펩 과르디올라 감독이 말하는 오타멘디의 업그레이드 비결 "장점에만 집중하지 않고 단점 개선에 도전"
[골닷컴] 한만성 기자 = 지난여름 무려 2억4천830만 파운드(한화 약 3천6백억 원)를 들여 전력을 보강한 맨체스터 시티(맨시티)가 올 시즌 유일하게 선수층이 얇은 포지션은 '중앙 수비수'다.
현재 맨시티에서 중앙 수비수 자리를 소화할 수 있는 자원은 니콜라스 오타멘디(29), 존 스톤스(23), 빈센트 콤파니(31), 엘리아큄 망갈라(26). 이 중 스톤스와 콤파니는 잦은 부상 탓에 많은 경기에 나서지 못했고, 망갈라는 펩 과르디올라 맨시티 감독의 신임을 얻지 못했다. 과르디올라 감독이 백스리와 백포를 수시로 바꾸는 점을 고려하면, 맨시티의 중앙 수비진 선수층은 '더블 스쿼드'가 구축된 다른 포지션과 비교할 때 얇은 편. 과르디올라 감독은 28일(한국시각) 경기 초반 11분 만에 콤파니가 부상을 당하자 수비형 미드필더 페르난지뉴를 일시적으로 중앙 수비수로 중용하기도 했다.
이 와중에도 맨시티가 올 시즌 20경기 12실점으로 프리미어 리그 전체를 통틀어 최소 실점을 기록 중인 원동력은 바로 오타멘디의 고군분투 덕분이다. 과르디올라 감독은 최근 잉글랜드 일간지 '데일리 메일'을 통해 "우리 팀에는 슈퍼맨이 있다. 니코(오타멘디의 애칭)가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처럼 잘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정말 훌륭했다. 그의 투쟁심은 언제나 대단하다"고 칭찬했다.
과르디올라 감독은 이어 지난 시즌까지 수비 시 불안감을 노출하며 거센 비판을 받은 오타멘디의 성장 비결을 설명했다. 그는 "니코를 칭찬할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그가 어울리지 않는 역할을 맡았는 데도 꾸준히 노력하며 제 몫을 하기 때문이다. 중앙 수비수가 우리 골문보다 40미터나 앞선 위치에 배치돼 뛰는 건 절대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는 수비수에게 요구되는 게 매우 많다. 용감하지 않으면 절대 할 수 없는 역할이다. 그러나 니코는 경기의 흐름을 읽고, 어디로 패스를 해줄지를 훌륭하게 파악하고 있다. 이 부분에서 발전을 보인 그의 활약이 정말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과르디올라 감독은 "니코는 공수에서 경기의 흐름을 읽으며 상대 공격수가 뒷공간을 파고드는 시점, 언제 태클을 해야 할지, 그리고 언제 기다려야 하는지를 이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과거 오타멘디는 상대 공격 루트를 미리 파악하고 예봉을 차단하며 수비라인을 이끌어주는 역할보다는 거친 몸싸움을 앞세워 문전에서 공을 향해 달려드는 유형에 훨씬 더 가까웠다. 그러다 보니 그가 경기력이 좋은 날에는 상대 공격수를 압도하는 수비력을 선보였지만, 실수가 잦은 경기에서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곤 했다. 그러나 그는 올 시즌 꾸준한 활약을 펼치며 상대 공격수와의 1대1 상황에서 우위를 점하는 빈도를 늘렸다. 이는 그가 2015년 발렌시아에서 맨시티로 이적한 후 마누엘 페예그리니 감독 체제에서 허용한 돌파 횟수와 과르디올라 감독 부임 후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 오타멘디 시즌별 돌파 허용 횟수
(시즌 - 경기당 평균 돌파 허용 횟수)
15/16 - 1.4회 (페예그리니 체제)
16/17 - 0.6회 (이하 과르디올라 체제)
17/18 - 0.7회
그러나 오타멘디가 유독 올 시즌 들어 상대 공격수와의 맞대결에서 더 효과적인 수비를 펼치게 된 데는 개인 기량 향상만큼이나 맨시티의 팀 전술도 한 몫을 담당한다. 과르디올라 감독이 후방 수비라인을 최대한 공격 진영과 가까운 위치로 끌어올려 중앙 수비수에게도 패스 연계 가담을 요구하고, 공격진의 전방 압박 시 촘촘한 진용을 구축하는 전술을 구사한다는 건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올 시즌 전반기에 맨시티는 이에 완벽히 적응한 모습을 보여주며 평균 점유율 66.2%(지난 시즌 60.9%)를 기록 중이다. 이 때문에 맨시티가 상대팀의 공격을 막아야 하는 상황 자체가 줄었다.
