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박 10일 동안 인도네시아에 있던 정운찬 총재-취임 후 8개월 가운데 1달 넘게 국외 출장-KBO “MLB가 초청해 시구”, MLB “KBO가 협조 공문 보내면 시구를 알아봐주는 게 관례”-히어로즈 문제, 드래프트 개편, 군·경팀 축소 움직임 등 현안은 산적한데 총재는 보이지 않는 현실. 야구계 “8박 10일 인도네시아 갈 시간에 대표팀 명단 훑어보기만 했어도...”
[엠스플뉴스]정운찬 KBO(한국야구위원회) 총재가 약 열흘간의 인도네시아 출장을 마치고 9월 3일 돌아왔다. 총재 취임 이후 네 번째 국외 출장이다. 이번 출장 목적은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대회(AG) 야구 대표팀 경기 참관’으로 알려졌다. 이 출장엔 9개 구단 사장도 동행한 것으로 확인됐다(사장단은 8월 28일 인도네시아 도착, 9월 3일 귀국)8박 10일 동안 정 총재는 인도네시아에서 무얼 했을까. 우선 귀빈석에서 동행한 9개 구단 사장들과 함께 앉아 대표팀 경기를 응원했다. 한국 우승 뒤엔 시상자로 나서 24명의 선수에게 직접 금메달을 걸어주고, 악수를 나눴다. 3일엔 선수단과 함께 귀국해 공항 입국장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사진 찍고 악수하는 의례가 전혀 불필요하다고 지적하려는 게 아니다. 김응용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KBSA) 회장이 불참한 마당에, KBO리그 선수들이 출전한 대회에 KBO 수장이 참석해 격려하는 걸 누가 뭐라 하겠는가. 야구계 일각에서 지적하는 건 “굳이 8박 10일 동안 인도네시아에 머물 만큼 KBO 총재가 한가한 자리냐“는 의문에서 비롯됐다.현지에서 대표팀 일정을 지켜본 야구 관계자는 “KBO 직원들이 정말 바쁜 스케줄을 소화했다. 선수단 지원과 각종 업무를 처리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며 “이런 와중에 ‘높으신’ 총재와 사장단까지 대회 내내 머무는 바람에 의전까지 신경 쓰느라 부담이 더 컸던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취임 후 8달 가운데 1달을 국외 출장으로 보낸 정운찬 총재
선수단 격려와 시상 같은 '공치사'는 대회 막바지에 방문해 소화해도 큰 문제가 없다. 아시아야구연맹(BFA)과 직접적인 연관도 없는 KBO 총재가 현지에서 ‘야구 외교’를 할 일도 딱히 없다. ‘미국 선진야구 시찰’이라 쓰고 ‘미국 관광’이라 읽었던 과거 KBO 총재와 사장단의 연례행사를 장소만 인도네시아로 바꾼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한 야구인은 “2주간의 휴식기는 KBO리그의 각종 현안을 심도깊게 들여다보고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다. 하지만, 이 아까운 시간을 그냥 보냈다“고 지적했다.AG 대회 기간, KBO리그는 전면 중단됐다. KBO 사무국 업무도 대부분 올스톱했다. 취임 이후 8개월을 돌아보고 앞으로 방향을 설정하기에 이보다 좋은 시간도 없었다. 물론 대표팀을 응원하는 일도 좋지만, 이건 총재보단 야구팬이 할 일에 더 가까웠다.정 총재의 국외 일정이 입길에 오른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엠스플뉴스가 조사한 결과, 정 총재는 올해 1월 3일 총재 취임 이후 모두 네 번의 국외 출장을 소화했다.
