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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우의 MLB+] 다시 시작된 '머니볼' 그리고 맷 채프먼

일병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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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8 (화) 21:22

                           
[이현우의 MLB+] 다시 시작된 '머니볼' 그리고 맷 채프먼

 
[엠스플뉴스]
 
6,598만 5,833달러(약 732억 1788만 원)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의 2018년 개막전 기준 연봉 총액이다. 일반인으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거액이지만, 매년 높아져만 가는 메이저리그 구단의 연봉 총액으로서는 꼴찌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하지만 올 시즌 오클랜드가 이 돈을 가지고 이뤄낸 성과는 놀라울 정도다. 오클랜드는 연봉 총액 1위 팀의 1/4에 불과한 연봉 총액으로도 79승 53패(승률 59.8%)를 기록 중이다.
 
오클랜드는 28일(한국시간) AL 서부지구 1위 휴스턴 애스트로스와의 정규시즌 마지막 3연전 시리즈 첫 경기에서 패배하며 3연승 행진을 마감했다. 하지만 와일드카드 3위 시애틀 매리너스와의 승차는 4.5경기로 커다란 이변이 없는 한 오클랜드의 가을야구 출전은 사실상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1위 휴스턴과의 승차도 아직 2.5경기에 불과하다.
 
이런 오클랜드의 약진은 마치 2000년대 초반 <머니볼> 시절을 연상케 한다.
 
2002년 오클랜드는 시즌 시작 전 주축 선수들이 대거 이탈했음에도 불구하고 정규시즌 20연승을 포함해 103승을 거뒀다. 비결은 당시로선 생소한 개념인 '세이버메트릭스(야구를 통계학적으로 분석하는 방법론)'를 이용해, 시장에서 저평가 받고 있는 선수를 영입하는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점을 둔 분야는 타자의 '출루율'이었다.
 
[이현우의 MLB+] 다시 시작된 '머니볼' 그리고 맷 채프먼

 
오클랜드의 성공에 영감을 얻은 작가 마이클 루이스는 2003년 <머니볼>을 발간했다. 약간은 과장과 왜곡이 가해지긴 했지만, '머리를 써서' 부자 구단을 이긴 가난한 구단의 단장 빌리 빈의 스토리는 미국 전역을 떠들썩하게 했다. <머니볼>은 경영학 부문 베스트셀러가 됐고, 2011년에는 영화화되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장사 밑천'을 만천하에 공개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2002년 오클랜드가 고효율 투자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이었다. 그러나 책이 출판된지 2년도 채 되지 않아 <머니볼>에서 저평가받는 지표로 소개되었던 출루율은 30개 구단이 모두 중요시하는 지표가 되어 있었다. 
 
이후 오클랜드가 잠시 중흥기(2012-2014)를 맞기도 했지만, 대체로 부진했던 것은 이러한 '정보의 균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러나 올해 오클랜드는 수년간의 시행착오 끝에 마침내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새로운 블루오션을 개척하는 데 성공했다.
 
강력한 불펜진
 
[이현우의 MLB+] 다시 시작된 '머니볼' 그리고 맷 채프먼

 
머니볼 오클랜드와 올해 오클랜드의 가장 큰 차이점은 불펜진에서 찾을 수 있다. 머니볼 시대 오클랜드가 정규시즌 뛰어난 성적을 거뒀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던 원인 가운데 하나는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다른 팀에 비해 불펜진이 허약했기 때문이다. 이는 오클랜드 특유의 빈약한 재정 형편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캔자스시티가 강력한 불펜진을 바탕으로 2014-2015시즌 2년 연속 월드시리즈 진출에 성공하기 전까지 세이버메트리션들 사이에서 불펜은 일종의 '사치품'으로 여겨졌다. 선발 투수진에 비해 훨씬 적은 이닝을 소화하는 불펜진에 투자하는 것보다는, 매일 경기에 출전하는 타선이나 상대적으로 더 많은 이닝을 소화하는 선발진에 투자하는 게 이득이라는 논리였다.
 
관련 기사: [이현우의 MLB+] 오클랜드의 약진, '머니볼 3기' 시작될까
 
하지만 과거 세이버메트리션들의 논리에는 두 가지 맹점이 있었다. 첫째, 포스트시즌이 되면 불펜의 소화 이닝이 선발 못지않게 늘어난다. 둘째, 스트시즌에 진출한 팀끼리의 맞대결은 접전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으며 그럴 땐 불펜진이 강한 팀이 더 유리하다. 그러나 모두가 이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A급 불펜 투수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오른 다음이었다.
 
[이현우의 MLB+] 다시 시작된 '머니볼' 그리고 맷 채프먼

 
오클랜드는 다른 관점에서 접근했다. 바로 '입도선매'다. 오클랜드는 반등 가능성이 높은 불펜 자원을 조기에 선점하거나, 좋은 성적을 거둔 불펜을 트레이드해서 젊은 선수를 재수급했다. 그렇게 해서 얻은 대표적인 선수가 바로 현 마무리 블레이크 트레이넨이다. 트레이넨은 올 시즌 6승 2패 32세이브 평균자책점 0.97을 기록하는 최고의 활약을 펼치고 있다.
 
한편, 시즌 초부터 트레이넨을 뒷받침한 루 트레비노(8승 2패 ERA 2.29)의 공헌도 빼놓을 수 없다. 게다가 시즌 중반에는 주리스 파밀리아(7승 4패 17세이브 ERA 2.78)와 페르난도 로드니(4승 2패 25세이브 ERA 2.61)을 영입해 뒷문을 보강했다. 하지만 오클랜드가 과거와 달라진 점은 불펜진만이 아니다. 
 
