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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우의 MLB+] '새가슴'이라 불렸던 한 유망주의 각성

일병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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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09 (목) 21:22

                           
[이현우의 MLB+] '새가슴'이라 불렸던 한 유망주의 각성

 
[엠스플뉴스]
 
203cm에 이르는 큰 키에 군살 하나 없는 날렵한 몸매, 최고 99마일(159.3km/h) 평균 90마일 중후반대를 형성하는 강력한 패스트볼, 비트윈 더 렉 덩크(공중에서 다리 사이로 공을 넣었다가 뺀 다음 꽂아넣는 덩크)를 가볍게 할 수 있는 운동신경까지. 불과 2년 전만 해도 타일러 글래스노우(24·탬파베이 레이스)는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투수 유망주 가운데 한 명이었다.
 
하지만 글래스노우에 대한 메이저리그 팬들의 기대는 순식간에 사그라지었다. 빅리그 2년 차였던 지난해 글래스노우는 2승 7패 62.0이닝 평균자책 7.69에 그쳤다. 표면적인 성적보다 더 큰 문제는 9이닝당 볼넷이 무려 6.39개에 육박했다는 점이다. 이런 글래스노우의 제구 불안은 누가 보더라도 심리적인 요인임이 분명했다.
 
흔들리는 제구를 잡기 위해 글래스노우는 마이너리그 시절보다 의도적으로 구속을 낮췄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역효과를 낳았다. 전력투구한 공과 힘을 빼고 던지는 공은 같은 구속이더라도 회전수와 그로 인한 구위 면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상대 타자들은 힘 빠진 그의 공을 난타했고, 심리적으로 위축된 글래스노우는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이현우의 MLB+] '새가슴'이라 불렸던 한 유망주의 각성

 
그런 글래스노우가 달라졌다. 지난달 탬파베이 레이스로 트레이드된 글래스노우는 8일(이하 한국시간) 볼티모어 오리올스와의 경기에서 팀의 첫 번째 투수(*오프너, Opener)로 등판해 4.0이닝 2피안타 1실점 9탈삼진을 기록하며, 팀의 4-3 승리를 이끌었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사실은 4.0이닝 동안 단 한 개의 볼넷도 내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 오프너란 1~3회를 무실점으로 막는 걸 목표로 하는 새로운 불펜 포지션으로 첫 번째로 등판하지만 기존 선발과는 달리, 짧은 이닝을 소화한 후 마운드를 내려가는 투수를 통칭하는 말이다. 오프너란 명칭은 마무리를 클로저(Closer)라고 부르는 데서 착안해서 지어졌다. 탬파베이는 오프너 전략을 가장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는 구단이다.
 
글래스노우는 탬파베이 이적 후 7.0이닝 동안 4피안타 2실점 1볼넷 14탈삼진을 기록 중이다. 아직 표본이 적긴 하지만, 최근 글래스노우는 유망주 시절 받았던 기대에 걸맞는 활약을 펼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연 그사이 글래스노우에게는 어떤 일이 생긴 걸까?
 
올 시즌 피츠버그에서부터 시작된 변화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면 비록 탬파베이 이적 후 더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고 있긴 하지만, 글래스노우는 올해 초 피츠버그 소속일 때부터 달라질 징조(1승 2패 56이닝 34볼넷 72탈삼진 평균자책 4.34 *FIP 3.61)를 보였다는 것이다. 그 증거가 바로 패스트볼 구속 증가다. 2017시즌 글래스노우는 마이너에서의 명성에 비해 빅리그에선 구속이 나오지 않았다.
 
*FIP(Fielding Independent Pitching, 수비무관 평균자책점)
 
그러나 올해 들어 글래스노우는 마이너 시절 명성에 걸맞는 패스트볼 평균 구속을 기록 중이다. 올 시즌 글래스노우의 패스트볼 평균 구속은  96.7마일(155.6km/h). 이는 지난해 대비 2.1마일(3.4km/h)이나 빨라진 수치다. 물론 이러한 구속 상승에는 선발 투수에서 불펜 투수로 보직을 옮긴 영향도 있겠으나, 그게 전부는 아니다.
 