쉽게 말해 수비수 오타멘디가 올 시즌 장족의 발전을 이룬 비결은 역설적으로 수비를 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올 시즌 오타멘디의 실질적인 경기당 평균 태클, 가로채기, 공중볼 쟁취 횟수는 그가 스페인 라 리가 명문 발렌시아에 입단하며 포르투를 떠나 '빅리그' 진출에 성공한 2014년 이후 가장 낮다. 그 결과 오타멘디는 그동안 약점으로 꼽힌 수비 시 집중력을 상당 부분 개선했다.
# 오타멘디 시즌별 태클 및 가로채기 횟수
(시즌 - 경기당 평균 태클 / 가로채기)
14/15 - 3.0 / 3.2 (발렌시아)
15/16 - 3.0 / 3.5 (이하 맨시티)
16/17 - 2.3 / 2.7
17/18 - 1.6 / 1.6
# 오타멘디 시즌별 공중볼 쟁취 횟수
(시즌 - 경기당 평균 공중볼 쟁취 횟수)
14/15 - 3.5회 (발렌시아)
15/16 - 3.0회 (이하 맨시티)
16/17 - 3.9회
17/18 - 2.7회
수비 부담이 줄어들자 오타멘디는 과거 후방에서 상대 공격수를 묶는 데만 집중하던 단순한 역할에서 벗어나 다양한 방법으로 수비를 하고 있다. 일단 그는 예전 그 어느 때보다 상대 공격수의 오프사이드를 유도하는 빈도가 높아졌다. 과르디올라 감독 체제에서 수비라인을 조율하는 능력을 장착한 오타멘디는 자신이 전진하면 발생하는 뒷공간을 파고드는 공격수와 굳이 경합을 하지 않고도 지능적으로 오프사이드 트랩을 가동하며 상대 공격의 맥을 끊고 있다. 그는 토트넘의 다빈손 산체스(21)와 함께 올 시즌 프리미어 리그 '빅6' 팀 수비수 중 가장 많은 오프사이드 유도 횟수를 기록 중이다.
# 오타멘디 시즌별 오프사이드 유도 횟수
(시즌 - 경기당 평균 오프사이드 유도)
14/15 - 0.7회 (발렌시아)
15/16 - 0.8회 (이하 맨시티)
16/17 - 0.9회
17/18 - 1.1회
올 시즌 오타멘디가 발전한 부분은 이뿐만이 아니다. 과르디올라 감독이 언급한 오타멘디의 '어울리지 않는 역할에도 적응하려는 노력'도 조명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가 밝힌 오타멘디의 '어울리지 않는 역할'이란 예전까지 그가 맡아온 '수비만 하는 수비수'가 아닌 '전천후 자원'으로서의 몫을 뜻한다. 과르디올라 감독이 중용하는 수비수는 사실상 수비 진영보다는 미드필드에 더 가까운 곳에 배치되는 만큼 원활한 패스 공급과 공격 가담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과거 바르셀로나에서는 헤라르드 피케가, 바이에른 뮌헨에서는 제롬 보아텡이 이 역할을 맡았다.
'바르셀로나 DNA'를 보유한 피케는 물론 보아텡 또한 과르디올라 감독을 만나기 전부터 이러한 능력을 일정 부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타멘디는 달랐다. 최후방 수비수마저도 공을 소유하며 공격을 전개하고, 상황에 따라 전진에 득점 기회를 포착하는 역할은 세트피스 공격 상황을 제외하면 '수비만 하는 수비수' 오타멘디에게 어색했다. 그가 지난 시즌 고전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올 시즌 오타멘디는 기록상으로 과거의 피케, 보아텡에 버금가는 공격 전개 능력을 선보이고 있다. 그러면서 발렌시아 시절 80%를 겨우 넘긴 그의 패스 성공률은 3년 만에 90%를 돌파했다.
