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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지헌의 브러시백] 청주의 밤은 '대전의 밤'만큼 뜨거웠다

일병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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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0 (수) 13:00

                           
| 한화 이글스의 2018시즌 첫 제 2구장 경기가 열린 6월 19일. 청주야구장의 뜨거운 응원 열기와 청주 경기를 둘러싼 다양한 시각을 엠스플뉴스가 들어봤다.
 
[배지헌의 브러시백] 청주의 밤은 '대전의 밤'만큼 뜨거웠다

 
[엠스플뉴스]
 
청주시 우암동에 사는 초등학생 박우진 군에게 6월 19일은 보름 전부터 손꼽아 기다린 날이다. 
 
이날 우진 군은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제라드 호잉보다 빠른 속도로 장롱문을 열었다. 주황색 야구 유니폼을 꺼내 입고, 주황색 모자의 먼지를 정성스레 털어낸 뒤 머리에 썼다. 이날 평소보다 일찍 퇴근한 아버지 박상현 씨와 함께 집을 나섰다. 
 
둘이 차를 타고 향한 곳은 청주 종합운동장 내에 있는 야구장. 평소에는 거의 올 일이 없는 곳이지만, 이날만큼은 아주 특별한 일이 벌어질 예정이다. 부자가 함께 응원하는 야구팀 한화 이글스가 LG 트윈스를 상대로 시즌 첫 청주 홈경기를 치르는 날이기 때문이다.
 
“요새 한화가 잘해서 기분이 좋아요.” 유니폼 등에 ‘정근우’를 새긴 박우진 군이 손에 든 부채를 신나게 펄럭이며 말했다. “정근우 선수가 안 나오는 건 아쉽지만, 그래도 호잉을 볼 수 있잖아요. 호잉을 TV로만 보고 실제로 보진 못했거든요. 정말 기대돼요.”
 
이날을 손꼽아 기다린 사람은 박우진 군뿐만이 아니다. 이날 청주야구장은 일찌감치 매진을 달성했다. 인터넷 판매 티켓은 지난 주말에 이미 매진됐고, 얼마 안 되는 현장 판매분도 경기 시작 2시간 전에 조기 매진됐다.
 
티켓 매진 소식을 알리는 야구장 관계자의 안내에, 몇 시간 전부터 비를 맞으며 청주야구장 앞에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던 팬들은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흩어졌다. 몇몇 팬은 어딘가로 급히 전화를 걸었다. ‘아는 사람’의 힘을 빌려 어떻게든 표를 구해 보려는 시도다.
 
“해마다 있는 일입니다.” 청주시 수곡동에 사는 자영업자 윤중호 씨의 말이다. “청주 홈경기가 일 년에 몇 번 안 되잖아요. 그러다 보니 표를 구하려는 경쟁이 굉장히 치열해요. 저는 운 좋게 오늘 표를 구했지만, 작년에는 기껏 야구장에 왔다가 매진되는 바람에 그냥 돌아갔던 기억이 있어요.”
 
한화 관계자는 이날 경기 포함 3연전 인터넷 예매분이 모두 판매됐다고 알렸다. 만약 20일과 21일 경기까지 매진되면, 한화는 최근 홈 9경기 연속 매진을 이어가게 된다. 청주구장은 한화 팀 성적이 최악이었던 지난해에도 3경기 연속 매진을 달성한 곳이다. 지난해 한화가 달성한 11번의 매진 중에 3번이 청주에서 나왔다. 
 
한화 홈경기 날, 청주야구장은 거대한 ‘사교의 장’
 
[배지헌의 브러시백] 청주의 밤은 '대전의 밤'만큼 뜨거웠다

 
한화 구단도 청주 팬들의 야구 열정을 너무나 잘 안다. 청주 제 2구장 경기를 해마다 조금씩 늘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2016년까지 5경기였던 청주 홈경기는 지난해 6경기로 늘어났다. 올해는 3연전 한 번과 2연전 두 차례로 총 7경기까지 늘렸다. 
 
“청주 팬들의 성원에 보답하는 차원에서 청주 경기 수를 예년보다 늘려 편성했습니다. 물론 청주 팬들께선 이것도 부족하다고 하시겠지만요.” 한화 관계자가 웃으며 말했다.
 