지난해까지 글래스노우는 앞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제구를 잡기 위해 전력투구를 자제해왔다. 여기에는 '초구 스트라이크'와 '투심(싱킹) 패스트볼의 낮은 제구'를 강조하는 피츠버그 구단 고유의 투구 스타일이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이러한 투구 전략은 전형적인 파이어볼러 유망주인 글래스노우에겐 맞지 않는 옷이었고, 
 
글래스노우의 연도별 패스트볼 구사율 및 평균 구속
 
[2016시즌] 포심 61.3%(93.5마일)
[2017시즌] 포심 39.4%(94.7마일) 투심 25.3%(94.5마일)
[2018시즌] 포심 72.5%(96.6마일)
 
그런데 올 시즌 들어 피츠버그의 투구 전략에는 한 가지 변화가 생겼다. 그동안 금기시해왔던 '높은 포심 패스트볼'을 소극적이나마 장려하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까지 26.9%로 30개 구단 가운데 가장 높은 투심 패스트볼 구사율을 기록하던 피츠버그는, 올해 들어 그 비율을 20.5%(전체 8위)까지 줄였다. 대신 16위에 불과했던 포심 구사율을 2위까지 끌어올렸다.
 
이는 글래스노우의 구종 비율과 투구 위치 변화로도 확인할 수 있다. 글래스노우는 지난해 25.3%비율로 던졌던 투심 패스트볼을 올해 한 개도 던지지 않았다. 한편, 아래 [그림1]을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포심 패스트볼의 투구 위치도 눈에 띄게 높아졌다. 이러한 투구 스타일의 변화는 올 시즌 글래스노우의 성적 향상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높은 패스트볼 & 새로운 브레이킹볼
 
[이현우의 MLB+] '새가슴'이라 불렸던 한 유망주의 각성

 
높은 포심 패스트볼의 치명적인 단점은 장타를 허용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퍼 스윙이 유행하는 현대 야구에서 높은 포심 패스트볼은 단점 못지않게 장점도 많다. 그중 하나는 바로 헛스윙을 유도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글래스노우처럼 평균 90마일 중후반대에 육박하는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는 이런 장점을 극대화시킬 수 있다.
 
게다가 글래스노우에겐 높은 패스트볼을 던지는 것이 유리한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올 시즌부터 던지기 시작한 한 '브레이킹볼' 때문이다. 올해 들어 글래스노우는 기존 주무기였던 커브와 매우 흡사한 움직임(횡적인 움직임보단 종적인 움직임이 두드러진다)을 보이면서도 구속은 약 3.2마일(5.1km/h) 빠른 새로운 변화구를 던지기 시작했다. 
 
<베이스볼서번트>를 비롯한 통계 사이트에서 슬라이더로 분류되고 있지만, 패스트볼과의 구속 차이나 움직임만 봤을 땐 슬라이더보단 '파워 커브' 또는 '슬러브'에 가까운 이 공은 올 시즌 33타수 2안타 22탈삼진 피안타율 .061 헛스윙률 54.7%라는 괴물 같은 성적을 기록 중이다. 그리고 이러한 떨어지는 종류의 변화구는 '하이 패스트볼'과의 조합하면 위력이 더해진다.
 
[이현우의 MLB+] '새가슴'이라 불렸던 한 유망주의 각성

 
흥미로운 점이 있다면 글래스노우의 새 팀 탬파베이는 다른 어떤 구단보다 하이 패스트볼에 이은 낮게 떨어지는 변화구 전략을 적극적으로 장려하는 구단이라는 것이다. 그 영향일까? 실제로 탬파베이 이적 후 2경기에서 글래스노우는 1. 이적 전보다 하이 패스트볼을 더 적극적으로 구사했고, 2. 새로운 변화구의 구사율도 2배 가까이 끌어올렸다. 
 
비록 2경기 7.0이닝에 불과한 표본 크기지만, 이적 후 글래스노우의 호투가 심상치 않게 다가오는 이유다. 피츠버그가 글래스노우와 미도우즈를 주고 아처를 영입했을 때, 많은 전문가는 피츠버그의 전력 보강을 위한 의지를 보여주는 좋은 트레이드라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어쩌면 피츠버그는 미래의 에이스가 될 수도 있었던 투수를 너무 일찍 포기한 것일지도 모른다. 
 
지난해까지 '새가슴' 또는 '유리멘탈'이라고 불렸던 글래스노우는 드디어 자신이 왜 한때 '우완 빅유닛'이라고 불렸었는지를 단편적이나마 보여주기 시작했다.
 
이현우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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