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KBO의 트렌드, '강한 2번 타자'
KBO의 강한 2번 타자의 시초가 된 LG트윈스 시절 '캐논히터' 김재현
전통적인 야구의 타순은 ‘출루율이 높고 빠른’ 1번 – ‘작전 수행 능력이 있는’ 2번 – ‘타점 올리는 능력이 뛰어난’ 3번 – ‘찬스에 가장 강한’ 4번 – ‘장타가 많은’ 5번 순으로 이어진다. 이 타순은 2번 타자는 1번을 득점권으로 보내는 능력을 크게 요구하여 타격보다는 작전수행 능력이나 주루 능력 등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과거의 야구 만화에서 1번이 출루-2번은 번트 패턴을 자주 볼 수 있다. 현실에서도 2번이 번트를 잘 대는 타자라는 공식이 통했었다. (국가대표에서는 정근우-이용규가 흔히 보였던 모습)
세이버메트릭스(야구통계학) 신봉자들은 낡은 고정관념을 깨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왔고, 새로운 대안으로 ‘강한 2번 타자’ 배치론이 등장했다. 잘 치는 타자가 타석에 많이 들수록 좋지만 1번으로 나갈 때 앞에 주자가 없을 확률이 높아 가장 효율적인 타순 배치는 2번 타자가 강타자여야 한다는 것이다.
2010년대 들어 메이저리그에서 받아들여졌고, 이제는 빅리그에서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됐다. 마이크 트라웃(LA 에인절스), 애런 저지(뉴욕 양키스), 크리스티안 옐리치(밀워키 브루어스) 등이 익숙한 2번 타순 강타자들이다.
도루나 번트 능력이 떨어질지라도 높은 타율이나 파워를 보장하면서 주루 능력도 좋은 소위 호타준족형 타자나 그에 준하는 선수를 배치하여 작전 대신 타격으로 1번 타자를 불러들이는 것이다.
왼쪽에서 페르난데스(두산), 김현수(LG), 김하성(키움), 전준우(롯데) 순서
2020시즌 현재 ‘강한 2번 타자’ 바람이 KBO리그를 휩쓸고 있다.
6일 기준 잠시 주춤하지만, 여전히 뜨거운 타격감을 보이는 두산의 페르난데스를 필두로, 김현수(LG), 전준우(롯데), 김하성(키움) 등 이전까지는 클린업 트리오에서 활약하던 타자들이 2번 타자로 맹활약하고 있다.
실제 KBO에 늘어난 ‘강한 2번 타자’의 효과는 기록으로도 드러난다. 이번 시즌 타순별 타격성적을 보면 사실상 2번부터 5번까지를 중심타선으로 봐도 무방하다.
KBO리그에서 가장 많은 타수(AB)를 기록한 4명의 2번, 5번 타순의 타자들
2번타자의 홈런수(26개)와 타점(109점)은 5번타자의 홈런수(15개)와 타점(77점)보다 월등히 앞서고 있다.
이제 ‘클린업 트리오’ 개념이 2번에서 4번 타자를 일컫는 것이라 해도 될 정도다. 특히 강한 2번 타자를 기용한 팀들의 성적이 대부분 상위권이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반대로 생각하면 왜 모든 팀이 이런 유행을 따라가지 않을까. 이는 팀별로 사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강한 2번 타자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한 방을 갖춘 확실한 4번 타자가 필수다. 지난해 류중일 LG감독이 김현수 2번 카드를 고민하다 포기한 이유는 4번 타자 역할을 할 선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는 라모스라는 든든한 자원이 생겼다.
두산은 김재환, 롯데는 이대호, 키움에는 박병호라는 거포가 버티고 있기에 강한 2번 타자로 쏠쏠한 재미를 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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