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색하지 않나요?” 아직은 카메라가 부담스러운 듯, 그녀는 포즈를
취하면서 사진기자에게 몇 번이고 괜찮은지 물었다. 자신을 ‘도전가’라고 설명하는 이 젊은 선수는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태평양을 건너왔다. V-리그에 데뷔하자마자 군계일학(群鷄一鶴)처럼 돋보이는 어도라 어나이(22, IBK기업은행)다. 어나이는
한국에서 프로배구선수로서 첫 커리어를 시작했다.
가을이 무르익어가는 11월초, 뛰어난 공격력으로 배구팬의 마음을 사로잡은 어나이를 만났다.
열정의 한국코트, 뛰면 기운나요
지난
5월 V-리그 여자부 트라이아웃 당시 이정철 IBK기업은행 감독은 장고 끝에 어나이를 선택했다. 그동안 트라이아웃을 통해
IBK기업은행에서 활약한 외국인 선수는 월등히 뛰어난 선수가 되어 팀을 떠났다. 2015~2016시즌 맥마혼(미국)은 정규리그
여자부 MVP를 차지했고, 맥마혼에 이어 입단한 메디(미국) 역시 두 시즌 동안 리그 최고의 에이스로 활약했다.
이정철
1라운드는 만족스러웠나요.2승
감독의 눈은 이번에도 틀리지 않았다. 어나이는 프로리그 경험이 없는 신인 선수였지만 이 감독은 그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했다.
어나이는 시즌 초반 실력으로 자신의 가치를 입증해냈다. 1라운드 득점 1위(146점), 공격 5위(성공률 40.61%), 퀵오픈
1위(성공률 54.17%) 등 주요 지표에 이름을 올렸다.
3패. 우리가 생각한 이상적인 결과는 아니었어요. 하지만 모든 팀들과 한 번씩 경기를 해보면서 스타일을 파악한 시간이었죠.
1라운드는 각 팀의 전력에 맞춰 어떤 플레이를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기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다음을 바라봐야죠.
상대하기 까다로웠던 팀이 있다면요.
1라운드
마지막에 상대했던 KGC인삼공사. 2라운드도 KGC인삼공사와 경기로 시작해요. 적어도 우리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는 알기 때문에
지난 경기보다는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장담했던 대로 어나이는 2라운드 KGC인삼공사와의 경기에서 39득점을 올리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V-리그 첫 인상은 어땠나요.
굉장히 경쟁적이라는 인상을 받았어요. 다섯 팀을 상대하면서 6라운드까지 반복해서 경기를 하니까요. 한 팀과 여러 번 경기를 치르기 때문에 더 자세히 분석해서 경기에 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탈리아 트라이아웃 당시 소감이 궁금해요.
트라이아웃 기간 동안 많은 경기와 경쟁이 있었어요. 해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뭐 어때? 해보자!’ 하는 마음가짐으로 임했죠. 운 좋게 마지막으로 뽑혀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초보 프로선수로서 어려움은 없나요.
분명 그동안 해왔던, 기대해왔던 것과 다른 부분이 있기는 해요. 가장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은 몸 관리입니다. 긴 시즌을 대비해 코트 밖에서도 몸을 잘 관리하고 유지하려고 해요.
한국 진출을 결심한 계기는요.
이전부터
주변 선수들에게 한국 리그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어요. 에이전트와 협의해본 결과, 한국 리그와 스타일이 잘 맞을 것
같았습니다. 한국에서 외국인 선수가 많은 공을 때려야 한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어요. 처음으로 프로 커리어를 시작하기에 알맞은
곳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누가 한국 리그에 대해 말해줬나요.
한국
리그를 경험한 메디 리쉘, 에밀리 하통, 테일러 심슨 같은 선수들이요. 이 선수들과는 NCAA(전미대학체육협회)
‘PAC-12’라는 같은 지구 소속이었어요. 같이 경기를 뛰었던 선수들이라 많은 이야기를 해줬어요. 메디와는 지난 여름 미국
국가대표팀에서 같이 훈련하기도 했고요. 테일러의 여동생인 개비와 제가 절친한 친구 사이이기도 해요.
한국 팬들은 어때요.
