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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스플의 눈] 선동열 사퇴에 대한 이견, ‘누가 야구를 모독했나’

일병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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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22 (목) 18:47

                           
-대표팀 감독 사퇴하며 “선수 보호” “명예” “야구에 대한 존경심” 얘기한 선동열 전 감독
-금메달에도 냉랭했던 여론과 대표팀을 참담하게 만든 건 누구였나 
-오래전 사퇴 결심? 선 감독은 ‘프리미어 12, 도쿄올림픽 준비’를 얘기했었다
-선동열, 대표팀에 집중 포화 쏟아내던 언론, 국정감사 이후 '선동열 지킴이'로 돌변
 
[엠스플의 눈] 선동열 사퇴에 대한 이견, ‘누가 야구를 모독했나’

 
[엠스플뉴스] 
 
선동열 전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은 지금까지 감독 자리에서 세 번 물러났다. 대표팀 감독 사퇴 기자회견에서 “감독은 무한책임을 지는 자리”라고 말하긴 했지만, 정작 책임을 지고 ‘자의’로 물러난 적은 별로 없다.  
 
삼성 라이온즈 시절엔 5년 재계약 첫 시즌을 한국시리즈 준우승으로 마친 뒤 경질됐다. 4전 전패로 물러난 한국시리즈 결과 외에도 모그룹 내의 여러 사정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경질로 이어졌다. 
 
KIA 타이거즈 감독 시절에도 ‘자의 반 타의 반’ 옷을 벗었다. 안치홍 군입대를 둘러싼 논란이 KIA 팬들의 격렬한 반발로 이어지면서, 새로운 임기를 시작할 수 없는 상황에 내몰렸다. 결국 재계약 발표 후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고향 팀을 떠나야만 했다. 
 
선 전 감독은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 자리에서도 끝까지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대회 대표팀 선발 논란이 불씨가 됐다. 이전과 다른 게 있다면 선 전 감독이 대표팀 수장 사퇴를 ‘자신의 결심에 의한 것’이라고 강조했다는 것이다. KBO(한국야구위원회)는 선 전 감독의 사퇴에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며 말리는 제스처를 취했다. 
 
삼성, KIA에서의 퇴진은 비교적 사퇴까지 가는 과정과 책임 소재가 분명했다. 하지만, 이번 대표팀 감독 사퇴는 여러 쟁점이 한꺼번에 뒤엉키면서 논란이 복잡해지고, 책임소재가 흐릿해졌다. 여기서 다른 시각으로도 봐야하는 건 과연 이번 사퇴가 선 전 감독의 말처럼 한‘자신의 결심’에 의한, ‘명예로운 결정’이냐는 것이다. 
 
대표팀을, 선동열을 초라하게 만든 건 누구인가
 
 
 
먼저 선동열 전 대표팀 감독이 사퇴까지 가게 된 과정을 되돌아보자. 야구 대표팀을 둘러싼 논란이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떠 오른 건 6월 11일 최종 엔트리가 공개되면서다. 엔트리 발표 전부터 야구팬 사이에선 일부 선수가 대표팀 발탁을 염두에 두고 병역을 미룬다는 비판이 거셌다. 발표된 엔트리에 실제 이 선수들이 포함되면서 논란이 더 커졌다.  
 
야구계에서도 일부 선수 발탁이 논란이 될 수 있다는 걸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선 전 감독은 이러한 예상이 적중했을 때도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았다. 충분히 뽑을 만해서 뽑은 선수였음에도 선 전 감독은 이런 당위성을 강조하지 않았다.  
 
감독이 침묵하자 발탁 배경을 둘러싼 ‘의문’은 ‘의혹’으로 발전했다. 논란에 휩싸인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여론의 관심이 집중됐다. 공교롭게도 논란의 선수들은 대표팀 발탁 이후 일제히 부진에 빠졌고, 탈락한 선수들이 맹활약하며 여론의 비판이 더 커졌다. 언론은 논란이 된 선수들의 행보를 경마식으로 보도하며 논란을 더 키웠다.  
 