미국엔 2월과 7월 총 두 차례 다녀왔고, 2월과 3월 사이엔 일본에 다녀왔다. 이번 인도네시아 출장까지 출장 기간만 25박 33일에 달한다. 취임 후 8달 가운데 1달을 국외에서 보낸 셈이다.정 총재의 첫 국외 출장은 2월 13일에 이뤄졌다. 당시 출장에서 정 총재는 미국 뉴욕으로 넘어가 메이저리그 사무국을 방문했다. 당시 KBO는 “정 총재가 뉴욕 MLB 사무국에서 롭 맨프레드 커미셔너와 회동했다”며 “스피드업, 클린베이스볼, 비즈니스 모델에 대해 두 커미셔너가 1시간 이상 통역 없이 대화를 나눴다”고 밝혔다.이후 정 총재는 플로리다와 애리조나로 향해 SK, 넥센, NC, KT의 스프링캠프를 차례로 방문했다. KBO는 “총재께서 현장의 의견을 수렴하고, 캠프 환경을 둘러본 뒤 선수들을 상대로 KBO의 클린베이스볼 의지를 강조하셨다”고 설명했다.이때만 해도 야구계는 “총재가 해결할 과제가 산더미인데…”하면서도 현장의 목소릴 들으려는 총재의 노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정 총재가 다시 국외 출장을 떠난 건 미국에서 돌아온 지 일주일도 안 돼서다. 정 총재는 2월 28일부터 3월 4일까지 4박 5일간 일본으로 날아가 KBO 구단 스프링캠프를 돌아보고, 악수하고, 연습경기를 관전했다.마지막 날엔 일본과 호주 대표팀의 연습경기에 방문해 일본과 타이완, 호주 프로야구 커미셔너와 회동했다. KBO는 “아시아야구 발전과 각종 국제경기에 대해 논의한 자리”라고 밝혔다.‘양키스팬’ 정운찬 총재의 양키 스타디움 시구. KBO “MLB 요청에 의해 이뤄진 것”, MLB “KBO 요청으로 이뤄지는 게 관례”
정운찬 KBO 총재의 국외 출장이 ‘외유 의심’으로 번진 건 세 번째 국외 출장부터다. 정 총재는 7월 들어 다시 국외 순방길에 올랐다. ‘MLB 사무국의 공식 초청’을 이유로 5박 7일간 미국을 방문한 것이다.이 기간에 정 총재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MLB 올스타전을 참관했고, 맨프레드 MLB 커미셔너와 다시 만나 스피드업, 야구장 인프라 개선, 야구의 세계화 등을 논의했다. 2월 첫 만남 때 나눈 대화와 크게 다를 게 없는 주제였다.이후 정 총재는 쿠퍼스타운 명예의 전당, MLB 네트워크, MLBAM 등을 차례로 방문해 통합마케팅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자문을 구했다. 통합마케팅은 KBO 자회사인 KBOP의 주업무다. ”통합마케팅 견학은 총재가 아니라 KBOP 대표이사와 직원들이 가야 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었다.미국 방문에서 가장 중요한 일정은 따로 있었다. 정 총재는 7월 20일 뉴욕 양키스타디움에서 열린 뉴욕 양키스와 뉴욕 메츠의 ‘서브웨이 시리즈’에 시구자로 나섰다. KBO는 이 일정에 대해 ”MLB 요청으로 시구자로 나섰다”며 메이저리그에서 먼저 요청해서 이뤄진 시구였음을 강조했다. 과연 그럴까.엠스플뉴스 취재에 응한 MLB 관계자는 ”올스타전이 열리면 MLB와 관련된 국제 인사들에게 초청문을 보낸다. 직접 오면 티켓 제공 등 편의를 제공한다”며 ”정 총재의 시구와 관련해 우리가 먼저 제의한 적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추가 취재 결과 MLB는 정 총재에게 항공권과 호텔 등을 제공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우리 올스타전을 보러 오시면 자릴 만들어드리겠습니다’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 초청은 아니었단 뜻이다.MLB의 다른 관계자도 ”KBO 총재들의 메이저리그 시구는 대부분 KBO 요청으로 MLB가 구단에 타진하는 식으로 이뤄져 왔다”며 ”구본능 전임 총재 시구도 KBO가 요청해 성사된 것”이라고 설명했다.이와 관련해 “MLB 초청으로 시구가 이뤄졌다‘고 주장하던 KBO는 9월 4일 엠스플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올스타전 초청을 받고 MLB와 방문 일정을 얘기하는 과정에서 서로 의견을 조율해 (시구가) 이뤄졌다”며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요청했다기보다 서로가 뜻이 맞아 이뤄진 것”이란 애매한 답변을 내놨다.정 총재의 ‘뉴욕 시구’가 뒷말을 낳는 건 공교롭게도 시구팀이 양키스였기 때문이다. 