머니볼 이후 10년 동안 오클랜드는 야수를 평가하는 기준에서도 현격한 변화가 있었다. 
 
철벽 수비
 
[이현우의 MLB+] 다시 시작된 '머니볼' 그리고 맷 채프먼

 
오클랜드의 달라진 야수 평가 기준을 대표하는 선수는 맷 채프먼(25)이다. 
 
영화나 책으로 묘사된 만큼은 아니지만, 오클랜드는 신인 드래프트에서 '숫자'를 중요시하는 구단 가운데 하나다. 그런 의미에서 채프먼은 오클랜드가 1라운드에 뽑을만한 선수가 아니었다. 채프먼은 드래프트 된 해에 간신히 3할 타율을 기록했고, OPS도 처음으로 .900을 넘겼다. 프로리그라면 모를까 아마추어 레벨에선 뛰어난 성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오클랜드 수뇌진이 채프먼을 지명하는 데 회의적이었던 이유다. 그러나 에릭 마틴스를 필두로 한 스카우트진은 채프먼을 지명할 것을 주장했다. 그 근거는 뛰어난 신체적인 능력(툴)과 그에 기반한 수비력이었다. 비공개 워크아웃을 통해 채프먼을 관찰한 오클랜드 수뇌진은 '숫자'보다는 '툴'을 믿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이 선택이 오클랜드의 미래를 바꿨다.
 
2002년 오클랜드는 당대 최악의 수비력을 지닌 팀 가운데 하나였다. 이유는 단순하다. 당시 오클랜드 수뇌진은 수비력이 좋은 선수에 대한 시장 가치가 과대평가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는 그때까지만 해도 수비력에 의한 객관적인 득실을 구할 방법(스탯)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얘기가 다르다.
 
[이현우의 MLB+] 다시 시작된 '머니볼' 그리고 맷 채프먼

 
2018년 오클랜드는 대표적인 수비 지표인 UZR(Ultimate Zone Rating, 리그 평균 대비 수비로 막아낸 점수)에서 29.3점으로 메이저리그 전체 1위에 올라있다. 이러한 수비력은 특출난 에이스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오클랜드가 리그 상위권 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그 증거가 바로 FIP(수비무관 평균자책점)와 평균자책점의 격차다. 
 
올 시즌 오클랜드 투수진은 FIP 4.15에 비해 0.42점이나 낮은 평균자책점 3.73을 기록 중인데, 이는 시카고 컵스(0.57점) 다음으로 큰 차이다. 이런 오클랜드의 수비를 이끈 선수는 단연 채프먼이다. 채프먼은 UZR 12.4점으로 MLB 3루수 부문 압도적인 1위이자, 모든 포지션을 통틀어서도 공동 3위에 올라 있다.
 
채프먼으로 대표되는 수비력은 오클랜드를 어떤 상황에서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 팀으로 만들어줬다.
 
뜬공 비율↑
 
[이현우의 MLB+] 다시 시작된 '머니볼' 그리고 맷 채프먼

 
한편, 채프먼은 오클랜드의 또 다른 전략인 '뜬공 혁명'을 대표하는 선수이기도 하다. <스탯캐스트>의 등장 이후 본격적으로 '뜬공 혁명 이론'이 유행하기 전이었던 2013년경부터 오클랜드는 외부에서 뜬공 비율이 높은 타자를 수급하면서, 동시에 내부 유망주들 역시 의도적으로 마이너에서부터 뜬공 비율이 높게끔 육성해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채프먼과 맷 올슨이다. 올 시즌 채프먼은 116경기에서 21홈런을 쳐냈다. 하지만 오클랜드조차 예상하지 못했을 점이 있다면 '타율은 낮지만 준수한 출루율과 장타력을 갖춘 타자'가 될 줄 알았던 채프먼이 정교함 면에서도 두드러지는 성장을 이뤄냈다는 것이다. 채프먼은 후반기 타율 .348을 기록 중이다.
 
덕분에 채프먼의 올해 타격 성적은 타율 .284 21홈런 52타점 OPS .900에 달하고 있다. 여기에 앞서 말한 '수비를 통한 공헌도'가 더해진 결과, 채프먼은 WAR(대체선수 대비 기여승수)에서 6.2승을 기록 중이다. 이는 단연 팀 내 1위이자, MLB 전체 야수 가운데 5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1위 베츠 8.1승, 2위 트라웃 8승, 3위 라미레즈 8승, 4위 린도어 6.7승).
 
 
 
사실 오클랜드의 성공 비결인 강력한 불펜진, 수비력, 뜬공 비율은 최근 수년간 세이버메트리션 사이에서 가장 뜨거웠던 주제들이다. 이는 현시대 모든 팀이 시도하고 있는 변화이기도 하다. 따라서 2002년 오클랜드가 제시했던 비전만큼 혁신적이라고 보긴 어렵다. 그러나 '정보 평준화'에도 불구하고 오클랜드만큼 새로운 트랜드에 부합하는 전력을 구축한 팀은 없었다.
 
2003년 이후 각 구단들이 '머니볼'의 핵심 이론을 받아들이면서 새로 개척할만한 '블루오션'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빌리 빈이 이끄는 오클랜드는 머니볼 시대에 그들이 쓰던 방식과는 정반대되는 방식으로 최고의 저비용 고효율 팀을 구축해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제2의 조시 도날드슨' 채프먼이 있다. 
 
이현우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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