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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 인 NBA 스타] 클러치의 사나이 폴 피어스, 녹색심장을 가진 보스턴의 레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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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5 (수) 06:22

                           

[줌 인 NBA 스타] 클러치의 사나이 폴 피어스, 녹색심장을 가진 보스턴의 레전드!



[점프볼=양준민 기자] 지난 2018년 2월 12일(이하 한국시간), 리그 최고의 명문 팀으로 꼽히는 보스턴 셀틱스는 또 한 명의 전설을 맞이했다. 

이날은 보스턴의 살아있는 전설이자 영원한 보스턴의 캡틴, 폴 피어스의 영구결번식이 있던 날로, 피어스는 본인의 20대 청춘을 모두 바친 TD 가든에서 자신을 응원해준 보스턴 팬들과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 2013년 여름, 보스턴을 떠나 브루클린 네츠로 이적하면서 “내 선수생활의 마지막은 보스턴의 유니폼을 입고 막을 내릴 것이다”는 말을 전했던 피어스는 보스턴 구단 역사상 23번째 영구결번에 이름을 올리며 보스턴 팬들과 영원히 이별을 고했다. 2017년 여름을 끝으로 LA 클리퍼스와의 계약을 해지했던 피어스는 은퇴식을 위해 보스턴과 1일 계약을 맺었고, 결국, 2013년 이후 4년 만에 보스턴 팬들의 품으로 돌아왔다.

1998년 NBA 신인드래프트를 통해 TD 가든에 입성한 피어스는 입단부터 2013년까지, 보스턴의 흥망성쇠를 함께 해왔다. 피어스의 입단 당시, 리빌딩을 진행하고 있었던 보스턴은 암흑기를 보내고 있었다. 이후 피어스, 앤트완 워커의 다이나믹 듀오를 중심으로 전력을 재정비한 보스턴은 플레이오프의 단골손님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더 이상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걸음만 계속하는 등 다이나믹 듀오는 명확한 한계점을 보였다. 2003년 워커가 보스턴을 떠났던 것과 달리, TD 가든의 수호자로, 보스턴을 끝까지 지켰던 피어스는 2007년 여름, 케빈 가넷과 레이 알렌을 동료로 맞아들이면서 빅3를 결성, 2007-2008시즌, 꿈에 그리던 생애 첫 파이널 우승과 피어스 본인은 파이널 MVP를 수상하게 된다.

이후 빅3와 함께 라존 론도(LAL)의 성장세가 이어진 보스턴은 리그의 강호로 군림하며 2009-2010시즌 다시 한 번 파이널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허나, ‘권불십년(權不十年)’이란 사자성어가 말해주듯, 보스턴은 빅3가 점점 더 나이를 먹어가며 경쟁력을 잃어갔고, 급기야 피어스는 대니 에인지가 설계한 보스턴 리빌딩의 희생양이 되면서 보스턴 팬들과 아쉬운 이별을 고하게 된다. 에인지 단장은 피어스를 브루클린으로 보내면서 신인지명권을 대거 얻어왔고, 이는 모두가 알다시피 후일 보스턴 재건의 주춧돌이 된다.(*피어스는 보스턴에서의 15시즌 정규리그 1,102경기 평균 21.8득점(FG 44.7%) 6리바운드 3.9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반면, 보스턴을 떠난 피어스는 브루클린(2013-2014)을 거쳐 워싱턴 위저즈(2014-2015)와 LA 클리퍼스(2015-2017)에서 뛰면서 선수생활을 이어갔다. 어느덧 30대 중반의 노장이 됐음에도 강력한 리더십과 클러치에 강하다는 것을 이유로 여전히 피어스를 원하는 팀들이 많았다. 하지만 피어스는 클리퍼스에서 뛰었던 2016-2017시즌, 무릎부상 등 여러 가지 악재들이 겹치며 정규리그 25경기 출장에 그쳤다.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선수단에 복귀한 피어스는 1라운드 7경기 모두를 출전, 평균 14.4분을 뛰면서 3득점(FG 44.4%) 2리바운드 0.9어시스트를 기록, 본인의 마지막 플레이오프 무대를 후회 없이 즐기려 노력했다.  

