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배지헌의 브러시백] 헐크의 꿈 “라오스에 야구장이 생기는 날이 올까요?”

일병 news1

조회 2,256

추천 0

2018.06.16 (토) 11:44

                           
| 이만수 헐크파운데이션 이사장은 요즘 라오스 야구장 ‘전도사’가 됐다. 만나는 사람마다 두 손을 꼭 붙잡고 ‘야구장을 짓게 도와달라’고 호소한다. 그가 말하는 ‘라오스에 야구장이 꼭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지, 엠스플뉴스가 들어봤다. 
 
[배지헌의 브러시백] 헐크의 꿈 “라오스에 야구장이 생기는 날이 올까요?”

 
[엠스플뉴스]
 
“4년 전 처음 봤을 때는 공도 제대로 못 잡던 선수들이 지금은 중학교 3학년 정도 실력을 갖추게 됐어요. 제대로 된 야구장만 생긴다면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라오스에 야구장이 꼭 필요한 이유입니다.”
 
이만수 헐크파운데이션 이사장(전 SK 감독)은 요즘 누굴 만나면 손을 붙잡고 라오스 야구장 얘기부터 꺼낸다. 6월  12일 고척스카이돔에 라오스 국가대표 선수단과 함께 방문한 이 이사장을 만났을 때도 그랬다. 가벼운 인사를 나눈 뒤 이 이사장이 꺼낸 첫 마디는 ‘라오스’, 이어진 단어는 ‘야구장’이었다. 
 
라오스는 국토의 대부분이 험준한 산지와 밀림으로 이뤄진 나라다. 축구장은 있지만 아직 야구장은 없다. 야구 연습을 하려면 축구장을 빌려서 선을 그어놓고 해야 하는 실정이다. 이 이사장이 처음 라오스를 방문한 2014년 11월 당시 야구 인구는 단 12명에 불과했다. 그 외의 사람들은 야구가 뭔지도 전혀 몰랐다. 
 
야구 불모지였던 라오스에 이 이사장이 먼저 씨앗을 뿌렸다. 2015년부터 해마다 네 차례 이상 라오스를 방문해 야구 용품을 기증하고 야구를 가르쳤다. 2016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의 도움을 얻어 권영진 전 대구고 감독을 지도자로 파견했다. 지난해엔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도움으로 박종철 감독을 보냈다. 
 
이 이사장을 비롯한 지도자들의 열의와 여러 뜻있는 이들의 지원, 선수들의 노력 덕분에 라오스의 야구 수준은 4년 전에 비해 몰라보게 발전했다. 
 
“선발투수가 배명중학교 1.5군과 연습 경기에서 선발투수가 3회까지 삼진 6개를 잡았습니다. 최고구속 130km/h 초반에 변화구도 곧잘 던져요. 다른 선수들 실력도 제가 처음 라오스에 간 2016년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에요.” 권 감독의 말이다. 
 
축구장에 선 긋고 야구 연습, 라오스에 야구장이 꼭 필요한 이유
 
[배지헌의 브러시백] 헐크의 꿈 “라오스에 야구장이 생기는 날이 올까요?”

 
하지만 야구장 없이 야구를 하다 보니, 실력을 끌어올리는 데 한계가 뚜렷하다. 권 감독은 “야구장에서 야구를 해야 선수들의 야구 이해도를 높일 수 있어요. 야구에선 야구장이 곧 ‘룰’입니다. 야구장에서 하면 야구 룰이 한 눈에 들어오지만, 축구장을 보면 그게 안 되잖아요”라며 아쉬운 마음을 전했다. 
 
이 이사장과 권 감독은 이번 한국 방문이 라오스 선수들의 기량 향상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라오스 야구 대표팀인 라오 J 브라더스 선수단은 지난 4일 경기도 화성시 초청으로 한국을 찾았다. 8월 열리는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출전을 앞두고 3주간 화성드림파크를 거점으로 전지훈련과 연습경기를 치른다. 
 
야구장 없이 야구하는 선수들을 위해 이 이사장이 1년 전부터 훈련장을 찾았고, 화성시의 도움으로 진짜 야구장에서 야구할 기회를 얻었다. 덕수고등학교, 화성 히어로즈 등과 합동 훈련을 가졌고 중학교 야구부, 여자야구팀 등과 연습 경기도 치렀다. 또 잠실구장, 고척스카이돔을 차례로 방문해 말로만 듣던 야구장을 직접 보고 느끼는 시간도 가졌다. 
 
“덕수고에서 훈련하면서 선수들 야구 이해도가 부쩍 좋아졌습니다.” 권 감독의 말이다. “그전까지는 선수들이 야구 룰도 잘 몰랐어요. 몸으로는 움직이면서도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계속 같은 실수를 반복했죠.”
 