농담이 아니다. 실제 청주 팬들은 7경기로도 전혀 만족하지 못하는 눈치다. 윤중호 씨는 “물론 한화를 워낙 좋아하다 보니 일 년에 몇 번씩 대전까지 가서 한화 경기를 본다”면서도 “내가 사는 이 지역에서, 사는 곳과 가까운 곳에서 열리는 프로야구 경기를 본다는 건 조금은 다른 느낌을 준다”고 했다.
 
윤중호 씨와 함께 야구장을 찾은 이승훈 씨는 “사실 대전야구장에 가면 일행 외에는 아는 사람을 만날 일이 거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청주야구장에 오면 주변이 온통 건너건너 아는 사람들이에요. 직장 동료나 동네 사람을 보기도 하고, 고교 동창 같은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을 만날 때도 있죠.”
 
실제 경기 전 관중석에선 한화 유니폼을 입은 관중들끼리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장면을 여러 차례 볼 수 있었다. 가져온 음식을 다른 좌석에 나눠주기도 하고, 오랜만에 만난 지인과 연락처를 교환하고 한참 이야길 나누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야구장이 거대한 사교의 장이 된 셈이다. 대도시 야구장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정겨운 장면이다. 
 
“청주 지역에 160명 이상의 한화 서포터즈가 활동하고 있습니다.” 단체로 맞춘 한화 유니폼을 입은 한 남성 관중이 말했다. “오늘도 60명 이상의 서포터가 야구장에 왔어요. 익사이팅 존에 모여 앉아서 다 같이 한화를 응원할 계획입니다.”
 
실제 1루 측 익사이팅 존엔 짙은 주황색 단체복을 맞춰 입은 팬들 수십 명이 모여 있었다. 등에는 선수 이름 대신 각자 개성 있는 이름과 문구를 새겨 넣었다. 다들 서로 잘 아는 사이인지, 끊임없이 관중석을 옮겨 다니며 이야기를 나누고 건배를 나눴다. “청주에서 경기가 열리는 날엔 빠지지 않고 단체 관람을 합니다.” 서포터즈 회장의 말이다.
 
“사회인 야구를 해야 할 구장” 낙후된 청주야구장 향한 불만
 
[배지헌의 브러시백] 청주의 밤은 '대전의 밤'만큼 뜨거웠다

 
물론 모든 일엔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다. 청주 경기가 해마다 조금씩 늘어나는 게 대전에 사는 팬들에겐 적지 않은 불만이다. 대전에서 왔다는 한화팬 장대성 씨는 “요새는 한화 인기가 좋아서 대전 경기도 표를 구하기 어렵다”며 “시설도 열악하고, 청주 경기에서 한화 승률도 좋지 않은데 왜 경기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토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대전 한화 팬도 “사회인 야구가 어울리는 구장에서 프로 야구를 하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여기 시설을 한번 보세요. 통로가 없어서 이동할 때 좌석 사이로 좁은 틈을 뚫고 지나다녀야 합니다. 화장실이 없어서 남자들도 길게 줄을 서고, 어떤 자리는 한번 앉으면 경기 끝날 때까지 나갈 수도 없어요. 이게 무슨 프로야구 구장입니까.”
 
청주야구장에 불만이 많은 건 현장 지도자들과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청주 경기를 경험한 한 선수는 “여기서 꼭 경기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한화의 한 선수도 “말만 홈경기지 실제로는 원정경기나 마찬가지”라며 “남들은 72경기를 하는 홈경기를 우리는 65경기만 하는 셈”이라 아쉬움을 표했다. 
 
청주야구장은 원정팀 쪽 더그아웃 천장이 비정상적으로 낮다. 이 때문에 선수와 취재진이 이따금 천장에 머리를 부딪치는 일도 생긴다. 구장 측에선 충돌 방지용으로 하얀 테이프까지 붙여뒀다. 이따금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아 선수들이 샤워를 못 하는 일도 생긴다. 경기 후 땀에 젖은 상태로 숙소까지 이동해야 한다. 선수단과 관계자용 식당도 없다. 
 