결국, 플레이오프 1라운드 탈락으로 2016-2017시즌의 공식일정을 모두 마무리한 피어스는 이미 2016-2017시즌 정규리그 개막을 앞두고 ‘올 시즌이 본인 커리어의 마지막 시즌이 될 것“임을 선언했던 것처럼 피어스는 2017년 여름, “공식적으로 선수생활을 마감한다” 보도를 언론에 내면서 본인의 19년 NBA 커리어를 마무리했다.(*피어스는 19년의 커리어 동안 정규리그 1,343경기에서 커리어 평균 19.7득점(FG 44.5%) 5.6리바운드 3.5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줌 인 NBA 스타] 클러치의 사나이 폴 피어스, 녹색심장을 가진 보스턴의 레전드!

▲켄자스 대학 최고의 선수 폴 피어스, 명가 보스턴 재건의 중책을 맡다!

캘리포니아 출신의 피어스는 고등학교 입학 당시부터 전미 최고의 고교스타 중 한 명으로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다. 1학년과 2학년 모두 주전으로 뛰며 소속팀을 주 챔피언으로 이끌었던 피어스는 대학진학을 앞두고 있던 1995년, 빈스 카터, 케빈 가넷, 스테판 마베리, 앤트완 제이미슨 등과 함께 올 맥도날드 아메리칸 게임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일찍이 NBA 리그를 이끌어갈 차세대 스타로 인정받았다. 피어스는 카터와 함께 슬램덩크 콘테스트에 참가하기도 했다.(*2012년 피어스는 역대 맥도날드 올 아메리칸 게임을 빛낸 위대한 35인 증 한 명으로 선정됐다)

이후 1995년 고등학교 학업을 마친 피어스는 당시, 대학농구 최고의 명장인 로이 윌리엄스가 지휘봉을 잡고 있었던 켄자스 대학에 진학한다. 대학에서 3년을 보낸 피어스는 신입생이던 첫 시즌, 천시 빌럽스와 함께 Big 8 신인왕에 선정되는 등 대학무대에서도 통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대학교 2학년이던 1996년에는 미국대표팀 상비군에 이름을 올리는 등 대학최고의 스타로 발돋움, 본인의 주가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급기야 대학에서 보낸 마지막 시즌인 1997-1998시즌, 켄자스 대학을 Big 12 토너먼트 우승으로 이끌며 MVP까지 차지한 피어스는 공식적으로 1998년 NBA 진출을 선언하게 된다.(*피어스는 켄자스 대학에서 통산 1,786득점, 676리바운드를 기록했다)

대학무대에서 3년이란 시간을 성공적으로 보냈던 피어스는 상위지명에 대한 기대감을 안고 1998 NBA 신인드래프트에 참가했다. 그러나 본인의 생각과는 달리, 피어스는 전체 10순위라는 비교적 낮은 순위로 보스턴에 지명됐다. 이에 피어스는 당시 인터뷰에서 “오늘 나를 지나친 9개 팀들 모두 나를 뽑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만들어주겠다”는 말로 당돌함을 보여줬다는 후문. 피어스와 함께 켄자스 대학을 이끌었던 동료인 레프 라프렌츠가 전체 3순위로 덴버 너게츠에 지명을 받은 것도 피어스의 자존심을 더욱 상하게 만들었다(*1998 NBA 신인드래프트 전체 1순위는 역대 최악의 1순위로 거론되는 마이클 올로워캔디로, 당시, LA 클리퍼스의 지명을 받았다) 

무엇보다 캘리포니아 출신의 피어스는 어릴 때부터 LA 레이커스 팬이었고, 고등학교 시절과 대학시절에도 종종 “레이커스에서 뛰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신은 이런 피어스의 간절한 바람을 외면, 아이러니하게도 피어스는 현재 레이커스의 영원한 라이벌, 보스턴의 전설로 남게 된다. 당시, 레이커스는 1라운드 전체 26순위 지명권을 갖고 있어 피어스를 지명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었다. 뒤에서 좀 더 이야기하겠지만 피어스의 생애 첫 파이널 상대 역시 레이커스였고, 2번째 파이널도 레이커스와 우승을 두고 자웅을 겨루는 등 피어스와 레이커스는 묘한 인연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보스턴과 처음으로 인연을 맺게 된 피어스는 데뷔시즌인 1998-1999시즌, 정규리그 48경기 중 무려 47경기를 주전으로 뛰면서 평균 34분 출장에 16.5득점(FG 43.9%) 6.4리바운드 2.4어시스트를 기록, 당해시즌 신인왕의 영광은 카터에게로 돌아갔지만, 피어스는 신인왕 최종투표에서 전체 3위를 차지하는 등 보스턴의 선택이 결코 틀린 것이 아니었음을 증명했다. 1998-1999시즌 NBA 올 루키 퍼스트 팀의 한 자리도 단연 피어스의 차지였다. 실제 피어스는 개막 직후 열린 11경기 중 무려 10경기에서 +19득점을 기록하는 등 데뷔시즌부터 내·외곽을 가리지 않는 공격력으로 많은 이들의 호평을 받았다.(*카터는 1998 NBA 신인드래프트 전체 5순위로 토론토 랩터스에 지명됐다)

