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최숙현 선수 소속 경북체육회 지난해 '성희롱방지 부실' 적발
여가부, 체육관련 기관 30곳 적발하고도 1년반 가까이 공개 미적
양경숙 의원 "관리감독 철저히해야 하지만 신속 대처도 중요"
(서울=연합뉴스) 오예진 기자 = 소속팀의 가혹행위에 시달리다 지난달 극단적 선택을 한 철인3종 경기 고(故) 최숙현 선수가 속한 경북체육회 등 30여개 체육 기관의 성희롱 방지 조치가 부실하다는 사실이 이미 지난해 드러난 것으로 파악됐다.
최 선수와 동료들이 강압적인 훈련과 폭력에 시달린 점 외에도 성추행을 당했다는 의혹까지 불거지는 상황에서 체육 관련 단체들이 선수의 인권 개선 문제를 외면해왔다는 비판이 나온다.
특히 이런 실태를 적발한 정부도 1년 반 가까이 관련 사항을 공개하지 않아 체육계의 고질적 인권 문제를 제때 공론화하지 못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21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양경숙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여성가족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여가부는 지난해 2∼3월 대한체육회와 시·도 체육회 등 체육 분야 공공기관 등 100곳을 대상으로 현장 점검을 벌였다.
쇼트트랙 분야에서 터져 나온 '체육계 미투' 사건을 계기로 정부 합동으로 추진한 '체육 분야 (성)폭력 등 인권침해 근절 대책'의 일환이었다. 여가부가 체육계 관련 기관 전반에 대한 현장 점검에 나선 것은 처음이었다.
점검 결과 총 30개 기관(이하 중복)에서 성폭력·성희롱·성매매·가정폭력 등 폭력 예방 교육이나 성희롱 방지조치가 부실하다는 사실이 적발됐다.
이 중 경북체육회는 성희롱 예방지침을 아예 만들지 않았고, 고충 상담원도 지정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성매매, 성폭력, 가정폭력 등 폭력 예방교육 부문에서는 전체 직원의 참여율이 70%에 그쳤다.
경북체육회 소속인 최 선수와 그의 동료들은 2012∼2013년 운동처방사 안주현(45) 씨로부터 가혹행위와 성추행 등을 당했다는 의혹이 최근 불거졌다.
경주시청 철인3종경기 팀 내에서 '팀닥터'로 불린 안씨는 이 의혹으로 구속 수사를 받고 있다. 수사당국은 팀을 이끈 김규봉 감독에 대해서도 최 선수 등에게 가혹행위를 한 혐의 등으로 지난 17일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경북체육회는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에서 국가 대표로 출전한 컬링팀 '팀 킴'이 대한컬링경기연맹을 상대로 인권 침해 및 횡령 문제를 제기해 정부의 대대적인 감사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도 문제가 제대로 봉합되지 않아 컬링팀은 전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당시 징계받았던 간부가 복직해 팀을 부당하게 관리한다는 문제 제기와 함께 팀 정상화를 촉구했다.
경북체육회 외에도 각종 장애인체육회, 프로축구단과 시·군 체육회의 부실한 폭력·성희롱 예방 실태가 여가부의 현장 점검으로 드러났다.
폭력 예방 교육을 아예 하지 않은 단체가 5개, 고위직 참여율이 50% 미만인 곳 4개 등 모두 27곳이 적발됐다. 성희롱 방지조치에서는 지침을 만들지 않은 단체 8개, 고충상담원이 없는 곳 2개 단체 등 모두 11곳이 적발됐다.
당시 여가부는 현장 점검에 나서면서 "체육 분야 등에서 일어나는 성희롱·성폭력을 예방하는 데 보다 실효적인 교육이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힌 바 있으나 30개 기관의 부실이 드러났음에도 이 결과를 1년 반이 다 되도록 공개하지 않았다.
만약 여가부가 체육계 전반에 걸쳐 선수 인권침해 예방 체계가 부실했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공론화했다면 추가적인 피해를 막을 수 있지 않았겠느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더구나 여가부 현장 점검과 비슷한 시기에 경주시가 최 선수를 포함한 직장 운동경기부 소속 선수를 대상으로 폭력·성폭력 실태를 조사했음에도 '문제가 없다'는 식의 형식적 결과만 얻은 터여서 정부와 지자체의 대처가 때를 놓쳤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양 의원은 "성폭력 등 폭력 문제는 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실효적인 폭력 예방을 위해 관리·감독도 더욱 철저히 해야 하지만 이런 문제를 사회가 신속하게 인식하고 대처하는 것도 그만큼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여가부 관계자는 "교육을 안 한 게 아니라 몰라서 못 했던 등의 사유가 있는데 제재도 중요하지만 (특별교육을 통해) 잘 할 수 있게끔 하는데 무게를 둬야 인식 확산이나 (예방) 교육이 더 잘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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