하지만 한화 구단은 광역 팬들까지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청주시 인구는 2018년 5월 기준 83만 명에 달한다. 인근 세종시 인구까지 합하면 100만이 훌쩍 넘는다. 150만 명에 가까운 대전 인구와 비교해 결코 적지 않은 팬이 청주 권역에 거주하는 셈이다. 이들이 계속 한화를 응원하며 야구팬으로 남게 하는 건 한화는 물론 KBO의 중요한 과제다.
 
박상현 씨는 “청주가 인구는 꽤 많은 편이지만, 놀 거리와 즐길 거리가 그렇게 많은 편이 아니다”라고 했다. “아이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게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일 년에 몇 경기 되진 않지만, 그래도 한화 경기가 있어서 야구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낙이 됩니다.” 박 씨의 말이다.
 
청주는 제2의 성지? 원인은 제한된 경기 수
 
[배지헌의 브러시백] 청주의 밤은 '대전의 밤'만큼 뜨거웠다

 
경기 수가 적다 보니 생기는 다른 문제도 있다. 대전에 비해 다소 ‘험악한’ 관중석 분위기, 그리고 각종 안전사고가 문제다.
 
한 경기장 안전요원은 “프로야구장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관중 중에는 안전요원의 요청에 거세게 항의하는 분들이 많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이날도 경기 전 입장 때 음료수를 페트병 채로 들고 입장하려던 몇몇 관중이 안전요원들과 마찰을 빚었다. “지시에 잘 따르지 않는 분들이 많아서 힘이 듭니다.” 안전요원의 말이다.
 
5회가 지나면 만취한 관중들이 경기장 곳곳에서 소리를 지르거나, 소동을 벌이는 장면도 볼 수 있다. 이날도 9회말 한화의 마지막 공격 때 두 명의 관중이 경기장에 난입해 경기가 잠시 중단됐다. 놀랍게도 두 명의 불청객은 ‘아저씨’가 아닌 19살 청소년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1회엔 관중석 휴대폰 플래시 때문에 잠시 경기가 중단됐고, 경기 후반엔 흥분한 관중들이 오물을 투척하는 불상사도 있었다. 일반적인 야구장에서 한 시즌에 나올 사건·사고가 청주야구장에선 한 경기에 몰아서 나온 셈이다.
 
“마산야구장도 NC가 생기기 전엔 비슷했습니다.” NC 다이노스 관계자가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가장 큰 원인은  적은 경기 수입니다. 관중들이 프로야구를 접할 기회가 많지 않은 게 원인이죠. 그러다 보니 야구장 문화에 익숙하지가 않고, 경기 승패에도 예민해집니다.”
 
NC 관계자는 “그 거칠었던 마산야구장 분위기가 요즘 어떤지 보라”고 했다. “NC가 창단하면서 마산야구장은 일 년 내내 홈경기가 열리는 곳이 됐습니다. 가족 단위 관중이 늘어나면서, 자연히 취객이나 과격한 관중들은 다른 관중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게 됐죠. 물론 구단에서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면서 경기장 분위기가 점진적으로 개선됐습니다. 결국 프로야구를 접할 ‘기회’의 문제라고 봅니다.” 이 관계자의 말이다.
 
한화 관계자는 “제2 홈경기를 하는 게 쉬운 일만은 아니다”라면서도 “그래도 청주에 한화를 사랑하는 팬들이 이렇게 많지 않나. 이분들에게도 한화 경기를 볼 기회를 가능한 한 드려야 한다”고 밝혔다.
 
이날 한화는 LG 선발 차우찬의 구위에 눌려 0-4로 졌다. 이날 패배로 한화의 최근 6년간 청주경기 성적은 7승 18패가 됐다. 경기 내내 목이 터져라 ‘최강 한화’를 외치던 청주 관중들은 아쉬움을 삭이며 하나둘씩 야구장 밖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내일도 또 야구장에 올 거예요.” 박우진 군이 말했다. “1경기 졌을 뿐이잖아요. 이제는 한화가 잘하는 팀이 됐으니까, 내일은 꼭 이길 거에요. 내일 지면 모레 또 와서 응원할 거에요.”
 
여러 문제와 어려움 속에서도 한화가 청주 홈경기를 계속할 수밖에 없는 건, 바로 이런 팬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배지헌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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