2년차 시즌인 1999-2000시즌, 평균 19.5득점(FG 44.2%) 5.4리바운드 3어시스트를 올리며 성장세를 보여줬던 피어스는 2000-2001시즌 정규리그 82경기를 모두를 뛰며 평균 25.3득점(FG 45.4%) 6.4리바운드 3.1어시스트로 데뷔 후 처음으로 평균 20득점을 돌파, 리그를 대표하는 스윙맨으로 자리매김했다. 피어스의 성장과 함께 리그 하위권으로 쳐져있던 보스턴도 점점 순위를 끌어올리며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피어스는 1996년 보스턴에 입단한 앤트완 워커와 함께 다이나믹 듀오를 결성, 두 사람은 2003년까지 함께 하며 보스턴을 동부 컨퍼런스 파이널 무대에 올려놓기도 했다.(*워커는 보스턴에서의 8시즌 동안 정규리그 통산 552경기 평균 20.6득점(FG 41.3%) 8.4리바운드 4.1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줌 인 NBA 스타] 클러치의 사나이 폴 피어스, 녹색심장을 가진 보스턴의 레전드!

무엇보다 2000-2001시즌, 피어스가 남긴 성과가 놀라운 것은 당시 오프시즌 괴한에 의해 칼에 찔리는 대형부상을 당했음에도 놀라운 회복력을 보여줬기 때문이었다. 개막을 한 달 앞둔 시점인 2000년 9월, 피어스는 클럽에서 괴한이 휘두른 칼에 무려 11번이나 칼에 찔리는 큰 사고를 당했다. 피어스의 사고소식에 보스턴 팬들은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피어스는 기적적으로 부상을 회복, 앞서 언급했듯 정규리그 82경기를 모두 뛰면서 초인적인 활약을 펼쳤다. 피격 당시 급소를 모두 피한 부상이었지만 워낙 심각한 부상이었던 터라 그 누구도 피어스가 2000-2001시즌 개막전부터 끝까지, 전 경기를 소화할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심지어 앞으로 피어스의 선수생활이 크게 위협을 받을 것이라 전망하는 이들도 대다수였다.

그러나 피어스는 2001년 3월 한 달에만 평균 30.3득점 7.2리바운드 3.4어시스트를 기록하는 등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경기력이 좋아지는 모습을 보였고, 그 결과, 당해시즌 정규리그에서만 통산 2,071득점을 기록, 평균 득점 8위이자 최다 득점 4위로 시즌을 마치는 기염을 토했다. 보스턴 소속 선수가 단일시즌 정규리그에서 +2,000득점을 기록한 것도 래리 버드의 은퇴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워커도 2000-2001시즌 정규리그 81경기에서 평균 23.4득점(FG 41.3%)으로 본인의 커리어 하이를 기록하는 등 피어스에게 힘을 보탰다. 하지만 다른 동료들의 활약이 따라주지 못하면서 보스턴은 동부 컨퍼런스 9위로 시즌을 마무리했다.(*2000-2001시즌 정규리그 득점왕은 평균 31.4득점을 기록한 앨런 아이버슨(PHI)의 차지였다)     

