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병혁의 야구세상] 정지택 신임 KBO 총재, 규약대로만 해도 성공한다
(서울=연합뉴스) 천병혁 기자 = 이달 말 퇴임하는 정운찬 KBO 총재는 2018년 1월 취임하면서 "프로야구의 산업화를 이끌어 '인센티브'를 받고 싶다"고 밝혔다.
KBO리그 가치를 높이는 전문 경영인이 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2018년에는 KBO 조직 강화와 제도 개선 및 144경기 경쟁력 강화, 2019년 중계권 가치 평가와 마케팅 수익 활성화, 2020년에는 메이저리그 성공의 바탕이 된 MLB.com처럼 KBO.com으로 통합마케팅 기초 다지기 등 장기 로드맵까지 제시했다.
그러나 지난 3년간 정 총재의 공약은 아쉽게도 별로 이뤄지지 않았다.
KBO 조직 및 리그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던 2018년에는 정 총재가 국회 국정감사에서 당시 선동열 대표팀 감독을 깎아내린 탓에 거센 역풍을 맞아 취임 초기부터 신뢰성이 크게 떨어졌다.
2019년에는 KBO가 네이버·카카오·KT·LG유플러스·SK브로드밴드가 참여한 통신·포털 컨소시엄과 5년간 총 1천100억원(연평균 220억원)에 유무선 중계권 계약을 했다.
KBO는 계약 금액이 역대 최고액이라고 홍보했지만, 정작 젊은 층의 뜨거운 호응을 받으며 대세로 떠오른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KBO리그 경기가 아예 차단됐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올해는 정 총재가 미국 메이저리그의 '효자 상품'인 MLB.com을 본떠 'KBO.com'을 만들겠다고 공언한 시점이었다.
그러나 KBO.com은 시작도 못 했고 10개 구단의 통합 마케팅은 첫걸음조차 떼지 못했다.
게다가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한 탓이기도 하지만 KBO리그는 정 총재 취임 이후 3년 연속 관중 감소세로 돌아서며 내리막길을 걸었다.
정운찬 총재가 자신의 공약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저런 핑계가 있을 수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이사회에서 자신의 의견과 KBO의 사업 계획을 적극적으로 전달하고 관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10개 구단 사장들로 구성된 이사회는 한국 프로야구 최고의사결정기구다.
총재가 이사회 의장이긴 하지만 KBO가 어떤 일을 추진하더라도 10개 구단 사장들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10개 구단 사장들은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다.
특히 아무리 프로야구 발전에 도움이 되더라도 자신 구단에 조금이라도 손해가 미칠 것 같으면 기를 쓰고 반대한다.
결국 정운찬 총재는 '구단 이기주의'의 벽을 넘지 못했다.
원래 KBO 총재가 그렇게 허약한 자리는 아니다.
KBO 규약 제2장 3조에는 '총재의 직무'로 ▲ KBO를 대표하고 이를 관리 및 통할한다 ▲ 직무수행을 위해 필요한 경우 특별위원회를 설치할 수 있다 ▲ 리그를 관리하고 KBO가 이를 주최하게 한다고 명시했다.
또 4조 '지시, 재정 및 재결' 조항에서는 총재의 권한을 폭넓게 강조했다.
▲ 총재는 리그의 발전과 KBO 권익 보호를 위해 리그 관계자에게 필요한 지시를 내릴 수 있다 ▲ 리그 관계자 사이에 분쟁이 있는 경우 중재할 수 있는 재정 권한을 가진다 ▲리그 관계자가 규약을 위반할 경우 적절한 제재를 할 수 있다 ▲ 총재의 지시, 재정, 재결 및 제재는 최종 결정이며, 모든 리그 관계자에게 적용되는 구속력을 가진다 등이다.
KBO 총재는 리그를 대표하는 직무를 지니면서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권한도 부여됐다.
그런데도 정 총재는 자신의 직무와 권한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다.
이사회에서 KBO 정책을 반대하는 구단을 효율적으로 설득하지 못했고, 문제를 일으킨 구단에 엄중한 징계도 하지 못했다.
오랜 기간 구단주 대행을 맡았던 정지택 신임 총재는 정운찬 총재보다 구단 내부 사정에 밝을 것이다.
그렇다고 '구단 이기주의'를 극복하고 이사회를 잘 끌고 갈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다만, KBO 규약에 명시된 총재의 직무를 잘 이해하고, 규약에 명시된 총재의 권한을 제대로 활용한다면 3년 후 실패했다는 평가는 받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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