# 오타멘디 시즌별 패스 성공률
(시즌 - 경기당 평균 패스 성공률)
14/15 - 80.3% (발렌시아)
15/16 - 84.1% (이하 맨시티)
16/17 - 88.2%
17/18 - 91.9%
또한, 오타멘디는 올 시즌 중앙 수비수치고는 비정상적일 정도로 많은 슈팅을 기록하며 자신의 공격 재능을 마음껏 뽐내고 있다. 그의 올 시즌 경기당 평균 슈팅 횟수는 1.2회. 이 기록만을 보면 그가 세트피스 시 공격에 가담한 덕분에 많은 슈팅을 기록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올 시즌 오타멘디가 18경기에서 기록한 슈팅 23회 중 세트피스 시 슈팅은 14회, 오픈 플레이에서 나온 슈팅은 9회다. 그는 적어도 두 경기에 한 번씩은 경기 도중 자신이 직접 전진해 상대방 골문을 저격하고 있다. 중앙 수비수 오타멘디의 경기당 슈팅 1.2회는 레스터 시티 공격수 오카자키 신지와 동률을 이루고 있으며 번리의 장신 공격수 크리스 우드, 맨유 측면 공격수 안토니 마샬(이상 1.3회), 웨스트 햄 최전방 공격수 치차리토(1.5회)와 비슷한 수준이다.
# 오타멘디 시즌별 슈팅 횟수
(시즌 - 경기당 평균 슈팅 횟수)
14/15 - 0.6회 (발렌시아)
15/16 - 0.9회 (이하 맨시티)
16/17 - 0.5회
17/18 - 1.2회
# 올 시즌 EPL 중앙 수비수 슈팅 순위
(경기당 평균 슈팅수 - 선수 - 팀)
1.2회 - 오타멘디 - 맨시티
1.2회 - 요시다 - 사우샘프턴
1.1회 - 스콧 댄 - 팰리스
1.0회 - 쇼크로스 - 스토크
1.0회 - 반 다이크 - 사우샘프턴
*출전 횟수 10경기 이하인 선수는 제외
과르디올라 감독은 2008년 바르셀로나 사령탑 부임 즉시 불과 1년 6개월 전 발롱도르를 수상한 호나우지뉴가 게으르다는 이유로 그를 내보낸 적이 있다. 그는 2010년에도 자신이 구단에 직접 요청해 사무엘 에투와 현금 6천255만 파운드를 인테르에 내주고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를 영입하고도 팀 전술에 어울리지 않는다며 그와 1년 만에 결별했다. 과르디올라 감독은 바이에른 뮌헨에서도 마리오 만주키치, 프랑크 리베리와 마찰을 빚었다. 이어 그는 감독으로 데뷔한 후 처음으로 지난 시즌 맨시티에서 무관에 그치자 "입맛에 맞는 선수만 골라 쓰는 지도자"라는 비난에 직면했다.
그러나 올 시즌 과르디올라 감독은 오타멘디를 통해 자신에게 지적된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했다. 페르난지뉴도 오타멘디처럼 페예그리니 감독이 팀을 이끈 2015-16 시즌에는 평균 태클이 3.2회에 달했지만, 올 시즌에는 이를 수비형 미드필더치고는 적은 편인 1.8회로 줄이고도 더 압도적인 중원 장악력을 자랑하고 있다. 맨시티에서 벤치 신세로 밀려 있던 미드필더 파비안 델프도 왼쪽 측면 수비수로 변신해 수준급 활약을 펼치는 중이다. 이처럼 이제 과르디올라 감독은 '잘하는 선수만 잘 쓰는 감독'이 아닌 '선수의 단점을 고쳐주는 감독'으로 더 성숙해진 지도력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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