또, 2000-2001시즌, 보스턴 팬들과 현지 언론은 피어스가 수차례 클러치타임에서 팀을 구하는 것을 보며 그에게 ‘The Clutch Player’라는 별칭을 붙여주기도 했다. 피어스는 화려하진 않지만 안정적인 돌파와 미드레인지 점퍼 등 견실한 플레이로 커리어 내내 클러치타임에 강한 모습을 보여줬다. 인사이드 돌파 후에 스핀무브로 득점을 마무리하는 다양한 기술들과 커리어 평균 36.8%(평균 1.6개 성공)의 3점슛 성공률을 기록하는 등 득점분포도가 내·외곽으로 골고루 퍼져있는 피어스는 NBA 역사상 최고의 클러치강자를 뽑을 때마다 늘 빠지지 않고 등장, 그리고 이런 피어스의 클러치능력은 2001-2002시즌 플레이오프에서 빛을 발하며 다시 한 번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2000-2001시즌을 거치며 리그 정상급 레벨로 성장한 피어스는 2001-2002시즌 정규리그 82경기에서 평균 26.1득점(FG 44.2%) 6.9리바운드 3.2어시스트를 기록, 2시즌 연속으로 평균 +25득점을 기록하는 데 성공했다. 피어스는 워커와 함께 보스턴을 동부 컨퍼런스 3번 시드(49-33)로 이끌었다. 이는 피어스의 생애 첫 플레이오프 진출과 함께 보스턴에게 있어선 1995-1996시즌 이후 처음으로 플레이오프 무대에 복귀하는 것이었다. 1라운드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를 3-2로 힘겹게 물리치고 올라온 보스턴은 세미파이널에서 만난 동부 컨퍼런스 2번 시드인 디트로이트 피스톤스를 예상과 달리 4-1로 가볍게 꺾고, 7년 만에 동부 컨퍼런스 파이널 무대에도 올랐다.

보스턴의 동부 컨퍼런스 파이널 상대는 바로 당시, 제이슨 키드-리차드 제피슨-케넌 마틴의 빅3가 이끌던 뉴저지 네츠. 보스턴은 첫 경기를 104-97로 아쉽게 내주며 기선을 제압당했다. 그러나 이어진 2경기를 모두 따낸 보스턴은 2-1로 시리즈를 리드, 피어스는 생애 첫 파이널 진출이라는 꿈에 부풀어있었다. 특히, 피어스는 2승째를 챙겼던 동부 컨퍼런스 파이널 3차전, 4쿼터에만 무려 19득점(FG 85.7%)을 몰아치며 3쿼터 종료 후 53-74, 21점차로 뒤지며 패색이 짙었던 경기를 4점차의 역전극으로 만들었다. 피어스는 4쿼터 시작과 함께 적극적으로 뉴저지의 림을 노렸고, 보스턴의 선수들도 피어스의 활약에 고무된 것인지 끈끈한 수비로 뉴저지의 4쿼터 득점을 16득점(FG 18.2%)으로 묶는 등 모두가 합심해 역전극을 만들어냈다.

3쿼터까지 제퍼슨의 강력한 수비에 막혀 고전을 면치 못했던 피어스는 이날 상대편인 제이슨 키드와 말다툼을 벌이는 등 경기가 잘 풀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3쿼터 도중, 워커의 꾸지람을 들은 피어스는 각성했고, 결국, 이는 보스턴의 기사회생으로 이어졌다. 당시, 경기장의 분위기에 대해 美 현지에선 ‘기적 같은 뒤집기(Miracle comeback)'라는 말로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실제로 동부 컨퍼런스 파이널 3차전이 열렸던 TD 가든의 분위기는 마치 NBA 파이널 7차전을 승리한 것처럼 열광의 도가니였다는 후문. 당시, 보스턴을 이끌던 짐 오브라이언 감독도 “내 생애 가장 위대했던 역전극이었다”는 말로 승리에 대한 소감을 전했다.(*오브라이언 감독은 2001년부터 2004년까지 피어스를 지도했다)

마찬가지 피어스도 “4쿼터에는 내 목소리조차 안 들렸다. 우리가 분위기를 잡았다고 생각해서인지 관중들 모두 열광적이었다. 상대 입장에서는 그 분위기를 뒤집고 팀을 끌어줄 엄두를 못 냈을 것이다”는 말을 전했다. 그러나 피어스와 보스턴의 선수들이 만든 기적은 3차전이 끝이었다. 이후 보스턴은 마치 3차전에서 모든 것을 쏟아내기라도 한 듯 4차전부터 6차전까지를 내리 내주며 4-2로 패배, 이렇게 피어스는 생애 첫 파이널 진출의 기회를 다음으로 미뤄야했다.(*피어스는 2001-2002시즌 플레이오프 16경기에서 평균 42분 출장 24.6득점(FG 40.3%) 8.6리바운드 4.1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줌 인 NBA 스타] 클러치의 사나이 폴 피어스, 녹색심장을 가진 보스턴의 레전드!

▲끝없는 암흑기와 빅3의 결성, 생애 첫 NBA 우승을 품에 안다!

