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의 기다림' 박종기 "동생 때문에라도 포기할 수 없었어요"
2013년 두산 육성 선수로 입단해 2020년 첫 승 거둬
"포기하고 싶은 순간은 많았죠…그래도, 가족 생각하며 버텼어요"
(서울=연합뉴스) 하남직 기자 = 박종기(25·두산 베어스)는 프로야구 2020시즌 개막(5월 5일)을 닷새 앞두고, 훈련 중 타구에 오른쪽 무릎을 맞았다.
다행히 큰 부상은 피했지만, "나는 또 안 되는구나"라고 좌절했다.
박종기는 22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2013년 프로 입단 후 처음으로 1군 스프링캠프 명단에 포함됐고, 연습경기에 자주 등판하면서 '더 노력하면 1군 진입도 할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었던 시점이다. 개막 직전에 부상을 당해 상심이 컸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박종기는 다시 일어나 공을 잡았다.
그는 "나는 2군 생활을 혼자 버틴 게 아니다. 2군 코칭스태프와 동료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리고 20년 가까이 나를 지지해 준 부모님과 누나, 동생을 생각하면 포기할 수 없었다. 특히 학원 한 번 다니지 않고, 자격증을 딴 여동생을 떠올리며 버텼다"라고 했다.
5월의 악몽은 6월, 환희로 바뀌었다.
박종기는 이달 14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 파크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와의 방문 경기에 프로 입단 후 처음으로 선발 등판해 4⅔이닝 3피안타 3실점(패전) 하며 가능성을 확인했다.
같은 달 20일 잠실에서 치른 LG 트윈스전에서는 6이닝 4피안타 무실점의 완벽한 투구로 생애 첫 1군 경기 승리를 챙겼다.
두산 더그아웃 곳곳에서 박종기를 칭찬하는 소리가 들린다.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두 번의 격려에 박종기는 큰 힘을 얻기도 했다.
박종기는 "한화전 등판을 마친 뒤 김태형 감독님께서 '종기야, 잘 던졌어'라고 직접 말씀해주셨다. 그날 나는 패전투수였다. 그런데 카리스마 넘치는 감독님께 따듯한 한마디를 해주셨다. 정말 힘이 됐다"고 했다.
이어 "20일 LG전 상대 라인업을 보는 데 '내가 저 타자들을 상대로 버틸 수 있을까'라고 걱정이 앞섰다. 그때 정재훈 코치님이 '종기야, 네 뒤에 대한민국 최고 야수들이 있어. 형들 믿고 던져'라고 조언하셨다. 순간, 걱정이 사라지더라. 그리고 형들 도움 속에 꿈에서만 그리던 첫 승을 거뒀다"고 덧붙였다.
이제 박종기는 걱정보다 희망을 먼저 떠올리고 이야기한다.
그는 "나는 복이 많은 선수다. 살면서 고마운 분들을 많이 만났다. 살아가면서 갚아나가야 한다"며 "일단 다음 등판 때, 더 나아진 모습으로 격려해주신 1군, 2군 코칭스태프와 응원해주신 팬들께 보답하고 싶다"고 했다.
◇ 투수가 되고 싶었던 '키 작은 소년'
박종기는 청주고 3학년부터 투수에 전념했다.
그는 "사실 야구를 시작한 때부터 투수로 뛰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또래 선수들보다 키가 작았다"며 "청주고 3학년 때 감독님께 '저, 정말 투수하고 싶습니다'라고 간청했다. 감독님께서 투수와 야수를 겸업하게 하셨는데, 나는 투수 훈련만 고집했다. 그 상황을 허락하신 고교 시절 지도자들께 감사하다"고 했다.
투수로는 작은 키 177㎝에, 최고 구속이 시속 140㎞를 조금 넘는 경험 없는 투수를 뽑은 프로구단은 없었다. 결국, 박종기는 2013년 육성 선수로 두산 유니폼을 입었다.
박종기는 "당연했다. 나는 덩치가 작고, 투수 경력이 짧았다. 구속이라도 잘 나오면 모를까, 신인드래프트에 뽑힐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프로에 입단해 '투수 수업'을 다시 받은 박종기는 퓨처스(2군)리그에서 조금씩 이름을 알렸고, 2015년에는 정식 선수로 전환돼 1군에서도 3경기에 등판했다. 그러나 결과는 2⅓이닝 4피안타 3실점 평균자책점 11.57로 나빴다.
다시 고된 생활이 시작됐다. 박종기는 상무, 경찰야구단 입단에 실패해 현역으로 군 복무를 했다.
