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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스플 야구인] 정희준의 ‘어퍼컷’과 프로야구, 부산

일병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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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28 (수) 19:04

                           
[엠스플 야구인] 정희준의 ‘어퍼컷’과 프로야구, 부산

 
[엠스플뉴스]
 
# 어퍼컷. 권투 용어다. 상대 선수의 턱을 밑에서 위로 올려치는 공격법이다. 적중도는 떨어진다. 그러나 정확히 때리면 사정은 달라진다. 충격이 엄청나다. 부산 동아대 정희준 체육학과 교수는 ‘딱’ 어퍼컷 같은 인생을 살았다.
 
교수 시절. 그는 “이길 가능성이 낮은 일에 왜 굳이 참전하냐”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런다고 체육계가 바뀔 거 같냐”는 핀잔을 듣는 건 일상이었다. “다른 교수들과 등질 필요가 있느냐”는 우려는 덤이었다. 
 
하지만, 소귀에 경 읽기였다. 정희준은 그런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이길 가능성이 낮은 일에 더 참전했고, 다른 교수들과 더욱 등을 졌으며, 체육계가 변하길 더더욱 열망했다. 
 
2009년 5월도 그랬다. 당시 프로야구는 KBO(한국야구위원회) 전 사무총장의 ‘복귀설’로 뒷말이 무성했다. 이 인사는 뇌물로 긴급체포돼 구속된 전력이 있었다. 사무총장 시절 선수협 결성을 극렬하게 반대했으면서도 뒤에선 정치인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해 유죄를 받은 이였다. 
 
이런 인사가 다시 KBO 사무총장으로 복귀하겠다고 움직일 때, 무슨 영문인지 야구계는 말이 없었다. 되레 일부 언론은 이 인사를 가리켜 “SK, KIA 창단을 이끈 탁월한 능력의 소유자” “KBO 행정력을 한 단계 높인 실무형 총장”이란 찬사를 하기에 바빴다. 한술 더 떠 모 교수는 “이 정도 허물없는 사람이 어딨느냐”며 무정한 세상을 훈계했다.
 
그때 예외가 있다면 정희준이었다. 정희준은 자신의 기명 칼럼 ‘어퍼컷’을 통해 이 인사의 KBO 복귀를 통렬하게 비판했다. “비리 경력이 훈장이냐”며 발끈했고, “KBO는 도대체 낯짝도 없는가”라고 되물었다. 그의 칼럼에 갑자기 정신이 들었는지, 없어졌던 ‘낯’이 생겼는지 이 인사의 KBO 복귀는 좌절됐다. 어퍼컷이 성공한 것이었다.
 
[엠스플 야구인] 정희준의 ‘어퍼컷’과 프로야구, 부산

 
어퍼컷엔 성역도 없었다. 2010년 10월. 한국은 ‘F1 코리아 그랑프리’에서 울려 퍼지는 경주차의 굉음에 취해 있었다. 
 
이 대회를 유치한 이들은 “F1 대회가 열리는 7년 동안 총 4조9천억 원의 경제적 파급효과와 1만4천 명의 고용유발 효과가 기대된다”며 “한 번 대회가 열릴 때마다 1천억 원의 흑자가 예상된다”는 말로 국민을 현혹했다. 이 집단 현혹의 최전선에서 마취제를 뿌린 이들 가운덴 교수, 언론도 빠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때도 정희준은 마취제를 뿌리는 대신 ‘초’를 치는데 바빴다. 정희준은 방송, 칼럼을 통해 “F1 대회의 경제적 효과가 지나치게 과장됐다”며 “탄탄한 준비 없이 ‘묻지마 유치’에만 치중할 때, 결국 우릴 기다리는 건 비극적 결말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그런 정희준을 가리켜 마취제를 뿌리기 바빴던 이들은 “관심종자” “반대를 위한 반대만 일삼는 불만분자” “애국심이 부족한 백면서생”이란 비난으로 응수했다.
 
이번엔 어퍼컷이 적중하길 바라지 않았다. 엄청난 국고 손실을 바라는 국민은 없을 테니까. 하지만, 이번에도 정희준이 옳았다. F1은 한국 메가 스포츠 이벤트사에 영원히 기록될 전무후무한 ‘뻥튀기 쇼’로 끝났고, 전남도는 지사가 바뀐 이후로도 ‘뻥튀기 쇼’의 후유증을 앓아야 했다.
 
