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로 VAR을 도입한 호주 A리그는 지금 혼란에 빠져 있다. VAR을 활용하고 있는 K리그, 그리고 VAR이 도입되는 러시아 월드컵에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골닷컴] 이승민 객원 에디터 = 지난 4월 7일, 호주 A리그는 멜버른 시티와 애들레이드 유나이티드 간의 경기에서 비디오판독시스템(VAR)을 도입하며 세계 최초로 프로축구 1부리그 경기에서 VAR을 사용하는 사례가 되었다. 그로부터 약 9개월이 지난 지금, 호주 축구계에서 VAR은 지탄의 대상으로 전락했고, 호주축구협회(FFA)는 수정된 VAR 가이드라인을 떠밀리듯 발표하게 되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커져가는 논란
2017-18 A리그 11라운드는 VAR의 비디오 판독 후폭풍으로 시끄러웠던 한 주였다. 먼저 시드니FC와 멜버른 시티 간의 경기는 리그 선두 싸움으로 많은 이목이 집중된 경기였다. 시드니가 2-1로 앞서가는 와중에 시티 선수가 경합 과정에서 시드니 선수를 팔꿈치로 친 것이 VAR로 확인되어 퇴장 명령을 받았다. 문제는 그 전에 공과 상관없는 상황에서 해당 시티 선수를 일부러 발로 찬 다른 시드니 선수에 대해서는 전혀 징계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영상: https://youtu.be/wwNUv8N9Ah4?t=1m34s
이어 센트럴 코스트 마리너스와 웨스턴 시드니 원더러스의 경기에서 2명의 센트럴 코스트 선수가 옐로 카드를 받았다가 모두 비디오 판독 과정 후 주심에게서 레드 카드로 상향된 징계를 받은 것은 많은 논란을 낳았다. 당시 두 선수의 퇴장 요인이 된 태클들은 ‘해석에 따라’ 옐로 카드 혹은 레드 카드도 가능한 상황이었는데, 주심이 먼저 옐로 카드를 준 상황에서 비디오 판독이 개입하여 퇴장으로 바뀐 것이다.
영상: https://youtu.be/tyjZMCQao_4?t=2m29s
그 후 뉴캐슬 제츠와 애들레이드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는 공이 페널티 지역 안에 있던 애들레이드 수비수의 몸통을 맞았으나 이를 주심이 페널티 킥으로 선언했다. 그러나 VAR은 이를 잡아내지 못했고, 이 페널티킥이 뉴캐슬의 결승골이 되어 논란이 일었다. 결국 애들레이드는 호주축구협회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영상: https://youtu.be/t3_wIycHXGI?t=1m39s
지켜지지 않는 원칙들
VAR 도입 당시 가장 우려되었던 부분은 비디오 판독 과정이 축구 경기의 전체적인 속도를 떨어뜨리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호주축구협회는 다음과 같은 원칙을 제정했다.
-VAR의 확인은 오직 4가지 상황에만 적용 : 골, 페널티킥 결정, 퇴장 상황 그리고 잘못된 선수 판별.
-VAR로 주심이 결정을 번복할 수 있는 상황은 오직 비디오 판독 과정에서 ‘명백한 오류’가 발견되고 주심이 이를 수용할 경우.
-VAR 운영 철학은 ‘최소의 개입으로 최대의 효과’.
하지만 앞서 언급한 상황 중 첫번째 경기에서는 퇴장 판정을 두 사건에 모두 적용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사건에만 적용시켰다. 두번째 경기에서는 ‘명백한 오류’가 아닌 전적인 주심의 판단에 따라 카드가 갈릴 수 있는 시점에서 VAR이 개입해서 논란을 낳았다. 세번째 경기에서는 ‘명백한 오류’조차 잡아내지 못하면서, 호주축구협회의 원칙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셈이 되었다.
현재 A리그 많은 감독, 선수 그리고 팬들까지 팀을 가릴 것 없이 모두 “경기의 속도를 떨어뜨린다” “골을 넣고 바로 좋아할 수 없고 2-3분은 기다려야 한다” “시간은 잡아먹는데 정확한 판정을 내리는 것도 아니다”라며 VAR을 혹독하게 비판하고 있으며, 언론에서도 VAR로 인한 논란을 집중 조명하면서 VAR 운영 자체에 대한 회의론이 일고 있다.
새로운 가이드라인, 논란을 잠재울 수 있을까?
결국 호주축구협회는 A리그 12라운드부터 수정된 가이드라인을 적용한다고 발표했다. 클럽들에게는 비디오 판독이 “경기를 바꾸는 반칙이 아니면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의 메모를 전달했다고 한다. 새로운 가이드라인 내용은 아래와 같다.
-VAR은 명확한 판정 오류나 현장의 심판이 놓친 부분에만 개입할 것
-VAR이 관여하는 반칙 기준을 상향 조정
-VAR은 시합 내용을 바꿀 수 있는 상황에만 집중할 것
간단히 말하면, VAR을 적용하는 범위를 최대한 좁혀 경기의 속도를 살리고 심판의 판정을 보조하겠다는 본질을 다시 한번 강조한 셈이어서 기존의 시스템과 근본적인 차이는 없다.
그러나 호주축구에서 일고 있는 VAR 논란은 작게는 주심과 비디오 판독심판의 대화를 공개해야 한다는 얘기에서부터 크게는 VAR 자체를 폐지하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어 새로운 가이드라인이 지금까지의 문제를 크게 개선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2018 FIFA 월드컵에서는?
지아니 인판티노 FIFA 회장이 내년 열리는 2018 FIFA 러시아 월드컵에서부터 VAR 시스템을 적용하겠다고 천명한 만큼, 앞서 언급된 문제가 되풀이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호주 A리그뿐 아니라 한국 K리그, 이탈리아 세리에A 등 VAR 시스템을 시범 운영하는 일부 축구리그에서도 불협화음이 끊이지 않는 지금 상황에서는 FIFA가 월드컵용 VAR 시스템을 내놓더라도 결국엔 월드컵 무대에서 시범 운영을 하게 되는 꼴이다.
만약 부작용을 막기 위해 VAR의 적용 범위를 굉장히 협소하게 운영할 경우, VAR 무용론이 대두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지난 2014 FIFA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개막전서부터 판정 논란이 불거져 FIFA가 대회 흥행을 위해 개최국인 브라질을 뒤에서 지원한다는 음모론까지 나왔던 점을 생각해본다면, 비디오 판독 후 주심의 판정 근거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을 경우 판정 오류의 비난은 심판 개인이 아닌 FIFA가 뒤집어 쓰게 된다.
월드컵 개최지 선정 단계에서부터 각종 의혹에 휩싸여 왔던 2018 FIFA 러시아 월드컵이 VAR 도입을 성공적으로 매듭지으려면, 하루빨리 기존 VAR 시스템의 문제점을 보완한 통일된 VAR 시스템 및 운영지침을 배포하고 판정의 투명성을 보장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불협화음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과연 VAR 시스템은 이번 월드컵에 독이 될까, 약이 될까?
사진=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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