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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지헌의 브러시백] '환영받는' 야구대표팀, 어떻게 만들까

일병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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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03 (월) 10:22

                           
| 금메달은 땄지만,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역대 가장 큰 비난과 논란 속에 금메달을 딴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대회 야구 국가대표팀의 여정을 통해 한국야구의 위기와 해법을 찾아봤다. 
 
[배지헌의 브러시백] '환영받는' 야구대표팀, 어떻게 만들까

 
[엠스플뉴스]
 
역경을 딛고 금메달을 땄지만, 금메달은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않았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대회(AG)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한국야구 대표팀의 여정은, 역설적이게도 한국야구가 처한 위기의 징후를 보여준다.
 
금메달을 땄는데도 박수와 찬사보다 비난과 조롱이 더 많은 현재의 여론이 바로 위기의 징후다. 우승을 차지하고도 마음껏 기뻐하지 못하는 일부 선수와 감독의 모습은 비극에 가깝다. 당장 9월 4일부터 KBO리그가 재개된다. 이런 분위기 속에 어떻게 시즌 막판 흥행 열기를 끌어올릴지 우려가 커지고 있다.
 
분명한 건 앞으로도 국가대표 야구팀이 계속된다는 사실이다. 2019년엔 ‘프리미어 12’ 대회가, 2020년엔 도쿄 올림픽이 기다리고 있다. 그때도 이번처럼 논란과 저주 속에서 경기를 치를 순 없다. 이번 대회에서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돌아보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병역 혜택이 문제 본질? 그건 아니다
 
[배지헌의 브러시백] '환영받는' 야구대표팀, 어떻게 만들까

 
이번 AG에서 야구 대표팀이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은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일부 선수가 국가대표를 병역면탈 도구로 이용한다는 의심이고, 둘째는 국가대표를 뽑는 과정이 공정하지 못하단 의혹이다. 이 두 가지가 하나로 맞물리면서 대중의 분노는 눈덩이처럼 한없이 커졌다.
 
운동선수의 병역 혜택 자체가 문제일까. 하지만 사람들이 모든 운동선수의 병역 혜택을 문제시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올림픽과 AG 메달에 병역 혜택이 주어지는 건 야구뿐만 아니라 모든 종목이 마찬가지다. 
 
‘국위 선양’이란 개념에 대한 근본적 문제의식은 있을 수 있지만, 양궁이나 쇼트트랙 메달리스트가 병역 혜택을 받는 데 반대하는 목소리가 여론의 다수를 차지했단 얘기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스포츠 국가주의의 영향일지 몰라도 많은 사람은 국가대항전에서 뛰어난 실력을 발휘한 이들이 받는 혜택에 대해 너그럽거나, 무관심한 것처럼 보인다. 같은 병역 혜택이라도 케이스 바이 케이스다. 야구 대표선수의 병역 혜택에 반대하는 사람이 손흥민의 병역 혜택은 자기 일처럼 기뻐한다. 박찬호가 1998년 방콕에서 병역 혜택을 받았을 때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과정보다 ‘병역 혜택’ 결과 먼저, 본말 전도된 야구 국가대표
 
[배지헌의 브러시백] '환영받는' 야구대표팀, 어떻게 만들까

 
그렇다면 왜 이번 AG 야구 대표팀이 유독 문제가 되는 걸까. 여기서 ‘과정’ 문제가 등장한다. 다른 종목의 경우엔 국가대표가 되는 과정도 어렵지만 메달을 따는 건 더 힘든 일이다. 특히 병역 혜택이 처음 제도적으로 도입된 1973년과 1980년대 초만 해도 한국 선수의 국제대회 입상은 좀처럼 보기 드물었다.
 
반면 AG 야구는 대회 출전이 곧 금메달과 마찬가지다. 1994년 히로시마부터 올해까지 7차례 AG에서 5번이나 금메달을 차지했다. 최근엔 2010년 광저우부터 올해까지 3연속 금메달을 차지했다.
 
