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우의 MLB+] 30홈런 친 크론의 DFA 그리고 최지만
[엠스플뉴스]
“홈런왕은 캐딜락을 몰고, 안타왕은 포드를 운전한다. (Home run hitters drive a Cadillac and the single hitters drives Fords)”
야구팬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문구다. 캐딜락은 GM 산하 고급차 브랜드다. 반면, 포드는 캐딜락에 비해선 상대적으로 저렴한 차를 판매하는 회사다. 현역 시절 내셔널리그 7년 연속 홈런왕을 차지했던 랄프 카이너가 뉴욕 메츠의 해설자 시절에 한 이 말은 메이저리그에서 홈런 타자들이 차지하던 위상을 잘 설명해준다.
과거 메이저리그에서 30홈런을 친다는 것은 성공의 보증수표나 다름없었다. 30홈런을 칠 수 있다면 타율이 조금 낮고, 발이 조금 느린 것쯤은 문제가 안 됐다. 지난 100여 년간 메이저리그 거포들은 팀의 중심타자로서 많은 돈을 벌어들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젠 더이상 홈런을 많이 친다고 해서 많은 돈을 받는 시대가 아니다.
탬파베이 레이스는 21일(한국시간) 2018시즌 타율 .253 30홈런 74타점 OPS .816을 기록한 1루수 겸 지명타자 C.J. 크론을 양도지명(DFA)했다.
양도지명이란 메이저리그 구단이 40인 로스터의 한 자리를 비우기 위한 절차다. 양도지명된 선수는 웨이버 공시 기간에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되지 않으면 산하 마이너리그로 계약이 양도되거나, 조건 없이 방출된다. 하지만 서비스 타임 3년 차가 지난 선수는 양도지명을 통한 마이너리그행을 거부할 권리가 있으므로 크론은 웨이버 공시 기간 트레이드되지 않으면 조건 없이 방출될 가능성이 크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탬파베이는 직전 시즌 30홈런을 친 크론을 헐값에 트레이드하거나, 조건 없이 방출해도 '상관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메이저리그 거포들에게 내려진 '한파주의보'
얼핏 생각하면 크론을 양도지명하는 결정은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가난한 구단 중 하나인 탬파베이의 특수한 사정 때문에 생긴 '예외'라고 보일 소지가 있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탬파베이로서는 크론을 양도지명 이후 조건 없이 방출하는 것보다 트레이드를 통해 유망주를 얻는 편이 '당연히' 훨씬 더 이득이다.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똑똑한 경영진을 갖춘 구단 가운데 하나인 탬파베이가 그 사실을 모를 리가 없다. '당연히' 양도지명을 하기에 앞서 탬파베이는 크론을 트레이드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크론을 양도지명했다는 것은 '조건 없이 방출했을 때보다 더 나은 대가'를 제시하는 구단이 하나도 없었다는 걸 뜻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굳이 크론을 양도지명할 이유가 없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하다. 적어도 현시점에선 크론에게 1년 500만 달러 이상(+유망주)의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는 구단은 한 팀도 없다는 것이다(물론 크론이 조건 없이 방출된 후 FA가 되면 500만 달러보다 더 낮은 금액에 그를 영입하려는 팀은 충분히 있을 것이다). 즉, 현시점에서 '30홈런 OPS .816을 기록한 1루수'의 가치는 500만 달러 미만이라는 얘기다.
이는 불과 몇 년 전까진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다. 하지만 최근 두 시즌 동안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거포를 대하는 시각은 급속도로 바뀌고 있다.
지난해 1월 필자는 [이현우의 MLB+] 메이저리그 거포들에 내려진 '한파주의보'란 칼럼을 통해 "홈런만 잘 치는 전통적인 거포들의 시장 가치가 급격히 하락하고 있다"고 짚은 바 있다. 당시 예시로 내세웠던 선수 중 한 명은 크리스 카터였다. 2016시즌 41홈런으로 NL 홈런 공동 1위에 오른 카터는 연봉조정을 앞두고 밀워키 브루어스로부터 방출됐다.
한편, 2016시즌 AL 홈런왕 마크 트럼보와 2010년 각성 이후 7년간 연평균 36홈런을 기록한 호세 바티스타, 직전 시즌 34홈런을 기록한 마이크 나폴리와 28홈런을 쏘아 올린 브랜든 모스 역시 당초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낮은 몸값에 FA 계약을 체결했다. 이렇듯 홈런 타자들의 몸값이 낮아진 원인은 명백했다.
바로 2015시즌 후반기부터 시작된 홈런 급증 현상 때문이다.