선 전 감독은 대표팀 출전을 앞두고 가진 기자회견에서 금메달만 따면 다 해결될 것이라는 식의 소신을 밝혔다. ‘결과만 나오면 과정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대표팀 감독의 소신은 불붙은 여론에 기름을 끼얹었다. 대표팀을 향해 ‘은메달 기원’ 같은 저주 섞인 비난이 쇄도한 것도 이즈음이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출전한 대표팀 분위기가 좋을 리 없었다. 첫 경기에서 한 수 아래 전력의 타이완에 힘 한번 못 써보고 졌다. 이미 달아오른 여론은 폭발했다. 이후 대표팀은 홍콩, 인도네시아 등 한 수 아래 팀들 상대로 준비된 경기력을 선보이지 못했다. 야구에선 충분히 생길 수 있는 상황임에도, 흥분한 여론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 이때 언론들은 어땠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언론은 연일 대표팀의 경기력을 질타했다. ‘중학생 수준 선수에게 홈런을 맞았다’며 조롱했다. 대표팀에서 가장 큰 논란이 된 선수는 경기 출전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해당 선수의 플레이 하나하나, 표정 하나하나까지 보도를 통해 전해지고, 이는 더 많은 악성댓글을 불렀다. 선수 개인이 대표팀을 향한 모든 비난 여론을 뒤집어쓰는 이상한 상황이 계속 연출됐다.  
 
이렇게 험악한 사태가 전개될 동안, 대표팀 수장인 선 전 감독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축구대표팀 감독이 논란의 선수를 오히려 전면에 내세워 정면 돌파한 것과 달리, 선수가 비난받는 동안 그냥 방치했다. 그 흔한 옹호 발언조차 없었다. 대회가 끝날 때까지 제대로 된 출전 기회도 주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금메달을 따긴 했지만, 올스타 선수가 총출동한 한국이 실업야구 선수들로 대표팀을 꾸린 다른 참가국 상대로 우승한다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다만 그 과정이 생각했던 것만큼 완벽하지도 순탄하지 않았던 게 아쉬움이었다.  
 
선 전 감독은 사퇴 기자회견에서 아시안게임 3회 연속 금메달이었음에도 변변한 환영식조차 없었다. 세레모니조차 할 수 없었다. 금메달을 목에 걸 수도 없었다. 국가대표 감독으로서 금메달의 명예와 분투한 선수들의 자존심을 지켜주지 못한 데에 대해 참으로 참담한 심정이었다며 냉랭했던 당시 여론을 탓했다. 하지만 대표팀을 그런 참담한 상황까지 내몰리게 만든 책임을 묻는다면 선 전 감독이야말로 가장 책임에서 자유롭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사퇴 오래전 결심했다’던 선동열, ‘도쿄올림픽 준비’는 왜 말했을까
 
 
 
선동열 전 대표팀 감독은 사퇴 기자회견에서 말했다. 저는 결심했다. 감독으로서 선수들을 보호하고 금메달의 명예를 되찾는 적절한 시점에 사퇴하기로 마음먹었다고. 
 
아시아경기대회 기간 내내 특정 선수가 비난받게 방치한 감독의 입에서 ‘선수 보호’나 ‘명예’ 같은 말이 나오는 게 온당한지는 따로 제쳐두자. 감독 사퇴를 대표팀 귀국 당시 이미 결심했다는 선 전 감독의 말은 사실 여부를 따져봐야할 발언이었다. 
 
국정감사 증인출석을 앞두고 열린 기자회견 당시 선 전 감독은 프리미어 12와 도쿄올림픽 준비를 얘기했다. 이미 사퇴를 결심한 상태였다면 할 수 없는 얘기다. 선 전 감독은 아시아경기대회가 끝난 뒤 논란이 일자 일언반구도 없이 일본으로 떠났다. 국정감사를 앞두곤 가까운 인사들과 대책을 논의했다. 역시 사퇴를 염두에 둔 행보와는 거리가 멀었다. 
 
아시아경기대회 이후 선동열이 다음 기회를 도모하려면 빨리 사퇴해야 한다. 그게 명예를 지키는 길인데, 전혀 그럴 생각이 없는 것 같다”고 목소리를 높인 건 국회의원도, KBO 수장도 아닌 야구인들이었다.  
 
선 전 감독은 국회 국정감사에서 당한 모욕에 대해 이야기했다. ‘스포츠와 정치는 분리돼야 한다’는 말도 했다. 국정감사 이후 여론의 비판 화살이 선 전 감독에게서 정치인들 쪽으로 옮겨간 것을 정확하게 포착하고, 정치 쪽으로 화살을 돌린 것이다. 
 
국정감사에서 일부 의원의 전문성 부족과 사려 깊지 못한 질의가 지켜보는 국민들의 인상을 찌푸리게 만든 건 사실이다. 하지만 정치인들의 태도가 과하고 무례했다고 한들, 국정감사 자리까지 불려가는 원인이 된 선 전 감독의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원래 국정감사는 국회가 국민을 대신해 사실관계 확인이 필요한 피감기관이나 단체, 개인을 증인으로 출석시켜 묻는 자리다. 재벌 총수도, 연예인도, 유명 요리연구가도, 문화재를 개인 소장한 사람도 예외는 없다. 국보급 투수 출신이라고 국감에 불러내선 안 된다는 논리는 지나치게 야구 중심적인 사고방식이다.  
 