2002-2003시즌에도 피어스는 정규리그 79경기에서 평균 25.9득점(FG 41.6%) 7.3리바운드 4.4어시스트를 기록, 2년 연속으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한 보스턴은 피어스와 함께 2004-2005시즌까지 4시즌 연속 플레이오프에 진출한다. 2002년 처음으로 올스타전에 초대받았던 피어스도 2006년까지 5년 연속으로 올스타에도 선정, 리그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발돋움했다. 2002년에는 미국대표팀 명단에도 처음으로 이름을 올리며 2002 농구월드컵에 참가하는 등 피어스의 주가는 계속해 상한가를 치고 있었다.(*피어스는 2000-2001시즌을 시작으로 2006-2007시즌까지 7시즌 연속으로 평균 +20득점을 기록했다)  

그러나 피어스의 발전과는 별개로 보스턴은 2001-2002시즌 이후 전혀 발전한 것이 없었다. 플레이오프에선 매번 1라운드의 벽을 넘지 못했고, 2003년 워커가 팀을 떠난 이후, 대대적인 리빌딩도, 리툴링도 아닌 애매한 자세로 팀을 운영하는 등 보스턴은 점점 더 동부 컨퍼런스의 변방으로 밀려나고 있었다. 순위가 계속해 하락하던 보스턴은 2005-2006시즌 동부 컨퍼런스 11번 시드로 밀려나며 플레이오프 진출에도 실패했다. 2006-2007시즌에는 피어스까지 부상으로 빠지는 일이 잦아지면서 결국, 보스턴은 동부 컨퍼런스 최하위로 추락했다. 데뷔 후 보스턴을 향한 굳건한 충성심만을 보여주던 피어스도 팀의 석연찮은 행보에 연일 불만을 토로했다.

이에 계속된 추락을 지켜볼 수만 없었던 보스턴은 2007-2008시즌을 앞두고 대대적인 팀 개편을 단행, 이때 합류한 선수들이 모두가 알고 있듯이 케빈 가넷과 레이 알렌이었다. 전력보강에 만족감을 드러낸 피어스는 체중감량을 시도하는 등 2007-2008시즌을 앞두고 많은 준비를 했다. 시즌에 들어서는 공격에 치중하던 이전 시즌들과 달리, 수비에 더욱 치중, 피어스-알렌-가넷의 빅3가 이끈 보스턴은 끈끈한 조직력의 농구를 앞세워 동부 컨퍼런스를 제패하고 파이널에 올랐다. 보스턴은 피어스가 2007-2008시즌 정규리그에서 평균 19.6득점(FG 46.4%) 5.1리바운드 4.5어시스트를 기록하는 등 팀원들 전체가 조금씩 양보하는 모습을 보이며 보스턴의 통산 17번째 파이널 우승을 만들어냈다.

생애 처음으로 파이널에 오른 피어스의 상대는 당시, 코비 브라이언트와 파우 가솔이 이끌던 LA 레이커스. 당초, 2007-2008시즌 파이널의 판도는 다소 보스턴에게 불리할 것으로 전망됐다. 그도 그럴 것이 정규리그를 66승 16패, 동부 컨퍼런스 1번 시드로 마친 보스턴은 플레이오프 1라운드부터 애틀랜타 호크스를 만나 7차전까지 가는 접전을 치르는 등 1라운드와 르브론 제임스가 이끈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를 만난 2라운드 모두 7차전에 가서야 다음 라운드 진출을 확정지었다. 디트로이트를 만난 동부 컨퍼런스 파이널도 6차전에 가서야 승부가 나는 등 파이널에 오르기까지 15경기를 치른 레이커스에 반해 20경기를 치른 보스턴은 체력적으로 열세에 놓여있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보스턴은 홈에서 열린 첫 2경기를 모두 잡아내며 기선제압에 성공했다. 가넷은 인사이드에서 가솔과 라마 오돔을 완벽히 제압, 그 결과, 보스턴은 제공권을 완벽히 장악했다. 피어스도 파이널 6경기에서 평균 21.8득점(FG 43.2%) 4.5리바운드 6.3어시스트를 기록, 득점을 주도하는 동시에 수비에선 코비를 1대1로 막으며 팀의 우승에 기여했다.

