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장에 문서까지 준비해온 무리뉴 "지금은 날 싫어하는 사람들이 기뻐할 시기"
[골닷컴] 한만성 기자 = 조세 무리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 감독이 여러 가지 의미에서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 역사상 가장 기억에 남을 만한 기자회견을 연출했다.
맨유는 지난 14일(한국시각) 세비야를 상대한 2017-18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 리그 16강 2차전 홈 경기에서 1-2로 패하며 8강 진출에 실패했다. 세비야는 구단 역사상 단 한 번도 챔피언스 리그 8강 진출을 이룬 적이 없었던 팀인 데다 올 시즌 현재 스페인 라 리가에서 4위 발렌시아에 승점 11점 차로 밀린 채 5위에 머물러 있다. 세비야에 패한 맨유는 현실적으로 올 시즌 프리미어 리그 우승이 이미 좌절됐으며 리그컵에 이어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줄줄이 탈락했다. 이제 맨유가 우승을 노려볼 만한 대회는 FA컵이지만, 이마저도 토트넘과 첼시 등 강팀을 넘어야 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세비야전이 끝난 후 여론은 무리뉴 감독을 겨냥해 날 선 비판을 쏟아냈다. 그는 올 시즌 결과는 물론 내용조차 형편이 없다는 질타를 받고 있다. 무리뉴 감독이 과거 포르투, 첼시, 인테르, 레알 마드리드에서 부임 후 두 번째 시즌에는 매번 메이저 대회(자국 리그, 혹은 챔피언스 리그) 우승 트로피를 차지했지만, 올 시즌 맨유에서는 이에 실패하자 이제는 그의 시대가 끝났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무리뉴 감독은 18일 브라이턴과의 FA컵 8강 경기를 앞두고 열린 공식 기자회견장에서 자신을 향한 비난에 맞대응하겠다는 작정을 한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최근 몇 년간 자신의 경력과 맨유의 팀 성적이 적힌 종이까지 들고나와 이를 격양된 목소리로 조목조목 읽어내려갔다. 무리뉴 감독은 맨유에서 자신이 물려받은 '유산(heritage)'이 부족했다며 지금 처한 어려움을 이겨내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시작된 무리뉴 감독의 독백(?)은 정확히 12분13초 동안 이어졌다. 일단 그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번역해 말하도록 노력해보겠다. 다만 내 포르투갈어는 거의 완벽하지만, 영어 실력은 완벽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내가 말해주고 싶은 단어를 그대로 번역해 말하자면, 팀마다 '축구 유산(football heritage)'이라는 게 있다. 감독은 새로운 팀을 맡을 때마다 유산을 물려받는다. 마지막으로 맨유가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차지한 건 2008년이다. 이후 맨유는 2012년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고, 2013년에는 내가 맡은 레알 마드리드에 홈에서 패해 16강에서 탈락했다"고 말했다.
무리뉴 감독은 "맨유는 2014년 8강에서 탈락했으며 2015년에는 아예 유럽 무대에 진출하지 못했다. 2016년 챔피언스 리그로 돌아갔으나 조별 리그에서 탈락해 유로파 리그로 갔는데 또 탈락했다. 그러나 2017년에는 나와 함께 유로파 리그 우승을 하면서 챔피언스 리그로 돌아가게 됐다. 이후 2018년 나와 맨유는 챔피언스 리그에서 획득이 가능한 승점 18점 중 15점을 따내며 조 1위로 16강에 진출했으나 홈에서 패해 탈락했다. 맨유는 7년간 감독 네 명을 선임하며 한 번은 아예 본선 진출에 실패했고, 두 번은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다. 이게 축구 유산"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무리뉴 감독은 맨유의 최근 프리미어 리그 성적을 언급하며 이를 올 시즌 우승을 눈앞에 둔 맨체스터 시티와 비교했다.
무리뉴 감독은 "맨유가 리그 우승을 차지한 건 2013년이다. 이후 4년간 7위, 4위, 5위, 6위에 머물렀다. 4년간 최고 성적이 4위다. 이게 축구 유산이다. 맨체스터 시티는 7년간 최악의 성적이 4위였다. 이 사이 두 번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올 시즌을 포함하면 세 번이다. 이것 또한 축구 유산이다. 또 무엇이 유산인지 아는가? 오타멘디, 데 브라위너, 페르난지뉴, 실바, 스털링, 아구에로는 예전부터 그 팀에 있던 선수들이다. 이것도 축구 유산이다. 맨유는 선수를 내보내야 했다. 그러나 내가 맨유를 떠난 후 이 팀을 맡는 감독은 루카쿠, 마티치, 데 헤아를 물려받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무리뉴 감독은 "20년 전 나는 축구계에서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다. 나는 그저 누군가의 아들이었다. 그러나 이제 55세가 된 나는 재능과 정신력으로 지금의 내가 됐다. 나를 싫어하는 많은 사람들은 지난 수년간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내가 이기고, 또 이겼기 때문이다. 내가 마지막으로 우승을 차지한 게 불과 10개월 전이다. 최근에는 리버풀, 첼시를 이겼으나 세비야전에서 패했으니 그들이 다시 기뻐할 때가 온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종교관이 있다. 다른 이들의 행복에서 나도 행복을 얻어야 한다는 게 내 가치관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행복하다"며 마무리했다.
잉글랜드 언론은 무리뉴 감독의 이번 기자회견을 두고 역사상 이러한 기자회견을 본 적이 없다며 놀랍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심지어 'ESPN UK'는 무리뉴 감독의 이번 기자회견이 지난 2009년 1월 알렉스 퍼거슨 맨유 감독과의 신경전에 휘말린 라파 베니테스 리버풀 감독이 미리 문서를 작성해 들고나와 이를 읽는 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한 기이한 사건과 견줄 만하다며 의아함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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