스포츠와 정치가 분리돼야 한다는 말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같은 논리라면 부패 기업인도 ‘기업 경영과 정치는 분리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일 수 있고, 문제 종교인도 ‘종교와 정치는 분리돼야 한다’고 항변할 수 있다. 야구 대표팀 선발 과정에 문제가 있고 논란이 되니까 국회에서 불러낸 것이다. 
 
그리고 선 전 감독의 국회 출석 필요성을 가장 강하게 요구한 이들은 여론의 풍향계에 따라 훗날 ‘선동열 수호자’로 변신한 일부 야구인이었다.  
 
‘중학생 수준에 피홈런’ 조롱하던 언론, 국정감사 뒤 ‘선동열 지킴이’로 변신 
 
[엠스플의 눈] 선동열 사퇴에 대한 이견, ‘누가 야구를 모독했나’

 
선동열 전 감독을 향해 쏟아지던 여론의 비판은 국정감사 이후 한순간에 정치인들 쪽으로 방향이 바뀌었다. 여기엔 국보급 투수를 국감장에 부르고도 제대로 질의를 하지 못한 정치인들 책임도 있지만, 자신들이 아시아경기대회 전후로 쏟아낸 기사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정치인을 향한 비판 여론에 편승한 언론의 역할도 컸다. 
 
국정감사 전까지 ‘선동열 비판’에 열을 올리던 언론들은 국정감사 이후 갑자기 열성적인 ‘선동열 지킴이’로 변신했다. 하루에 특정 대표팀 선수 비난 기사를 하나씩 쏟아내며 선수 비난을 유도했던 언론은 갑자기 대표팀에 대한 여론이 지나쳤다고 훈계하기 시작했다. 대회 기간 중학생 수준에게 고전한다고 조롱했던 언론들은 갑자기 국회의원의 “우승이 어려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발언을 ‘야구 모독’이라고 비판했다. 
 
전임 구본능-양해영 체제에서 온갖 혜택을 누리던 이들도 구본능-양해영 사퇴를 유도한 국회의원 비판에 앞장섰다. 이들이 구본능-양해영 체제에서 온갖 비리와 문제가 쏟아져 나올 때 KBO를 비판하는 걸 본 적이 있나. KBO 총재가 바뀌자 갑자기 투사로 변신해 총재와 정치인 때리기에 몰두한 게 누구인가. 
 
선 전 감독과 대표팀을 향한 여론의 비난을 자극하고, 부추기고, 이에 편승했던 건 바로 언론이다. 그 언론들이 이제는 선동열이 더는 상처받아선 안된다고, 선동열이 사퇴한 건 국회의원의 정치 공세 때문이라고, 선동열을 더는 초라하게 만들어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치인이라는 ‘꼬리’를 마구 흔들어 선동열의 책임이란 ‘몸통’을 보이지 않게 가린다. 한국 언론의 현주소다.  
 
결과적으로 선 전 감독은 삼성과 KIA 시절에 이어 국가대표 감독에서도 명예롭게 물러나지 못했다. 선 전 감독에겐 책임을 지고 명예를 지킬 충분한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정작 그때 선 전 감독은 침묵을 지켰고, 선수가 비난받게 방치했고, 사퇴 대신 ‘프리미어 12와 도쿄올림픽 준비’를 이야기했다. 
 
그랬던 선 전 감독이 마치 사퇴를 오래전에 결심한 것처럼, 모든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것처럼, 명예롭게 퇴진하는 것처럼, 국회의원의 모욕과 정치적 압력 때문에 쫓겨나는 것처럼 자신을 포장하면서 자신이 아닌 정치인들을 비난해 달라고 화살을 돌린 걸 모두가 수긍해야 하는가. 
 
선 전 감독은 “이제 때가 됐다”고 했다. 자신을 향한 비난이 분산되고 책임이 희석될 때까지 ‘때’를 기다린 건 아닌가. 
 
선 전 감독은 야구에 대한 저의 절대적 존경심도 이야기했다. 아시아경기대회 기간 중 여론의 혹독한 화살을 맞았던 선수들도 ‘감독에 대한 절대적 존경심’을 품었을 것이다. 과연 그 절대적 존경심과 관련해 선 전 감독은 어떤 생각인지 묻고 싶다. 
 
이근승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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