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파 결승전.
결과는 예상 밖으로 첼시가 아주 큰 차이로 우승을 차지했다. 대부분 막상막하의 경기 내용을 기대했지만, 생각보다 첼시에게 우승은 어렵지 않아보였다.
아스날은 전술적으로 이미 우위에 서지 못 하고 계속 고전했다. 마치 '가위 바위 보"에서 진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 경기의 판도를 결정 지은 그들의 전술은 무엇이었을까?
-아스날, 컨셉은 확실했다
포메이션을 보자마자 딱 눈에 띄는 부분은 백쓰리라는 점과 외질이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선발로 기용됐다는 점이었다.
좀 처럼 외질을 잘 기용하지 않는 에메리 감독인데, 외질이 선발로 나온 것이다. 분명 전술적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의 컨셉은 확실했다.
좌우 윙백을 높게 올려 측면을 통해 낮고 빠른 크로스, 또 점유율 축구를 좋아하는 사리의 첼시를 상대로 발 빠른 라카제트와 오베마양, 그리고 외질을 통해 역습을 전개하고자 함이었다.
경기초반 이는 먹혀드는 듯 했다. 아스날은 좌우 윙백을 높게, 그리고 터치라인 가까이 넓게 포진시키고, 쟈카의 킥을 이용한 시원시원한 좌우 전환 플레이를 통해 측면에서 많은 크로스 찬스를 만들었다.
또 후방에서는 토레이라와 쟈카, 그리고 세명의 센터백이 든든하게 후방에서 버텨주고 있어 첼시의 역습을 수비하는 데에도 큰 무리가 없을 것 같았다.
-왜 아스날은 참혹한 결과를 받아들여야 했을까?
이날 외질은 전술적인 의미에서 '모 아니면 도'였다.
왜냐하면 외질은 수비시 수비가담을 많이 하지 않고 역습에 치중하기 위해, 수비시 토레이라와 쟈카보다 조금 더 높은 위치, 좀 더 자세하게는 미드필더와 공격수 사이에 위치했다.
이로 인해 아스날의 수비 형태는 5-2-1-2가 됐는데, 이것이 아스날에게 수비적으로 큰 불균형을 초래했다.
5-2-1-2라는 말은 즉, 최종 수비 라인 앞에 미드필더가 2명이 있다는 얘기고, 이 미드필더 둘이서 2선의 공간을 모두 커버해야 한다는 말이었는데, 이는 사실상 거의 불가능한 소리다.
그렇다고 역습이 좋았던 것도 아니었다.
아스날은 역습 상황에서 오바메양과 라카제트가 측면으로 움직임을 가져가면서 외질의 볼 배급과 연계 플레이를 통해 역습을 전개하는 것을 기대했지만, 첼시는 이를 간파하고 좌우 풀백을 높게 올리지 않았다.
이로 인해 아스날이 역습을 전개할 때 첼시는 포백과 수비형 미드필더 조르지뉴가 떡하니 버티고 있었고, 아스날의 전개는 시원시원하게 전개되지 못 했다.
-시간이 갈수록 더 무너졌다.
아스날은 전반전에 한 골, 후반전에 3골을 허용했다.
그럴만도 했다. 5-2-1-2 형태로 쟈카와 토레이라 둘이서 미들 수비 라인을 커버하느라 체력 소모가 엄청났고, 후반전으로 갈수록 당연히 아스날의 수비 밸런스 또한 무너져 갔다.
첼시 입장에서는 갈수록 쉬워졌다.
위 그림처럼 상대 미들 수비 라인의 좌우 공간을 이용하여 공격을 전개하면 바로 상대의 최종 수비가 나오니 마음껏 찬스메이킹을 시도할 수 있었다.
또 측면을 통해 공격을 전개하는 것도 쉬웠다. 아스날의 미드필더가 2선에서 제대로된 커버를 해주지 못하니, 첼시의 미드필더나 풀백이 오버래핑을 한번 시도하면 바로 위협적인 찬스로 직결됐다.
에메리는 상황을 뒤집기 위해 승부수를 던졌다.
왼쪽 센터백으로 뛰고 있던 나초 몬레알을 빼고 미드필더인 귀엥두지를 투입해 포백으로 포메이션을 전환했고, 체력 소모가 막심하던 토레이라를 빼고 공격수인 이워비를 투입했다.
교체 후 경기 양상이 조금 바뀌는 듯 보였다.
아스날은 컨디션 좋은 이워비를 통해 측면에서 몇 차례 좋은 장면을 만들었고, 최대한 공격적인 플레이를 펼쳤다. 하지만 결과는 크게 긍정적이진 않았다.
좋은 찬스메이킹을 많이 시도했지만, 결정적으로 박스 안에서의 소득이 별로 없었다.
결정력도 아쉬웠고, 첼시가 아스날의 전매특허인 측면에서의 낮고 빠른 크로스에 대한 수비가 워낙 좋았기 때문에 아스날은 1득점에 그치고 말았다.
첼시도 경기의 온도를 더했다. 체력이 소진된 페드로를 빼고 윌리안을 투입했다.
윌리안의 투입은 공격적인 플레이를 펼치고 있는 아스날을 상대로 역습하기 딱 좋은 옵션이었다. 이에 아스날은 퍼붓는 만큼 많이 얻어 맞았다.
-가위 바위 보 : 사리 승리
결국 우승은 첼시가 차지했다.
전술적으로 누가 좋았다, 나빴다 할 것 없이 두 팀 모두 상당히 준비된 모습이었지만, 결국 가위 바위 보는 사리가 승리했다.
사실 에메리의 플랜 B가 아쉬웠다.
원래 교체를 통해 결과를 뒤바꾸기로 유명한 에메리 감독인데, 이번 경기에서는 교체 타이밍도 아쉬웠고, 그 변화 또한 아쉬웠다.
전반전이 끝나자마자 선수와 전술을 수정했다면 결과는 분명 달라졌을 것이다.
반면 사리 감독은 칭찬을 받아 마땅하다. 아스날의 전술 특성을 제대로 파악했고, 이에 알맞은 전술 처방을 내렸다.
그들은 승리할 자격이 있었다.
기고: 박원교
댓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