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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지헌의 브러시백] 야구장 응원가 논란, 창작자는 억울하다

일병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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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4 (금)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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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일 2018.05.04 (금) 10:52

                           
| 5월 1일부터 전국 야구장에서 선수 등장곡이 사라졌다. ‘야구장이 썰렁해졌다’는 볼멘소리와 함께, 저작인격권 소송을 제기한 작곡가들을 향한 야구팬들의 원성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이게 과연 작곡가들을 탓할 일일까? 


 




 


[엠스플뉴스]


 


프로야구 응원가를 둘러싼 논란이 결국 법정까지 가게 될 전망이다.


 


KBO는 5월 2일 “KBO 및 KBO 리그 소속 10개 구단은 저작 인격권 관련 구단 응원가 사용 이슈에 대해 법적 공동 대응을 진행한다”고 발표했다. “최근 일부 원작자들이 구단들에게 응원가 사용 저작 인격권 관련 소송을 제기함에 따라... 야구팬들이 느끼는 응원의 즐거움을 지키기 위해 법적으로 함께 방안을 찾기로 했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1일부터 전국 모든 야구장에서 선수 등장곡 사용이 전면 중단됐다. 이대호가 등장할 때 울려 퍼지던 ‘오리날다’도, 박용택이 나타나면 야구장을 뒤흔든 ‘나타나’도, 김태균 등장곡인 ‘오빠라고 불러다오’도 들을 수 없었다. 음악이 사라진 자리를 선수 소개 멘트 혹은 짧은 경음악이 대체했다. 


 


당장 ‘야구장이 썰렁해졌다’는 볼멘소리가 터져나왔다. 각종 커뮤니티와 뉴스 댓글이 작곡가들에 대한 비난으로 가득찼다. 일부 팬들은 구단 상대 소송을 제기한 유명 작곡가의 SNS에 비난을 퍼부었다. ‘인격이 아니라 돈이겠지’ ‘돈독이 올랐다’는 십자포화가 작곡가들을 향해 쏟아졌다.


 


KBO의 선수 등장곡 사용 중단, 여론플레이 의도였나


 




 


하지만 작곡가들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우선 KBO와 10개 구단이 ‘저작 인격권 공동대응’을 외치면서, 응원가가 아닌 선수 등장곡 사용을 중단한 것부터 문제다. 


 


선수 등장곡은 작곡가들이 문제삼은 저작인격권과 별 관계가 없다. 원곡을 개사하거나 편곡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정당한 저작권료만 지급하면 야구장에서 몇 번을 틀어도 아무 문제가 없다. 선수 등장곡은 물론 치어리더 공연 때 트는 댄스곡, 경기전 훈련 때 트는 노래도 마찬가지. 


 


10개 구단과 KBO는 해마다 수천만원의 저작권료를 KBOP를 통해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지급하고 있다. 엠스플뉴스 취재에 응한 작곡가 A씨(음악저작권협회 소속으로 자신의 생각이 모든 저작권자의 생각처럼 보이는 것을 원치 않아 익명을 요구했다)는 “작곡가들은 선수 등장곡 사용을 문제삼은 적이 없다”고 밝혔다. 


 


문제는 저작권이 아닌 저작인격권이다. 저작인격권은 창작물에 대한 원저작자의 정신적·인격적 권리를 법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개념이다. 저작인격권은 공표권·성명표시권·동일성유지권의 세 가지 권리로 나뉜다. 이 중 야구장 응원가 관련 논란이 되는 부분은 동일성유지권이다. 


 


동일성유지권은 저작자의 의사에 반해 저작물 내용이 변경되지 않도록 하는 권리다. 가령 원곡을 선거로고송이나 광고 음악, 응원가로 번역·편곡·개작할 경우 이 동일성유지권을 침해할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사전에 저작권자의 동의를 구하고 적절한 보상을 지급해야 한다. 