 

피어스는 1차전 도중 무릎에 부상을 입으며 잠시 라커룸으로 향하기도 했지만 이내 경기장으로 돌아와 끝까지 경기를 뛰는 투혼을 발휘하는 등 간신히 잡은 우승의 기회를 놓치기 않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결국, 레이커스를 꺾고 우승을 차지한 피어스는 팀 동료인 가넷마저 따돌리고 생애 첫 파이널 MVP까지 수상, 시리즈 종료 후 피어스는 “세계 최고의 선수는 코비가 아닌 바로 나다”는 말로 자신감과 함께 우승에 대한 기쁨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후 보스턴은 앞서 언급했듯 피어스-알렌-가넷의 빅3와 함께 라존 론도의 성장으로 빅3를 넘어 빅4를 결성, 동부 컨퍼런스의 강호로 군림한다. 2007-2008시즌 빅3와 함께 하며 급격한 성장세를 보여준 론도는 빅3를 밀어내고 점점 더 보스턴의 중심으로 발돋움해갔다. 다만, 빅3의 나이가 나이다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부상 등이 보스턴의 발목을 잡으며 빅3의 시대는 점점 더 저물어져만 갔다. 계속해 정규리그 상위권을 유지, 그로인해 신인드래프트에서 팀의 미래를 이끌어 갈 대형신인의 수급이 어려웠다는 점도 보스턴 빅3의 노쇠화가 가져온 또 다른 암(暗)이었다. 글렌 데이비스, 켄드릭 퍼킨스 등이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었지만 팀의 미래를 맡기기엔 여러 가지로 부족한 점들이 많았다.

실제 보스턴은 2008-2009시즌 가넷의 부상아웃으로 올랜도 매직에 패해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서 탈락, 아쉬움을 남겼다. 피어스가 정규리그 81경기에서 평균 20.5득점(FG 45.7%)을 기록, 모처럼만에 평균 +20득점을 돌파하며 공격을 주도했다. 보스턴은 피어스의 활약과 론도의 성장세에 힘입어 당해시즌 동부 컨퍼런스 2번 시드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다. 하지만 플레이오프에서 수비와 인사이드의 핵심인 가넷의 부재가 가져온 악영향은 상상이상이었다. 더욱이 2라운드 상대였던 올랜도에는 당시, 리그 최고의 센터로 군림하고 있던 드와이트 하워드(WAS)가 있었기에 퍼킨스와 데이비스만으론 하워드를 막아내기란 역부족이었다.(*가넷은 2008-2009시즌 정규리그 57경기 출장에 그쳤다)

2009-2010시즌을 앞두곤 백전노장인 라시드 왈라스의 영입을 제외하곤 별다른 전력보강이 없었기에 보스턴의 시즌 전망을 어둡게 보는 이들이 대다수였다. 보스턴은 정규리그 클리블랜드에 밀려 동부 컨퍼런스 4번 시드를 차지, 그러나 플레이오프에선 끈끈한 조직력의 농구를 앞세워 마이애미 히트,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올랜도 매직을 차례대로 물리치고, 다시 한 번 파이널 진출에 성공하는 기염을 토했다. 보스턴의 파이널 상대는 2007-2008시즌 파이널에서 맞붙었던 LA 레이커스. 당시, 샤킬 오닐의 이적 이후 단 한 번의 우승도 차지하지 못했던 코비는 오닐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기 위해 파이널 우승을 갈구했다. 더욱이 2008 파이널에서 보스턴에게 일격을 당한 아픈 기억이 있어 코비는 그 어느 때보다 투쟁심으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실제 보스턴은 1차전, 38분 동안 30득점(FG 45.5%) 7리바운드 6어시스트를 몰아친 코비의 공세에 밀려 102-89로 완패했다. 레이커스는 코비와 함께 가솔이 23득점(FG 57.1%) 14리바운드로 활약, 인사이드를 완벽히 장악했다. 그러나 관록의 보스턴은 결코, 만만한 팀이 아니었다. 알렌이 32득점(FG 55%)으로 레이커스의 림을 폭격하며 2차전을 가져온 보스턴과 레이커스는 이후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벌였고, 결국, 2009-2010시즌 NBA 파이널 우승의 향방은 마지막인 7차전에 가서야 결판이 났다. 

운명의 7차전, 83-79라는 스코어가 말해주듯 양 팀은 신중하게 경기를 이어갔다. 결국, 승부를 가른 것은 깜짝 스타의 출현. 보스턴은 주축 선수들이 제몫을 다했지만, 다른 선수들이 이들을 뒷받침하지 못했고, 반대로 레이커스는 코비와 가솔, 앤드류 바이넘 등 주축 선수들 외에 메타 월드 피스와 데릭 피셔가 깜짝 활약을 펼치며 승리를 레이커스에게로 가져왔다. 두 선수는 이날 30득점을 합작, 42득점을 만들어낸 가솔과 코비의 어깨를 가볍게 해줬다. 반대로 보스턴은 알렌과 피어스의 부진이 다소 아쉬웠고, 인사이드에서 퍼컨스의 부상공백이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았던 경기였다. 7차전 피어스는 18득점 10리바운드로 더블-더블을 작성했지만, 야투성공률이 33.3%에 그치며 통한의 눈물을 삼켜야했다.

