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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스플의 눈] ‘조재범 영장기각’, 국가대표와 국회의원은 다른가

일병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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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6 (화) 17:22

                           
[엠스플의 눈] ‘조재범 영장기각’, 국가대표와 국회의원은 다른가

 
# “한 대만 때렸어요? 아니면 한 대 이상 때렸어요?”
“한 명만 때렸습니까? 아니면 한 명 이상 때렸습니까?”
“한 번만 때린 거예요? 아니면 한 번 이상 때린 거예요?”
 
4, 5년 전이다. 취재차 경찰서에 갔을 때다. 한 형사가 폭행 혐의를 받는 사람의 조서를 쓰고 있었다. 다른 소린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한 대’, ‘한 명’, ‘한 번’이란 단어는 예외였다. 의식하지 않았는데도 계속 귀에 들어왔다.
 
속으로 궁금했다. ‘왜 저 형사는 유독 한 대, 한 명, 한 번에만 집착할까. 한 대든, 한 명이든, 한 번뿐이든 때린 거 자체가 잘못 아닌가.’
 
그때다. 기자 옆에 있던 형사가 이렇게 말했다.
 
중요하죠. 만약 한 대만 때렸으면 단순폭행으로 끝날지 모르지만, 여러 대 때린 것 때문에 다쳤다면 상해가 성립될 수 있으니까요. 피해자가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이고, 한번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때린 거라면 상습 폭행 혹은 상습 상해가 적용될 수 있습니다. 단순 폭행보다 죄가 무거워지고, 구속될 가능성도 당연히 더 커지죠.
 
[엠스플의 눈] ‘조재범 영장기각’, 국가대표와 국회의원은 다른가

 
조재범 전 쇼트트랙 대표팀 코치의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수원지법 성남지원 선의종 부장판사는 피의자의 주거가 일정하고, 범행을 대체로 인정하며 잘못을 뉘우치고 있다는 말로 영장 기각 사유를 밝혔다.
 
덧붙여 일부 피해자와 합의하고, 많은 지인이 선처를 탄원하는 점, 피의자의 직업과 가족 등 사회적 유대관계 등의 사정을 종합하면 구속해야 할 사유 내지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수사 편의주의적’ 구속영장 남발은 인권의 적이다. 헌법과 형사소송법의 기본 취지는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서 확정판결을 받도록 하는 것이다. 법원이 ‘인권 보호는 외면한 채 인신구속 제도를 남용한다’는 비판을 들었던 건 오래전 얘기가 아니다. 
 
하지만, 이런 불구속 수사 원칙이 인정받고 유지되려면 법의 생명인 일관성과 형평성 먼저 지켜져야 한다. 법이 힘있고, 부유한 자에게만 관대하고, 힘없고, 가난한 이들에게만 가혹하다면 그 법은 더는 법이 아니라 불공평의 상징이 되기 때문이다. 이번 조재범 전 코치의 영장 기각을 두고 적지 않은 빙상인과 피해자 가족이 ‘대한민국 법은 공평한가’라는 의문을 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엠스플의 눈] ‘조재범 영장기각’, 국가대표와 국회의원은 다른가

 
우선 선 판사는 영장기각 사유로 ‘잘못을 뉘우치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한 변호사는 이 말을 듣고 잘못을 뉘우치고 있는지 없는지는 영장담당 판사가 할 말이 아니라 재판부 판사가 할 말이라며 영장담당 판사가 판결까지 내린 셈이라고 꼬집었다. 
 
일부 피해자와 합의하고, 많은 지인이 탄원하는 점’이란 부분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선 판사는 ‘일부 피해자와 합의하였다’고 했지만, 더 많은 피해자가 조 전 코치와의 합의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피해자와 합의’를 존중했다면 선 판사는 ‘합의하지 않은 다수의 피해자’의 사정과 의지에 대해서도 존중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런 뉘앙스는 영장 기각 사유문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한 피해자 부모는 조 전 코치와 합의하지 않은 건 이참에 빙상계에 뿌리 박혀 있는 ‘폭력문화’가 일소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영장담당 판사의 한마디로 피해자 가족이 순식간에 ‘잘못을 뉘우친 사람의 합의 요청을 매몰차게 뿌리친 비정한 사람들’로 둔갑됐다고 목소릴 높였다.
 
많은 지인이 선처를 탄원했다’는 것도 그렇다. 조 전 코치의 불구속을 탄원한 ‘많은 지인’만큼 조 전 코치의 불구속 수사를 우려하고, 겁내던 ‘많은 피해자 가족’이 있었다. 조 전 코치는 구속영장이 청구되자 전방위로 피해자 가족에게 합의를 요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몇몇 피해자 가족은 조 전 코치의 합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때 빙상계로부터 혹시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싶어 조 전 코치가 보낸 합의 요구 문자메시지를 보고서 하루종일 고민했다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게 되면 합의 요구 압박이 더 커질 텐데,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불안해했다.
 