2019년에는 잠시 1군에 등록됐지만, 마운드에 서지 못하고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
박종기는 "나만 생각하면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를 뒷바라지 해주신 부모님께서 아직도 고생하고 계시다. 동생은 일찍 철이 들어서 학원도 가지 않고 혼자 공부해 자격증을 땄다. 동생이 고교 졸업 후 바로 사회생활을 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절대 포기할 수 없다'고 몇 번이고 다짐했다"고 했다.
◇ "김태형 감독님, 박철우 감독님, 권명철 코치님, 김원형 코치님"
구단 내에서도 박종기에게 힘을 주는 사람은 많았다.
박종기는 "고마운 분들 이름 이야기 시작하면 한 시간도 넘길 텐데"라고 웃으며 "지난해 가을 일본 교육리그 때부터 구속이 늘었고, 올해 2월 호주 스프링캠프에 포함된 뒤 '내가 예전보다는 나아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교육리그에서 권명철 코치님께서 이해하기 쉽게 '투수가 배워야 할 모든 것'을 차분하게 가르쳐주셨다. 내게 '추진력'이 생긴 순간이었다"라며 "호주 스프링캠프에서는 김원형 코치님이 투구판을 밟는 법부터 중심 이동까지 세세하게 알려주셨다. 이때 투구 자세도 스로윙을 가볍게 하는 방법으로 바꿨다. 확실히 공이 좋아졌다"고 떠올렸다.
'새로운 환경'도 박종기를 자극했다. 박종기는 "2013년에 입단해 2020년에 처음으로 1군 스프링캠프를 치렀다. 같은 팀이지만 TV에서 주로 보던 1군 선수들과 훈련하며 무척 떨리고, 즐거웠다"며 "동갑내기 친구 (함) 덕주와 (장) 승현이 살갑게 다가와 줘서 훈련 뒤에도 즐겁게 지냈다. 야구 실력도 향상하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박종기는 타구에 공을 맞은 탓에 2군에서 정규시즌을 시작했다. 그러나 곧 기회가 왔다. 이용찬이 팔꿈치 수술을 받고, 크리스 플렉센이 허벅지 통증 탓에 잠시 이탈하면서 두산에 임시 선발이 필요했다.
박세혁 2군 감독은 김태형 감독에게 박종기를 추천했다. 김태형 감독은 스프링캠프와 국내 훈련 기간에 본 박종기의 공을 떠올리며 박종기에게 기회를 줬다.
박종기는 "6월 14일 한화전 선발 통보를 받았을 때 기쁘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한화전에서 팀이 패해 자책했는데 감독님께서 '잘 던졌다'고 칭찬해주셔서 다시 힘을 얻었다"며 "감독님께서 또 기회를 주셨고, 한화전을 다시 되짚으며 20일 LG전에서는 공 하나하나에 집중하며 던졌다. 야수 선배들이 도움을 주셔서, 믿기지 않는 선발승을 거뒀다"고 말했다.
그는 "정말 축하를 많이 받았다. 특히 나를 가장 열심히 응원하던 동생이 '정말 고생했고, 잘했어'라고 말할 때 울컥했다"며 "나도 자꾸 20일 LG전 영상과 기록을 보게 된다. 아, 그래도 다음 등판 준비는 열심히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태형 감독은 "박종기가 씩씩하게, 자신의 공을 잘 던졌다. 기회를 계속 줄 것이다"라고 공언했다.
박종기는 "나는 아직 너무 부족한 투수다. 내가 시속 140㎞대 직구와 110㎞대 커브를 던진다. 시속 130㎞대 슬라이더와 포크볼을 잘 던져야 효과적으로 투구할 수 있다"며 "지금은 슬라이더와 포크볼을 그냥 던지는 수준이다. 정말 잘 던질 수 있을 때까지 훈련하겠다. 그리고 꼭 점점 좋아지는 모습으로 보답하겠다"고 했다.
당당히 강팀 두산의 선발 로테이션에 진입한 아들 박종기를 부모님은 대견해하면서도 "많이 도와주지 못했다"라고 미안해한다.
7년을 견뎌, 1군 선발 투수가 된 박종기는 이제 차분한 말로 부모님과 가족을 안심시킨다.
"부모님께서 튼튼한 몸을 주셔서, 7년 동안 크게 아프지 않았습니다. 그 덕에 살아남았습니다. 고생하면서도 고생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누나, 동생 덕에 포기할 생각은 하지도 않았습니다. 이제 걱정 끼치지 않는 아들, 동생, 오빠가 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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