이후에도 보스턴은 꾸준히 플레이오프 진출에는 성공했다. 그러나 더 이상의 진전은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빅3의 노쇠화와 함께 2010년 여름, 그간 보스턴에 가로막혀 번번이 우승도전에 실패했던 제임스가 마이애미 히트로 전격 이적을 결정, 본인의 드래프트 동기인 드웨인 웨이드, 크리스 보쉬와 함께 또 다른 빅3를 결성하며 보스턴의 아성을 위협했다. 반대로 보스턴은 그나마 론도가 올스타급 가드로 성장한 것을 말고는 전력상승에 별다른 플러스요인이 없었다. 그러다보니 보스턴은 어느새 빅3의 팀이 아닌 점점 더 론도의 팀으로 이미지가 변하고 있었다.

여기에 더해 2012년 여름에는 론도와 불화설에 휩싸인 알렌까지 보스턴을 떠나 마이애미로 이적, 보스턴의 전력은 날이 갈수록 약해지고 있었다. 보스턴의 빅3는 2007-2008시즌 결성과 함께 팀에 17번째 파이널 우승을 안겨줬다. 그러나 반대로 팀의 리빌딩 속도를 늦추게 만들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팀의 근심으로 변하고 있었다. 피어스의 입지 역시 팀이 추락을 거듭하는 상황에서 마냥 굳건할 수가 없었고, 급기야 트레이드설과 바이아웃설까지 대두되는 등 보스턴의 분위기는 여러모로 싱숭생숭해져만 갔다.     

[줌 인 NBA 스타] 클러치의 사나이 폴 피어스, 녹색심장을 가진 보스턴의 레전드!

▲클러치의 사나이 폴 피어스, 영원한 보스턴의 별로 떠오르다!

결국, 선택의 순간에 직면하게 된 보스턴은 2013년 여름, 리빌딩을 위해 피어스와의 전격이별을 결정한다. 보스턴은 피어스와 함께 가넷, 제이슨 테리를 브루클린으로 보내고, 다수의 신인드래프트 지명권을 얻어와 리빌딩을 초석을 다졌다. 팀의 미래를 위한 결정이었다고는 하나, 15년이란 시간을 팀을 위해 헌신한 프랜차이즈 스타를 헌신짝처럼 버린 보스턴의 결정에 대해 보스턴 팬들은 쉽게 납득하지 못하고 분노했다. 피어스도 보스턴의 냉혹한 결정에 비판을 가할 법도 했지만 오히려 본인이 직접 나서 보스턴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을 드러내는 등 팬들의 불만을 잠재우기위해 노력, 끝까지 보스턴의 캡틴다운 면모를 보여줬다.

2013-2014시즌 브루클린은 피어스를 비롯해 데론 윌리엄스, 조 존슨을 앞세워 정규리그 44승 38패 동부 컨퍼런스 6번 시드를 기록,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다. 당초, 브루클린은 시즌 개막을 앞두고 마이애미를 위협할 강력한 경쟁자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막상 시즌에 들어가선 브룩 로페즈(MIL)의 시즌아웃과 가넷의 잦은 부상 등 인사이드에 공백이 생겼다. 이에 피어스가 파워포워드를 맡아 경기에 출전하는 날이 많았다. 우여곡절 끝에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피어스는 토론토와의 플레이오프 1라운드 4차전, 경기종료까지 2초를 남기고 승리를 결정짓는 결승블록을 성공, 팀의 2라운드 진출을 이끄는 등 피어스의 브루클린 생활은 비교적 만족스럽게 끝이 났다.(*브루클린은 2라운드에서 마이애미를 만나 시리즈 전적 4-1로 탈락했다)

워싱턴으로 둥지를 옮겼던 2014-2015시즌, 피어스는 다시 한 번 클러치타임의 강자임을 입증하며 아직은 본인이 죽지 않았음을 보여줬다. 피어스는 2014-2015시즌 정규리그 73경기에서 평균 11.9득점(FG 44.7%) 4리바운드 2어시스트를 기록, 존 월과 브래들리 빌을 보좌하는 3옵션의 역할을 맡았다. 피어스는 비교적 젊은 선수들이 많이 포진해있던 워싱턴에서 라커룸 리더를 자처하는 등 보이지 않는 곳에서 워싱턴의 숨은 일꾼으로 활약하며 팀의 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끌었다.

