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수시설 ‘국보급 투수’로 불렸던 선동열. 야구계와 야구팬들은 늘 당당하고, 자신감에 넘치며 여유가 느껴졌던 ‘국보급 투수’ 선동열을 ‘감독’ 선동열을 통해 다시 보길 바라고 있다.
[엠스플뉴스]선동열. 한국야구를 대표하는 불세출의 투수다. 뛰어난 신체조건과 야구 감각, 명석한 두뇌까지 한 몸에 지닌 ‘백 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투수’가 바로 선동열이었다. 150km/h를 넘나드는 강속구에 면도칼보다 날카로운 슬라이더, 절륜한 제구력까지 부족한 것이 없었다.‘선수’ 선동열은 언제나 최고의 자리를 지켰다. 그가 불펜에서 몸을 풀기만 해도 상대 타자들은 급해졌다. 선동열이 나오기 전에 한 점이라도 내려다 경기를 그르치기 일쑤였다. 어쩌다 선동열 상대로 홈런을 때리면 인터뷰 때 멘트는 “운이 좋아서”였다. 한 야구인은 아예 ‘눈 감고 쳤다’며 자신을 낮췄다. 행여 우쭐대기라도 했다간 다음 대결 때 몸쪽으로 날아올 공이 두려웠기 때문이란다.이런 선동열에게 변칙이나 꼼수는 필요치 않았다. 항상 자신이 가진 최고의 무기로 당당하게 승부했다. 마운드 위에서 자신감이 넘쳤다.선동열의 자신감이 어느 정도였는지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1993년, 선동열은 한 스포츠지에 국내 최고 타자들을 공략하는 자신만의 비법을 소개했다. 타자마다 상대한 날짜와 경기 상황, 볼카운트까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는 것도 놀랍지만, 치열한 승부의 세계에서 선수가 자기 패를 '남들 다 보라'고 공개한다는 것이야말로 가장 놀라운 일이었다.뒤늦게 기사를 본 해태 타이거즈 김응용 감독이 노발대발해 ‘선동열의 실전강의’ 연재는 중단됐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그해 선동열은 평균자책 0.87에 42세이브포인트(구원승+세이브)로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선동열은 시즌 뒤 “안다고 다 치면 투수가 어떻게 먹고살아요. 건방지게 들릴지 몰라도 내가 패스트볼을 던진다는 걸 뻔히 알아도 못치는 판인데“라고 말했다고 한다(이종남 저 ‘야구가 있어 좋은날’ 중에서).타자가 알고도 못 친다는 자신감. 선동열은 그런 선수였다. 아쉬운 건 늘 자신감 넘치고 당당했던 ‘선수’ 선동열의 덕목이 ‘감독’ 선동열에게선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자기만 생각하면 되는 선수와 팀 전체를 생각해야 하는 감독에겐 분명한 차이가 있다. 하지만, 그보다 분명한 건, 감독으로서 선동열의 행보가 전혀 ‘국보’ 선동열답지 않다는 점이다.선동열 감독 “선수들 부담감 크다.” 가장 부담이 큰 건 감독 자신이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대회’ 한국야구 대표팀은 최종 엔트리 발표 당시부터 논란의 중심에 섰다. 병역문제가 코앞에 닥친 몇몇 선수가 발탁되면서 비판 여론이 눈덩이처럼 커졌다.비난은 고스란히 선수들을 향했다. 엔트리 발표 직후부터 대회가 진행 중인 지금까지 선수들은 거센 여론의 비난과 조롱을 받고 있다. 열광적 지지와 응원을 받으며 출전해도 모자랄 판에 ‘은메달 기원’이란 저주까지 받는 처지가 됐다.이들을 직접 뽑은 선동열 대표팀 감독의 설명은 “백업용으로 뽑았다“와 “금메달을 목에 건다면 괜찮아질 것“이 전부였다.선 감독은 관례를 깨고 대표팀에 아마추어 선수를 단 한 명도 뽑지 않았다. 24명 엔트리 전원을 프로 선수로만 채웠다. 메달 경쟁자인 타이완은 프로 선수 10명과 아마추어 선수 14명으로 팀을 꾸렸다. 일본은 24명 전원이 실업야구 소속이다.엔트리 발표 직후 한 대학야구 감독은 “선 감독은 그렇게 자신이 없나“라고 비판했다. “지금 대표팀 전력이면 아마추어 선수를 여럿 데려가 최강팀다운 자신감을 보여줘야 합니다. 하지만, 선 감독은 최고 선수들로 엔트리를 가득 채워놓고도 ‘혹시 메달을 못 따면 어쩌나’하고 전전긍긍하는 것처럼 보이고 있어요. 정말 안타깝습니다.“기자회견에서 ‘왜 아마추어 선수를 뽑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선 감독은 “김응용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회장님과 만나 ‘메달을 따야 한다. 아마추어 선수를 배제해야 할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고 답했다. 프로 선수들로 가득 채운 선수단을 데리고서도 메달을 딸 자신이 없다고 실토한 셈이다.'탓탓탓'에 연막작전까지, 최강 전력팀 감독의 과유불급