아시아에서 야구를 즐겨 하는 국가 수가 제한적인 데다, 프로 선수를 동원하는 한국과 달리 라이벌 타이완과 일본은 아마추어 선수 위주로 대표팀을 꾸린다. 일단 대표팀 유니폼만 입는 데 성공하면, 메달은 떼놓은 당상이다. 
 
대표팀 발탁이 곧 병역 혜택을 의미한다면, 대표팀을 선발하는 과정이 투명하고 공정해야 한다. 하지만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KBSA)와 KBO(한국야구위원회)는 이 중요한 절차를 개인의 주관적 판단에 전적으로 맡기는 구조로 만들어 놨다. 
 
선동열 대표팀 감독은 반드시 금메달을 따야 한다며 아마추어 선수를 배제하고, 프로 최고 선수들을 동원했다. 아마추어 선수들이 나서는 대회에 프로 올스타로 팀을 구성했으니 금메달을 못 따면 그게 큰일 날 일이다. 무조건 우승해야 한다는 부담이 짓누르는 가운데, 비난 여론까지 등에 업고 대표팀이 출범했다. 초반 경기력이 좋을 수가 없었다.
 
140km/h대 빠른 볼을 상대하던 국가대표 타자들로선 130km/h대, 100km/h대 ‘아리랑볼’은 타이밍을 맞추기 쉽지 않았다. 의도치 않게 소잡는 칼로 닭을 쩔쩔매며 잡는 광경이 펼쳐졌다. 과거 200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한 수 위의 팀을 상대로 치열한 명승부를 펼친 야구 대표팀을 기억하는 이들에겐 볼썽사나운 장면이다. 
 
몇몇 선수나 야구인의 ‘무개념’ 태도도 반감을 부추겼다. 과거 국가대표로 활약한 한 선수는 대중과 만나는 강연 자리에서 병역 혜택을 받은 기쁨에 대해 지나치게 솔직한 발언을 내놔 논란을 빚었다. 또 2014 인천 AG에서 금메달을 딴 뒤 KIA 나지완은 팔꿈치를 다친 채 대표팀에 합류한 사실을 뒤늦게 털어놔 비난의 표적이 됐다. 
 
대회도 하기 전에 병역 혜택부터 생각하는 이런 태도는 이번 AG를 앞두고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러 선수가 직간접적으로 AG를 통해 병역 혜택을 받고 싶은 마음을 내비쳤다. 일부 구단은 직 간적접으로 소속 선수의 대표팀 발탁 필요성을 홍보했다. 어떤 감독은 대놓고 “내가 대표팀 감독이면 우리 선수 뽑는다”며 대표팀 감독을 압박했다. 
 
이렇게 병역 혜택을 대놓고 강조하는 건 다른 종목에선 좀처럼 보기 드문 광경이다. 운동선수의 병역 혜택은 어디까지나 국제대회에서 힘든 과정을 거쳐 ‘국위를 선양’한 공을 인정해 부수적으로 주어지는 상이다. 혹은 그렇게 여겨진다. 병역 혜택을 받기 위해 국가를 대표해 국제대회에 나가는 게 아니다. 이 점에서 일부 선수와 야구인의 행태는 본말이 전도됐다는 인상을 심어주기 충분했다. 
 
“금메달 따면 괜찮을 것” 하지만 전혀 괜찮지가 않았다
 
[배지헌의 브러시백] '환영받는' 야구대표팀, 어떻게 만들까

 
선동열 감독은 출국 전 기자회견에서 LG 오지환 발탁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역경을 딛고 금메달을 딴다면 괜찮을 것”이라 했다. ‘비난은 순간이고 기록은 영원하다’의 금메달 버전이다. 
 
