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10일 05시 08분에 베스트로 선정 되었습니다.♡
'포스트모템(사후기념사진)'
이라 하여 영국과 프랑스 등 일부에서
1800년대에서 1900년대 초까지
죽은지 얼만 안된 사람을 유족과 함께
혹은 단독으로 사진촬영하여
기념으로 남기는 풍습이 유행했음.
사진기 발명 이전에는 그림으로 그려서 남겼는데
그림을 그리는 동안 시신이 변형하고 부패하기에
사진기가 나오면서 자연스럽게 사진으로 남기는
방식으로 발전됨.
당시에는 유아사망률 등 각종 사망률이 높았고
사고를 당하거나 질병에 걸려도
손 쓸 수 있는 도리가 없었으므로
그냥 집에서 임종을 맞이 했음.
당시 죽음은 다소 친밀한 것이었음.
그리하여 죽음의 공포를 잊고 고인추모의 의미로
사랑스런 가족의 마지막이자 편안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오래도록 기념으로 간직하고자
그림이나 사진으로 남기는 것이
자연스러운 풍습으로 자리매김하게 됨.
위 사진은 어느 정도 익숙한 사진으로
가운데 사람이 죽은 딸.
위 사진은 아이가 생전 좋아하던 인형을 껴안고 찍은
사진으로 편안하게 자는 모습처럼 보인다.
당시 이러한 사진을 찍을 때 주안점은 마치
살아있는 듯한 모습으로 최대한 구현하여
찍는 것인데 얼핏보면 정말 살아있는 듯한 모습이나
자세히 보면 시신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는게 섬뜩함.
그리고 살아있는 모습으로 구현하기 위해
여러 기법을 동원함.
위 사진은 가운데 아이가 사망자인데 가만히 보면
눈동자가 다소 부자연스럽다.
죽으면서 눈동자가 위로 올라가 사진에 안나타나므로
살아있는 모습처럼 나타내기 위해
사진상 흰자에 눈을 그렸음.
특정 포즈는 인위적으로 살릴 수 있지만 눈동자는
어찌하기가 힘들다. 위 사진도 왼쪽 아이가 눈이
부자연스러운데 마찬가지로 그려 넣음.
여담으로 위 사진 속 가구나 아이들이 입은 옷들은
당시 상당히 고풍스러운 것인데 상류층 자제들로
사후기념사진은 주로 어느 정도 형편이 되어야 가능했고
서민은 대체로 저런 기념사진 남기기가 형편상
어려웠다고 한다.
그럼 위 사진에서도 누가 사망한 사람인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가운데 여자아이)
당시 CG가 있는 것도 아니고 펜으로 그린 것이기에
부자연스러울 수밖에 없지만
최대한 살아있는 모습처럼 남겨야 했다.
위 아이는 생후 1년 3개월만에 사망한 남자아이인데
죽은지 시간이 좀 지나서 생기가 많이 없기에
과한 볼터치와 과한 눈화장을 했음.
그러나 자세히 보면 왼쪽 팔이 이미 부패가 진행되었음.
나중에는 조금더 발전하여 서있는 모습도 연출하였다.자세히 보면 시신 발 뒤에 시신을 서서 고정시키는스탠드장치가 보인다.
대충 이런 모습?
그렇다면 이 사진 역시 경직된 자세로 서있는저 남녀가 죽은 아이들일까? 당시 사진촬영은 지금처럼셔터누름과 동시에 바로 찍히는 것이 아니라몇 분 동안이나 고정된 자세로 포즈를 취해야한다.하지만 살아있는 사람은 몇 분을 말그대로 죽은 사람처럼미동도 없이 있을 수가 없다. 조금의 미동이 있었기에저 어두운색 옷을 입은 남녀의 피사체는흔들린 모습으로 남았다.선명한 모습으로 고요하게 자고 있는 뒤에밝은 색 옷을 입은 막내가 죽은 아이이다.
나름 신경쓴 뒷 배경, 헤어스타일, 자연스러운 표정,자연스러운 피부톤...단순히 렌즈를 응시하고 있는 경직된 모습이 아닌마치 장미꽃을 손질하는듯한 무언가를 하고 있는 모습은생동감마저 살리고 있다.위 사진은 사후기념사진의 기술 및 연출력이나날이 발전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위 사진도 상당히 연출력이 높다.누가 살아있는 사람이고 사망자인지언뜻봐서는 분간할 수 없다.하지만 자세히 보면 알 수 있다.왼쪽이 언니이고 오른쪽은 동생이다.언니와 동생의 손 피부톤을 보면 알 수 있지만동생의 피부톤이 좀더 어둡다.부패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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