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스플뉴스]유망주에게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메이저리그 팬이라면 알고 있을 것이다.올 시즌 마이너리그엔 괴물이 살고 있다. 블라디미르 게레로 주니어(19·토론토 블루제이스). 한국 메이저리그 팬들 사이에선 통칭 '블게주'라고 불리는 이 유망주는 지난해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게선생' 블라디미르 게레로의 아들이다. 또한, 올 시즌 마이너리그 합계 94경기에서 타율 .382 20홈런 78타점 OPS 1.077을 기록 중인 메이저리그 최고의 유망주이기도 하다.올 시즌 메이저리그 팀이 62승 74패 승률 45.6%로 포스트시즌 탈락이 확정적인 가운데 팀 내 최고 유망주 게레로 주니어의 콜업은, 오랫동안 토론토 팬들과 관련 미디어 사이에서 가장 뜨거운 주제였다. 한편, 이 '괴물 유망주'의 등장을 손꼽아 기다리는 것은 토론토 팬을 넘어 모든 메이저리그 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그러나 올 시즌 우리는 게레로 주니어를 메이저리그에서 볼 수 없다. 토론토 단장 로스 앳킨스는 캐나다 스포츠 매체 <스포츠넷>과의 인터뷰에서 "게레로 주니어는 올해 빅리그에 콜업되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 지었다.
올 시즌 게레로 주니어의 콜업에 대한 요구가 빗발칠 때마다 토론토 구단이 그를 콜업하지 않는 근거로 내세웠던 것은 '3루수로서 평균 이하의 수비력'이다. 물론 게레로 주니어가 3루수로서 실책이 잦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올 시즌 토론토의 행보를 보면 게레로 주니어를 콜업하지 않을 만큼 3루 수비에 신경을 쓰는지 궁금해진다.지난 5월 주전 3루수 조시 도날드슨이 부상으로 이탈한 이후 토론토는 주로 올 시즌 전까지 커리어 대부분을 포수로 나섰던 러셀 마틴과 얀게르비스 솔라르테를 3루수로 기용했다. 이들은 수비지표인 UZR/150에서 합계 -11.5점(마틴 -1.5점, 솔라르테 -10.5점)을 기록했다. 이는 150경기를 기준으로 했을 때, 수비로 팀에 11.5점만큼 손해를 끼쳤다는 뜻이다.아무리 게레로 주니어의 수비력이 평균 이하란 평가를 받아도, 이들보다 나쁘다고 상상하긴 어렵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토론토가 게레로 주니어를 콜업하지 않는 이유는 결코 수비력 때문이 아니다. 그렇다면 왜 그는 콜업되지 못하고 있는 걸까?이유는 오직 하나다. 바로 '돈' 때문이다.서비스 타임 제도의 헛점을 악용하는 메이저리그 구단들메이저리그의 연봉 제도는 서비스 타임(Service Time, 25인 로스터 등록 일수)에 근간을 두고 있다. 25인 로스터에 등록되어 있는 기간이 172일이 넘으면 서비스 타임이 1년 지났다고 간주한다. 여기에는 메이저리그 팀에서 뛰던 중 입은 부상으로 부상자 명단(DL)에 등재되거나, 9월 1일 이후 확장 로스터에 올라온 기간도 포함된다.슈퍼2 대상자*를 제외하면 통상적으로 서비스 타임이 3년(516일) 미만일 때까지는 최저 연봉(54.5만 달러)을 받는다. 하지만 서비스 타임 3년이 지난 후 다음 오프시즌부터는 연봉조정 신청 자격을 얻게 된다. 이때부터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연봉은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서비스 타임 6년 차가 되면 대망의 FA(자유계약) 자격을 얻게 된다.*슈퍼2 규정: 서비스 타임이 3년 미만인 선수 가운데 25인 로스터 등록 일수가 상위 22% 안에 드는 선수에게 1년 먼저 연봉 조정 자격을 주는 규정을 말한다. 단, 슈퍼2 규정에 해당하는 선수라고 해서 FA 기간이 1년 더 빨라지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슈퍼2 규정에 해당하는 선수는 FA 전까지 일반 선수보다 한번 더 많은 4번의 연봉 조정을 거치게 된다.게레로 주니어의 사례에서 중요한 쟁점은 바로 '9월 1일 이후 확장 로스터에 올라온 기간도 서비스 타임에 포함된다'는 항목이다. 즉, 9월 확장 로스터에 올리게 되면 서비스 타임으로 계산되고, 그렇게 되면 FA 자격을 얻기 전까지 게레로 주니어를 보유할 수 있는 기간이 짧아지기 때문에 토론토가 그를 콜업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꼼수를 쓰는 구단은 예전부터 있어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5년 시카고 컵스의 크리스 브라이언트다. 당시 컵스는 "브라이언트는 수비를 좀 더 다듬을 필요가 있다"며 그를 개막전 25인 로스터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그러나 그로부터 약 2주 지난 4월 18일에 그를 빅리그로 불러들였다. 