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프볼=민준구 기자] ‘단테 존스 신드롬’을 아시나요?
2004-2005시즌, 안양 SBS는 주득점원 조 번의 무릎 부상으로 대체선수를 찾게 된다. 수많은 선수들을 살펴본 김동광 KBL 경기본부장(당시 SBS 감독)은 ABA(아메리카농구협회)리그에서 득점 1위를 달리고 있던 한 남자를 발견하게 된다. 그가 바로 SBS의 15연승은 물론, KBL의 신드롬을 만들어 낸 ‘단선생’ 단테 존스다.
존스는 미시시피 주립대 출신으로 1996년 켄터키대를 꺾고 NCAA 파이널4 진출을 이끄는 등 미국 내에서도 이름값 있는 선수로 평가받았다. 그 해 *NBA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21순위로 뉴욕 닉스에 선발됐지만, 좀처럼 적응하지 못하며 해외리그를 전전해야 했다.
* 당시 NBA 신인 드래프트는 앨런 아이버슨, 레이 앨런, 코비 브라이언트 등 한 세대를 풍미한 인재들이 대거 나온 황금 드래프트였다. 존스는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지만, NBA에서 금세 잊혀지고 말았다.
김동광 본부장은 그를 영입하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했지만, 존스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 그러던 순간, SBS에서 뛰고 있던 주니어 버로의 전화 한 통으로 존스는 한국행을 결정 짓게 된다. 김동광 본부장은 “어떤 말을 해도 설득되지 않았다. 근데 주니어 버로가 자기 후배라면서 연락을 하더라. 다른 팀들도 관심 있어 했던 선수였는데 단 한 번의 전화로 우리 팀에 왔다(웃음)”고 이야기했다.
버로와 함께 나선 존스는 올스타전 휴식기 이후인 후반기부터 총 16경기에 나서 평균 29.3득점 12.1리바운드 3.4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전매특허였던 페이드어웨이 점프슛은 알고도 막을 수 없었다.
김동광 본부장은 “일단 탄력 자체가 다른 선수들과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그 어떤 수비가 붙어도 자기 득점은 해낼 줄 아는 선수였기 때문에 다른 선수들도 존스에게 많이 의지했다”며 “문제는 자기 공격이 너무 많았다는 것인데 한 번은 주희정한테 ‘존스한테 볼 주지 말아봐’라고 할 정도였다(웃음). 그래도 존스 덕분에 하위권에 있던 우리가 15연승도 하면서 플레이오프에 갈 수 있었다.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 선수다”라고 말했다.
실력 이외에도 존스는 누구나 인정하는 프로페셔널한 선수였다. 경기가 끝나면 어린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는 건 기본이었다. 사진 촬영은 물론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며 실력과 매너까지 겸비한 선수로 평가받고 있다.
‘단테 존스 신드롬’은 구름 관중을 몰고 오기도 했다. 2004-2005시즌은 KBL 출범 이래 최초로 관중 100만명 고지를 돌파한 시즌이다. 부산의 농구붐을 일으킨 KTF와 TG삼보, KCC의 라이벌 구도 역시 흥행의 요소였지만, 무엇보다 최고의 플레이로 관중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존스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안양 홈경기시, 관중들의 발걸음도 끊이지 않았다. 2005년 3월 1일, KTF와의 경기에선 무려 6,625명의 관중이 입장해 존스의 플레이를 지켜봤다. 그만큼 존스 한 명이 지닌 스타 파워에 농구 인기도 고공 행진했다. 손대범 점프볼 편집장은 “당시 SBS를 후원하던 필라(FILA)가 명동에서 존스와 양희승 등을 초청해 사인회를 가졌는데, 과장 안 보태고 그 일대가 붐볐다.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누구 사인회냐 물었을 때 ‘단테 존스라는 농구선수요’라고 하니, 누군지 알아볼 정도로 TV에도 자주 소개됐다”라고 돌아봤다.
그칠 줄 몰랐던 SBS의 연승 행진은 당시 꼴찌였던 LG에 가로막혔다. 89-107로 패하며 연승 행진에 제동이 걸린 SBS는 3위로 정규리그를 마쳤다.
플레이오프에 나선 SBS는 존스를 앞세워 6강 플레이오프에서 오리온스를 꺾고 4년 만에 4강 진출을 확정지었다. 시즌 중반까지 하위권을 전전하던 그들에게 있어 존스의 영입이 신의 한수였던 것이다.
그러나 존스 공략법이 나오면서 SBS도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오리온스와의 6강 플레이오프부터 주춤하기 시작한 존스는 4강 플레이오프에서 만난 찰스 민렌드와의 맞대결에서 판정패하고 만다. 김동광 본부장은 “정규리그 때는 상대팀이 존스만 만나면 어려워했다. 처음 보는 유형의 선수였고 그만큼 기량도 좋았기 때문에 막을 수 없었다. 하지만 상대팀도 존스의 플레이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특히 민렌드와 4강 플레이오프에서 맞붙었을 때는 30점을 넣어도 35점을 주는 등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상황이 연출됐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챔피언결정전 길목에서 무너진 SBS는 2005-2006시즌부터 KT&G로 새로운 출발을 알렸다. 시즌 중에 재계약을 약속했던 존스 역시 함께 했지만, 27승 27패(7위)로 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루지 못했다. 존스는 고군분투했지만, 크리스 윌리엄스, 피트 마이클 등 자유계약제 외국선수들의 등장으로 과거의 영향력이 일부 상실된 상태였다.
2006-2007시즌에도 함께 한 존스는 다시 한 번 팀을 플레이오프로 올려놨지만, 다혈질의 성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KTF 전 2연패 후, 곧바로 탈락의 길을 걸었다. 득점력은 여전했지만, 약점으로 꼽힌 수비력과 상대 외국선수와의 신경전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결국 존스는 2006-2007시즌을 끝으로 한국을 떠났다.
김동광 본부장은 “내 감독 인생을 돌아봤을 때 존스처럼 기억나는 선수는 없었다. 대단한 기량을 갖고 있으면서도 건방지지 않았던 선수였다. 함께 생활하면서 사소한 문제를 제외하면 정말 잘 지내왔다”며 “한국을 떠난 뒤에는 클럽 DJ와 인디 래퍼를 했다고 들었다(웃음). 흥이 많았고 재밌었던 친구다. 지금도 잘 지내나 궁금하다”고 추억했다.
존스 이후 그 어떤 외국선수도 존스만큼의 신드롬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만큼 대단했던 선수로 KBL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존재로 기억되고 있다.
▲ 단테 존스(Dontae’ Antijuaine Jones)
생년월일_1975년 6월 2일생
출신지_테네시주 내슈빌
출신학교_미시시피 주립대
신장/몸무게_194.7cm, 100kg
드래프트_1996년 NBA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21번(뉴욕 닉스)
# 사진_점프볼 DB(문복주 기자), KBL 제공
2018-09-07 민준구([email protected])저작권자 ⓒ 점프볼.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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