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후 2년만에 파양된 소년
2017년 08월 12일 02시 40분에 베스트로 선정 되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장애인 보호시설에서 아이들을 돌봤던 정희씨
정희씨가 남편과 결혼을 결심한것도 그 아이들이 남편을 좋아한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애들 중 넷이나 먹습니다.
행복이를 빼고는 모두 세살에서 아홉살 사이에 입양을 했는데, 부모로부터 버려져 외롭게 지낸 기억이 마음의 상처로 남아있는 탓입니다.
사실 우리아이들은 모두 입양이 잘 되지 않던아이들이었습니다.
태어날 때 부터 심하게 휘어있던 다리가 원인이었습니다.
수술 후에도 제대로 걸을 수 없었고 사랑이를 입양하려는 가족도 없었습니다.
늘 그 흉터가 안쓰러운 엄마
이미 딸 셋을 입양했고 이번엔 좀 아픈아들
하지만 정희씨는 사랑이를 데려오며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엄마는 사랑이를 보조 신발없이 걷게 하겠다고 매일처럼 함께 연습을 하더니
마침내 정상적으로 걷는게 가능해졌습니다.
다리 힘을 길러주기 위해 시작했던 스케이트 운동
이제 사랑이는 학교의 지원을 받아 쇼트트랙 선수의 꿈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가지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고 어느 아이하나 쉽게 자라주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맏이 몫을 톡톡히 하는 큰 아들 요한이.
하지만 요한이야 말로 엄마를 가장 많이 울렸습니다.
친엄마가 베트남 이주노동자였던 요한이는
4살때 입양을 갔다가 한달만에 파양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상처로 퇴행성발달장애를 앓게 되었습니다.
요한이를 다섯번째로 입양했으니 우리에겐 그만한 내공은 쌓였다고 생각했습니다. 착각이었습니다.
친부모, 양부모 두번 씩이나 버려진 상처는 쉽게 아물 수 있는게 아니었습니다.
절망에 젖은 아내에게 남편이 한마디 전했습니다.
' 그렇게 말하는 요한이 마음은 오죽했겠어...'
그 날 이후 요한이는 발달 장애를 이겨냈고
요즘은 IQ 130의 수재소리를 들으며 반에서 1등을 놓치지 않고있습니다.
며칠 후,행복이의 입양이 승인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러 자비원에 찾았습니다.
생후 100일도 되지 않아 이곳에 맡겨졌던 행복이. 여기서 8개월 보살핌을 받았었죠.
그런데, 우리는 행복이 자랑을 하러 온것만은 아닙니다.
아홉번째 아이를 입양하기로 한것입니다.
올해 아홉살.
한번 파양의 상처가 있는 아이
조금씩 마음으로 다가가는가 싶었는데..
태준이는 처음 입양됐던 가정에서 2년 반을 지내다가, 다시 버려졌습니다. 쉽게 아물지 않는 상처
입양을 다시 가야 하는 것이 너무 두렵기만 한 모양입니다.
결국 돌봐주던 선생님이 같이 가기로 하고서야 차에 탑니다.
아홉번째 입양을 서두르게 된건 태준이 때문이었습니다.
파양의 상처가 얼마나 깊고 컸는지, 태준이는 자비원에 들어와서도 적응을 잘 못하고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는 것입니다.
당황한건 우리 아이들
다같이 환영식 준비도 근사하게 해놓았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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