승리로 보답하겠다.
-- 지난해 12월, 성남 신임 감독으로 부임했을 때 경험이 적다며 많은 팬이 우려의 시선을 보냈다. 그들에게 한마디 해 보라.
▲ 저 같아도 그랬을 것이다.
[email protected]
(끝)
<연합뉴스 긴급속보를 SMS로! SKT 사용자는 무료 체험!>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