옛날엔 그랬을지 몰라도, 이제는 그렇지 않다. 비난을 딛고 금메달을 땄지만, 전혀 괜찮지가 않았다. 이제는 많은 사람이 결과보다 과정의 공정성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 이참에 야구 국가대표 선발방식을 처음부터 다시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 이유다. 
 
우선 감독 한 사람에게 모든 책임을 지우는 지금의 국가대표 선발방식을 재고해야 한다. 프로야구도 최근엔 팀 전력구성은 프런트가 맡아서 하고 감독은 주어진 선수로 경기를 치르는 방식으로 변해가고 있다. 어떻게 뽑아도 시비가 생기는 게 대표팀이다. 그렇다면 개인의 주관적 판단보단 시스템에 맡기는 게 바람직하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KBSA)가 중심을 잡고, 다양한 전문가로 중립적인 기술위원회를 구성해 선수를 선발해야 한다.
 
일각에선 다음 대회부터 전원 아마추어로 팀을 구성하자는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1998년 방콕 때와 지금의 아마야구 수준이 달라서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얘기다. 당시엔 24명 엔트리 가운데 10명을 아마추어 선수로 뽑았지만 압도적 우승엔 전혀 지장이 없었다. 대학야구의 경쟁력이 크게 하락한 지금은 아마추어 선수만으로 메달을 바라보기 쉽지 않다.
 
아마야구의 경쟁력을 회복하는 건 장기적으로 풀어야 할 과제다. KBO와 KBSA가 말로만 아마야구 부활을 외칠 게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으로 아마야구를 지원하고 키워야 한다. 국가대표팀을 꾸릴 때 아마추어 쿼터를 제도화한 뒤, 점진적으로 아마추어 선수 수를 늘려가는 게 합리적이다. 
 
또 다른 대안은 24세 이하 군 미필 선수 위주로 대표팀을 꾸리자는 의견이다. 24명 가운데 20명 정도를 이런 선수들로 구성한 뒤, 4명 정도는 코칭스태프 의견을 반영해 꼭 필요한 선수를 데려가는 방안도 생각해볼 만하다. 이번 AG에서도 20대 초반의 이정후, 김하성, 최원태, 함덕주, 최충연, 박치국 등이 타선과 마운드에서 팀을 이끌었다. 현재 KBO리그 젊은 선수들의 활약을 보면, 충분히 경쟁력 있는 대표팀 구성이 가능하다. 
 
돌아보면, 과거 한국야구 대표팀이 수많은 야구팬과 전국민적 응원을 받은 건 금메달이란 결과가 아닌 거기까지 가는 ‘과정’ 때문이었다. 
 
초반 1승 3패 부진을 딛고 동메달을 차지한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메이저리거가 총출동한 미국야구를 꺾고 4강에 오른 2006 WBC, 9전 전승 우승을 달성한 2008 베이징 올림픽까지. ‘언더독’으로 출발한 야구 대표팀이 극적인 승부 끝에 승리를 따내는 과정은 한 편의 각본 없는 드라마였다. 사람들에게 야구의 매력을 알려주기 충분했다. 국제대회에서 성공이 곧 KBO리그의 성공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이번 AG에선 금메달은 땄지만 그 과정에 감동이나 드라마는 전혀 찾을 수 없었다. 프로 선수들로 팀을 구성한 이상, 시작하기 전부터 이미 결과는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첫 경기 타이완전에 패한 뒤에도 대부분의 야구 전문가는 "그래도 금메달은 딸 것"으로 내다봤고, 실제로 그렇게 됐다. 그 사이 병역 혜택이란 꼬리가 몸통을 마구 흔들어댔고, 대표팀과 한국야구의 이미지는 만신창이가 됐다. 
 
한국 야구계는 금메달은 땄지만 왜 야구 대표팀이 큰 박수와 환영을 받지 못하는지. 역경을 딛고 금메달을 따도 왜 전혀 괜찮지가 않은지 한번 진지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한국야구는 앞으로 더 심각한 위기에 마주할 수밖에 없다.
 
배지헌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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