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공작소] 올해를 빛낸 또 다른 일본산 선발 투수, 마일스 마이콜라스
[엠스플뉴스]
‘추신수 경기에서 종종 보이는 그저 그런 선발투수.’ 일본행을 결심하기 전까지 한국 팬들이 마일스 마이콜라스에 대해 가진 인상이었다.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10경기 선발로 등판해 2승 5패, ERA 6.44를 기록한 게 전부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드래프트될 때부터 마이콜라스는 큰 기대를 받는 유망주가 아니었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가 2009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좋은 체격과 빠른 공을 가진 마이콜라스를 7라운드 3번째 픽(전체 204번째 픽)으로 지명했을 때 ‘오버드래프트’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을 정도다. 실제 프로 데뷔 첫해 마이콜라스가 거둔 성적은 15경기(11선발) 출장 53이닝에 WHIP 1.62, ERA 5.94에 불과했다.
패스트볼 위주의 피칭이 마이콜라스의 발목을 잡은 결정적 요인이었다. 완성도 높은 브레이킹볼이 없던 마이콜라스의 패스트볼은 빅리그 타자들의 좋은 먹잇감일 뿐이었다. 2014 시즌을 앞두고 텍사스 레인저스로 트레이드되면서 새로 장착한 슬라이더도 신통치 않았다.
메이저리그의 구단들은 마이콜라스에게 많은 기회를 주지 않았다. 또 다른 기회를 얻기 위해 마이콜라스는 일본행을 결심하기에 이른다.
잘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피칭
한 단계 낮은 수준의 경쟁이라도 패스트볼 중심의 투수에게 NPB는 더욱 가혹한 무대가 될 가능성이 농후했다. 삼진을 당하더라도 홈런으로 역전을 노리는 게 유행인 메이저리그와 달리 NPB에서는 인플레이 상황을 만들어내는 컨택 능력이 보다 중시되기 때문이다. 마이콜라스는 “일본 타자들은 2스트라이크 이후 마치 다른 타자가 된 것처럼 스윙을 작게 한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마이콜라스는 타자들이 컨택에 집중하는 NPB의 특징이 자신의 장점을 부각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마이너리그에서 그는 BB/9 1.93의 준수한 제구력을 보여줬다. 땅볼 타구를 잘 만들어내고 홈런 억제력이 좋은(HR/9 0.39) 선수이기도 했다. 그는 고집하던 패스트볼 중심의 피칭을 포기하고 효율성을 극대화한 ‘맞춰 잡는 피칭’을 하기로 결심한다.
타자들을 맞춰 잡기 위해 마이콜라스는 안타를 잘 맞지 않는 구종들을 주로 사용했다. 2014 시즌에 비해 패스트볼 사용은 최대 11%포인트까지 줄였고 슬라이더와 커브로 빈 자리를 채워 넣었다. MLB에서도 슬라이더나 커브 같은 브레이킹볼은 피안타율이 가장 낮은 편에 속한다. 지난 2시즌 동안 이들 구종의 피안타율이 2할1푼에 불과할 정도다. 평균 타구 속도가 포심이나 투심 패스트볼에 비해 시속 3마일 정도 낮은데다가 타구의 땅볼 비율도 높아 수비하기 용이하기 때문이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마이콜라스는 NPB에서 3년간 62경기에 선발 등판해 31승 18패, ERA 2.18을 기록하며 리그를 대표하는 에이스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일본에서의 3년 동안 WHIP는 1도 채 되지 않았다. 브레이킹볼이 손에 익기 시작하면서 삼진도 자연스럽게 늘어났다. 일본에서 그는 K/BB 5.48을 기록하면서 같은 해 함께 미국으로 건너간 ‘일본의 베이브 루스’ 쇼헤이 오타니(K/BB 3.12)보다도 뛰어난 안정감을 보여줬다.
일본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마이콜라스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2년 1,550만 달러에 계약하고 간절히 바라던 메이저리그에 복귀했다.
