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이영표 해설위원이 월드컵 개막에 앞서 스페인의 침몰을 예측하고 있다. /KBS 방송화면 캡처

[스포츠서울닷컴 | 박순규 기자] 공은 둥글다. 축구 경기를 전망할 때 흔히 쓰는 표현 가운데 하나다. 객관적 전력은 서로 차이가 나지만 어디로 구를지 모르는 공처럼 승부는 꼭 전력대로 가려지지 않는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한 번에 4점을 낼 수 있는 야구에서는 뉴욕 양키스 명포수 출신 요기 베라의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란 명언을 자주 사용하지만 축구에서는 1점차 승부가 많아 이변을 기대해 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만큼 축구 경기의 승패를 100% 예측하기란 어렵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개막과 함께 이영표 KBS 해설위원의 ‘작두 해설’이 화제로 등장했다. 변수가 많은 월드컵 경기에서 누구도 예측하기 힘들었던 ‘무적함대 스페인의 침몰’을 점쳤기 때문이다. 이영표 위원은 KBS 브라질 월드컵 특집 프로그램에서 “스페인이 강한 것은 인정하지만 스페인 축구에 이미 많은 팀들이 익숙해졌다. 이젠 결국 상대 팀이 스페인 축구를 알고, 어떻게 수비하는지도 알고 있다"며 네덜란드 우세를 점쳤다.

FIFA(국제축구연맹) 랭킹 1위이자 디펜딩 챔피언 스페인이 14계단이나 아래인 15위 네덜란드에 첫 경기에서 패배한다고 예측하기는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세계 최고의 수문장으로 꼽히는 카시야스를 비롯해 막강 미드필드진을 구축하는 이니에스타 실바 알론소 부스케츠가 건재한 가운데 종말을 예언했으니 정말 돗자리를 깔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지난 대회 결승에서 스페인에 0-1로 패한 네덜란드가 세대교체를 하며 4년 동안 준비를 했다고 하지만 세계 대부분의 언론이나 전문가들조차 깜짝 놀랄만한 대 역전극이 펼쳐지리라고는 예측하지 못했다.

14일 네덜란드가 스페인을 상대로 거둔 5-1 대승은 스포츠토토 배당률에서도 얼마나 예측하기 힘들었는가를 알 수 있다. 우승 후보인 스페인을 네덜란드가 압도적인 점수 차로 이기자 경기 결과를 예측하고 배당을 받는 토토에서는 최고 54만353.9배의 대박이 이례적으로 발생했다. 이날 열린 3경기의 스코어를 모두 맞추는 '트리플' 게임에서 4명이 100원씩 베팅해 각각 5403만원을 받게 됐다. 그야말로 ‘밑져야 본전’식의 투자가 대박을 낳은 셈이다.

해외 유명 베팅업체들 역시 다를 바가 없다. 스페인과 네덜란드 B조 첫 경기를 앞두고 내건 배당률을 보면 우승 후보 스페인에 기울었다. 영국에 본사를 둔 bet365는 스페인의 승리에 1.80배의 배당률을 책정했다. 반면 네덜란드의 승리에는 5.50배를 책정해 산술적으로 스페인이 승리할 가능성을 네덜란드의 승리 가능성보다 3배 이상 높게 예상했다. 이들 베팅업체들은 첫 경기가 끝나자 두 팀에 대한 배당률을 다음 경기부터 다시 조정해야 했다.

이영표 위원은 다음날 C조의 일본과 코스타리카 경기 결과까지 정확하게 예측해 ‘작두 해설’이란 새 별명을 얻었다. 그는 “머리는 일본의 승리를 말하고 있지만 가슴은 코트디부아르의 승리를 염원하고 있다”며 “코트디부아르가 2-1로 승리할 것이라고 예상해 족집게 해설의 진수를 보였다. 선수 시절에는 영리하게 볼을 차 ‘초롱이’란 애칭을 가진 그는 항상 연구하고 노력하는 자세를 계속 잃지 않아 결국 남보다 앞서 정확한 결과를 끌어냈다.

브라질로 출국하기 전에 만난 허정무 월드컵선수단장의 말이 떠오른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감독을 맡았을 때다. 분위기 쇄신을 위해 주장을 바꾸기로 하고 마음 속으로 박지성을 낙점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주장은 나이 많은 선수가 관례적으로 맡았다. 그래서 박지성보다 나이 많은 선수들을 불렀다. 이영표는 박지성보다 4살이 더 많다. 이영표에게 네가 주장을 할래?라고 물으니 대번에 상황을 짐작하고 박지성을 추천했다. 참 영리한 선수다.”

그 이영표가 다시 한국 승리를 예언했다. 18일 대망의 H조 러시아전을 앞두고 “70분까지만 0-0으로 버티면 우리에게 모험을 걸어볼 만한 기회가 올 것”이라고 대표팀 선전을 내다봤다. 네덜란드 잉글랜드 캐나다에서 선수 생활을 한 경험이 현재를 분석하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보인다.

세계 축구흐름에 능통하고 점유율 축구의 종말을 내다 본 그이기에 더 한국의 우세 전망이 비록 조건부이지만 믿음이 간다. ‘애국 전망’이 아니라 ‘작두 전망’임을 믿고 싶다. 공은 둥그니까. 이 위원님, 다음에는 축구 기자를 한번 해 보시지요? 한국 축구 기사 수준이 올라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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