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호(오른쪽)가 18일 2014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 H조 1차전 러시아와 경기에서 후반 23분 선제골을 터뜨린 뒤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 대한축구협회 제공

[스포츠서울닷컴ㅣ이준석 인턴기자] 골을 확인한 그 순간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동안 겪었던 서러움도 한순간에 날렸다.

2부리그 출신 이근호(29·상주 상무)가 처음 밟은 월드컵 무대에서 그 누구보다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출전 시간은 38분에 불과하지만 짧고 굵은 활약을 펼쳤다. 이근호는 18일(이하 한국 시각) 쿠이아바의 아레나 판타나우에서 열린 2014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 H조 1차전 러시아와 경기에서 후반 23분 한국에 과감한 중거리 슈팅을 터뜨렸다. 경기 뒤 "오랫동안 간직해 온 꿈을 드디어 이뤘다"면서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설레는 마음을 표현했다.

이근호가 월드컵에 출전해 첫 골을 터뜨리기까진 많은 인내와 노력이 필요했다. 그는 부평고 시절 주전 공격수로 활약한 뒤 인천에 입단해 경험을 쌓았다. 처음부터 주전으로 뛰진 못했다. 2005년에 5경기, 2006년에 3경기에 나왔을 뿐이었다. 묵묵히 임무를 수행한 결과 2006년 2군 리그에서 최우수선수로 뽑히며 빛을 보기 시작했다.

2군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기회를 잡았다. 이근호는 2007년 대구로 이적하며 1군 리그에 발을 들여놓았다. 2007년에 10골, 2008년 13골을 넣으며 K리그를 대표하는 공격수로 성장했다. 2008시즌이 끝난 뒤 유럽 진출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무산되는 아픔을 겪었다. 하지만 이근호는 좌절하지 않으며 J리그로 방향을 틀어 주빌로 이와타와 감바 오사카 등에서 경험을 쌓았다. 대표팀에도 꾸준히 이름을 올렸다. 2008년에 열린 동아시아 축구선수권대회와 제29회 베이징 올림픽에서도 뛰었다. 2010년에도 동아시아 축구선수권대회에도 발탁되며 국제무대 경험을 차곡차곡 축적했다.

허정무(59·현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감독이 이끄는 2010 남아공 월드컵 대표팀 최종 명단에도 이름을 올릴 가능성이 높았다. 당시 이근호는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3골을 몰아치며 한국의 본선 진출을 이끈 주인공이었다. 하지만 최종 명단 발표를 앞둔 시점에서 몸 상태에 문제가 생겼다. 절정에 이르렀던 경기력이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크나큰 시련이 찾아왔다. 남아공 월드컵 26명 명단까지 포함됐으나 마지막 순간에 '탈락자 3인'에 포함되며 눈물을 삼켜야 했다.

2012시즌 K리그 울산으로 돌아온 이근호는 뛰어난 골 결정력과 저돌적인 돌파력을 발휘하며 팀에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우승 트로피를 안겼다. 28살이라는 다소 늦은 나이에 상주 상무로 입대해 굵은 땀방울을 흘렸다. K리그 챌린지 특성상 주목을 받진 못했지만 주어진 임무에 온 힘을 기울였다. 상주의 우승을 이끌었으며 득점왕도 거머쥐었다. 홍명보(45) 감독의 호출도 줄기차게 받았다. 1기에는 승선하지 못했지만 2기에서 7기까지 계속해서 이름을 올린 끝에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브라질 월드컵 최종 명단에 발탁됐다.

온갖 고초를 겪으며 월드컵 무대 입성이라는 꿈을 이룬 이근호는 "월드컵 출전은 오랫동안 바랐던 일이다. 정말 기쁘다"며 짧고 굵은 소감을 남겼다. 홍명보 감독이 주전 공격수로 박주영을 낙점했지만, 이근호는 전혀 기죽지 않았다. 결국 세계인의 시선이 쏠려 있는 월드컵이라는 큰 무대에서 기어이 일을 내며 인생 역전을 일궈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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