대회가 시작됐어도 선동열 감독의 수세적인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구장 탓, 공인구 탓, 기도 탓, 심판 탓, 현지 환경 탓, 온갖 ‘탓탓탓’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타이완과 일본 대표팀 감독이 이런 식의 ‘탓탓탓’ 퍼레이드를 했다는 얘긴 아직 어느 외신 보도에서도 본 바가 없다.어차피 상대도 같은 조건에서 싸운다. 반발력 약한 공인구를 쓰는 건 인도네시아, 홍콩 타자들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한국 전력이면 핸디캡을 여러 개 주렁주렁 달고서도 이겨야 정상이다. 이런저런 변명이 많은 건 패자들의 특징이다. 최강 전력을 갖춘 대표팀 감독이라면 오히려 어떤 악조건에서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표출하는 편이 낫다.타이완과 첫 경기를 앞두고 선 감독은 ‘선발투수 연막작전’을 폈다. 온 세상이 다 아는 선발 양현종을 끝까지 감췄다. 프로선수로 가득한 최강 팀이 실업선수 위주 팀과 상대할 때 써먹을 전략으론 수준 미달이다.선발 라인업도 인상적이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좌·우·좌·우’ 지그재그 타선이 한국의 타순이었다. 적극적이고 과감한 전략은 고사하고, 최근 야구 트렌드와도 한참 거리가 먼 타선 배치였다. 결과는 1대 2 패.반면 한국 축구대표팀은 8강전 우즈베키스탄 상대 연장전에서 페널티킥 상황이 되자 ‘논란의 표적’ 황희찬에게 키커 역할을 맡겼다. 황희찬의 페널티킥 성공으로 한국은 4대 3으로 승리해 4강 진출을 이뤘다. 쓸데없는 세리머니로 빛이 바래긴 했지만, 선수도 살고 팀도 사는 용병술을 선보인 축구대표팀이다.다시 반면, 야구대표팀에서 논란과 비난의 표적이 된 오지환은 홍콩전 경기 후반까지 벤치만 지켰다. 9회가 돼서야 교체 출전했다. 장염 때문이라지만 같은 유격수 김하성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최약체 상대로도 못 내보낼 선수를 왜 대표팀에 데려갔느냐’는 비판이 쏟아진 건 당연한 터. 선수도 죽고 팀도 죽는 희한한 용병술이다.최강팀다운 자신감은 안 보이고 ‘지면 안 된다’는 중압감만 가득
한국의 경기에선 최강팀다운 자신감보단 지면 안 된다는 중압감만이 곳곳에서 묻어났다. 심리학적으로 ‘할 수 있다’와 ‘해야만 한다’의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다른 결과로 이어진다. 타이완전에서 한국은 선취점을 준 뒤 시종 끌려다니다 경기를 내줬다. 선수들은 뭔가에 쫓기듯 마음이 급했고, 더그아웃 공기는 무거웠다.약체 홍콩을 상대론 9회 정규이닝 경기 끝에 21-3으로 ‘진땀승’을 거뒀다. 홍콩전에서도 한국은 홍콩 선수가 아닌 스스로와 싸우는 것처럼 보였다. 경기 뒤 선동열 감독은 “선수들의 부담감이 크다”며 "당연히 이겨야 한다는 압박감이 크다. 특히 중심 타자들이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큰 것 같다"고 고전의 원인을 분석했다.한번 묻고 싶다. 엔트리 발표 이후 선수들을 향해 비난이 쏟아질 때 선 감독은 어디서 뭘 했나. 만약 선 감독이 “내가 판단해서 뽑은 선수들이니 모든 건 내가 책임지겠다” “비난은 감독인 내게 해 달라”고 했다면, 지금처럼 선수단이 잔뜩 짓눌린 무거운 분위기와 극심한 저주 속에서 대회를 치르지 상황은 연출되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랬다면 첫 경기였던 타이완전 결과도 달라졌을지 모른다.하지만 선 감독은 전원 프로 선수로 최강팀을 구성해 놓고도 ‘부자 몸조심’하기에 바빴다. 아마야구 선수가 포함되면 메달을 못 딸 것처럼 엄살을 부렸다. 실업선수 위주로 구성된 팀을 상대로 선발투수 연막작전이나 하면서 꼼수를 썼다. 진 뒤엔 선수를 탓했다.‘선수’ 선동열이 그랬던 것처럼 ‘감독’ 선동열도 당당하게 정공법으로 경기를 치렀으면 최소한 지고 난 뒤 지금처럼 창피하진 않았을 게다.또한 감독이 “결과는 내가 책임진다”며 선수들을 독려했다면, 이기고 있으면서도 표정만 보면 마치 상대가 이기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지금 같은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아시아경기대회, ‘감독’ 선동열의 명예회복이 걸린 중요한 무대다
이번 국가대표팀은 감독 선동열에겐 절호의 명예회복 기회다. 많은 이가 그의 명예회복을 바란다.선동열은 한국프로야구가 배출한 최고의 스타이자 한국야구의 보물이다. 이런 보물이 비난과 평가절하 속에 지도자 경력을 마감하는 건 한국야구 전체의 손실일 수 있다. 그래서 선 감독의 부활을 바라는 이들이 그에게 맡긴 중책이 바로 ‘국가대표 감독’이다.과연 선 감독은 남은 경기에서 모든 야구인이 바라는 명예회복에 성공할 수 있을까. ‘선수’선동열이 왜 ‘국보’란 찬사를 받았었는지 선 감독 스스로 돌아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언제나 자신감 넘치고 당당했던, 여유가 넘치고 도량이 넓었던 ‘국보’ 선동열을 한국야구계는 ‘감독’ 선동열을 통해 다시 보고 싶어 한다.배지헌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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