'무조건 스트라이크' 전략이 통한 이유는
마이콜라스는 올 시즌 메이저리그에서 초구 스트라이크를 가장 잘 잡는 선수 중 한 명이었다. 또한, 초구가 아니더라도 스트라이크 존을 적극적으로 공략하는 투수이기도 했다. 헛스윙을 잘 유도하지 못하는 마이콜라스에게 이런 공격적 성향, 즉 파운딩은 독이 될 수 있었다. 2018년 존 바깥 공에 대한 피안타율은 .174에 불과한 반면 존에 들어온 공에 대한 피안타율은 .268에 달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마이콜라스가 좋은 성적을 거둔 이유는 타자들이 구종을 예측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어느 볼카운트에서나 그는 포심과 투심 패스트볼은 물론이고 슬라이더, 커브, 체인지업을 고루 사용했다. 사용하는 모든 구종에 대한 커맨딩이 자신 있기 때문에 가능한 볼 배합이었다. 이를 통해 유리한 카운트를 선점하는 게 마이콜라스의 피칭 전략이었다.
마이콜라스가 삼진을 잡는 유형의 투수가 아님에도 끊임없이 공격적인 피칭을 하는 것은 타자들의 스윙을 이끌어내기 위해서였다. 타자들은 마이콜라스가 계속 스트라이크를 던진다는 걸 알고 좋은 공을 기다리기보다 스윙하기를 택했다. 공만 보고 있다가는 스트라이크만 쌓이고 결국 볼카운트가 불리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타자들은 무의식적으로 안타를 만들기 어려운 공에도 손이 나가기 일쑤였다.
그 결과 마이콜라스의 Swing%는 리그 전체에서 가장 높은 52.1%을 기록했다. 또 존을 가장 적극적으로 공략하는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마이콜라스의 O-Swing%(존 바깥 공에 대한 타자들의 스윙 빈도)는 36.6%로 패트릭 코빈(38.0%)과 제이콥 디그롬(37.9%)에 이어 세 번째로 높았다. 타격이 된다고 해도 안타가 될 확률이 낮은 공에 타자들은 어쩔 수 없이 스윙을 했다.
이런 전략이 항상 통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 이번 시즌 마이콜라스는 타구의 절반 정도(49.3%)를 땅볼로 만들고 있지만 땅볼 타구의 BABIP는 .209로 리그 평균(.246)보다 현저히 낮았다. 마이콜라스의 호투는 리그에서 가장 수비를 잘하는 구단 중 하나인 세인트루이스의 야수들이 받쳐주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세인트루이스는 DRS 공동 10위(40점), UZR 10위(13.0)에 올랐을 정도로 수비에 강한 팀이다. 그가 필라델피아 필리스나 볼티모어 오리올스처럼 수비를 못하는 팀에 있었다면 지금 같은 성적은 보여주지 못했을 것이다.
홈런이 경기를 지배하는 것이나 다름 없는 현대야구에서 마이콜라스는 뛰어난 홈런 억제력까지 보유했다. 규정이닝을 소화한 선발투수 중 플라이볼을 다섯 번째로 적게 내어준(FB 28.5%) 그의 9이닝 당 홈런수는 0.72개에 불과했다(리그 최소 5위). 마이콜라스는 올 시즌 그의 특기인 ‘이닝 이터’의 면모 또한 유감 없이 발휘했다. 마이콜라스의 이닝당 투구수는 15개로 리그에서 세 번째로 적었다(1위 클루버, 2위 제이콥 디그롬).
'피치 투 컨택트'라는 양날의 검
마이콜라스는 일본에서의 성공으로 자신감과 두둑한 배짱을 갖고 미국에 돌아왔다. 그가 계속 스트라이크를 던지며 ‘피치 투 컨택트’라는 전략을 고수할 수 있었던 이유다. 타자들로서도 그런 마이콜라스를 무너뜨리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32번 선발 출장에 200.2이닝, 18승 4패, ERA 2.83이라는 올 시즌 마이콜라스의 빛나는 기록이 그 증거다. 그는 성적과 효율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데 성공했다.
문제는 ‘피치 투 컨택트’가 일종의 ‘독이 든 성배’라는 점에 있다. 구단들은 이제 마이콜라스를 분석하기 시작해 그를 공략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들고 나올 것이다. 운이 따르지 않는 날들이 지금보다 많아지고 수비가 무너지는 날도 생길 것이다. 이는 삼진을 잘 잡지 못하는 투수들의 숙명이다.
마이콜라스가 앞으로 걸어갈 길은 지금 걸어온 길보다 더 거친 여정이 될 것이다. 너무나도 먼 길을 돌아 30세가 돼서야 처음으로 진정한 메이저리그 선발투수가 된 마일스 마이콜라스. 내년에는 어떤 모습을 보여주게 될까?
기록 출처: mlb.com, Fangraphs, Baseball-Reference, Baseball Savant, baseballd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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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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