여러 피해자 가족이 조 전 코치의 구속수사를 바라는 탄원서를 쓰지 못한 것도 이것이 알려졌을 때 조 전 코치를 비호하는 빙상계 인사들로부터 유무형의 불이익을 받을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과연 선 판사가 이런 피해자 가족의 사정을 살펴봤을지 의문이다.
 
[엠스플의 눈] ‘조재범 영장기각’, 국가대표와 국회의원은 다른가

 
법조계에선 “‘피의자의 직업과 가족 등 사회적 유대관계 등의 사정을 종합하면이라는 영장기각 사유도 좀체 이해할 수 없긴 마찬가지”라는 반응을 보인다. 
 
국내 최고의 스포츠 분야 법률가로 꼽히는 박지훈(법무법인 태웅) 변호사는 피의자의 직업이 무엇이냐, 가족간의 결속력이나 피의자가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느냐, 피해자가 그간 사회적으로 어떤 기여를 했느냐를 종합적으로 살펴보곤 한다그러나 조 전 코치의 직업이 빙상 지도자였고, 그가 폭행한 사람들이 전부 자신이 가르친 선수들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오히려 ‘사회적 유대관계에서 문제가 있던 사람’이란 판단을 우선적으로 내리는 게 맞지 않았을까 싶다고 밝혔다.
 
덧붙여 박 변호사는 요즘 세상에 주거가 일정하지 않은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나. 거기다 피해자도 아니고, 가해자 지인들이 낸 선처 탄원서를 영장 기각의 사유로 꼽았다? 이건 좀체 납득하기 힘든 말이라며 영장 기각 사유 중에 '피의자가 범행을 대체로 인정했다'는 말이 있는데 '대체로 인정한다'는 얘기는 뒤집어 말하면 '중요 혐의 부분은 인정하지 않고,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이건 불구속 사유가 아니라 오히려 구속 필요성이 있다는 뜻이란 말로 선 판사의 영장 기각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엠스플의 눈] ‘조재범 영장기각’, 국가대표와 국회의원은 다른가

 
조재범 전 코치는 한 대가 아니라 여러 대,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 한 번이 아니라 상습적으로 어린 선수들을 폭행한 지도자다. 경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도 ‘상습 폭행 혐의’가 아니라 ‘상습 상해 혐의’였다.
 
주기적으로 때렸을 뿐만 아니라, 그 폭행으로 어린 선수들이 다쳤기에 ‘상습 상해 혐의’를 적용한 것이었다. 게다가 지금까지 경찰 조사를 받지 않은 ‘알려지지 않은’ 피해자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선의종 판사의 ‘잘못을 뉘우쳤다’는 한마디로 조 전 코치는 이미 사회적으로 용서받은 사람이 돼버렸다. 한 피해자 부모 측은 이렇게 허탈해했다.
 
조 전 코치가 재판을 통해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치고,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았을 때, 그때 가서 용서해주려고 피해자 부모들이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에도 용기를 내 합의해주지 않은 겁니다. 하지만, 지금 어떻게 됐습니까. 피해자와 부모들이 용서하기도 전에, 아니 재판도 열리기 전에 영장담당 판사가 알아서 먼저 조 전 코치의 죄를 사해줘 버리지 않았습니까. 영화 ‘밀양’에서 볼 수 있던 장면을 현실에서 보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대한민국 스포츠계의 '지도자 폭력'은 더는 관행이 아니다. 그 자체가 범죄이자 스포츠계에서 영구히 추방해야할 적폐다. 스포츠계의 많은 인사와 선수, 부모들이 조 전 코치의 구속 여부를 관심 있게 지켜본 것도 대한민국 스포츠계의 대표적 범죄이자 적폐인 ‘지도자 폭력’에 큰 경종을 울리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반대였다. 법은 ‘잘못을 뉘우치고, 일부 피해자와 합의하고, 많은 지인의 탄원만 받으면’ 여러 명의 선수를 수년 동안 때리고 짓밟아도 구속이 되지 않는다는 걸 많은 이에게 확인시켜줬다. 
 
참고로 5월 초 법원은 김성태 의원의 턱을 가격한 김 모 씨에게 “도망갈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하룻만에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당시 김 씨가 합의 볼 사람은 모 의원 한 명 뿐이었고, 폭행도 일회였다. 김 씨의 탄원을 위해 그의 아버지가 나섰고, 무엇보다 김 씨는 자신의 행위를 후회하고, 사과했다. 그러나 구속을 피할 수 없었다.
 
수년 동안 여러 명의 선수를 폭행했고, 합의봐야할 피해자도 많은 조 전 코치는 반면 6월 20일 구속영장이 청구됐지만, 25일에서야 영장이 기각됐다. 주말을 고려해도 영장 기각까지 5일이나 걸렸던 셈이다.
 
국회의원은 때리면 바로 구속이고, 국가대표 선수는 때려도 시간을 두고 불구속되는 현실. '대한민국 법은 과연 공정한가'란 이 지긋지긋한 질문을 또 한 번 해야한다는 게 허무할 뿐이다.영장 기각과 관계없이 '조재범 코치 상습 상해 사건'을 철저히 수사 중인 경기남부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에 박수를 보낸다.
 
박동희, 이동섭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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