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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우의 MLB+] 디그롬의 사이영 수상이 의미하는 것

일병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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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5 (목) 20:24

                           
[이현우의 MLB+] 디그롬의 사이영 수상이 의미하는 것

 
[엠스플뉴스]
 
제이콥 디그롬(30·뉴욕 메츠)이 2018 내셔널리그 사이영상을 받았다.
 
MLB 네트워크는 15일(한국시간) 2018 메이저리그 양대리그 사이영 수상자를 발표했다. 디그롬은 전미야구기자협회(BBWAA) 투표에서 1위표 29장, 2위표 1장을 받아 총점 207점을 기록하며 2위 맥스 슈어저를 압도적인 격차로 누르고 내셔널리그(NL) 사이영상 투표 1위에 올랐다.
 
이는 메이저리그 역사에 남을 투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디그롬이 2018 정규시즌에 거둔 승수는 단 10승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이는 1956년 사이영상이 만들어진 이후 그해 선발 투수로서 활약했던 사이영상 수상자가 거둔 역대 최소 승수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하다. 프로야구 탄생 이후 약 한 세기 반 동안 선발 투수를 평가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지표였던 '다승'은 그 지위를 잃었다. 이번 투표 결과는 투표권을 지닐만큼 오랫동안 현장을 뛰었던 베테랑 기자들도 단순히 선발 투수가 잘 던진다고 해서 '승리'를 거둘 수 없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나 다름없다.
 
 
 
물론 선발 투수가 잘 던진다고 해서 선발승을 거두지는 못한다는 생각은 예전부터 있었다. 한편, 2010시즌에는 펠릭스 에르난데스가 13승(12패 249.2이닝 평균자책점 2.27)를 거뒀음에도 불구하고 AL 사이영상을 받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2010시즌 에르난데스의 수상은 그가 직전 시즌 19승 5패 238.2이닝 평균자책점 2.49를 기록했는데도 잭 그레인키에게 밀려 사이영상을 받지 못했던 데에 따른 안타까움과 소속팀 성적이 좋지 않은 가운데도 13승을 거뒀다는 사실이 정상참작된 결과였다. 그럼에도 에르난데스는 2위 프라이스를 56점 차이로 간신히 따돌리는 데 그쳤다.
 
하지만 이번 2018 NL 사이영상 투표 결과는 달랐다. 
 
올해 내셔널리그에는 18승 7패 220.2이닝 300탈삼진 평균자책점 2.53을 기록한 슈어저가 있었다. 그런 슈어저를 10승 9패 217.0이닝 평균자책점 1.70을 기록한 디그롬이 1위표 30장 가운데 29장을 받을 정도로 압도적인 격차로 누른 것이다. 이런 투표 결과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번 투표 결과는 단순히 선발승을 바라보는 현장의 시선이 바뀌었다는 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최근 메이저리그의 선발 투수 기용 트랜드가 변한 이유를 설명해주고 있다.
 
선발승의 가치 감소와 퀵후크, 그리고 오프너
 
[이현우의 MLB+] 디그롬의 사이영 수상이 의미하는 것

 
예를 들어 5.0이닝을 1실점으로 막은 선발 투수 A와 4.2이닝을 무실점으로 막고 승계주자 없이 내려간 선발 투수 B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어느 투수가 더 잘던진 걸까? 선발승에 가치를 두지 않는다면 이에 대한 대답은 당연히 B다. B의 평균자책점은 0.00이며, 후속 투수가 0.1이닝을 1실점(평균자책점 27.00) 이하로 막기만 해도 A 투수보다 더 나은 결과가 도출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지금 시점에서 설문조사를 한다면 B보다 A를 택할 야구팬들도 많을 것이다. 선발 투수라면 최소한 5.0이닝을 던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이유는 단순하다. 5.0이닝은 선발승을 거둘 수 있는 최소 기준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발승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굳이 A를 선택할 이유가 없어진다.
 
사실 야구계에는 유독 선발 투수의 5이닝과 같은 '경계선'이 많다. 다른 예로 타율 .299와 타율 .300은 1000타수 기준으로 1안타 차이에 불과하다. 즉, 타율 .299를 기록한 타자와 타율 .300을 기록한 타자의 콘택트 능력은 도긴개긴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세이버메트릭스 시대인 지금도 우리는 두 타자의 콘택트 능력 차이를 1000타수 1안타 차이보다 더 크게 느끼고 있다.
 
그러나 팬이나 선수가 아닌 구단 운영의 관점으로 접근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구단 입장에선 심미적인 관점에서 선수의 성적을 예쁘게 만들어주거나, 선수의 자존심을 지켜주는 것보단 실점을 최소화함으로써 승리 확률을 조금이라도 높이는 길을 선택할 것이다. 이는 최근 메이저리그에서 퀵후크(quick hook, 선발을 빠르게 교체하는 것)가 성행하는 이유를 말해준다.
 