2년 연속 토론토를 만난 1라운드, 피어스는 4경기 평균 15.5득점(FG 57.6%) 3.3리바운드 1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의 시리즈 4-0, 스윕에 앞장섰다. 워싱턴은 월-빌-피어스로 이어지는 삼각편대의 공격력과 함께 마신 고탓이 인사이드를 완벽히 장악하며 자신들보다 상위시드였던 토론토를 잡는 이변을 연출했다. 그리고 애틀랜타 호크스와의 동부 컨퍼런스 세미파이널. 당시, 동부 컨퍼런스 1번 시드를 차지한 애틀랜타와의 첫 2경기를 1승 1패로 마무리한 워싱턴은 홈으로 돌아온 3차전, 경기종료와 함께 터진 피어스의 버저비터로 승리를 쟁취하며 시리즈의 리드를 잡게 된다.(*2014-2015시즌 정규리그 토론토는 동부 컨퍼런스 4번 시드, 워싱턴은 5번 시드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이날 13득점(FG 41.7%), 3점슛 성공률 42.9%(3개 성공)를 기록하는 등 전체적으로 슛감이 좋았던 피어스는 데니스 슈뢰더(OKC)의 밀착수비를 뚫어내고 극적인 역전득점을 성공, 팀에 승리를 안겼다. 뒤늦게 켄트 베이즈모어(ATL)가 피어스의 슛을 저지하기 위해 슈뢰더 쪽으로 달려와 블록을 시도했지만, 이미 공은 피어스의 손을 떠나 림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을 때였다. 그러나 워싱턴은 애틀랜타를 상대로 더 이상은 힘을 쓰지 못했고, 결국 이후 3경기를 모두 내주며 시즌을 마쳐야했다. 피어스는 6차전, 다시 한 번 경기를 동점을 만드는 버저비터를 쏘아 올렸지만 간발의 차이로 무효처리가 되면서 팀의 패배를 막지 못했다.

이렇게 워싱턴에서 다시 한 번 클러치능력을 발휘한 피어스는 2015-2016시즌을 앞두고 보스턴 시절의 은사였던 닥 리버스 감독의 러브콜을 받고, LA 클리퍼스로 이적한다. 클리퍼스에서의 피어스는 데뷔 후 처음으로 벤치멤버의 역할을 맡게 된다. 리버스 감독은 정규리그에선 피어스에게 휴식시간을 주고 경험과 클러치상황에 강한 피어스를 플레이오프에서 중용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허나, 피어스는 급격한 노쇠화와 함께 잦은 부상 등을 이유로 코트보단 코트 밖에서 보내는 시간들이 더 많았고, 결국, 2016-2017시즌 개막을 앞두고 공식적으로 선수은퇴를 선언, 19년간의 선수생활을 마무리하고 제2의 삶을 시작하게 됐다.

은퇴 후 해설가로 변신해 제2의 삶을 살고 있는 피어스는 지금도 보스턴에 대한 한결같은 충성심을 보여주고 있다. 올해 초 본인의 영구결번식을 앞두고, 보스턴이 같은 날 TD 가든을 방문하는 아이제아 토마스(DEN)에게 헌정영상을 바치는 것과 관련해 갈등을 빚기도 했다. 토마스가 TD 가든 방문을 앞두고 클리블랜드를 떠나면서 헌정영상 상영은 취소됐지만 이 과정에서 피어스는 마음을 많이 다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언제 그랬냐는 듯, 피어스는 평소처럼 제이슨 테이텀 등 팀 후배들에게 피와 살이 되는 조언을 아끼지 않는 것은 물론, 쉬는 날이면 어김없이 TD 가든을 찾아와 후배들의 경기를 응원하고 있다.

올 여름 마커스 스마트가 보스턴 잔류를 결정한 것도 뒤에서 피어스의 보이지 않는 노력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피어스는 스마트와 자주 사석에서 만나 보스턴 잔류를 설득했고, 언론에도 공식적으로 “스마트가 보스턴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말로 스마트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보여주는 등 선수로 TD 가든을 누비던 때나 일반인으로 돌아간 지금이나, 피어스의 이름 앞에는 여전히 ‘녹색심장을 가진 보스턴의 영원한 캡틴’이란 수식어가 따라붙고 있다.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점프볼 DB, 나이키

#기록참조-BASKETBALL REFERENCE, NBA.com



  2018-07-24   양준민([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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