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국 최고의 기억은 '2009 전북 우승'…최악은 '2002 WC 제외'(종합)
12년 누빈 '전주성'서 은퇴 기자회견 "몸은 건재…정신 약해져 은퇴"
(전주=연합뉴스) 안홍석 기자 = 'K리그의 전설' 이동국(41·전북 현대)은 2009년 전북에서 첫 우승을 일군 기억을 23년간 이어온 선수 인생 최고의 기억으로 꼽았다.
반면, 2002년 한·일 월드컵에 나서지 못하는 등 두 차례에 걸친 '월드컵 불운'은 그에게 최악의 기억이면서 '보약'이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이동국은 자신이 12년간 누빈 '전주성'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28일 은퇴 기자회견을 했다.
그는 50여 분 동안 담담하게 축구 인생을 정리했다. 다만, 아버지와 관련한 말을 할 때는 잠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이동국은 38년 K리그 역사상 '최고'라고 불릴 만한 활약을 펼쳤다.
특히 전북 유니폼을 입은 뒤로는 K리그 우승 7회,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1회 등을 함께 하며 '제2의 전성기'를 보냈다.
국가대표로도 굵은 족적을 남겼다.
월드컵에 두 차례 출전하는 등 A매치(국가대표팀 간 경기) 105회(역대 10위)에 출전해 33골(역대 공동 4위)을 넣었다.
이동국이 프로 무대에 뛰어든 이후 각급 대표팀과 소속팀에서 지금까지 뛴 공식 경기 숫자는 총 844경기이며 통산 득점은 344골이다. 둘 다 역대 한국 선수 중 최고 기록이다.
하지만 늘 웃기만 한 건 아니다.
거스 히딩크 전 축구대표팀 감독으로부터 외면받아 2002년 한·일 월드컵을 TV로 지켜만 봐야 했고, 2006년 독일 월드컵 본선을 앞두고는 무릎 부상으로 대표팀에서 낙마했다.
두 차례 해외 진출에 도전했으나, 모두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고 꾸준히 달렸고, 결국 누구보다 오래, 행복하게 그라운드를 누빈 선수가 됐다.
그는 "좌절할 때마다, 나보다 더 크게 좌절한 사람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보다는 내가 행복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이겨냈다"고 말했다.
전북은 주말인 1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대구FC와 K리그1 시즌 최종전을 치른다. 전북의 통산 8번째 우승을 확정할지도 모를 이 경기가 이동국의 마지막 경기다.
다음은 이동국과 일문일답.
-- 은퇴 결심 이유는.
▲ 많은 분이 부상 때문에 그만둔다고 짐작하시겠지만, 몸 상태는 (회복해서) 아주 좋다.
정신이 몸을 지배한다고 생각해왔다. 예전에는 부상이 있어도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 장기 부상으로 하루하루 조급해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좋은 몸 상태가 아닌데도 욕심내서 (경기에) 들어가려고 했고, 사소한 것들도 서운해했다.
몸이 아픈 것은 이겨낼 수 있다. 그러나 정신이 나약해지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진지하게 고민 오래 한 끝에 은퇴를 결심했다.
-- 떠나는 기분은 어떤가. 현역 생활을 길게 한 비결은.
▲ 만감이 교차한다. 서운한 느낌도 있고 기대되는 것도 있고…. 지인들이 전화해서는 '1년 더 뛰어도 될 것 같다'는 말씀을 해주시더라.
멀리 보지 않고 바로 앞 한 경기만 바라보고, 후배들 앞에서 솔선수범하며 생활하다 보니 내 나이를 잊어버렸다. 지금도 내 나이를 들으면 깜짝깜짝 놀란다.
프로 선수라는 직업은 선후배를 떠나 '경쟁'이다.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이 프로에서 오래 갈 수 있는 비결이다. 단점을 보완하기보다 장점을 극대화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남들이 따라오지 못하는 장점을 만들면 프로에서 롱런할 수 있다.
-- 최고의 순간과 최악의 순간 다섯 개씩 꼽아달라.
▲ 두 개씩만 꼽겠다. (웃음)
포항에서 처음 프로 유니폼 받았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구단에서 33번과 내 이름이 마킹 된 유니폼을 선물로 줬을 때도 떠오른다. 그때 며칠 동안이나 그걸 입고 잤다.
프랑스 월드컵 이전에 내가 한국 축구계의 가장 큰 이슈였다. 그때 기억은 아직도 강하게 남아있다. 하루하루가 기뻤던 순간이다. 2002년 월드컵 경기에 내가 무조건 있으리라 생각한 시절도 있었다.
2009년 전북에 입단해 첫 우승컵을 들었을 때도 최고의 순간이다. 내 축구 인생에서 가장 화려했던 시간이 아닐까.
2002년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포함되지 않았을 때…. 그때의 기억이 오래 운동을 할 수 있게 한 보약이 된 것 같다. 잊지 못할 기억이다.
2002년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2006년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2달은 남기고 부상으로 놓쳤을 때가 가장 아쉽다. 너무 힘들었다. 기억하고 싶지 않다.
-- 좌절을 이겨냈기에 더 크게 빛나는 선수가 됐다. 지금 이 순간 좌절을 겪고 있을 사람들에게 조언 부탁한다.
