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공작소] 짝수해 기적의 공식, 올해는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
[엠스플뉴스]
2010년부터 시작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짝수 해 기적은 2016년 10월 AT&T 파크에서 9회 초 벌어진 화려한 불쇼와 함께 끝났다. 2010년부터 2014년까지 5년간 3번의 우승을 일궈낸 샌프란시스코의 포스트시즌은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시리즈마다 상대에 비해 전력상 열세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그 열세를 끈질기게 달라붙어 끝내 뒤집었기에 ‘바퀴벌레’ 라는 별명도 얻었다.
2010년 첫번째 ‘짝수 해 우승’ 이후 자이언츠의 전력은 매년 조금씩 약해졌다. 믿을 만한 선발도, 장타력을 갖춘 타자도 계속 부족했다. 하지만 매년 변하지 않고 되려 발전한 부분도 있었다. 바로 훗날 샌프란시스코 ‘불펜 Core 4’로 불리게 된 필승조들이다. 이 필승조들이야말로 짝수 해 기적의 공식이었다. 2010년 구성 당시 많은 팀들이 답이 아니라며 외면했던 불확실한 가설은 브루스 보치 감독의 수많은 실험과 검증 끝에 샌프란시스코만의 필승 공식으로 거듭났다.
하지만 이들도 세월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샌프란시스코는 포스트 ‘불펜 Core 4’를 물색했고, 올해 드디어 그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샌프란시스코 팬들의 기대를 받고 있는 새로운 불펜 Core 4 후보들은 누가 있을까. 먼저 원조 불펜 Core 4가 어땠는지 살펴보자.
2010~2014년 : 짝수 해 기적을 일궈낸 불펜 Core 4
3번의 우승 동안 한 해를 마무리한 투수는 매번 다른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도달하는 과정은 바뀌지 않았다. 제레미 아펠트, 하비에르 로페즈, 서지오 로모, 산티아고 카시야로 구성된 4명의 필승조는 5년 동안 정규시즌에서 모두 280경기 이상 등판해 3.00 이하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4명이 책임진 이닝은 연평균 200이닝에 달했다. 믿을 만한 선발들이 잇따라 이탈한 짝수해에 샌프란시스코가 꾸준히 플레이오프에 도전할 수 있었던 것도 이들 덕분이었다.
불펜 Core 4를 구성하는 데는 브라이언 세이빈 前 단장의 혜안이 돋보였다. 당시 주목받지 못했던 브라이언 윌슨과 서지오 로모를 드래프트 하위 라운드에서 발굴해낸 것(윌슨 2003년 24라운드, 로모 2005년 28라운드)이 시작이었다. 메이저리그 FA로 영입(300만 달러)한 아펠트를 불펜으로 전환시키고, 마이너리그 FA로 카시야, 현금 트레이드(35만 달러)로 로페즈을 영입하며 단돈 415만 달러(윌슨, 로모, 카시야의 최저연봉 포함)에 필승조를 만들어냈다.
이들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 준 것은 보치 감독의 용병술이었다. 좌우를 가리지 않고 무난한 성적을 보였던 카시야와 아펠트는 다른 투수가 무너질 때면 언제든 등판해 팀의 허리를 책임졌다. 특히 선발 경험이 있던 아펠트는 멀티 이닝도 간간이 소화했는데 이 경험은 훗날 월드시리즈 무대에서 유감없이 발휘된다.
사이드암에 가까운 로모는 마무리였지만 우타자에 특히 강한 면모를 보여(통산 우타자 상대 OPS 0.560) 주로 엘리트 우타자들을 상대로 등판해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내려갔다. 독특한 투구폼을 지닌 좌완 로페즈는 우타자에게 통산 피OPS 0.813으로 약했지만 좌타자에게는 통산 피OPS 0.572로 강한 투수였다. 보치는 이런 로페즈에게 좌타자 저격수 역할을 맡겼다. 로페즈의 기용법은 ‘LOOGY(Lefty One Out GuY, 좌타자 원포인트 저격용 좌완 투수)’라는 보직을 샌프란시스코 팬들에게 각인시켰다.
보치 감독 아래서 숙달된 샌프란시스코의 불펜 운영은 포스트시즌에서도 빛을 발했다. 2010년 로페즈는 체이스 어틀리, 라이언 하워드 같은 엘리트 좌타자들에게 철옹성과 같았고, 2012년 로모가 MVP 미겔 카브레라를 상대로 잡은 마지막 삼진은 그 중 백미였다.
