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미드필더 부스케츠가 19일 칠레와 경기에서 결정적인 기회를 놓친 뒤 괴로워하고 있다. 스페인은 칠레에 0-2로 지며 조별리그 탈락이 확정됐다. /유튜브 영상 캡처

[스포츠서울닷컴 | 심재희 기자] '무적함대' 스페인이 무너졌다. 조별리그 2경기에서 모두 패하면서 가장 먼저 탈락의 쓴 잔을 들었다. 180분 동안 필드골이 하나도 없었다. 충격적인 결과에 고개를 숙인 '디펜딩 챔피언'이다.

스페인의 탈락을 두고 '티키타카의 종말'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티키타카' 자체가 위력을 잃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티키타카'가 구식이 되어버린 것이 아니라, 스페인이 제대로 된 '티키타카'를 구사하지 못했다고 봐야 옳다.

네덜란드전과 칠레전에서 스페인은 매우 지쳐 보였다. 팀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선수들이 지난 시즌 마지막까지 강행군을 치러 체력 회복을 하지 못했다.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우승 경쟁이 막판까지 치열했고,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스페인 팀들이 치른 것이 결과적으로 독이 됐다. 선수들이 전체적으로 많이 뛰지 못했고, 순간적인 움직임도 둔했다.

축구에서 팀이 갖춰야 할 요소를 크게 3가지로 본다. 체력, 전술, 기술이다. 체력을 가장 먼저 내세우는 이유는 기본 중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체력이 떨어지면 전술도 기술도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스페인은 기본 중의 기본인 '체력'에서 상대에 크게 밀렸다.

'티키타카'는 탁구공이 왔다 갔다 한다는 뜻을 담고 있는 스페인어다. 스페인은 탁구에서 빠르게 푸시를 주고받듯이 짧은 패스로 공격 전개를 하며 유로 2008, 2010 남아공 월드컵, 유로 2012를 연속해서 제패했다. 간결하고 정확한 연결과 함께 마무리까지 빛났다. 그러나 이번 대회에선 깔끔한 맛이 전혀 없었다. 짧은 패스로 경기를 풀어가는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패스의 속도와 전개가 예전만 못했다. 탁구의 푸시가 아닌 커트가 오고 가는 것처럼 플레이 자체가 느리고 밋밋했다.

스페인의 '밋밋한 티키타카'의 원인은 '체력 고갈'에서 찾을 수 있다. '티키타카'의 핵심은 공을 가지고 있지 않은 선수들의 움직임이다. 공을 중심으로 플레이가 이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공을 갖지 않은 선수들이 빈 공간을 찾아 부단히 움직이면서 짧은 패스를 주고 받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선수들이 쉴 새 없이 움직이며 어떤 상황에서든 순간적으로 수적인 우위에서 플레이를 할 수 있는 것이 티키타카의 최대 강점이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 스페인은 많이 뛰지 못하면서 살아있는 빈 공간을 상대보다 많이 선점하지 못했다. 결국 죽은 공간에서만 패스가 돌았고, 과거보다 횡패스와 백패스가 많이 나왔다. 그 결과 공격의 파괴력은 현저하게 떨어졌다.

상대 팀들의 '티키타카 적응도'가 이전보다 많이 높아진 것도 스페인이 몰락한 이유 가운데 하나다. '티키타카'는 왕성한 체력을 기본으로 엄청나게 뛰고 패스를 돌리면서 상대의 체력을 갉아먹는다. '티키타카'의 함정에 빠진 팀은 공을 따라 허둥대다가 체력이 소진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그런 부분들에 대한 분석이 철저히 이뤄졌고, '효율적인 압박'과 '빠른 역습'으로 '티키타카'에 대비하는 '해결책'이 나왔다. 이번 대회에서 네덜란드와 칠레가 스페인을 무너뜨릴 수 있었던 것도 '티키타카 격파법'의 기본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결국 스페인은 '밋밋한 티키타카'를 너무 믿었다. 체력이 뒷받침 되지 않는 상황에서 '티키타카'를 펼치다 자신들이 더 지치는 꼴이 되고 말았다. 연료가 부족한 무적함대가 허망하게 월드컵 2회 연속 우승의 꿈을 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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