▲ 좌절할 때마다, 나보다 더 크게 좌절한 사람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보다는 내가 행복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보니 스트레스 없이 생활할 수 있었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이겨냈다.
-- 유독 멋진 골 장면을 많이 연출했다. 최고의 골은.
▲ 독일과 평가전에서 넣은 발리슛 골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발이 공에 맞는 순간의 임팩트, 그 찰나의 순간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 불멸의 기록을 많이 세웠다. 그중 가장 애착이 가는 기록은.
▲ 내가 뛴 공식 경기가 800경기가 넘는다는 걸(844경기) 오늘 아침에야 알게 됐다, 1, 2년 잘해서는 만들 수 없는 기록 아닌가. 10년, 20년 꾸준히 잘했기에 가능한 기록이다. 좋은 경기력으로, 많은 경기를 소화했다는 점을 보여주는 이 기록이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다.
-- 손흥민을 제외하면 이동국 이후에 걸출한 토종 공격수가 잘 나오지 않고 있다.
▲ 아시아 리그에서 스트라이커로 살아남는 건 참 힘든 일이다. 모든 팀이 외국인 공격수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성적과 바로 연관이 되는 포지션이어서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좋은 스트라이커를 키우려면 출전시간을 보장해주면서 구단이 계획을 세우고 키워야 한다. 나도 실력보다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차근차근 성장하면서 외국인 선수와 경쟁하는 힘을 기를 수 있었다.
그래도 최근 21세 이하 선수 의무 출전 규정이 잘 자리 잡아서 아마 5~10년 안에는 대형 스트라이커가 나올 것 같다.
'오버 42세 룰'이 생기면 내가 1년 더 현역 생활을 할 생각이 있다. (웃음)
-- 최강희 감독은 본인에게 어떤 분인가.
▲ 쓸쓸하게 은퇴하는 선수가 많다. 이렇게 많은 분(취재진) 앞에서 떠날 수 있게 해주신 분이 최 감독님이다. 평생 감사드리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갈 것이다.
-- 23년 동안 그라운드에서 최고의 파트너는 누구였나.
▲ 한참 고민해야 하겠지만, 김상식 코치님은 꼭 넣어야 한다. 20년간 알아 왔고, 특히 2009년 전북에 함께 와서 함께 시간을 보내며 많은 것을 배웠다.
2009년 우승 당시 멤버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 것 같다. 에닝요, 루이스…. 당시 전북은 우승을 바라볼 수 없는 팀이었는데, 똘똘 뭉쳐서 좋은 경기를 해 우승을 이뤄냈다. 당시의 전북 공격진이 (내가 경험한) 가장 강한 공격진이 아니었을까 싶다.
-- 전북이라는 클럽은 어떤 의미인가.
▲ 포항에 가면 길 안내 내비게이션을 켠다. 전주에서는 그냥 운전한다. 전주가 나에게는 제2의 고향이다. 전북에서 얻은 것이 너무 많아서,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렵다. 전주 팬들을 보면 그냥 친숙하다.
-- 앞으로의 계획은.
▲ 일단 대구전만 생각하고 있다. 그 이후에 뭘 할 때 내가 가장 행복할지 고민해 보겠다. 쉬면서 축구 외에 잘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는지 찾는 시간도 가지려고 한다. A급 지도자 과정 밟고 있지만, 아직 지도자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는 건 아니다.
-- 참 오랜 시간 칭찬도 많이 듣고 비난도 많이 받았다. 힘들 때 도와준 분은.
▲ 안티 팬들조차 내 팬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땀 흘러왔다. 어젯밤 늦게까지 부모님과 대화를 나눴다. 30년 넘게 축구선수 이동국과 함께하신 아빠도 은퇴하신다고 하셨다. 그 말씀에 가슴이 찡했다. (한동안 울음) 부모님께 고생하셨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부모님 얘기만 하면 왜 눈물이 날까. 오늘 안 울려고 했는데 망했다.(웃음)
-- 몸 상태가 완전치 않은 상태에서 2007년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했다. 후회 안 되나. 그 나이로 돌아간다면 다시 하겠나.
▲ 그래도 그때로 돌아가면 도전했을 것이다. 해 봤으니까 이렇게 말도 할 수 있는 거다. 후배들에게도 해외 무대에 도전해 보라고 늘 얘기한다. 2005~2006년 몸 상태에서 갔다면 더 잘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은 있다.
-- 우승을 목전에 두고 치르는 리그 최종전이 은퇴 경기다. 어떤 각오인가.
▲ 뭔가 짜놓은 것처럼 흘러가고 있는 것 같다. 마지막 경기에서 우승컵을 들고 은퇴하는 선수가 과연 몇 명이나 되겠나.
그럴 수 있다면 정말 멋진 일이 될 것이다. 슬퍼서 우는 게 아니라, 기쁨의 눈물이라면 얼마든지 울 수 있을 것 같다.
승점 3점을 가져오면서 우승하겠다. 동료들과 우승컵을 들어 올릴 수 있도록 잘 준비하고 있다.
-- 팬들께 남길 말은.
▲ 준비가 안 된 느낌도 든다. 과분한 사랑을 주셔서 너무도 감사하다. 마지막까지 골 넣는 스트라이커로 남겠다. 기대 저버리지 않겠다.
[email protected]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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