홈런의 급증이 MLB의 선수 평가 기준에 미친 영향
2000시즌 5693개로 정점을 찍었던 리그 홈런수는 스테로이드 파동 이후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해 2014시즌 4186개로 감소했다. 그런데 2015시즌 들어 갑자기 4909개로 17.3%p가 늘어나더니, 2016시즌 다시 14.3%p가 증가한 5610개가 됐다. 이런 홈런 상승 폭은 데드볼 시대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라이브볼 시대로 진입한 1930년대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심지어 2017시즌에는 한술 더 떠 6105홈런으로 단일 시즌 홈런 기록이 나왔다. 물론 2018시즌에는 5585홈런으로 줄어들었지만, 이 역시 메이저리그 역대 네 번째로 많은 홈런수다. 즉, 2015시즌 이후 4년간 우리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많은 홈런이 나오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면서 30홈런 이상을 기록할 수 있는 타자들 역시 어느 때보다 흔해졌다.
2014년 11명에 불과했던 30홈런+ 타자는 2015년 20명으로 늘어났고 2016년에는 38명, 2017년에는 무려 41명에 달했다. 2018년에는 다시 27명으로 줄어들었지만, 기준선을 조금만 낮추면 여전히 20홈런+를 기록한 타자가 100명에 달할 정도로 홈런 타자가 즐비했다. 이에 따라 홈런만 잘 치는 타자들의 희소가치는 과거에 비해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한편, WAR(대체선수 대비 기여승수)로 대표되는 공·수·주를 모두 평가할 수 있는 세이버메트릭스 평가 도구가 발달한 것도 홈런만 잘 치는 타자들의 가치 하락에 영향을 미쳤다.
최근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단순히 타격 성적만을 비교하는 데에서 벗어나, 공·수·주를 통한 종합적인 기여도가 뛰어난 선수를 영입하길 선호하고 있다. 이는 과거에는 공격만 잘하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코너 내야수(1B, 3B)와 코너 외야수(LF, RF)들에게도 해당되는 얘기다. 홈런이 흔해진 현 시대에는 홈런만 잘 치는 코너 내·외야수는 얼마든지 대체할 수 있다.
따라서 메이저리그에서 코너 내·외야수로 살아남기 위해선 평균 이상의 타격 능력과 함께 최소한의 수비력과 멀티 포지션 소화 능력이 요구되고 있다. 이런 5툴 플레이어 선호 현상은 최근 몇 년간 MVP를 수상한 선수만 봐도 알 수 있다. 과거 리그 최고의 타자는 배리 본즈(2000년 이후)나 미겔 카브레라 같은 육중한 덩치의 '타격 머신'들이었다.
하지만 최근 MVP는 마이크 트라웃(2016), 호세 알투베(2017), 무키 베츠(2018), 크리스티안 옐리치(2018)와 같은 공·수·주에서 모두 뛰어난 타자들이 받고 있다. 그리고 이런 선수 평가 기준 변화와 그로 인한 크론의 양도지명은 팀 동료인 최지만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크론의 양도지명이 최지만에게 시사하는 것
지난 시즌 후반기 1루수와 지명타자 자리를 놓고 경쟁했던 크론의 양도지명은 단기적으로 보면 최지만에겐 호재다. 또한, 최지만이 지난 시즌 후반기에 보인 활약(61경기 타율 .263 10홈런 32타점 OPS .863 wRC+ 135) 때문에 크론이 밀려났다고 보는 것도 틀린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올겨울 크론이 겪은 일을 최지만이라고 해서 겪지 말라는 법이 없다.
최지만은 올 시즌 61경기 가운데 4경기를 제외한 57경기에서 지명타자로 출전했다. 그나마도 좌익수로 출전한 경기에선 1이닝 수비에 그쳤을 뿐이다. 즉, 현시점에서 최지만은 지명타자나 다름없다. 한편, 타격 성적에서 크론을 압도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탬파베이가 최지만이 아닌 크론을 양도지명한 것은 500만 달러에 달하는 연봉이 큰 영향을 미쳤다.
최지만은 내년에 최저연봉을 받고 뛴다. 하지만 서비스타임이 쌓이면 결국 최지만도 연봉 조정 자격을 얻을 것이다. 그때도 지금과 다르지 않다면 최지만 역시 크론이 겪은 일을 겪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다. 첫째, 올 시즌 지명타자로서 타율 .330 43홈런 130타점 OPS 1.031을 기록한 J.D. 마르티네스처럼 '압도적인 타격성적'을 내면 된다.
하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목표다. 둘째, 1루수와 지명타자로 포지션이 국한되지 않도록 외야 수비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이는 최지만의 나이가 만 27세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충분히 한 번쯤 해볼 만한 시도다.
주전 좌익수로 토미 팸이 있고, 주 포지션은 1루수지만 제법 뛰어난 운동신경을 바탕으로 지난해 코너 외야수로 20경기에 출전한 신인 제이크 바우어스가 팀에 있는 상황에서 최지만이 외야수로서 출전할 기회는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외야 수비 훈련을 해두는 것은 최지만과 비슷한 상황에 놓인 선수에겐 필수적인 과제다.
물론 여기엔 기본적인 전제 조건이 하나 더 있다. 바로 2018시즌 같은 공격력을 꾸준히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즉,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지난 시즌의 호성적과 크론의 DFA에도 불구하고 최지만의 메이저리그 생존기는 이제 막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과연 최지만은 내년 시즌 롱런을 위한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까?
이현우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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