Core 4의 중요성은 선발진에서 매디슨 범가너만이 고군분투하던 2014년에 그 정점을 찍었다. 4명이서 29.1이닝 동안 단 1실점만을 허용하며 범가너의 부담을 크게 덜어준 것이다. 특히 아펠트는 월드시리즈 7차전에서 캔자스시티 로열스 타선을 상대로 2.1이닝 동안 단 1안타만을 내주는 활약을 펼쳤다. 그는 현재까지 샌프란시스코의 마지막 월드시리즈 승리투수로 남았다.
2010~2014 불펜 Core 4의 포스트시즌 성적
서지오 로모
2010~2014년 : 25경기 3승 1패 4홀드 4세이브 ERA 2.11
*2014년 : 9경기 1승 1패 4홀드 ERA 1.29
산티아고 카시야
2010~2014년 : 24경기 1승 0패 4홀드 4세이브 ERA 0.95
*2014년 : 9경기 0승 0패 4세이브 ERA 0.00
제레미 아펠트
2010~2014년 : 26경기 2승 0패 4홀드 ERA 0.69
*2014년 : 9경기 2승 0패 3홀드 ERA 0.00
하비에르 로페즈
2010~2014년 : 25경기 1승 0패 9홀드 ERA 1.38
*2014년 : 9경기 0승 0패 2홀드 ERA 0.00
2014 불펜 Core 4의 포스트시즌 성적
9경기 3승 1패 9홀드 4세이브 ERA 0.30 / 29.2이닝 1실점 20삼진
2015~2017년 : 붕괴된 불펜
하지만 평균 34.8세의 노장들에게 더 이상의 활약은 기대하기 힘들었다. 2016년 아펠트(은퇴)를 시작으로 2017년 로페즈(은퇴), 로모와 카시야(FA)가 이탈하며 불펜 Core 4는 해체됐다. 보치 감독과 데이브 리게티 투수 코치는 또 다른 Core 4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지만 팀에 남은 베테랑들은 로페즈와 아펠트 같은 노익장을 보여주지 못했고, 신인들은 로모와 윌슨처럼 크지 못했다.
조시 오시치와 데릭 로는 데뷔 시즌 좋은 모습을 보여줬지만 2년차 징크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본격적으로 기용되기 시작한 콘토스와 기어린은 각각 많은 피홈런과 볼넷이 문제가 됐다. 스트릭랜드는 표면적인 성적은 좋았지만 해가 지날수록 경기당 볼넷이 늘어났고, 다혈질적인 성격이 문제가 됐다. 2016년 겨울에는 마무리 마크 멜란슨을 데려왔지만 부상과 부진으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32경기 1승 2패 11세이브 ERA 4.50)
2018년 : 새로운 불펜 Core 4는 누구일까?
하지만 올해 샌프란시스코 마운드에 서광이 비치기 시작했다. 수술 후 복귀한 윌 스미스와 멜란슨, 새로 영입된 토니 왓슨, 그리고 신인 레예스 모론타와 레이 블랙이 희망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까닭이다.
2018시즌 샌프란시스코 주요 불펜 투수 성적 (1) (*현지시각 8월 5일 기준)
윌 스미스(28세): 36경기 35.1이닝 0피홈런 50삼진 / ERA 1.27 WHIP 0.79
레예스 모론타(25세): 53경기 50.1이닝 2피홈런 59삼진 / ERA 1.79 WHIP 1.03
토니 왓슨(33세): 52경기 48.2이닝 3피홈런 49삼진 / ERA 2.03 WHIP 1.01
레이 블랙(28세): 11경기 10.2이닝 1피홈런 13삼진 / ERA 2.53 WHIP 0.56
단연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것은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토미존 수술)에서 돌아온 스미스다. 2016년 여름 샌프란시스코가 팀내 최고 유망주 2명을 포기하며 트레이드로 영입한 스미스였다. 올해가 장기 부상 복귀 후 첫 시즌인 탓에 멜란슨과 함께 관리를 받고 있지만, 나올 때마다 강력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트레이드 당시에는 팬들로부터 아쉬운 소리도 들었지만 2년 만에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며 더 이상 샌프란시스코가 떠나 보낸 유망주를 그리워하지 않게 했다.
작년에 깜짝 콜업 돼 인상적인 활약(6.2이닝 11삼진)을 펼쳤던 모론타도 인상적인 풀타임 시즌을 보내고 있다. 마이너리그 시절부터 100마일을 던질 수 있는 불펜 유망주로 주목받았던 모론타는 제구는 불안정하지만 뛰어난 스터프로 타자들을 압도하고 있다. 지난 7월 13일(현지시간)에는 무사만루 상황에 등판해 무실점으로 이닝을 마무리하기도 했다. 풀타임 1년차부터 많은 이닝을 소화해 체력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보치 감독이 충분한 휴식을 약속하며 후반기를 기약했기 때문에 성장이 기대된다.
