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평양의 기적 이후, 한국은 느슨했고 북한은 악을 품었다
[골닷컴, 일본 치바] 서호정 기자 = "4월의 한이 아직도 풀리지 않았다."
북한 여자 축구 대표팀의 김광민 감독은 압도적인 내용으로 승리를 거뒀음에도 만족을 보이지 않았다. 그가 표현한 한은 한국이 ‘평양의 기적’으로 부르는 지난 4월의 맞대결이 낳은 복수심이었다. 여자 아시안컵 예선에서 한국은 대접전 끝에 북한과 1-1로 비겼다. 골득실에서 북한을 누른 한국은 조 1위로 아시안컵 본선 진출을 확정했다.
2018년 4월 열리는 여자 아시안컵은 2019년 프랑스 여자월드컵의 예선을 겸한다. 북한은 지난 2015년 캐나다 월드컵도 징계로 인해 나서지 못했다. 2회 연속 월드컵 진출 실패, 그것도 숙적 한국에 밀려 조기 탈락을 한 것은 여자 축구의 세계적 강호 북한에겐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었다.
2017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동아시안컵)은 북한에게 설욕의 무대였다. 11일 일본 지바시의 소가스포츠파크에서 열린 여자부 2차전에서 한국은 0-1로 패했다. 스코어는 1골 차였지만 내용의 격차는 훨씬 컸다. 북한이 12개의 슛과 5개의 유효슈팅을 기록하는 동안 한국은 단 1개의 슛만 기록하는 데 그쳤다.
힘과 속도로 조소현, 이민아로 대표되는 한국 여자 축구의 기술을 누른 북한은 일방적인 경기를 펼쳤다. 그나마 후반에는 일방적인 열세를 벗어나 한국도 측면을 중심으로 방법을 찾았다. 그러나 만회할 길은 나오지 않았다.
한국과 북한 여자 축구의 격차는 크다. FIFA 랭킹은 15위와 10위로 5계단 차지만 이날 패배로 역대 전적에서 한국은 1승 3무 15패를 기록하게 됐다. 2005년 한국에서 열린 동아시안컵에서 이긴 것을 제외하면 단 1번도 웃질 못했다.
정신력마저 북한이 우위였다. 지난 4월 아시안컵 예선에서의 분루를 갚으려는 의지가 강했다. 몸을 이용해 세컨드볼을 점유하며 계속 한국을 몰아쳤다. 윤덕여 감독은 “우리가 준비한 것이 거의 안 나왔다. 특히 세컨드볼을 번번히 내주며 힘든 경기를 했다”라고 말했다. 세컨드볼 점유는 기술보다는 한발 더 뛰는 정신력과 움직임의 성과다.
선수들도 정신력에서 밀린 것이 결정적이었다고 인정했다. 주장 조소현은 “아쉬움이 든다. 북한이 복수를 하려는 의지가 컸는데 우리는 지난 4월만큼은 아니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수비의 중심 임선주는 “작은 차이가 큰 차이를 만든 것 같다. 평양에서는 우리도 악착같이 했지만 오늘은 느슨했다”라고 말했다. 이민아도 “결과를 못 내 죄송하고 속상하다”라고 고개를 숙였다.
북한은 이번 동아시안컵을 앞두고 장기간 합숙을 통해 체력과 전략을 만들어 왔다. 한국이 평양의 기적에 머물러 있는 사이 북한은 기존의 격차를 더 벌린 것이다. 내년 아시안컵을 준비하는 한국에게는 큰 자극제가 되어야 했던 경기다.
사진=대한축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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