[이현우의 MLB+] 디그롬의 사이영 수상이 의미하는 것

 
한편, 올해 화제를 모은 *오프너 전략 역시 이와 비슷한 관점에서 접근해볼 수 있다. 만약 선발승이 큰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면, 긴 이닝을 소화할 수 있는 투수(실질적인 선발 투수 역할을 하는 선수)를 굳이 1회에 내야 할 이유가 없다. 어짜피 완투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2018년 MLB 전체 완투 횟수는 42회다) 2회에 낸다고 해서 불펜 소모가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1회에 상대 상위 타순을 확실히 막아줄 수 있는 불펜 투수를 먼저 기용해서 상대팀이 선취점을 기록하는 것을 막고, 실질적인 선발 투수 역할을 하는 투수를 2회부터 기용하는 게 어떨까?' 탬파베이 레이스의 오프너 전략은 이런 아이디어에서 도입됐다. 즉, 오프너 전략 역시 선발승의 가치가 하락하지 않았더라면 등장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단 얘기다.
 
관련 기사: [이현우의 MLB+] 투수 운용의 혁신, '오프너'란 무엇인가
 
 * 오프너: 1회를 무실점으로 막는 걸 목표로 하는 새로운 불펜 포지션으로 첫 번째로 등판하지만 기존 선발과는 달리, 짧은 이닝을 소화한 후 마운드를 내려가는 투수를 통칭하는 말이다. MLB 네트워크 소속 스포츠 캐스터이자, 세이버메트리션인 브라이언 케니가 자신의 저서인 Ahead of the Curve를 통해 최초로 오프너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투수 운용 트랜드 변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
 
[이현우의 MLB+] 디그롬의 사이영 수상이 의미하는 것

 
놀라운 점은 '퀵후크'나 '오프너' 같은 전략에 대한 선수들의 반응이 생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호의적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올 시즌 후반기 들어 오프너에 이은 실질적인 선발 투수로 주로 등판한 미네소타 트윈스의 콜 스튜어트는 "선발 등판할 때보다 오프너에 이은 두 번째 투수로 등판할 때 더 편안함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기존 선발 투수들 역시 퀵후크를 당했을 때 거세게 불만을 토했던 과거와는 달리, 순순히 공을 넘기고 내려가는 비율이 늘어나고 있다. 이는 메이저리그 현장에서 '선발승의 가치 하락과 그에 따른 새로운 투수 운용'을 빠르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증거다. 반면, 오랫동안 메이저리그를 지켜본 올드팬들은 이런 급격한 변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올드팬들이 처음 야구를 접할 때와는 투수 운용이 너무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일부 올드팬들이 야구에 흥미를 잃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는 현지에서나 국내에서나 팬들의 절반 이상이 40대 이상으로 구성된 메이저리그로서는 커다란 위기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런 메이저리그의 투수 운용 트랜드 변화는 막는다고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타자 실력의 상향 평준화와 분석 기술의 발전으로 한 투수가 세 바퀴째 상대 타선을 상대했을 때 피OPS는 평균 .800이 넘는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선택받은 투수가 아닌 평범한 투수를 마운드에 남겨놓는 것은 경기를 포기하는 행위다. 반대로 2002년 대비 평균 3.8마일(6.1km/h)이나 구속이 빨라진 투수들을 상대로 압도적인 성적을 내는 타자가 등장하기도 어려워졌다.
 
2017년 메이저리그 선발 투수의 타순 바퀴별 성적
 
한 경기에서 첫 번째 상대 시: .728
한 경기에서 두 번째 상대 시: .782
한 경기에서 세 번째 상대 시: .805
 
더구나 지금은 미첼 리포트가 발표되기 이전처럼 금지약물이 성행하는 시대가 아니다. 이대로라면 앞으로도 기존의 투수 보직은 점차 경계선이 사라질 것이며, 다른 타자들을 클래식 스탯에서 압도하는 타자들도 점차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것은 선수들의 실력이 상향 평준화되는 과정에서 맞이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2000년대 평균 시즌 20홈런+ 82명→2017년 110명).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는 지금과 같은 시대에 압도적인 성적을 기록하고 있는 선수들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말해준다. 올 시즌 200이닝을 넘게 던지면서 평균자책점 1.70(라이브볼 시대 규정이닝 기준 역대 10위)를 기록한 디그롬은 그 대표적인 선수 가운데 한 명이다. 그리고 만약 선발승의 가치가 낮아지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디그롬의 대단함을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스타들의 인기가 과거 스타들에 미치지 못하는 원인을 과거와는 다른 경기 스타일에서 찾을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근본적인 원인은 따로 있다. 바로 신규 팬의 유입이 줄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야외 활동이 줄고, 게임을 비롯해 여가 시간에 즐길만한 콘텐츠가 늘어난 현대 사회에서 모든 스포츠가 필연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과거로의 회귀가 아닌,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화 및 게임 콘텐츠 그리고 SNS 및 동영상 스트리밍 플랫폼에 대응하는 메이저리그의 역량이 NBA와 NFL에 한참 뒤떨어져 있다는 점에 필자는 아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과연 메이저리그는 새로운 활로를 개척해낼 수 있을까.
 
이현우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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