고작 2주 만에 브라이언트의 수비력에 몰라볼 만한 변화가 생긴 걸까?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당시 브라이언트의 수비는 이미 빅리그 평균을 훌쩍 상회했다. 컵스가 브라이언트를 약 2주 후에 콜업한 것은 그해 브라이언트의 25인 로스터 등록 일수를 172일 미만으로 조절함으로써 FA를 1년 늦추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알만한 사람은 모두 알고 있었다. 하지만 구단들은 절대 이 사실을 입 밖으로 내지 않는다.그 대신 말도 안되는 구실을 붙여서 빅리그 콜업을 막는다. '수비력 부족'은 그때마다 자주 쓰이는 전가의 보도다.전도유망한 선수들의 앞길을 막는 행위, 이대로는 안 된다사실 개막 후 약 2주 만에 빅리그 무대를 밟은 브라이언트는 양호한 케이스다. 메이저리그에는 매년 더 이상 마이너리그에서 배울 게 없음에도 불구하고 한 시즌 내내 빅리그에 콜업되지 못하는 유망주들이 넘쳐난다. 올해 더블A와 트리플A에서 타율 .337 22홈런 75타점 OPS .961을 기록 중인 일로이 히메네스(21·시카고 화이트삭스)가 대표적이다.브라이언트와 로날드 아쿠냐(애틀랜타의 신인. 올 시즌 개막 후 약 한 달 뒤 콜업돼 타율 .296 23홈런 50타점 OPS .938을 기록 중이다), 게레로 주니어와 히메네스의 차이점은 하나다. 바로 콜업을 앞둔 시점에서의 팀 성적이다. 2015년 컵스와 2018년 애틀랜타는 포스트시즌에 진출할만한 전력을 갖추고 있었으나, 올해 토론토와 화이트삭스는 그렇지 못하다.따라서 성적이 급한 컵스와 애틀랜타는 브라이언트와 아쿠냐를 올려야 했고, 포스트시즌 진출이 물 건너간 토론토와 화이트삭스는 게레로 주니어와 히메네스를 당장 올리는 것보단 두 선수가 FA가 되는 시점을 1년 늦추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문제는, 구단의 이런 선택으로 인해 두 선수를 비롯한 여러 유망주가 금전적인 피해를 입고 있다는 것이다.그와 동시에 이는 구단 팬을 포함해 메이저리그 팬들이 특급 유망주의 플레이를 볼 수 있는 시기를 고의적으로 늦추는 행위이기도 하다. 그러나 일부 현지 미디어 및 팬들은 소속 구단이 고의로 특급 유망주의 콜업 시기를 늦추는 행위를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있다. 그것이 취재 대상인 팀 또는, 응원 팀의 재정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다. MLB 구단의 부는 상상을 초월한다. 경제 전문지 <포브스>에 따르면 지난해 메이저리그 사무국과 30개 구단은 합계 100억 달러(11조 1350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30개 구단 가운데 지난해 적자를 본 구단은 6개 구단밖에 되지 않으며, 최대 적자를 본 마이애미마저도 구단 가치 상승분을 고려하면 거의 1000만 달러에 가까운 이득을 봤다.반면, 매출 대비 선수 연봉이 차지하는 비율은 2000년대 들어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는 그만큼의 돈이 구단주의 품으로 들어갔다는 것을 뜻한다. 메이저리그 구단은 본질적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다. 한 선수에게 아낀 돈을 다른 데 투자한다는 것은 허상에 가깝다. 구단이 재정적인 이유로 전도유망한 선수의 앞길을 막는 행위를 옹호할 필요가 없는 이유다.구단들이 버는 돈은 결국 팬들의 지갑에서 나온다. 팬들이 돈을 내고 경기를 보는 것은 본질적으로 이기든 지든 최선을 다해 경쟁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그 사실을 잊고, 구단의 입장으로 선수를 바라보곤 한다. 이런 미디어와 팬들의 반응이 준비된 유망주의 데뷔를 더욱 늦추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서 한 번쯤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관련 기사: [이현우의 MLB+] 세계 최강의 노조 MLBPA의 몰락, 그리고 KBO리그한편, 유망주 콜업 시기가 늦춰지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결국 현행 서비스 타임 제도에 대한 대대적인 보강이 있어야 한다. 선수노조는 다가오는 2021년 CBA 협정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게레로 주니어와 같은 희생자들이 나타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이는 선수들에게도, 대다수의 팬들에게도 좋은 일이 아니다.이현우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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