올해 영입된 토니 왓슨은 지난 몇 년간 팬들을 절망시켰던 샌프란시스코의 FA 영입 실패 역사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스프링캠프 때만 해도 8경기 ERA 8.59를 기록하며 팬들을 걱정시켰지만 시즌이 시작되자 44경기 중 7경기밖에 점수를 내주지 않으며 안정감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전반적인 구속은 전성기보다 1~2마일 떨어졌지만 구위가 살아나면서 지난 2년간 본인의 평균자책점보다 1점 이상 낮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고 있다.
2011년 드래프트된 후 7년 만에 데뷔한 레이 블랙은 인간 승리의 표본이다. 3번의 큰 수술을 겪은 블랙은 경기에 나선 시간보다 재활로 보낸 시간이 더 많았다. 그러나 몇 번의 큰 수술 뒤에도 마운드에 오르면 나오는 블랙의 평균 시속 100마일의 패스트볼과 최고 시속 90마일의 슬라이더는 팀과 팬들이 그를 포기할 수 없던 이유였다. 그리고 올해 트리플A에서 18.2이닝 동안 30개의 삼진을 잡아내며 메이저리그에 데뷔했고, 짧은 기간이지만 샌프란시스코의 기다림이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줬다.
새로운 기대주들뿐만 아니라 멜란슨, 다이슨, 스트릭랜드 또한 지금은 부진하지만 충분히 불펜의 핵심이 될 수 있는 선수들이다. 하지만 기대주 4인과 달리 세 선수는 더 깊은 고민을 안고 있다.
2018시즌 샌프란시스코 주요 불펜 투수 성적 (2) (*현지시각 8월 5일 기준)
마크 멜란슨(33세): 23경기 21.2이닝 1피홈런 15삼진 / ERA 3.32 WHIP 1.48
헌터 스트릭랜드(29세): 34경기 31.2이닝 2피홈런 29삼진 / ERA 2.84 WHIP 1.23
샘 다이슨(28세): 55경기 53.2이닝 5피홈런 41삼진 / ERA 2.85 WHIP 1.06
멜란슨은 많이 던진 투수들에게서 나타나는 데드암 증상을 보이고 있다. 특별한 부상이 발견되지 않았음에도 팔뚝에서는 통증이 계속됐고 지난 겨울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시속 90마일까지 떨어진 패스트볼 구속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고 있다. 샌프란시스코는 작년 같은 모습을 보인 투수 맷 케인을 떠나보냈다. 멜란슨의 남은 2년 3100만 달러라는 계약 또한 많은 이들이 그가 케인의 전철을 밟는 것이 아닌가 우려하는 이유 중 하나다.
텍사스에서 마무리로 뛰었던 다이슨은 부진으로 인한 방출 이후 샌프란시스코 유니폼을 입었다. 다이슨은 투수에게 친화적인 AT&T파크에서 뛰면서 텍사스 시절보다 안정감 있는 활약을 펼치고 있지만 묘하게도 마무리 기회를 받을 때면 믿음직하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 올해도 스트릭랜드의 부상으로 마무리투수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지만 5경기 ERA 9.64 를 기록하며 다시 마무리 후보에서 제외됐다.
스트릭랜드는 샌프란시스코의 계륵이다. 한 팀의 마무리가 될 수 있는 구위를 지녔지만 항상 마무리로서의 마음가짐이 문제가 됐다. 3년 전의 배트 플립을 잊지 못해 하퍼와 난투극을 벌이거나 스스로 분을 이기지 못해 난동을 피우다 골절상을 입는 등 여러 차례 구설수에 올랐다. 감독과 동료들도 그가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었지만 이제 그 기회도 얼마 남지 않았다.
여러 선수를 보강하며 야심차게 시작한 2018년이지만 샌프란시스코는 다양한 포지션에서 다양한 문제점을 보이며 여전히 우승권과는 거리가 먼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경기 후반을 책임질 허리만큼은 지난 4년 중 가장 희망적이다. 최근 메이저리그에서는 15년 캔자스시티 로열스의 우승을 기점으로 불펜의 중요성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불펜의 가치가 높아지는 시기에 샌프란시스코 입장에서 이들의 등장은 반갑다.
출처: mlb.com, fangraphs, baseball-reference
야구공작소
김동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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