물론 정희준은 자신의 예언이 맞았다고 기뻐하지 않았다. 반대였다. 올림픽, 아시아경기대회, 월드컵, F1 등 메가 스포츠이벤트의 영광에만 집중해선 안 됩니다. 메가 스포츠 이벤트의 저주에 대해 더 심각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영광은 지금 세대의 몫이지만, 저주는 다음 세대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F1의 장밋빛 허상을 더 적극적으로 알리지 못한 제 책임이 큽니다.

[엠스플 야구인] 정희준의 ‘어퍼컷’과 프로야구, 부산


정희준은 평생 학자의 길을 걸었다. 그가 선 강단은 ‘학교 안’만이 아니었다. ‘학교 밖’ 강단에도 열심히 섰다. 체육계의 부조리에 맞섰고, 체육계의 거악들을 상대로 싸웠다. 체육계의 힘없는 이들이 도움을 청하면 그 어디라도 달려갔고, 체육계의 이슈가 터지면 그 자신이 스피커가 됐다.
 
그런 사이 그는 ‘일감(연구 용역)’을 따내는 수완이 부족한 교수로, ‘동업자 정신’이 부족한 학자로, 부서지지 않을 ‘체육계’란 거대 바위에 부질없는 달걀을 던지는 돈키호테로 불렸다.
 
그랬던 정희준이 ‘강단’에서 내려왔다. 11월 6일 부산관광공사 사장으로 취임한 것이다. 이름난 체육학과 교수이던 정희준이 부산관광공사 사장으로 변신했다는 건 뜻밖의 소식이었다. 그는 그 자리에 가기 전 이런 고민을 털어놨었다.
 
아직 말하기 힘듭니다만, 지금까지 살아왔던 인생과 조금 다른 인생을 살아갈 수도 있을 거 같아요. 과연 제가 잘할 수 있을까 하루에도 수십 번씩 고민 중입니다. 만약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정말 잘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커요. 교수 때처럼 목숨 걸고 해야할 것 같습니다. 제가 책임져왔던 학생들보다 훨씬 많은 분의 삶과 미래가 걸린 일일 테니까요.
 
체육학과 교수와 부산관광공사 사장이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그는 교수 시절 스포츠뿐만 아니라 문화, 관광 연구에도 천착했다. 그가 오랫동안 몸담았던 시민단체도 ‘문화연대’였다. 특히나 그가 ‘국내 최고의 메가 스포츠 이벤트 전문가’로 불려온 건 스포츠의 관광 자원화, 지역 스포츠 이벤트의 문화 자원화와 관련해 오랜 시간 연구를 거듭해온 덕분이다.
 
‘탁상행정식 관광 정책’ ‘일회성 이벤트 위주의 관광’ ‘고비용 비효율의 한탕식 관광’ 대신 ‘실용주의 관광 정책’ ‘콘텐츠와 사용자 중심의 관광’ ‘지속발전 가능한 관광’으로 부산관광의 비전이 바뀔 것으로 기대하는 것도 그간 정희준이 주창해온 내용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정희준은 ‘목숨 걸고 해야 하는 일’을 위해 동아대에 휴직서 대신 사직서를 냈다. 19년 동안 섰던 동아대 강단을 제 발로 물러난 것이다. 정치에 참여하는 교수는 돼도, ‘정치 교수’는 되지 않겠다는 평소 신념을 지킨 것이다. 
 
부산관광공사 사장이 되고서 정희준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부산의 핵심 현안인 ‘오페라 하우스 건립’ 발표가 아니었다. ‘보여주기식 발표’ 대신 그가 가장 먼저 한 건 모바일 티켓 한 장으로 사흘간 부산, 울산, 경남의 관광지 12곳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부산광역투어패스’ 상품 개발 발표였다.
 
정희준의 어퍼컷이 정체된 부산관광이 다시 눈을 뜨고, 비상하는데 신선한 충격파로 작용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야 석학을 잃은 대한민국 체육계도 그의 부재를 덜 아쉬워하지 않을까 싶다.
 
박찬웅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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