팬들이 정말 많고 열정적이에요. 항상 소리치고 응원해줘요. 심지어 우리가 지고 있을 때도요. 에너지로 가득 차 있어서 저도 기운이 나요. 충성스런 팬들도 많고요.하와이와 가족은 나의 뿌리, 나의 힘
어나이의
SNS 계정에는 가족사진이 가득하다. 어나이가 경기에 출전하는 날, 중계 카메라에는 꼭 그를 응원하는 가족들이 잡힌다. 하와이
출신인 ‘어나이 패밀리’는 가족 사랑으로 유명하다. 시즌 시작 전에는 남자친구, 시즌 초반엔 어머니와 고모네 가족, 이번엔
아버지까지 그를 응원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어나이는
가족들의 응원이 대단해요.저를 위해 가족들이 한국으로 휴가를 왔어요. 번갈아가며 응원하러 와주니 힘이 납니다. 그들이 있기에 제가 있는 거죠.
스포츠와 친근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아버지는 미식축구, 어머니는 네트볼 선수였다. 대를 이어 그의 형제자매들도 엘리트 선수로
자랐다. 이복오빠 둘은 미식축구 선수 출신이고 언니인 파티 어나이는 배구 선수로 지난해 독일 프로 리그에서 뛰었다. 남동생
브래들리 어나이는 어나이가 졸업한 유타대학교에서 미식축구 선수로, 여동생 브래디나 어나이 역시 유타에 위치한 브리검영 대학교에서
투포환 선수로 활약하고 있다.
하와이 고향은 어떤 곳인가요.
평화롭고
한적한 곳이에요. 여기서 유년 시절을 보냈고 친구들도 이곳에 있죠. 제가 다닌 고등학교도 집에서 10분 거리였어요. 집 주변에 큰
교회가 있어요. 종교적 믿음이 강한 작은 마을이에요. 이웃끼리 유대감도 강하고요. 바다도 가까워서 여기서 많은 시간을 보냈어요.
서핑을 했거든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파도를 즐기기 위해 많이 타는 건 쇼트보드인데, 저는 키가 너무 커서 쇼트보드가 맞지
않았어요. 그래도 롱보드는 열심히 탔답니다.
그리운 음식은 없나요.
고향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음식도 생각나네요. 무스비(햄과 밥으로 만든 하와이식 초밥)가 그리워요.
남자친구 이야기를 물어도 될까요.
그럼요. 대학에서 만난 친구예요. 지금도 유타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고요. 농구선수입니다. 사실 제가 먼저 좋아했어요. 당시에 그가 “왜 나한테 잘해줘?”라고 묻더라고요. 반년 정도 흐른 뒤에 교제를 시작했어요.
배구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가족
모두가 스포츠와 관련이 있다 보니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운동을 접했어요. 고등학교 입학 전까지는 6년 동안 농구선수로 뛰었죠.
그 때 한 코치가 저를 보더니 ‘긴 팔을 갖고 있으니 배구를 해보라’고 추천해줬어요. 그 때 이후로는 배구만 하고 있습니다.
배구의 매력이 뭘까요.
배구 이전에는 농구를 했잖아요. 농구는 골을 넣기 위해 조준하는 게 더 중요해요. 신체적으로 모든 힘을 실어 공을 때릴 수는 없어요. 하지만 배구는 다르죠. 온 힘을 다해 공을 다루는 게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요.힘있는 공격수 될거예요IBK기업은행 선수들은 그를 ‘나이’라고 부른다. 어나이가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나이야, 힘내!” 연습량이 많기로 유명한 IBK기업은행에서 그의 가장 큰 버팀목이 되어주는 건 바로 옆에 서 있는 동료다.팀의 장점이 뭐라고 생각하나요.경험
있는 선수들이 많고 젊은 선수들도 함께 뛴다는 거요. 김수지 선수는 베테랑이고 리더십이 강해요. 김희진 선수도 경험이 많죠.
우리 팀은 공격력이 뛰어나요. 강하고 다양한 서브를 갖고 있죠. 수비도 빼놓을 수 없어요. 점점 손발이 맞아가는 중입니다.
선수로서 개인적인 목표는요.
계속해서 팀이 이길 수 있도록 점수를 내는 거요. 지속적으로 실력을 발휘하는 선수가 됐으면 좋겠어요. 점점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더 똑똑한 선수, 힘 있는 공격수가 되도록 노력할거예요.
어떤 선수와 가장 친한가요.
