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 판공비 올린 선수협회 이사회, 결자해지도 그들의 몫
"관행이라니…그 관행을 이대호 회장과 집행부가 만든 것" 지적도
(서울=연합뉴스) 하남직 기자 =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회장의 판공비를 2천400만원에서 6천만원으로 올리고, 법인카드 사용이 아닌 개인 계좌로 입금하는 부적절한 방법을 허락한 건 선수협회 이사회다.
이대호(롯데 자이언츠) 회장이 "관행"이라고 해명한 판공비 액수와 지급 방법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것도, 선수협회 이사회뿐이다.
선수협회 회장 이대호는 2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리베라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판공비 논란에 관해 해명했다.
이대호 회장은 "2019년 2월 스프링캠프 도중 진행된 선수협회 순회 미팅에서 약 2년간 공석이던 회장을 선출하자는 의견이 나왔으나 후보로 거론되던 대부분의 선수가 운동에 집중하고자 난색을 보였다"면서 "이에 회장직 선출에 힘을 싣고자 회장 판공비 인상에 대한 의견이 모였다"며 설명했다.
이어 "2019년 3월 18일 개최된 임시이사회에서 참석한 선수 30명 중 과반의 찬성으로 기존 연 판공비 2천400만원에서 연 6천만원으로 증액하는 것이 가결됐다"고 전했다.
당시 임시이사회에 참석했던 선수 중에는 판공비 인상에 반대한 이도 있었다.
그러나 "2년 공석인 회장 선임을 더 미룰 수는 없다", "선수협회 회장이 느낄 부담감을 금전적인 부분에서라도 보상해야 한다"며 판공비 인상에 찬성한 선수도 있었다.
투표 결과는 '찬성 쪽'이 더 많았다는 걸 의미한다.
이사회가 판공비 인상과 개인 계좌로 현금 지급 등을 결의해, 선수협회 회장은 6천만원에 관한 증빙 자료를 제출할 의무까지 사라졌다.
세금 공제한 금액을 받아, 이대호 회장은 법과 규정을 위반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손해를 감수하고 선수들을 위해 봉사한다'는 명분은 사라졌다.
선수협회와 이대호 회장 측의 시선대로 6천만원이 판공비가 아닌 '급여 성격'이었다고 해도 수뇌부에 대한 실망감은 줄지 않는다.
시간과 심리적인 부담 등을 떠안아야 하는 '현역 회장'에게 금전적인 손해까지 감수하게 할 수는 없다.
하지만 '판공비 6천만원'은 회원들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수치다.
한 선수는 "꽤 많은 선수가 선수협회 회장이 급여를 받는다는 걸 몰랐다. 출장비 정도만 받는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대호 회장 자신도 "판공비 금액이 과하다는 생각은 들었다. 한 달에 세후로 400만원을 조금 넘게 받았는데 (직접 사용해보니까) 부족한 액수는 아니다"라고 전했다.
사실 과거 선수협회를 휘청이게 한 사건을 떠올리면, 이번 사건은 해프닝 정도로 치부할 수 있다. 그러나 사건 후 자정 노력을 한 선수협회 선배들을 떠올리면 실망감이 더 커진다.
2011년 선수협회는 권 모 당시 사무총장의 횡령 의혹으로 내홍을 겪었다. 일부 회원들은 횡령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는 권 모 사무총장을 위해 탄원서를 쓰기도 했다.
당시 사무총장은 2012년 5월 실형(징역 4년과 추징금 23억3천만원)을 선고받았다.
2012년 1월 선수협 신임 집행부는 '판공비는 반드시 카드로 결제하고, 증빙이 없는 판공비는 부인한다'고 사무총장과 회장의 자금 관련 권한을 규제했다.
투명성을 최고의 가치로 내세운 선수협에서 일한 한 인사는 "8년 전에 큰 사건을 겪고, 바로 잡은 일을 다시 과거로 되돌린 것이다. 이대호 회장은 물론이고, 판공비 인상과 현금 지급을 결의한 이사회가 모두 반성하고 책임질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이 인사는 이대호 회장이 말한 "(판공비 현금 지급이) 관행이었다"는 말에도 적극적으로 반박했다.
그는 "2012년에 사라진 잘못된 관행을 이번 집행부가 새롭게 만든 것 아닌가. 이게 어떻게 관행인가. 새로운 부정 축재의 방법이다"라고 말했다.
판공비 논란을 부른 이대호 회장과 김태현 사무총장은 사의를 표했다.
새 집행부를 구성하면 선수협회 이사회가 열린다.
선수협회 이사회가 이번에도 '금전 관리 기준'을 팬들의 눈높이도 되돌리지 않으면, 선수협회와 자꾸 멀어지는 팬심을 되돌릴 수도 없다. "이쪽 분야에 관해 잘 몰라서"라는 해명도 더는 통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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