정 총재가 양키스 골수팬이란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정 총재는 과거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 유학 시절부터 양키스를 열렬히 응원했고, 박사학위를 준비할 땐 양키스 전 경기를 시청하느라 학위 취득이 늦어졌다”고 고백한 바 있다.평범한 양키스 팬에게 양키스타디움 시구는 평생의 꿈이다. KBO 수장이 된 정 총재에게도 양키스 시구는 오랜 꿈이었을지 모른다. 그 오랜 꿈을 위해 미국 국외출장을 간 건지, 어떻게 하다 보니 그 오랜 꿈을 이루게 됐는지는 정 총재 자신만이 알 것이다.넥센 히어로즈 문제, 드래프트 제도 개편, 군·경팀 축소 움직임 등 해결할 과제가 수두룩한데도 총재는 보이지 않는 현실, “총재직은 야구팬 버킷리스트 이루는 자리가 아니다”
취임 초기만 해도 야구계에선 ‘열성 야구팬’ 총재 탄생에 기대를 거는 이가 많았다. 일주일에 두세 번 출근해 도장만 찍고, 실무는 사무총장에게 맡겼던 과거 총재들과 달리, 매일 출근해 직접 업무를 총괄하는 ‘일하는 총재’가 될 거란 기대가 컸다.정 총재도 ‘상근’을 강조하며 이전 총재들과 달리 “많은 돈을 받는 총재가 되겠다”고 천명했다.하지만 8개월이 지난 지금, 야구인들 사이에선 연일 ‘총재가 보이지 않는다’ ‘총재가 어디서 뭘 하는지 알 수가 없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각종 사건·사고가 터지고 넥센 히어로즈 문제, 드래프트 제도 개편, 군·경팀 축소 움직임 등 해결할 과제가 수두룩한데도 총재가 나서서 설명하거나 해결책을 찾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총재가 KBO 각종 현안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정 총재는 최근 미국 쿠퍼스타운을 방문해서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을 벤치마킹해 한국에도 야구회관에 ‘명예의 전당’을 설립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그야말로 자다가 봉창 두들기는 소리다. 한국야구 명예의 전당은 이미 부산시와 MOU(양해각서)를 체결하고 부지까지 마련한 상태다. 그러나 KBO와 부산시의 줄다리기 속에 3년째 첫 삽도 뜨지 못한 상태다. 2만 점이 넘는 각종 야구 기념품은 KBO 지하 1층 수장고에서 박물관 건립을 ‘목이 빠지라’ 기다리고 있다.이를 두고 한 야구 원로는 “총재를 보좌하는 사람들이 현안을 제대로 보고하는지 의문”이라고 쏘아붙였다. 이어 ”총재 자리는 야구팬으로서 버킷리스트를 이루라고 준 자리가 아니다. 시구하고 야구 관전하고 선수들과 사진 찍는 일도 좋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잦은 국외 출장과 외유 속에, 취임 첫 1년이란 중요한 시간이 성과 없이 지나갔다는 비판도 나온다. 한 야구인은 “정 총재 취임 초기만 해도 KBO가 이사회에 빼앗긴 주도권을 다시 찾을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이 있었다”며 “사장들을 상대로 총리 출신 총재가 영향력을 발휘해 KBO 개혁을 주도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고 털어놨다.하지만 지난 8개월간 KBO와 정 총재의 행보에선 눈에 띄는 개혁 의지나 제도 개선을 찾아보기 어려웠단 지적이 많다. KBO 조직 개편과 자체 감사 실시 등의 성과를 내긴 했지만, 그 외의 부문에선 이전 수뇌부와 큰 차별성을 찾아보기 어렵다. 사진 찍고, 시구하는 것 외엔 하는 일이 없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야구계에선 ”이전 총재들과 비교해 전혀 다를 게 없다. 다른 게 있다면 이전 총재들은 연봉을 받지 무급 봉사직이었는데 반해 정 총재는 수억 원의 돈을 받아간다는 사실”이라고 일갈했다.이에 대해 KBO 관계자는 “취임 당시 제시한 3년 로드맵에 따라, 취임 첫해인 올해는 조직 재정비와 제도 개선에 중점을 두고 있다”며 ”올해는 KBO 내부를 깊게 들여다보고 준비 과정을 거친 뒤, 2년 차부터 본격적인 혁신을 시작하자는 게 총재의 뜻”이라고 설명했다. 이 말이 맞다면 총재에 지급하는 수억 원의 연봉도 2년 차때부터 본격적으로 지급하는 게 맞을지 모른다.인도네시아에서 8박 10일간 대표팀을 응원할 열의와 시간은 있었어도 AG 야구대표팀 명단을 볼 몇십분은 없었던 것일까.배지헌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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