팀에서 선수들과는 두루두루 어울려요. 그중에서도 염혜선과 가장 많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아요.
염혜선, 이나연 세터와의 호흡은 어때요.
둘은 다른 스타일을 갖고 있어요. 높이, 타이밍, 토스 스타일이 다른 뿐 둘 다 좋은 선수라고 생각해요. 집중력이 강하고 기술적으로도 훌륭하죠.
응원가는 마음에 드나요.
네! 정말 맘에 들어요. 이런 응원가를 들어본 건 처음이에요. 제가 직접 고른 곡이 이렇게 변신할지 몰랐어요. 굉장히 기발하고 창의적이라고 생각해요.
김재영 통역과는 어떻게 지내나요.
서로 놀리는 사이요(웃음). 재영이 상당히 어려보이지 않나요? 나이 차이가 거의 안 느껴져요. (김재영 통역은 30세로 어나이와는 8살 차이가 난다)항상 새로운걸 배우고 싶어요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눠 보니 코트 밖의 어도라 어나이는 스물둘의 평범한 젊은이였다. 경험해보고 싶은 것도 많고, 도전해보고 싶은 것도 많은 그다.한국 전통 문화에 관심 있다고요.고등학교
때부터 한국 문화를 알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고모가 유타에 계시는데 주변에 아시아 출신들이 많아요. 한·중·일 다 있지만 대부분
한국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미국에 있을 때부터 한국 음식도 먹어보고 한국 친구들과 어울렸어요. 자연스럽게 아시아 문화를 겪으며
관심이 생긴 것 같아요.
한국 음식은 입에 맞나요.
(김재영 통역 왈 “어나이는 거의 한국인 수준이에요!”) 된장찌개, 김치찌개에 밥 말아 먹는 걸 좋아해요. 비빔밥, 불고기 등 대부분의 음식을 먹을 수 있어요. 순대도 좋아합니다.
K-POP도 즐기나요.
물리치료를 받으면서 자주 들어요. 숀이 부른 ‘Way Back Home’을 처음 들었는데 정말 좋아졌어요.
팬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노래가 있다면요.
아리아나 그란데의 음악이요. 여러분, 아리아나의 새로운 싱글 앨범이 나왔어요! 꼭 들어보세요!
훈련이 없을 때는 무엇을 하나요.
영화도 보고 쇼핑도 해요. 나가서 산책하면서 신선한 공기 쐬는 것을 좋아해요. 죽전, 수지 같은 젊은이들의 거리에 나가기도 하고요. 가끔은 혼자 버스를 타고 돌아다니기도 합니다.
‘나’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요.
‘도전가’라고 설명하고 싶어요. 하와이 출신인 만큼 다른 문화에 개방적이에요. 항상 새로운 걸 배우고 싶어 하고요. 지금도 이렇게 태평양을 건너와 있잖아요.
유타대학 다닐 때 전공이 건강관리학이었다고요.
2학년
때 까지는 예비 간호학 과정을 수강했는데 잘 안 풀렸어요. 3학년이 되면서는 이미 프로 배구 선수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상황이었고요. 그래서 건강관리학으로 전공을 바꾸고 교육학을 부전공했어요. 병원을 관리하는 경영자가 되는 코스였어요. 환자들과
커뮤니케이션하고 건강을 관리해주는 전문가요. 아마 배구 선수가 되지 않았다면 사업을 하면서 건강 클리닉을 운영했을 것 같아요.
석사 학위 공부도 계속 했을 거고요.
대학시절 에피소드가 궁금해요.
대학생활은 ‘크레이지’ 했어요. 운동선수들끼리 친했고 파티도 많이 했어요. 서로 응원해주기도 하고 재미난 도전도 많이 했어요. 어리고, 패기 넘쳤고, 미쳐있었죠. 친구들과 야간 산행을 했던 게 기억에 남네요.
20년 후 모습은 어떨 것 같나요.
20년 후면 42살이네요. 그 때 쯤 새로운 가족이 곁에 있다면 좋겠어요. 결혼하고 아이는... 두 명 정도?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열정적으로 응원해주셔 감사합니다. 시즌이 끝날 때 까지 계속해서 응원해주세요. ‘힘내!’글/ 권소담 기자 사진/ 문복주 기자(위 기사는 더스파이크 12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2018-12-14 서영욱([email protected])저작권자 ⓒ 더스파이크.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