그랬던 선수들이 진짜 야구장에서 야구 명문교 선수들과 함께 훈련을 하면서 달라졌다. 권 감독은 “조금씩 플레이하면서 머리 속에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어느날 선수들이 제게 그러더군요. ‘코짜이, 코짜이’. 이게 라오스 말로 ‘이해가 된다’는 뜻이거든요.” 권 감독이 얼굴 가득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잠실야구장, 고척돔을 직접 눈으로 본 선수들이 말 그대로 놀라서 기절하려고 합니다.” 이 이사장의 말이다. “머리 속으로만 생각하던 야구장을 처음 실제로 봤으니까요. 얼마나 좋겠어요. 다들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요.”
 
지난 4년간 놀라운 발전을 이룬 라오스 야구가 앞으로 한 단계 더 나아가려면, 반드시 야구장이 필요하다고 이 이사장이 호소하는 이유다. 
 
라오스 진출 준비하는 일본, 헐크는 안타깝다
 
[배지헌의 브러시백] 헐크의 꿈 “라오스에 야구장이 생기는 날이 올까요?”

 
라오스 야구장 건립을 위한 이 이사장의 노력은 3년 전부터 시작됐다. 이 이사장은 라오스 야구 보급 공을 인정받아 2016년 10월 7일 라오스 정부로부터 총리 훈장을 받았다. 
 
이 자리에서 이 이사장은 정부 관계자들에 “야구장이 필요하다. 야구장을 지을 땅을 제공해 달라”고 요청했고, 라오스 정부는 수도와 가까운 곳에 2만 1천 평의 부지를 지원했다.
 
“야구장 4면과 숙소, 실내 훈련장 등을 세울 수 있는 넓은 땅을 지원받았습니다. 땅은 빌려주되, 야구장 건축비용은 알아서 해결하는 조건이었어요.” 이 이사장의 말이다.
 
라오스 야구장 건립 예상 비용은 약 9억 원. 이를 마련하기 위해 이 이사장은 정부 관계자들과 국회의원, 국내 기업을 쉴새 없이 만나고 다녔다. 
 
2016년엔 라오스 정부와 한국 정부 간에 야구장 건립을 위한 양해각서(MOU) 체결에 성공해 문화체육관광부, 외교부 승인을 받는 데까지 성공했다. 하지만 기획재정부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승인을 받지 못해 야구장 건립이 불발됐다. 
 
이 얘기가 나오자 이 이사장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동남아시아에선 대부분 국가에서 일본야구가 주도권을 쥐고 있어요. 태국만 해도 40년째 일본이 지도자를 파견해 감독을 맡고 있습니다. 유일하게 한국 지도자가 진출해 야구를 가르치는 나라가 바로 라오스입니다.” 이 이사장의 말이다.
 
일본은 야구를 발판으로 동남아 국가들과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고, 영향력을 넓혀 왔다. 특히 기업들이 진출해 시장을 개척하는 데 야구를 매개로 활용해 왔다. 이런 일본이 최근 라오스 야구에 조금씩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 이 이사장의 노력으로 라오스 야구협회가 생기자, 지난 1월 일본 기업이 주도해 야구 레전드 5명을 라오스에 보냈다. 몇몇 일본 기업의 후원으로 야구 코치도 라오스에 파견했다. 
 
“일본은 보통 야구 지도자가 건너갈 때 기업이 함께 움직입니다. 대상 국가의 야구를 지원할 방안을 갖고 움직이는 거죠. 만약 라오스 정부가 제공한 땅에 일본이 야구장을 지어주겠다고 하면, 라오스 정부에선 그렇게 하라고 할 수도 있어요. 그게 안타까운 거죠.” 권 감독의 말이다.
 
일본의 적극적인 움직임은 야구가 단순히 체육, 문화 교류를 넘어 비즈니스 차원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국토 대부분이 밀림인 라오스는 풍부한 임업자원은 물론 세계에서 세 번째로 긴 메콩강 등 뛰어난 자연 환경을 갖춘 나라다. 여기에 아직 개발되지 않은 풍부한 지하자원까지 보유하고 있다. 야구도 경제도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나라다.
 
이 이사장은 “물론 야구인으로서 누가 짓든 라오스에 야구장이 생기면 좋은 일일 거다. 하지만 기왕이면 한국이 지었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기왕이면 우리가 지어서, 우리 후배 야구인들이 라오스에 많이 진출해 기회를 얻고, 한국 청년들에도 새로운 기회가 열렸으면 합니다. 야구장 건립 비용은 9억 원이지만, 수십 년 뒤를 생각하면 그보다 훨씬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어요. 일본은 그걸 알고 벌써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안타까워요.” 이 이사장의 말이다. 
 
이 이사장은 라오스 야구단의 이번 아시안게임 출전이 라오스 야구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더 나아가 야구장 건립으로 이어질 수 있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더 많은 분들이 라오스 야구에 관심 가져주길 부탁합니다. 라오스에는 꼭 야구장이 필요해요.” ‘헐크’ 이만수의 간절한 호소다. 
 
배지헌 기자 [email protected]


ⓒ <엠스플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0

신고를 접수하시겠습니까?

이전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