 


야구장 응원가는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히트곡의 가사를 바꾸고, 편곡까지 새로 해서 사용한다. 경우에 따라선 원곡의 멜로디를 일부 수정해서 사용하기도 한다. 저작권자의 허가를 받는 게 당연하지만, 그동안 구단들은 저작권자 동의를 받거나 정당한 사용료를 내지 않은 채 무단으로 사용해 왔다. 작곡가들은 이 점을 문제제기한 것인데, 엉뚱하게 선수 등장곡 사용을 중단해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A씨는 “작가들이 문제삼은 건 무단으로 가사를 개작해 사용한 응원가이지, 원곡의 하이라이트를 사용하는 선수 등장곡이 아니다. 구단들은 마치 작가들이 저작권 욕심으로 야구장의 모든 음악을 사용하지 못하게 한 것처럼 야구팬들을 선동해선 안 된다"고 항변했다.


 


저작권과 저작인격권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어, 마치 작곡가들이 야구장에서 트는 모든 음악을 문제삼은 것처럼 보이게 만들려는 의도라는 지적이다. 실제 KBO 방침이 시행된 뒤 각종 커뮤니티와 댓글에는 저작권과 저작인격권을 혼동한 채 작곡가들을 비난하는 여론이 들끓었다. 하지만 작곡가들의 요구사항은 선수 등장곡 사용 중단과 전혀 관련이 없다.


 


작곡가들은 돈이 아닌 ‘존중’을 원했다


 




 


작곡가들은 저작인격권 문제 제기가 ‘돈 욕심’ 때문인 것처럼 비춰지는 데도 억울함을 호소한다. 


 


A씨는 “프로야구가 시작된 이래 수십년간 응원가를 무단으로 사용하면서도, 구단과 KBO는 한번도 작곡가들에게 양해를 구하거나 허가를 받은 적이 없었다. 사태가 불거진 뒤에도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작곡가들의 요구를 무대응으로 묵살하거나, 무성의한 협상 자세만 보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A씨는 “작곡가들이 돈 욕심 때문에 소송을 제기한 게 아니”라고 강조했다. “자신이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만든 창작물의 가치가 정당한 대접을 받기를 원하는 것이다. 작곡가들 중에는 나처럼 야구에 미친 사람도 많다. 야구단에서 정식으로 곡 사용을 요청하면 흔쾌히 곡을 제공할 의사가 있는 작곡가도 얼마든지 있다.” A씨의 말이다.


 


실제 작곡가 중에는 단 50만 원에 응원가 저작인격권 사용을 승낙한 사례도 있다. 물론 연안부두, 부산갈매기 등 상징성이 크고 유명한 몇몇 곡의 경우엔 그보다 좀 더 큰 대가를 지불해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작곡가 개개인의 의사에 달린 부분이다. ‘인격권’이 객관적인 권리가 아닌, 개개인이 느끼는 주관적인 권리에 속하기 때문이다.


 


A씨는 “과연 야구단에서 작곡가들 상대로 정중하게 정식으로 곡 사용 허가를 요청한 적이 얼마나 있는지, 야구장에 초청한다거나 야구단 행사에 초대하는 등의 정성을 기울인 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 친한 작곡가 중에 하나는 ‘구단에서 시즌권만 제공해도 내 곡을 얼마든 쓰게 할 의향이 있다’는 친구도 있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구단과 KBO는 작곡가들의 정당한 요구를 묵살한채 응원가를 계속 무단으로 사용했다. A씨는 “소송을 제기한 작가들은 오랫동안 참고 참다가 음악인들의 정당한 권리 보호를 위해 대신 총대를 메고 앞장선 것”이라며 “그런 사람을 마치 돈에 욕심이 나서 소를 제기한 것으로 매도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작곡가들은 KBO가 ‘법대로 하자’는 식으로 대응하고 나선 데 대해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저작권협회에 ‘2억원’을 제시하면서, 모든 저작인격권을 2억원 내에서 해결하자고 제안한 것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특히 ‘저작인격권 공동대응’을 내세워 응원가가 아닌 선수 등장곡 사용을 중단한 여론플레이에 큰 실망감을 표하고 있다.


 


문제는 작곡가들이 아닌 KBO와 구단 측에 있다. 저작권자들은 지금이라도 KBO와 구단들이 그동안의 응원가 무단 사용에 대해 정식으로 사과하고, 작곡가들과 성실한 대화에 나서길 기다리고 있다. A씨는 "애초에 대화와 정성으로 해결할 수 있었던 문제가 법적 대응으로 치닫게 된 게 매우 유감”이라고 밝혔다.


 


작곡가들이 원한 건 돈이 아니라, 창작자에 대한 ‘존중’이었다.


 


배지헌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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